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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범 님의 서재입니다.

대환장의 아포칼립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조르범
작품등록일 :
2023.02.05 23:42
최근연재일 :
2023.04.28 19: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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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32,617

작성
23.02.0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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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01화

DUMMY

내 손안에 들어와 있는 작은 큐브.

보통 큐브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푸른빛으로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주사위 같은 정육면체였다.

숫자를 상징하는 점들이 박혀있다면, 주사위라 생각할 텐데, 그런 것이 없으니 자연스레 큐브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방 안에 이런 물건쯤 하나 있어도 문제 되지 않는다.

허나, 이 물건이 하루아침에 방바닥 중심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고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도대체 이게 뭘까···”


무심코 큐브를 들어보았다. 무게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뭘 잡고 있다는 것 정도만 느껴지고 마치 공기를 들어 올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런 물건을 들고 올리 없다. 일단 밖으로 나가질 않는다. 방구석에만 처박혀 살아간 지 어느덧 손가락 세 개가 접힌다.


“도대체 뭐냔 말이야···”


그 순간 푸른빛이 내 눈을 멀게 했다. 희뿌옇게 변하며 허우적거리다 그만 넘어졌다. 그 고통이 엉덩이를 타고 고스란히 올라왔다.


“끄아아아악!”


섬광에 눈이 멀어 덜컥 겁이 났지만, 시간이 지나자 내 걱정과 다르게 시야가 점차 돌아왔다.

큐브에게 화가 치솟아 떨어진 큐브를 잡고 이를 악물고 던졌다. 아예 박살 내버릴 심산이었는데, 부서지기는커녕 방에 큐브만 한 구멍이 생겼다.

큐브가 덜그럭거리며 용케 내 발 앞으로 굴러왔다.

그걸 주워 들자 다시 한번 섬광이 번쩍거렸다. 눈을 꽉 감았지만, 이번엔 그리 강한 섬광은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시겠습니까?]


[YES OR NO]


[당신의 선택에 따라 운명이 결정됩니다.]


내 시야에 투명한 글씨가 보였다. 눈을 비벼도 글씨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타쿠라서, 그것도 진성 오타쿠라서 좋은 점도 있었다.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판단력을 빠르게 세우는 것이 가능하다.


[YES]


누구나 꿈꿔왔던 이세계(異世界)의 모험. 그 모험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꿈일까 싶어 볼도 꼬집어 봤다. 고통이 느껴진 것으로 보아 절대 꿈은 아니다.

큐브의 제안을 승낙하자 내 방문에서 큐브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조금씩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저게 이세계로 흘러가는 문인가···”


두근거린다.

하지만 이건 설렘으로 두근거리는 것과 거리가 멀다.

내가 저 문을 열지 않은 해만 해도 손가락 세 개를 접을 수 있다.

나에게는 저 문을 여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어떤 게 방아쇠가 되어 그걸 당겼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눈 깜짝할 새에 그렇게 됐다.


희끄무레한 파란빛 그리고 굳게 닫힌 저 문···

이건 나에게 있어 시련이다.

벌써 저 문을 열고 나갈 생각을 하니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다.

거울 속에 내 모습이 투영되었다. 흘러넘치는 뱃살 옷이 작아져 흘러넘치는 뱃살을 옷으로도 가릴 수 없었다.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이런 고작 문하나 따위를 무서워하는 내 인생이 비참하다.


“그래 이제 이 세상과 안녕인 거야···”


굳게 닫혔던 문이 내 결심과 함께 열렸다. 문이 열리는 순간 빛이 내 몸을 포근하게 감쌌다. 참 따듯했다.

내 몸을 감싸던 빛이 사라졌다.

어디론가 이동한 것이다. 조용하던 내 방이 이렇게 시끄러울 리 없다. 섬광 덕분에 멀어버린 시야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소리일까. 귀 기울여 들어보니 사람들의 대화소리였다. 이들도 나와 같은 사람들인가?


“자! 마지막 10만 명의 사람이 채워졌습니다! 휴우··· 조금 오래 걸렸네요 한 사람의 선택이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습니다.”


생기발랄한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 목소리와 함께 내 멀어버린 시야도 돌아왔다.

탁 트인 시야와 함께 그 목소리가 말한 압도적인 인파가 수평선을 이루었다. 그 시선의 파도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호흡이 가빠져 눈앞에 안개가 끼듯 시야가 흐려졌다.


‘도망가야 해··· 도망가야 해···’


시야를 뒤집어 도망칠 곳을 찾아봤지만, 내가 도망칠 곳은 아무 곳도 없었다. 나갈 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뭔가 벽에 가로막힌 듯 머리가 흔들렸다.


“아, 뭐야 개 짜증 나게···”


톡 쏘는 소리와 함께 저도 모르게 고개가 들어 올려졌다.

그래서는 안 됐다. 눈앞에 있는 자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훑었다.

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다. 간지러움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또 시작이다.


“뭐, 뭐야··· 미쳤나 봐···”

“죄, 죄송합니다···”


미친 듯이 내 몸을 긁는 걸 모든 사람들이 지켜본다는 사실에 미칠 것 같았다.


“괜찮아요?”


따듯한 무언가 내 몸에 닿는 순간 간지러움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내 어깨에 손을 올려준 백옥같이 고운 손이 보였다.


“아, 저기 저···”


아름다웠다. 사람의 미소가 따듯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뭘요, 괜찮아요. 그보다 정말 괜찮으세요? 피가 나오는데···”

“아, 괜찮습니다···”


피가 나오는 팔을 얼른 숨겼다. 긴 팔이라 다행이었다. 그러나 피가 소매에 배어 나오는 것까진 어쩔 수 없었다.

가까이서 나를 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 됐지만, 어째서인지 얼굴도 모르는 그녀가 옆에 있으니 안심되었다.


“한동안 소란이 있었네요. 자 이제 다들 진정되신 것 같으니, 제 소개를 하기에 앞서 여러분들의 세상이 처한 상황을 알려드릴까 합니다.”


사람들의 짜증 섞인 언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공중에 떠있는 조그마한 초록색의 괴물은 그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할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들의 차원 B-5698 행성은 멸망할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하지만 선택받은 여러분들이 애써주고 힘써주신다면 멸망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죠. 자 믿기지 않을 분들도 계실 것 같으니 한 번 여기를 봐주시길 바랍니다.”


뭐라 반발이 일어나려는 것 같았는데, 초록색 괴물이 이빨을 씰룩거리며 하나의 영상을 띄웠다.

그 영상 속에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아마 살아가는 것 같았다. 건물도 우리와 달랐고, 의상도 머리 모양도 우리와 다른 시대였다.

그런 세상이 온통 붉게 타올랐다. 건물들은 부서지고 곳곳에 선혈들이 낭자했다.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자, 여기까지 보셨으니 이해가 빠르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 모습이 여러분들이 근미래에 겪게 될 모습입니다. 하지만 저희들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은 이런 위기에서 쉽게··· 물론 쉽지 않겠지만, 극복하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분명 10만 명이라 했다. 그 수많은 인원의 긴장된 숨소리가 들렸다.

고요한 숨소리에서 그들은 깨달은 것이다.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저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멍청하지 않은 이상 여기 있는 모두가 깨달았다.


“오, 손 드신 분 질문은 나중에 받으려고 했는데, 궁금한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큐브는 우리에게 모두 주어진 겁니까?”

“그렇습니다. 모두에게 전달해 드렸습니다.”

“혹시 한 가지 더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궁금한 게 많으시군요. 네 제가 알려드릴 수 있는 선에서는 모두 답해드리겠습니다.”


그 괴물은 번들거리는 이빨을 내보이며 웃음 지었다.

그 모습이 조금 괴상망측하게 느껴졌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만, 혹시 이곳에 오는 걸 반대한 사람들을 어떻게 됐습니까?”

“좋은 질문이군요.”


웃음 짓던 괴물의 웃음이 조금 더 진해져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모두 죽었습니다. 주어진 기회조차 포기해 버리는 사람들은 모두 쓸모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했습니다.”


저 말이 진실일지, 거짓일지 모른다.


“물론 거짓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여러분들이 느끼시는 바가 있을 겁니다. 여기까지 와서 제 말이 모두 거짓일 거 같나요?”


말을 굉장히 잘했다.

심리적으로 압박을 가하면서 분위기를 압도하는 저 모습에 침이 절로 삼켜졌다.

지금 저 말로 인해 진실일지 거짓일지 혼동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을 단번에 정리해 주었다.

진실이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주어진 기회조차 버리는 사람들은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괴물이 목을 가다듬었다.


“자, 시간이 조금 지체됐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렸죠? 여러분들은 선택받았다고. 그에 걸맞게 여러분들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쥐어드릴까 합니다.”


괴물이 양팔을 넓게 펼쳤다. 그와 동시에 금색의 카드들이 10만 명을 에워싸며 아주 촘촘하게 전개되었다.

눈치 빠른 놈들은 아마 저 카드가 무슨 의미인 줄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눈치 빠른 놈들 중에 속한다.


“저게 뭘까요?”


옆에 있던 그녀가 물었다. 그녀는 신기한 듯이 머리를 이리저리 돌렸다.


“저 괴물이 말했듯이 앞으로 어떤 시련이 닥쳐올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사용할 유용한 것이겠죠.”


정답일지 아닐지 그의 다음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들의 눈에 보이는 이 황금색 카드들은 각각 두 번 선택하시게 될 것입니다. 하나는 패시브 카드를 하나는 액티브 카드를 여러분들이 앞선 영상에서 본 괴물들을 상대하실 때 쓰일 유용한 카드들이니 신중하게 선택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신중이고 뭐 고도 없다.

운 그 자체인데, 신중해서 뭐 하나···

신중하게 선택하란 그의 말에는 모순이 담겨있었다.


“저, 정말이에요! 그걸 어떻게 알고···”

“감입니다. 감···”


소설이랑 애니메이션 정독하니 그 정도 눈치는 챙길 수 있죠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그런 것들이 쪽팔리다는 생각이 들은 순간이었다.


“자 이제 선택의 시간입니다. 선택은 간단합니다. 여러분들의 시선 끝에 닿는 것을 인식할 겁니다. 그리고 속으로 그 카드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다면, 여러분들이 선택하신 카드들이 스스로 다가올 겁니다.”


정말 이었다. 금색 카드를 들어 보이는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었다.


“신중하게 고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신중하게 고른 건데요? 제가 또 이런 운은 좋거든요.”

“그렇습니까···”

“네 맞아요. 안 고르세요?”

“저도 고르려고 합니다.”


나도 아무렇게나 금색 카드를 골랐다. 그 카드가 내 손에 들어온 순간 금칠이 벗겨지기 시작하면서 원래 본연의 색으로 돌아왔다.


[축하합니다.]

[패시브 스킬 ‘불굴의 의지(B)’를 손에 넣었습니다.]

[이 스킬을 가진 당신, 굴하지 않는 정신으로 살아갈 겁니다. 당신에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입니다.]


괴상망측한 소리였다.

불굴의 의지라니, 그런 게 사람 마음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이런 스킬을 손에 넣어봤자 어차피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무슨 스킬이에요?”


그녀가 생긋 웃으며 다가왔다.

옆을 살짝 스친 것뿐인데, 그녀의 향수 냄새가 코를 스쳤다.

그러다 잠시 혹시 내 몸에서 나는 냄새는 어떡하지 생각이 스쳤다.

그런 생각이 드니 저절로 그녀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 그게 그러니까. 알게 된 스킬은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왜요?”

“믿을 수 없기 때문이죠···”

“아하 그렇군요!”


그녀가 손바닥에 주먹을 살짝 내리쳤다.


“저는 이하루라고 해요.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제, 제 이름··· 그게 그러니까···”


말해라. 속으로는 그리 외친다. 머리도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왜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지···

온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스킬 ‘불굴의 의지(B)’가 발동됩니다.]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불굴의 의지. 내가 간절히 바란다면, 나의 마음은 꺾이지 않는다.


“윤···”


그녀가 궁금한 듯 고개를 까딱거리며 나를 보고 있다.


“윤현성이라고 합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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