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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범 님의 서재입니다.

대환장의 아포칼립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조르범
작품등록일 :
2023.02.05 23:42
최근연재일 :
2023.04.28 19:00
연재수 :
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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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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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글자수 :
432,617

작성
23.02.0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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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04화

DUMMY

눈을 감았다 뜨니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검을 쥔 내 손은 아직도 긴장감에 검을 놓을 수 없었다. 다 끝났다는 것을 알아도 손잡이가 뿌리라도 내린 듯 도저히 떨칠 수 없었다.

내 앞에 그녀가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말하려 하였지만, 결국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에 도리어 당황스러웠다.


“···하루 씨?”

“저, 저 때문에 죄송해요···”


그녀가 고개를 떨구고 결국 흐느끼며 울기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이 나와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어찌해야할 바 몰랐다. 그러자 누군가 내 등을 밀어주었다. 나와 대치하였던 중년 아저씨가 내 등을 조심스레 민 것이다.


“아깐 미안했다. 남자였더군··· 지금 상황에서는 그래. 그냥 살포시 안아주는 게 최고다.”

“아, 저 그게···”


안아주라니 내 성격이 그것을 거부했다.


“자, 여러분들 모두 진정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행이었다. 녹색 괴물의 등장에 반가움마저 들었다.

그가 나를 내려본다. 시선을 맞출 수 있을 정도까지 내려온 괴물이 팔이 부러진 것을 보았다.


“대단하시더군요. 지금 상황에선 오크는 절대 잡을 수 있었던 레벨이 아닙니다. 당신의 기지와 놀라움에 박수가 절로 나오더군요. 처음엔 객기부리는 자를 탈락시키려는 마음으로 보냈던 건데, 나중에는 모두 당신을 응원하고 있더군요.”

“···감사합니다.”


툭 튀어나온 누런 어금니가 조금 움직였다. 가까이서 보니 더 괴랄한 웃음이다.


“감사할 필요 없습니다. 저와의 승부에서 윤현성 씨가 승리하신 겁니다. 팔은 이미 치유되었습니다.”


정말 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찌르르한 통증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말끔하게 사라져 제대로 움직였다.


“자, 그러면 모든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잘 따라와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면서 이 자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일주일 정도의 자유로운 시간이 여러분들에게 주어질 겁니다. 질문이 있으시다면, 몇 가지 질문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녹색 괴물의 마지막 말에 수 많은 인파들이 손을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녹색 괴물의 선택을 받는 자들은 몇 되지 않았다.


“저기 파란 티를 입으신 분 질문하십시오.”


나와 너무 멀어서 보이지도 않지만, 소리는 똑똑히 들렸다.


“큐브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진 이 큐브는 스스로 여러분들을 선택한 겁니다. 즉, 그말인 즉슨 큐브를 잃어버리거나 던져버려도 내일 아침이면 돌아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큐브를 소중히 다뤄주십시오. 그렇지 않는다면 아주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는 몇몇 질문을 더 받았지만, 모두 시덥잖은 것이었다.

그렇게 마무리가 되고 녹색 괴물은 더이상 질문을 받지 않았다.


“자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우리들의 몸이 투명해졌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그녀는 아직도 울고 있을까?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뭔가 잃어버린 듯 깜짝놀란 모습으로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저, 저··· 고마워요.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그 저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오히려 감사한 건 제가 더 감사하죠.”

“네? 왜 저에게···”


그녀가 정말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붉어진 눈시울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마 이곳에서 버틸 수 없었다. 그녀의 가녀린 손길이 나에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에게 그녀는 상상 이상의 고마운 존재였다.


“저희는 다시 만날 겁니다.”

“자, 잠깐만···”


끝말을 듣지 못했다.

이미 큐브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있던 방에 돌아온 참이었다.

꿈인 듯 싶었지만, 내 손에 아직도 들려진 큐브와 찢어진 옷을 보면, 꿈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문을 쳐다봤다.

저 문을 통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아직도 그 감정의 여운이 바로 앞 현시처럼 생생하다.

눈으로 그리라고 한다면 그림으로 가져올 수도 있다.


“······.”


가까이 다가가 문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 그건 칼을 쥐었을 때와 거의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왜 이게 더 버겁게 느껴질까···

분명 죽을 뻔한 것은 그때였다.

그럼에도 문을 살짝 연다. 혹시나 다시 큐브 속으로 빨려들어갈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열었지만, 그런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아······”


내 공간 밖의 세상.

공기가 사뭇 달라졌다. 아니 내 스스로 그렇게 느끼는 거지.

공기는 달라지지 않는다. 늘 그렇듯 똑같은 공기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나를 틀 안에 가둬 두었다.

걸음걸음이 무겁고 잘 떼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갔다.


“어머니···”


복도에서 눈이 마주친 어머니, 식은땀을 흘리고 무거워 보이는 후라이팬을 들고 온 것으로 보아, 강도가 침입했다고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


“···현성이니?”


믿기지 않는 듯 어머니의 눈동자에 파문이 일렀다.

후라이팬을 치켜들었던 어머니의 손에 힘이 쭉 빠진 듯 후라이팬이 텅-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저, 정말 내 아들 현성이가 맞니···”


3년 전 내가 방에 틀어 박히기 전, 어머니의 모습과 많이 달랐다.

그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죄송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었다.


“죄송합니다···”

“아니다··· 아니야··· 당신 말이 맞았어요. 현성이는··· 현성이는, 내 아들 현성이는 포기할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수척해진 어머니의 따듯한 손길이 나를 감싼다.

그동안의 마음이 전해졌다. 내겐 지켜야 할 것이 있다. 그걸 눈으로 직접 보니 조금 흔들리던 마음이 바로 섰다.


“···저는 이제 괜찮아요 어머니. 더이상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 * *


사람들의 기합소리가 들렸다.

엄청난 기합 소리와 흘린 땀냄새가 짙게 밴 도장엔 수 십명의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을 것 같았지만, 실상 네 명의 사람의 목소리가 그렇게 퍼진 것이다.

검도관의 관장 최상혁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실전 검술의 명인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그를 부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을 정도로 유명인사였다.

그런 그가 한국에 도장을 차리고 수하생이 되기 위해 찾아온 자들이 수천이 넘었다.

하지만 그는 찾아온 모든 사람을 거절하고 자기가 직접 뽑은 몇명만 데리고 도장을 운영하는 중이었다.


“스승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아직도 찾아오는 사람이 있더냐? 좋은 말로 돌려 보내거라.”

“그렇게 말했는데도, 스승님을 직접 봐야겠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아무래도 직접 나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최상혁이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 그렇다고 짜증이 솟구치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검사는 마음을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걸로 짜증내는 것은 하수나 하는 짓이었다.


“젊은 청년이었군···”


최상혁은 그 청년을 처음본다. 그보다 살이 찌고 전혀 관리가 안 된 모습으로 찾아오니 더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부드럽게 말하며, 그를 좋게 돌려보내려 하였다.


“이곳은 실전 검술을 수련하고 연마하는 곳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아저씨 저 윤현성입니다. 이렇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현성? 윤현성··· 잠시만 기다리거라 네가 정말 현성이니?”


그가 반가움보다 놀라움이 가득 담긴 물음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정말 자기가 알던 그런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맞구나 현성이, 들어와서 이야기 하자꾸나. 얼른 들어오거라.”


오랜만에 최상혁의 표정에서 웃음꽃이 핀 것을 본 관원들은 살찐 윤현성의 모습을 보며 볼멘 소리를 냈다.


“스승님이 저 녀석을 알고 있는 건가?”

“꽤 친한가 본데, 저 녀석 도대체 스승님이랑 무슨 관계인거지?”

“···나야 모르지.”


그들의 볼멘 소리는 최상혁이 모습을 들어낼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그래··· 아버지 소식은 들었다. 그게 벌써 3년이나 지나버렸구나. 그동안 어떻게 지낸 것이냐.”

“그냥··· 도망쳤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도망치기만 했습니다.”


최상혁은 그의 몸상태를 보고 도망쳤다는 의미가 어떤 뜻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그래서 정신은 차렸느냐?”

“예,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정신 차린지는···”

“말보다 행동이 빠르다는 건 알고 있겠지? 가보자꾸나.”


최상혁과 윤현성이 방을 나왔다. 널찍한 대청마루에서 훈련하고 있던 수련생들이 그 둘을 주목하였다.


“어디 한번 골라보거라.”

“아직 제가 진검을 다룰 준비가 되지 않은 터라. 목검을 쥐겠습니다.”


최상혁은 지금 자기가 어떤 그릇을 갖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현성을 보고 만족스러운 듯 웃고 있었다.


“···스승님, 저 살만 뒤룩뒤룩 찐 놈이 마음에 드신 겁니까?”


최상혁이 가장 아끼던 제자, 이대수가 그의 옆에 서 눈살을 찌푸리며 볼멘 소리를 툭 던졌다.


“윤채윤이라 들어본 적이 있겠지?”

“검을 쥔 사람이 그 자를 모르면 간첩이라 부르지 않습니까?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검사가 아닙니가. 마지막 검객이라 불리웠던··· 그 자가 안타깝습니다만···”

“네놈은 눈치가 없어도 정말 없구나.”


최상혁이 그를 못마땅한 눈으로 째려보았다.


“설마, 저 녀석이 윤채윤의 아들이라 된단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윤현성 너도 들어는 봤을 거라 생각한다.”

“윤현성이라면, 5년 전 세계 검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그는 방금 전 그와의 대화를 상기했다. 자신을 분명 윤현성이라 소개한 그였다.


“이리 눈치가 없어서야 쯧쯧···”

“하지만 지금은 그저 살찌고 관리하지 못한 자 아닙니까. 그런 놈한테 기대를 거는 것이 멍청한 짓 아닙니까?”

“너는 봐라. 저게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보이더냐?”


이대수가 봐서 뭐하냐는 듯 삐딱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검을 잡은 그의 모습에서 틈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그와 검을 맞대 일격을 나눠보라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스승님의 밑에서 집중적으로 가르침을 받았다. 그런데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으니 그의 자세에서 깊은 내공이 엿보였다.


“보이나?”

“저런 눈빛은 처음 봅니다···”

“아무나 저런 눈빛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승님도 저런 눈빛을 갖지 못하셨습니까?”

“···그러하구나”


그가 안타깝다는 듯이 대답했다.


“저런 눈빛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온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이다.”

“죽음의 문턱···”

“장난처럼 들릴지는 몰라도 정말 그런 사람들은 사선을 넘나든 눈빛을 지니고 있지. 이미 죽음을 경험해 봤으니 두려울 것이 없는 게다.”


이대수가 눈빛을 달리했다.

과연 그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가 상당히 컸다.

현성의 앞발이 움직이는 순간 짚단이 들썩거렸다. 망가진 몸으로 보여주었다고 믿기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으하하하하하하!”


도장이 울릴 정도로 큰 웃음소리에 모두 귀를 막았다.


“대단하구나 대단해! 어찌 검도를 닦지도 않았는데 그런 경지를 보여줄 수 있는지 신기하구나, 내가 천재란 천재는 모두 만나보았지만, 현성아 너는 정말 천재다.”


*


천재라니 당치도 않은 소리다.

우리 아버지. 대한민국의 마지막 검객이라 불리우던 아버지가 천재다.

나는 그저 아버지의 발뒤꽁무늬를 쫓던 어린 아이에 불과했다.


“종종 운동하러 와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와도 좋다.”


아버지와 이어진 옛 인연을 지금까지 잊지 않아준 것이 감사하다.


“감사합니다.”

“마음쓰지 말거라. 언제든 찾아와도 좋다. 마음내킬때 언제든지.”


도장을 나와 주먹을 폈다. 아직도 손에 땀이 흥건하게 배어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에 손이 떨리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선 강해져야 한다.


“그렇지요 아버지···.”


오늘따라 아버지의 빈자리가 그리웠다.

약해진 마음도 오늘 뿐이다. 그렇게 해도 되겠지.

아버지라면 고개를 끄덕거려 주실 것이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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