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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범 님의 서재입니다.

대환장의 아포칼립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조르범
작품등록일 :
2023.02.05 23:42
최근연재일 :
2023.04.28 19:00
연재수 :
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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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80
추천수 :
217
글자수 :
432,617

작성
23.02.07 17:00
조회
668
추천
8
글자
12쪽

002화

DUMMY

이름을 말했다.

숨이 가득 차올라 간지럽던 느낌도 사라졌다. 귓속을 파고든 알림음이 정말 스킬이 사용됐다는 걸 체감했다.

그녀의 밝게 상기된 얼굴을 이제는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음··· 아름다웠다. 내가 0과 1의 세상에서 본 다른 히로인들 보다 훨씬 더.

다른 수식언으로 그녀를 표현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다.


“이쁜 이름이잖아요!”

“그,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하하하···”


그녀의 적극적인 모습에 애먼 내 뒤통수만 긁었다.


“저는 천사들의 합창이라는 카드를 얻었어요. 음··· 이건 제 눈에만 보이는 글씨 같은데 읽어보니 재밌어요.”


천사들의 합창이라. 그녀의 목소리가 그런 느낌을 주기도 했다.

어쩌면 스킬 카드들은 무작위가 아니라 본인에게 어울리거나 필요한 스킬 카드를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자 10만 명의 사람들이 모든 카드를 골라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고르시는 카드는 공격 스킬 카드, 즉 여러분들의 세상에선 액티브 스킬이라는 뜻이 되겠죠. 또 카드가 전개되면 여러분들은 똑같이 골라주시면 됩니다.”


한 번 더 황금색 카드가 전개되었다. 굉장한 개수에 놀라고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는 카드에 한 번 더 놀랐다.

한 번 적응하니 먼저 좋은 카드를 골라한다는 걸 다른 사람들도 깨달았다. 하지만 이건 본인 운에 달린 일이었다.

그 결과···


[축하드립니다.]

[공격 스킬 카드 ‘베기(E)’를 얻었습니다.]

[한 남자가 석양을 바라보며 서있다. 남자의 등 뒤로 쓰러져 나간 짚단들, 그는 짚단을 생각하며 자신의 재능을 비관한다. “나도 재능이 있었더라면···”]


스킬 설명란이 뭔가 재수 없는 건 기분 탓이겠지.

B등급에 E등급이라···

운이 나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스킬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이게 내 운의 결과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웃음 짓는 사람과 탄식하는 사람이 보였다. 물론 탄식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번 스킬 카드는 뭐예요? 현성 씨?”

“아, 그··· 전 그냥 베긴데요. 나쁘지 않을 거라 봅니다.”

“그렇군요. 베기? 저는 매직 애로우라는 스킬인 것 같아요. 이것 역시 좀 괜찮아 보이지 않나요?”


학습 능력이 없는 건지, 아니면 내가 정말로 믿을 만한 사람이라서 그러는 것인지. 어차피 한 번 더 말해도 안 들어 먹을 것 같으니 그만 이야기하기로 했다.

더 이야기하면 잔소리로 들릴 테니까.


“매직 애로우라··· 하루 씨는 마법 계열로 가야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번엔 스킬을 지어줬으니, 다음에는 기본적인 무기를 주지 않을까요?”


아직도 하늘 위에 부유하고 있는 괴물을 올려보았다.

그 괴물은 주위를 듬성듬성 둘러보더니 목을 가다듬고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그가 카드를 펼친 것처럼 양팔을 넓게 펼치더니 이내 모든 카드들이 그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차곡차곡 쌓이는 카드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자, 여러분들 모두 패시브 스킬과 액티브 스킬을 얻으셨으니, 다음은 여러분들이 강력한 적과 맞설 무기를 선택하는 시간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똑같이 양팔을 벌렸고, 다섯 종류의 투박한 무기들이 하나씩 생성되었다.

한 손 검, 창, 활, 단검, 방패까지 모두 기초적인 아이템으로 보였다.


“이 중에서 골라주시면, 본인의 손으로 알아서 무기가 들릴 겁니다.”


이하루가 무기를 고르려고 폴짝 뛰는 순간 그녀를 제지하고 손을 들었다.

조금의 용기가 필요하였지만, ‘불굴의 의지’ 덕분인지 숨이 조금 차오르는 것으로 버틸 수 있었다.


“질문인가요?”

“···그렇습니다.”


내 몸은 간단한 질문 조차 하기 버겁다.

사실 이런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일단 기적이라 봐도 무방했다.


“좋습니다. 질문을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괴물이 돋보이는 어금니를 강조하며 미소 지었다.


“마법 계열 스킬을 가진 자가 방패를 가져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까?”

“아주아주 좋은 질문이네요. 그건 답변해 드리지 않으려고 하였는데, 여러분들의 인식 속에는 마법 계열은 지팡이나 스태프를 착용해야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실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그가 유창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런 편협한 시선으로 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런 시선으로는 이런 미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까요. 제약은 없습니다. 답변이 되었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 답했다.

옆에 있던 이하루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되도록 이면 방패를 고르세요.”

“방패요? 왜요?”


그녀가 고개를 살짝 앞으로 내밀어 나와 눈을 맞췄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얼굴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음··· 쉽게 설명하자면 공격보다 방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성 씨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맞습니다. 하루 씨는 그, 그게··· 원거리에서 매직 애로우로 공격할 수 있으나, 근접 전을 대비할 수단이 없죠. 지팡이를 방망이처럼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초반엔 방패가 큰 힘이 되어줄 겁니다.”


그녀가 발랄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면 현성 씨 말대로 방패를 고를게요!”

“참고만···”


하라고 말릴 생각이었는데, 이미 그녀의 손에는 방패가 들려있었다.

사실 마지막에 후회한 것이다. 그녀가 방패를 든 것으로 혹시나 마지막이 될 때 나를 원망하지 않을까.

그래서 원하는 걸로 고르라고 말하려 하였지만, 이미 늦었다.


“빠, 빠르시네요···”

“그럼요! 현성 씨는 뭘로 고를 생각인가요?”


그녀의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도저히 정면으로 마주 볼 수 없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 의식하게 되었다.

그들이 위아래로 훑는 그런 시선이 내 숨을 꽉 막히게 하였지만, 눈앞에 보이는 이하루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저는 검을 고를 생각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방패를 고르고 싶었으나, 하필 나온 것이 ‘베기(E)’라는 스킬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

방패로 적들을 벨 순 없다. 그건 베는 게 아니라 패는 거라 봐야 한다.

검을 선택하자 내 손에 투박한 한 손 검이 들려졌다.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자, 모두 각자 스킬과 무기를 골랐으니 이제 실전으로 들어가 봐야지 않겠나요?”


괴물의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실전··· 정말 영상 속에서 봤던 괴물들과 싸운다는 소린가.

솔직히 자신 없다. 이런 뒤뚱거리는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으아아··· 긴장되네요...”


살짝 떨리는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이하루가 방패를 꼭 끌어안고, 애써 미소 짓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됩니다.”

“티 나나요···”


혀끝을 살짝 깨물며 웃는 그녀가 마음을 들킨 것이 부끄러운 건지 얼굴을 붉혔다.


“다 티 납니다··· 그리고 무섭지 않은 사람이 어딨 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는 현성 씨는 별로 무섭지 않은 것 같은데요?”

“···저 말입니까?”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하였다. 그녀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내가 두렵지 않아 보이는 건 다 당신 덕분이라고···

그러나 이런 낯부끄러운 말을 어떻게 당사자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스킬을 갖고 있어도 절대 죽어도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자, 잡담은 여기까지 여기서 대표로 10만 명 중에 10명만 뽑도록 하겠습니다. 승리하면, 소정의 선물이 갈 겁니다.”

“실패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시끌벅적하던 소란이 중력에 짓눌리듯 가라앉았다.

한 사람의 질문이 궁극적으로 모두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실패하면 죽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실전입니다. 아무리 듀토리얼이라 하더라도 죽는 건 죽는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10만 명이 아마 같은 생각일 거다.

제발 내가 아니길 바란다고.


“자! 그럼 10만 명 중에 10명을 소환해 보도록 할까요?”


영상이 떠오르고 10개의 룰렛이 빠르게 돌아간다.

저 중에 내 이름이 있고, 바로 옆 그녀의 이름이 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룰렛이 멈췄다.

완전히 10개의 룰렛이 멈췄을 때 내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다. 긴장의 끈이 풀리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


그러나 익숙한 이름이 하나 들어왔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룰렛에 보이는 ‘이하루B’라는 이름이 당첨되었다.

옆에 붙은 B가 동명이인 일 것으로 그녀가 아닐 거라는 가능성을 믿어야 했다.


“어, 어떡하죠?”

“아닐 겁니다. 동명이인이길 바라야죠.”


하지만 내가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을 때는 심장이 철렁거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뜬 아래 방향의 화살표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화살표의 개수는 정확하게 10개였다.


“화살표가 9개밖에 없어요!”


밝은 목소리, 그러나 9개라는 의미가 어떤 뜻인지 깨달았을 때, 그녀의 목소리는 더 이상 밝지 않았다.

10명의 인원, 그리고 그 10만 명의 중심으로 투명한 막이 생성되었다. 피의 콜로세움 말이다.

그녀의 떨림이 닿지 않아도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밝은 미소가 사라진 것이 왜인지 마음이 아팠다.


“···괜찮을 겁니다. 게임해보셨죠?”


그녀가 대답 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처음에 어떻게 싸우는지 알려주는 듀토리얼이라 생각하세요. 처음 시작하면 하루 씨가 뽑은 스킬을 이용하세요. 원거리에서 적이 가까이 다가오기 전까지 없앨 수 있으면 그게 베스틉니다. 아시겠어요?”

“만약··· 적을 맞추지 못한다면요···”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잘하실 거예요. 일단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 끝내겠다는 마음으로 임하세요. 그리고도 가까이 다가온다면, 1대 1로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하시는 겁니다. 알겠어요?”

“고마워요···”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지금은 웃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네요.”


억지로 웃는 것도 긴장을 푸는 방법 중 하나였다.

너무 과도한 긴장은 몸을 굳게 만들고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가 생각했을 때 그리 어려운 적을 상대하진 않을 것이다. 말 그대로 초반부 튜토리얼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 순서인 그녀가 9명 모두 무사히 완수했을 때, 분명 자신감이 붙을 거라 생각했다.


“현성 씨는 대단한 것 같아요. 이런 일에도 침착하시잖아요.”


그게 다 당신 때문입니다.

이 말이 목젖을 치고 올라올 뻔했다. 목 끝에서 멈춰 다행이었다.


“스킬 때문인가 봅니다.”

“스킬이요?”

“네, 정신과 관련 있는 스킬이라서요.”


그녀의 드리워진 그림자가 어느새 사라졌다. 환한 웃음으로 나와 눈을 맞춘 그녀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저를 믿으시는 거죠?”

“네, 믿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인데, 어떻게 아니라고 할 수 있겠나.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렸다.


“시작하나 봅니다.”


이하루 너머에 있던 투명한 막에서 사람이 나왔다.


“10명 모두 똑같은 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단 움직임을 잘 보고 익히셔야 합니다. 아무래도 10명 중에 마지막 순서가 가장 유리합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이 닿는 곳으로 향했다. 미소를 지우고 진지하게 임하는 그녀의 자세를 보고 가슴 한편 무거웠던 짐을 조금 내릴 수 있었다.


“제가 반드시 이기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스킬 때문인지···

평소라면 하지도 못할 말들을 해버린다.

오히려 좋다. 그녀가 죽지 않고 이기게 만들어줄 수 있다.

반드시··· 그렇게 해 보이겠다.

누군가 내 앞에서 죽는 건 더는 보고 싶지 않다.


“현성 씨 고마워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연재는 항상 19시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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