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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작가미상 님의 서재입니다.

은퇴 후 변방 영주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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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작가미상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3
최근연재일 :
2023.05.30 20:00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775
추천수 :
33
글자수 :
105,904

작성
23.05.20 20:00
조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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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0쪽

15화 너, 내 부하가 되라.

DUMMY

“어떻게 하실 겁니까?”

“⋯⋯.”

“영주님?”

“⋯⋯.”

“아레스 님?”

“⋯⋯.”

“안타라스의 ‘작은’ 남자여.”

“죽고 싶냐? 이게 미쳐가지고?”

“그러니까 왜 사람 말을 무시해요?”

“생각이 깊어서 그래, 생각이.”


둘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생겼다.

소리 없이 영주성의 복도를 걷는 두 사람의 발소리만이 넓은 공간을 채웠다.

그러나 침묵은 길지 않았고, 아레스는 미뤄왔던 카라스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나쁘지 않아.”


아레스의 말에 카라스는 걸음을 멈췄다.

아레스는 두어 걸음 더 걸어간 이후 발걸음을 멈췄다.

카라스는 말없이 아레스를 바라보았고, 아레스는 돌아보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셀리나가 한 말처럼 관문 밖에서도 힘을 키울 수 있다면⋯⋯”

“영주님”

“?”

“솔직해지세요.”

“뭘 말이야?”

“지금 손⋯⋯ 떨고 있잖아요?”


아레스는 카라스의 말에 흠칫하며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손.

아레스는 반대쪽 손으로 자신의 떨리는 쪽 팔을 잡았다.


“조금 쌀쌀해서 그래.”

“여름인데요.”

“여름이라고 무서운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더니 조금 무섭네. 여기 복도가 어둡잖아?”

“아직 낮이라 햇살이 아주 잘 들어오는데요?

“낮이라도 무섭다고! 난 작고 나약한 영주니까!”

“앞쪽은 맞는 말이긴 한데요, 영주님⋯⋯”


카라스는 아레스에게 다가가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잡아당겨 아레스의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아레스의 얼굴을 마주 보며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영주님 지금 웃고 있어요.”

“내⋯⋯ 내가?”


자신의 얼굴을 더듬어 확인한 아레스는 실소를 터트렸다.

은퇴하고 싶었고 모든 걸 버리고 변방으로 왔다.

안타라스를 벗어날 때는 이계인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고, 헬레나를 제압할 때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트윈 헤드 오우거를 잡을 때와 지금 떨리는 이유는 셀리나 때문이다.

아레스는 그렇게 자신이 한 행동에 이유를 붙이고 있었다.


‘나는 싸우고 싶지 않아.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하지만 이 변방에서 관문을 너머 중앙과 대적할 힘을 키울 수 있다는 셀리나의 말에 자신은 미소 짓고 있다.

심지어 손이 떨릴 정도로 흥분해서.


“솔직히 영주님은 지금⋯⋯”


꿀꺽


아레스는 크게 침을 삼켰다.

카라스는 옆에서 자신을 보아온, 누구보다, 심지어 자신보다 자신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었다.

혼란스러운 자신의 감정은, 지금 저 입에서 정리되어 나오기 일보 직전이었다.


“자⋯⋯ 잠깐만!”

“예?”

“잠깐만. 심호흡 좀 하고.”


후욱후욱


제자리에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스트레칭을 한 아레스를 보며 카라스는 혀를 찼다.


‘아까는 처음 보는 괴물하고 싸울 때도 일단 덤벼들고 보더니, 역시 물렁해졌어.’


뜀뛰기까지 마친 아레스가 카라스를 보며 결의에 찬 표정을 짓자, 카라스는 가까스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솔직히 영주님은 지금⋯⋯”

“나는 지금?”

“몹시⋯⋯”

“몹시?”

“셀리나 님이 두려운 겁니다!”

“그렇지 셀리나가 두렵⋯⋯ 뭐?”

“은퇴하겠다고 이렇게 변방까지 왔는데, 셀리나 님을 만나 은퇴 생활이 작살나게 생겼잖아요?”

“에?”

“심지어 던전도 쉼 없이 돌아야 하는 하드코어 한 영지 육성이라니, 이거 은퇴하기 이전보다 더 힘든 거 아닌가요?”

“에에?”

“이럴 거면 그냥 중앙에서 꿀이나 빨지, 이계인에게 쫓기는 것도 서러운데 뻉이까지 치게 생겼잖아요?”

“아니 아니. 사실은 나 그냥 싸우는 걸 좋아한다거나 했던 건?”

“그랬으며 진작에 이 주위를 평정하고도 남았겠죠. 어디서 힘을 숨긴 찐따 연기하는 영주인 척하시려고⋯⋯.”

“그런가?”

“제 눈을 속일 순 없습니다.”

“그렇지?”

“진짜로 힘을 다 했으면서 척하시다니, 어휴⋯⋯.”

“그래도 아직 쓸만하지 않았냐? 아까 불기둥 타오르는 거 봤지?”

“그래봤자 찐⋯⋯ 아닙니다. 아니에요.”

“이 새끼가⋯⋯.”


* * *


영주성 밖에 자리 잡은 반란군 캠프에 아직 커다란 백기가 걸려있었다.

이는 아직 항복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의미하였고, 때문에 고요한 듯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헬레나와 독전대는 갈리오를 비롯한 수뇌부를 구금하는 대신 주변을 정돈하고 보수하는 임무를 내리고 감시했다.

반란 이전까지 매일 해오던 임무인지라 별로 거부감은 없었지만, 반란이 진압된 이후에도 평소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 같아 불안했다.

마치 사형수에게 마지막 자유시간을 주는 것처럼.

이런 불안감을 잊고자 더 열심히 작업을 하던 갈리오 앞에 헬레나가 나타났다.

갈리오는 작업을 멈추고 헬레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영주의 대답이 도착했나?”

“글쎄요? 난 당신을 데려오라는 명령만 받아서요.”


헬레나는 근사한 웃음으로 대답했지만, 그녀의 화사한 웃음에도 갈리오는 웃을 수 없었다.

굳게 다문 입으로 씩씩한 걸음을 옮겨 막사를 향했다.

헬레나는 조용히 그런 갈리오의 뒤를 따랐다.

얼핏 단순히 뒤를 따르는 것으로 보였지만, 갈리오의 보폭을 감시하며 언제든 검을 날릴 수 있도록 공격 범위 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갈리오는 자신이 용서받지 못했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무거운 발걸음은 끝날 것 같지 않았지만, 이질적이게도 너무 빠르게 막사 앞으로 도착해 버리고 말았다.


“헬레나예요. 반란군의 수장을 데려왔습니다.”

“들어와.”


리치 겸 오우거라는 재앙과도 같은 몬스터를 손쉽게 처리한 괴물 영주의 목소리를 들은 갈리오는 심호흡을 했다.

결국 카라스가 아닌 아레스의 심문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리오의 생각은 반만 맞았다.


“어떠세요, 영주님? 제법 쓸만해 보이지 않나요?”

“흐음⋯⋯.”

“놀란이나 헬레나가 이런 변방에서 구하기 힘든 놈들이지, 이 녀석 정도면 괜찮은 거라니까요?”

“셀리나는 뭐래?”

“당연히 알아서 하라고 하셨죠.”


카라스의 자신 있는 답변에 아레스는 조금 의구심을 가졌다.

아레스는 가늘어진 눈빛으로 카라스를 쏘아보며 물었다.


“정말?”

“어차피 셀리나 님께서 새로 구상하신 방법을 진행하려면, 이런 노다가꾼, 아니 채집 영웅이 필요하니까요.”

“⋯⋯ 그냥 네가 귀찮을 때 써먹을 놈 하나 찾은 거 아냐?”

“와, 영주님 또 섭섭하게 이러네? 내가 나 혼자 좋자고 이래요? 어차피 자원지에 보낼 놈들은 있어야 하잖아요?”

“여기 있잖아?”


아레스는 헬레나를 가리키며 말했고, 헬레나는 그런 아레스를 보며 실망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아니 영주님,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어떻게 영주를 하시는 건가요? 저는 썰고 자르는 게 특기라고요.”

“그렇다네요. 참고로 제 특기는 아시죠? 날려버리는 거.”

“자랑이다, 토막 살인마 같은 놈들아.”

“에이. 또 뭘 그렇게⋯⋯.”

“쑥스럽잖아요.”


헬레나와 카라스는 진심으로 쑥스러워하며 홍조를 띠고, 몸을 베베 꼬면서 뒤통수를 긁기까지 했다.

이런 미친 정신병자들⋯⋯.

아레스는 혐오의 눈길을 거두고 갈리오를 바라보았다.

제법 다부진 몸에 성실해 보이는 인상, 무엇보다 저 정신병자 콤비를 보며 혐오스럽다는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합격.”

“네?”

“너, 내 부하가 되라.”

“무⋯⋯ 무슨?”

“입 벌려.”


아레스의 말에 카라스는 능숙하게 갈리오를 제압하여 꿇렸다.

이후 턱을 들어 벌린 입을 하늘로 향하게 했다.

갈리오 앞에 선 아래스는 자신의 엄지 손가락을 물었다.


까드득


외부 충격에 의한 출혈이 면역인 아레스는 직접 손가락을 물어 피를 냈다.

그리고 피 한 방울을 떨어뜨려 갈리오의 입 속으로 흘려보냈다.

아레스의 피를 받아 마신 갈리오는 잠시 후 가슴에서 뜨거운 무엇인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 열기가 너무 강력한 탓인지 눈을 크게 뜨고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잠시 후 아레스 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갈리오에게서 <피의 맹세>가 활성화됩니다.]

[영주에게 <피의 맹세>를 받은 영웅은 자동으로 영주에게 귀속됩니다.]

[영웅 갈리오의 기본 능력이 향상됩니다.]


히든 특성인 <각성>의 활성화 스킬 중 하나인 <피의 맹세>는 단순히 영웅을 아티스트로 각성시키는 것만이 아니었다.

본래 영웅은 영지에 귀속되는 방식으로 영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해당 영지에서만 영입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영지를 버리고 도망 중인 아레스는 영웅을 영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다만 스킬을 이용한 우회적인 방법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피의 맹세>다.

피를 제공해 주는 영주가 영지에 있지 않더라도, <피의 맹세>로 맺어진 군신의 관계는 강제성이 인정된다.

따라서 영지 아니타의 영웅으로 판정되는 갈리오가, 영지 안타라스의 영주 아레스에게 영입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아니타의 영주인 셀리나의 승인이 필요한 부분인데, 이미 카라스에게 갈리오의 소유권을 넘긴다는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아레스는 또 하나의 부하를, 카라스는 후배를 영입하게 되었다.


“자, 이제 채집꾼은 확보했다.”

“막내 탈출 축하해. 헬레나.”

“깨어나면 신고식부터 해야겠네요. 안타라스의 끈적한 신고식이요.”


헬레나는 황홀한 표정으로 혓바닥을 내밀었고, 그런 헬레나를 끔찍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아레스와 카라스는 서로 바라보며 속삭였다.


‘야, 우리 영지에 그런 거 있었냐?’

‘없는데요, 저 년 진심인 것 같으니 그냥 모른 척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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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변방 영주로 살아남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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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주기 수정 23.05.17 20 0 -
21 21화 네놈이 더 나빠! 23.05.30 8 0 11쪽
20 20화 해피앤딩으로 끝나는 악몽이라니. 23.05.27 8 0 10쪽
19 19화 채소 좋아하지? 23.05.26 7 0 11쪽
18 18화 방심하지 말라니까⋯⋯. 23.05.25 9 0 11쪽
17 17화 변태 아니라고! 23.05.24 9 0 11쪽
16 16화 이의 있는 사람? 23.05.23 13 0 11쪽
» 15화 너, 내 부하가 되라. 23.05.20 20 1 10쪽
14 14화 다른 방법이 있어? 23.05.19 18 2 12쪽
13 13화 지 혼자 살겠다고! 23.05.18 23 2 10쪽
12 12화 그런데 진짜 괴물은 저런 못생긴 것들이 아냐. 23.05.17 26 2 12쪽
11 11화 영주씩이나 되어서 아는 게 뭐야! 23.05.16 24 2 10쪽
10 10화 사⋯⋯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23.05.15 33 2 12쪽
9 9화 아저씨. 그거 그렇게 하면 영주성 못 깨요. 23.05.14 38 2 10쪽
8 8화 이계인만 없었으면 은퇴할 수 있었는데 23.05.13 47 2 11쪽
7 7화 안타라스의 ‘현재’ 영주가 누구라고? 23.05.12 48 2 11쪽
6 6화 이계인보다 미친놈이 여기 있었네요. 23.05.11 52 2 11쪽
5 5화 안타라스의 ‘작은’ 영주님. 23.05.10 59 2 13쪽
4 4화 도와달라고 한 거 아니었어? 23.05.10 60 3 13쪽
3 3화 이제 어디로 가지요, 영주님? 23.05.10 68 3 13쪽
2 2화 이상하게 도망칠 수가 없네. 23.05.10 76 3 12쪽
1 1화 설마 바로 우리를 노리진 않겠지? 23.05.10 13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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