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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작가미상 님의 서재입니다.

은퇴 후 변방 영주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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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작가미상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3
최근연재일 :
2023.05.30 20:00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780
추천수 :
33
글자수 :
105,904

작성
23.05.12 10:00
조회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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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7화 안타라스의 ‘현재’ 영주가 누구라고?

DUMMY

“으아악!”


카라스가 사라진 쪽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반적인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분명 상대는 카라스 혼자일 텐데, 비명과 함께 병장기가 격돌하는 소리가 들렸다.

전장이 익숙했던 헬레나는 문득 의구심이 들었었다.

자신이 놀란의 병사들을 따라오면서 다른 매복이 없었음을 확인했기 때문에, 어째서 병장기 소리가 이렇게 많이 들리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눈깔 돌리지 말고 하던 이야기 마저 하자고.”


아레스는 헬레나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압박하였다.

헬레나 역시 당장 자신의 목숨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더 이상 의구심을 키우지 않았다.


“그러니까 당신은 도망치긴 했지만 영지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냥 다 버리고 몸만 빠져나왔다는 것이죠?”

“바로 봤어. 잘했지?”

“미쳤군.”


영주에게 영지는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다.

생산 시설을 이용한 병력 생산과 탄탄한 성벽, 그리고 자신을 지켜줄 영웅들까지.

이 모든 것은 영지가 있어야만 누릴 수 있는 영주의 특권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영주가 영지를 포기하는 순간, 이 모든 것이 초기화된다는 것이다.

영지를 포기한 영주가 도망친다면 잡아도 좋고 놓쳐도 크게 상관없다.

새로운 영주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면 굳이 잡을 이유가 많지 않으니까.

그러나 영주가 영지를 소유한 상태로 도망간다면?

영주성을 소유하기 위해 반드시 영주를 잡아야 하는 이유가 생긴다.

심지어 영지가 가지고 있는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영주 홀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아레스는 무려 이계인과 그의 군대를 상대로 영지의 지원 없이 도망 다녀야 하는 것이다.


“당신이 강한 것은 잘 알겠어요. 직접 맞아봤으니까.”

“에이 뭘 쑥스럽게⋯⋯.”

“하지만 저들은 재앙이에요. 고블린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드래곤을 이길 수는 없어요.”

“왜지?”

“예?”

“왜 고블린이 드래곤을 이길 수 없다는 거야?”

“그야⋯⋯ 드래곤이 더 크고 강하니까⋯⋯”

“드래곤을 홀로 때려눕히는 인간도 있는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진짠데⋯⋯ 맨손으로도 잡던데.”


아레스의 두서없는 대답에 헬레나는 할 말을 잃었다.

도저히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고 생각한 헬레나는 주제를 바꿨다.


“고블린이건 오크건 모르겠고, 저는 이계인에게 종속되어 있는데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전제가 잘못되었다는 거야. 너는 ‘이계인’이 아니라, ‘안타라스의 영주’에게 종속되어 있다니까?”

“에?”

“안타라스의 ‘현재’ 영주가 누구라고?”

“에에??”


* * *


안타라스 영주성의 알현실 상석에 앉은 아라곤은 아직 전 영주를 잡지 못했다는 보고를 하고 있는 마르스를 바라보며 툭 내뱉었다.


“아저씨가 다녀올래?”

“조금 더 기다려 보시지요? 헬레나가 데몬헌터를 이끌고 갔습니다. 놓치진 않을 겁니다.”

“이거 참⋯⋯ 명색이 부관인데 이렇게 영주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서야⋯⋯.”

“⋯⋯.”


아라곤의 책망에도 마르스는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어떠한 억울함이나 부끄러움 없이 그저 아무 생각 없는 표정으로 일관하자 아라곤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저씨도 눈치챘잖아? 여기 영주 놈은 영지를 포기하지 않고 그냥 내뺐어. 이런 정신 나간 놈은 처음이라니까?”

“그냥 겁쟁이입니다.”

“겁쟁이라면 성문 활짝 열고 바싹 엎드려 영지를 넘겼겠지.”

“멍청해서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겁쟁이가 멍청하기까지 한 덕분에, 내 계획이 꼬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라곤은 천천히 마르스에게 다가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강렬한 기운에 몸이 짓눌림을 느꼈지만, 이를 악 물고 버텼다.


“아저씨, 나는 말야⋯⋯ 우연을 믿지 않아요.”

“⋯⋯.”

“안타라스와 아니타는 내 계획의 핵심이야. 이렇게 좋은 스타팅 밥상은 에이카 대륙 전체에서도 흔치 않다고.”


아라곤의 눈매가 매섭게 변하자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던 기운이 폭주했다.


콰과광!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간신히 이 기운을 버티고 있던 마르스가 무릎을 꿇었다.

아라곤은 가만히 마르스의 어깨를 잡으며 귓가로 입을 가져갔다.


“그런데 때마침 영주가 멍청하고 겁쟁이라 영지를 소유한 상태로 도망갔고, 그 멍청한 겁쟁이를 히든 영웅과 병종들이 아직도 찾지 못했다?”

“⋯⋯.”


아라곤이 마르스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자, 어깨 갑옷이 박살 나 버렸다.


“크흑!”


마르스는 짧게 비명을 질렀지만, 이내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억제하며 고개를 들어 아라곤을 바라보았다.


“하명하십시오.”

“가서 잡아와.”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도망친 영주가 히든 영웅의 소유자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년은 죽여버리고.”

“⋯⋯ 그리 하겠습니다.”


그제야 기분이 풀린 아라곤은 마르스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강렬하게 풍겨져 나오던 기운도 어느새 사라졌다.


“아! 그리고 윈드크로스의 후계자도 거기 있다고 했지?

“놀란 윈드크로스는 충직한 기사입니다.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살려서 데려와.”

“현명하신 선택입니다.”

“내 손으로 직접 부자가 함께 있도록 해줄 거야.”


아라곤은 창문을 통해 보이는 안타라스 영지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그런 아라곤을 바라보며 마르스는 자신이 표정이 보이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이를 악물었다.

아라곤의 시선이 머무는 영지의 성벽 위에는 윈드크로스 가문의 가주인 노이어 윈드크로스의 목이 걸려있었다.


* * *


“어차피 나중에 영지로 돌아가면 훈련 교관이 하나 필요하긴 하잖아?”

“언제부터 영주님께서 그렇게 영지 운영에 관심이 있으셨는데요?”

“낸들 열심히 살고 싶은 줄 알아? 근데 이계인이 저따위로 막무가내잖아.”

“그러니까 그냥 제가 처리한다니까요?”

“그러다가 중앙에 소문이라도 나면?”

“아 몰라! 그건 영주님이 알아서 해야죠!”

“그 뭐드라⋯⋯ 그래! 고블린 잡으려고 드래곤을 깨우는 꼴이라니까?”

“드래곤은 영주님이 잡아요! 예전엔 심심하면 잡았으면서!”

“아 진짜 이 새끼가!”


놀란에게는 헬레나를 손쉽게 제압한 아레스보다 카라스의 활약이 더 충격적이었다.

저 카라스라는 집사가 홀로 데몬헌터 300명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아레스가 자신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은 10여분 정도였다.

어떻게 이런 자들이 이런 변방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단 말인가.


“배신자 새끼야 그렇다고 쳐요. 어차피 제가 반 죽여놓으려고 했으니.”


놀란은 살별 하게 노려보는 카라스의 눈빛에 움찔했다.

온몸에 핏물을 뒤집어쓴 그 모습은 그렇지 않아도 혼자서 데몬헌터를 쓸어버린 것에 대하여 생긴 두려움을 극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저 미친년은 왜 살려두겠다는 겁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양보 안 했다고요!”

“데몬헌터 300을 양보했으면 됐지 뭘 그렇게 탐을 내?”

“꼴랑 1 티어 보명 300명 잡은 걸로 간에 기별이나 갈 것 같아요? 기왕 다시 시작하기로 했으면 적어도 첫째 도련님보다는⋯⋯”

“카라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진지한 눈빛으로 권위적인 목소리를 낸 아레스.

그 위압적인 모습에 헬레나와 놀란은 물론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카라스까지 깜짝 놀랐다.

잠시 침묵으로 생긴 어색함이 낯간지러워질 때쯤, 아레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알아.”

“⋯⋯.”

“독전대는 카라스가 처리한 놈들 모아서 시체에 불을 질러. 그리고⋯⋯”


독전대가 물러가자 아레스는 헬레나를 바라보며 명령했다.


“헬레나는 먼저 아니타 영지로 가. 가서 그곳의 상황을 미리 파악해 줘.”

“예? 아⋯⋯ 네⋯⋯.”


어색하게 대답한 헬레나는 카라스의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 한 눈빛을 받으며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헬레나가 자리를 벗어나자 아레스와 카라스 사이에 남겨진 놀란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놀란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렇지 않다는 말투로 아레스가 물었다.


“너는 이제 어쩔 거냐?”

“에? 아⋯⋯ 일단은 가주를 설득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주는 지금 어디에 있지?”

“그것이⋯⋯ 영주성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갈 필요 없을 것 같다.”

“⋯⋯ 무슨 말씀이시죠?”


조용히 주먹에 힘을 주는 놀란을 보며 아레스는 차분하게 말했다.


“이계인의 목적은 안타라스 영지의 소유권을 빼앗는 것이야. 왜일까?”

“모릅니다.”

“그래야 독식할 수 있거든. 영웅도, 병종도.”

“하지만 아직 안타라스는 영주님의 소유입니다.”

“그렇지. 하지만 이계인은 어떤 방식으로 영지의 특성을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아.”

“사용한다니요?”

“쉽게 말하면, 안타라스의 영주가 되지 않더라고 영지를 굴복시키면 크로스 슈터를 양성할 수 있어. 윈드크로스 가문의 도움 없이 말이야.”

“그⋯⋯ 그게 무슨!”

“때문에 영지를 양성하고 귀족과 가문들을 포섭하는 것은 관심이 없는 거야. 그러니까 저렇게 막무가내로 점령하고 다닐 수 있는 거지.”


아레스의 말에 놀란의 눈빛이 흔들렸다.


“너의 개죽음은 사양하고 싶다.”

“⋯⋯.”

“지금부터 윈드크로스의 가주는 너다. 놀란 윈드크로스”


놀란은 말없이 눈을 감았다.

비록 기사의 소명을 저버리고 영주를 배신했지만 가문의 가주였다.

맹세를 저버리고 가문의 이권에 욕심을 부렸지만 아버지였다.

배울 것도 많았고 함께 보내야 할 시간도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차라리 아레스가 영주의 이름으로 자신들을 참했다면 이렇게 허무하고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영주를 배신한 아버지, 아버지를 배신한 이계인, 그런 아버지와 이계인을 배신하고 다시 아레스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신.

이 기막힌 꼬리물기의 끝은 결국 자신이 가문을 이어받는 결말을 초래했다.

가만히 있어도 언젠간 맞이할 결말을,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앞당겨야만 했을까.

그런 놀란의 아픔을 아는지, 아레스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 조의를 표했다.


“노이어 윈드크로스는 배울 점이 많았던 귀족이다. 그것만 기억하도록 하겠다.”


놀란은 말없이 가슴을 주먹으로 강하게 치며 감사의 인사를 했고, 카라스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죽어라 싸운 건 난데, 엄한 놈이 칭찬을 받네.”


가늘어진 눈으로 카라스를 보며 아레스가 꾸짖었다.


“이게 칭찬이냐? 조의지.”

“저놈들에게 그 정도의 조의면 칭찬 맞습니다만?”

“한 마디를 안 져요, 한 마디를”

“두 마디도, 세 마디도 지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시끄러. 독전대가 마무리하고 오기 전에 핏물 좀 빼고 와.”

“쳇.”


카라스가 투덜거리며 자리를 벗어나자 머리를 흔들며 한숨을 내쉰 아레스가 다시 놀란을 보았다.

놀란은 어느 정도 회복된 표정으로 아레스에게 말했다.


“잠시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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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변방 영주로 살아남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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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주기 수정 23.05.17 20 0 -
21 21화 네놈이 더 나빠! 23.05.30 9 0 11쪽
20 20화 해피앤딩으로 끝나는 악몽이라니. 23.05.27 8 0 10쪽
19 19화 채소 좋아하지? 23.05.26 7 0 11쪽
18 18화 방심하지 말라니까⋯⋯. 23.05.25 9 0 11쪽
17 17화 변태 아니라고! 23.05.24 9 0 11쪽
16 16화 이의 있는 사람? 23.05.23 13 0 11쪽
15 15화 너, 내 부하가 되라. 23.05.20 20 1 10쪽
14 14화 다른 방법이 있어? 23.05.19 18 2 12쪽
13 13화 지 혼자 살겠다고! 23.05.18 23 2 10쪽
12 12화 그런데 진짜 괴물은 저런 못생긴 것들이 아냐. 23.05.17 26 2 12쪽
11 11화 영주씩이나 되어서 아는 게 뭐야! 23.05.16 24 2 10쪽
10 10화 사⋯⋯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23.05.15 33 2 12쪽
9 9화 아저씨. 그거 그렇게 하면 영주성 못 깨요. 23.05.14 38 2 10쪽
8 8화 이계인만 없었으면 은퇴할 수 있었는데 23.05.13 48 2 11쪽
» 7화 안타라스의 ‘현재’ 영주가 누구라고? 23.05.12 49 2 11쪽
6 6화 이계인보다 미친놈이 여기 있었네요. 23.05.11 52 2 11쪽
5 5화 안타라스의 ‘작은’ 영주님. 23.05.10 60 2 13쪽
4 4화 도와달라고 한 거 아니었어? 23.05.10 61 3 13쪽
3 3화 이제 어디로 가지요, 영주님? 23.05.10 68 3 13쪽
2 2화 이상하게 도망칠 수가 없네. 23.05.10 76 3 12쪽
1 1화 설마 바로 우리를 노리진 않겠지? 23.05.10 13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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