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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작가미상 님의 서재입니다.

은퇴 후 변방 영주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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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작가미상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3
최근연재일 :
2023.05.30 20:00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790
추천수 :
33
글자수 :
105,904

작성
23.05.10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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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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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2화 이상하게 도망칠 수가 없네.

DUMMY

수군거리는 이들을 향해 앞장서있던 장년 사내가 단호히 말했다.


"다들 정신 차리시오. 여기서 제대로 못하고 저 젊은 영주가 도망치기라도 하면 끝장이니."

"⋯⋯."


사내의 음성에 각기 손에 농병기와 칼, 도끼 등을 움켜쥐고 몰려와 있던 영지민들이 손에 힘을 힘껏 주었다.

그 말대로 자신 같은 농민들이 무슨 재주가 있어 제대로 된 군대를 상대하겠는가.

모두가 군홧발과 병기들에 짓밟히고 말리라.

결국 자신들이 몸성히 넘어가는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비록 이제까지 자신들을 크게 핍박하지 않았다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래 영주. 당신은 우리 모두가 평화롭기를 원했으니⋯⋯ 이해해 주시오."


커다란 쟁기를 손에 쥔 채 중얼거린 사내가 앞장서 밤의 영주성, 경비병조차 서있지 않은 커다란 입구로 향했다.


* * *


쿠르르르릉!

커다란 진동을 느끼며 아레스는 눈앞에 떠올라 있는 창을 바라보았다.


[미션 : 레서 데몬을 죽이세요.]

[보상 : 지휘관의 반지]

[보상 : 데몬헌터 훈련 (연구)]


스트레스를 가져오는 대마법사의 비웃음은 제쳐두고, 보상에 집중했다.

<지휘관의 반지>

왕의 기본 병력이 근위대라면, 영주에게는 독전대가 있다.

전쟁에서 뒤로 물러서려는 병사들을 베어버리며 앞으로 내모는 가혹한 부대.

아마도 <지휘관의 반지>는 독전대를 불러낼 수 있는 아티팩트일 것이다.

그리고 1 티어 보병의 특수병종 중에서도 최상위 능력을 자랑하는 <데몬헌터>까지.

만약 데몬헌터를 양성하고 병종의 상성까지 고려한다면, 능히 2 티어 부대와도 싸워볼 만했다.

하지만 지금은 보상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쿠우우우웅⋯⋯


“그어어어어어어어⋯⋯”


알현실 뒤쪽에서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 그 깊은 곳으로부터 아주 작은 소음과 진동이 울려 퍼져 나오고 있었다.

멀긴 하지만 그 기세를 보아하니 순식간에 지상으로 치고 올라올 것 같았다.

일단 저 녀석을 잡아 죽이는 게 우선이다.


"후우. 싸움은 오랜만인데."


알현실 구석으로 가 장식용으로 진열해 두었던 제식용 칼을 뽑아 든 아레스가 성큼 밖으로 향했다.

카라스가 있으면 싸움이 수월했겠지만 지금 그는 영지 바깥에 다른 일을 하라고 파견을 보내 놨으니, 지금 저 괴물 녀석과 싸울 수 있는 건 자신 뿐이었다.


"사람이 없어서 영주성이 텅 비어있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


탁탁탁탁.


"여기 있다! 여기 영주가 있다!"

"⋯⋯."


소리치며 우르르 알현실 문 앞으로 몰려드는 영지민들을 보며, 아레스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아 버렸다.


* * *


순식간에 알현실 앞으로 몰려든 이들의 수는 넉넉잡아도 수십여 명은 되어 보였다.

적당히 낡아 더 흉흉한 온갖 잡동사니 무구를 든 이들이 칼을 든 아레스를 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저기⋯⋯ 저⋯⋯ 영주. 미안하지만⋯⋯"

"이 바보가! 뭘 사과하고 있어!"


미안한 기색으로 주춤거리는 사람을 제치며 앞으로 나온, 다소 불량기가 있어 보이는 표정의 칸트가 침을 퉤 뱉으며 오른손의 손도끼를 위압적으로 아레스를 향해 겨눴다.


"이렇게 됐수다. 옆의 영지에서 당신 목만 바치면 우리는 용서해 준다 하더라고. 당신도 그게 낫지? 그렇게 평화를 원해서 영지도 안 키우고 이렇게 무방비로 있었던 거잖아."


칸트도 긴장한 것 같았지만, 앞장선 본을 보이겠다는 듯 멈출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러니 저렇게 슬금슬금 앞으로 다가오는 거겠지.

이와 발맞춰 천천히 아레스를 창가로 몰아붙여 오는 영지민들을 보며 아레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설령 자신의 목을 가져가도 이 녀석들에게 희망찬 미래가 없을 거라는 이야기는 그냥 꺼내지 않기로 했다.

적당히 뒤로 물러서 레서 데몬이 올라오고 있는 지하 통로를 정면으로 볼 수 있게 자리 잡은 아레스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뭐. 일단 당장은 각자 알아서 하자. 뒤 조심하고."

"뭣?"


그 말이 끝난 순간.


터억.


“끄르르르륵!”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알현실 뒤쪽에서 갑자기 뻗어 나온 붉고 긴 혀에 끌려가 버린 누군가의 비명에 사람들이 기겁을 했다.


* * *


쿠우우우웅!


“그르르르륵⋯⋯”

"뭐야⋯⋯ 이거 뭐야!"

"영주성에 왜 이런 게 있어!"


곧이어 알현실 지하통로에서 쿵쿵 걸어 나와 모습을 드러낸 레서 데몬의 모습에 사람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마치 오우거를 닮은 듯 우람하게 튀어나온 근육질에 제법 큰 영주실이 꽉 들어차는 높이의 거구.

오른손의 핏빛 채찍, 왼손의 커다란 갈고리까지.


휘이이익.

쩌어어어어어어억!


"으아아아아아아!"


혀라고 생각했던 게 알고 보니 채찍이었다.

조금 전 끌려간, 채찍 끝에 매달려 있던 농민 사내를 알현실 벽면에 휘둘러 단번에 피떡을 만들어버린 레서 데몬.

그런 레서 데몬의 잔혹한 모습을 보며 온갖 피범벅과 살점 파편을 뒤집어쓴 영지민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병장기를 들었다지만 이들은 평범한 농민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괴물에 말도 안 되는 경험을 겪어봤을 리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저 괴물이 봐주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콰아아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악!”

"안돼⋯⋯ 안돼!"


사람들을 선동한 장년 사내가 눈앞에서 펼쳐지기 시작한, 으깨지는 사람들과 핏덩이로 얼룩진 지옥도를 보며 참담하게 외쳤다.

저들은 모두 자신의 이웃이자 가족이자 친구였다.

하나하나가 죽어갈 때마다 자신의 심장이 찢어지는 기분인 것이다.

하지만 딱 봐도 압도적인 전력차에, 사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니, 할 수 있는 거라곤 단 하나뿐이었다.


"영주⋯⋯ 영주님! 저거 어떻게 좀 해보시오!"


장년 사내가 아레스를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이 난장판 속에서 오직 아레스만이 평온한 표정으로 침착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사내의 말에 칼을 움켜쥐고 있던 아레스가 짧게 대답했다.


"지금은 못 하지."

"대체⋯⋯ 대체 왜!"


그 말에 오히려 아레스가 이해 안 간다는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너희들을 뒤에 두고 싸우라고? 내 목을 베러 왔던 너희들을?"

"⋯⋯."

"대체 뭘 믿고? 아니 그 이전에 내가 지금 나서야 하냐?"


그제야 장년 사내는 영주가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는 이유를 깨닫고 절망했다.

영주는 당장이라도 싸울 순 있지만, 자신들이 있기에 싸우지 않는 것이었다.

이를 깨달은 장년 사내는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준 뒤 사방으로 외쳤다.


"다들⋯⋯ 다들 빨리 도망가! 영주성 밖으로 도망가라고!"

“쿠아아아아아아아악!”


콰앙!

쩌어어어억!


시체 하나를 집요하리 만큼 내리치는 레서 데몬의 광기, 그 속에서 후들거리는 다리를 바로잡은 장년 사내가 쓰러진 청년 하나를 부축한 채 계단 아래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 * *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콰아아앙!


“쿠르르르륵⋯⋯”


사방의 시체를 거의 곤죽이 되다시피 짓이겨 놓은 레서 데몬은 그제야 광기가 좀 해소된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새하얀 벽면이 이제는 모조리가 피칠갑이 된 풍경 속, 도망치지 않고 남아있는 사람은 오직 아레스 뿐이었다.


"하⋯⋯. 나도 도망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도망칠 수가 없네."

“크르르르륵⋯⋯”


올라오는 짜증을 억누르며 중얼거린 아레스가 피칠갑 사이를 걸어 레서 데몬에게 향하며 중얼거렸다.

피, 죽음, 광기.

익숙하다 못해 그리울 정도의 광경이었다.

더 짜증 나는 건 이미 자신의 몸은 마치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영주란, 영웅이란 그런 존재들이다.


"개자식아. 다 너 때문이다."


꾸드드드득.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지진이라도 일으킬 듯 강하게 바닥을 걷어찬 아레스가 그대로 발을 내밀어 레서 데몬의 몸통을 후려찼다.


* * *


"으아아아악!"


피투성이가 된 채 헐레벌떡 도망치던 이들이 위층 영주실로 통하는 계단에서 떨어져 내린 무언가에 비명을 내지르며 고개를 숙였다.

그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린 몇몇 이들이 발견한 건 놀랍게도 그토록 공포스럽던 괴물 녀석이 바닥에 처박혀 꿈틀거리는 광경이었다.

자신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던 레서 데몬이 무언가에 차여 나가떨어진 채 1층바닥으로 추락해 있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만든 건 놀랍게도⋯⋯


콰아아아앙!


“끄어어어어어어어억!”


위층에서 단번에 뛰어내려 무릎으로 괴물을 찍어 내린 뒤 이내 미친 듯이 싸우기 시작한 영주와 괴물의 대결에 기겁을 한 이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영주성 입구 쪽으로 헐레벌떡 내달렸다.

박살 나는 대리석과 사방으로 튀는 파편, 그들의 눈에는 인간과 괴물이 싸우는 형상이 아니었다.

그들에겐 그저⋯⋯


"빌어먹을. 그냥 두 놈 다 괴물 새끼잖아!"


정신을 잃은 동료를 어깨동무하며 도망가던, 조금 전 아레스에게 손도끼를 겨누었던 청년 칸트는 뒤를 보며 씹어먹듯 내뱉었다.

빌어먹고 빌어먹을.

저따위 힘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그리 약해빠진 척을 했다니.

저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티를 냈으면, 그리고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면, 자신들이 이따위 결정은 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이를 악문 칸트는 분통이 터진다는 듯 자리에서 멈춰 선 뒤 자신의 어깨에 걸치고 있던 동료를 털썩하고 내려놓았다.


"뭐야? 어쩌려고?"


영주성 입구를 지나치던 다른 마을 주민이 동료를 내려놓은 칸트를 불안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이제 입구까지 다 왔고 나가기만 하면 이곳에서 탈출이다.

대체 어쩌려고 멈춰 선단 말인가!

그 말에 칸트가 씹어먹듯 내뱉었다.


"이대로 갈 수 없지. 어차피 이대로 나간다면 다 끝장 아뇨? 영주 놈이 살아남던 괴물 놈이 살아남던?"

"⋯⋯."


칸트의 말에 사내가 침묵을 지켰다.

그렇다.

괴물이 살아남는다면 말할 것도 없고 영주가 살아남아도 문제가 된다.

자신들은 영주를 죽이려고 했는데 저 강력한 존재가 자신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겠는가?

피의 숙청이 벌어지리라.

하지만⋯⋯


"뭐 어쩌려고? 저기에 끼어들게?"


콰아아아아앙!


이제는 영주성 1층 중앙에 있는 현관을 완전히 박살 내며 싸우고 있는 둘을 가리키며 사내가 다급하리만치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저기 들어가면 그냥 개죽음이다.

평범한 청년인 칸트가 뭘 어쩌겠다는 건가?

그런 사내의 말에 칸트가 고개를 저었다.


"빨리. 빨리 태울 것 좀 가져와요. 불씨랑."

"!"

"굳이 끼어들 필요 없잖아요. 둘 다 죽여버리면 되지."

"⋯⋯."


그 말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깥으로 나가 도망치던 마을 주민들에게 달려갔다.

함께 태울 것을 가져올 생각이었다.

그런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칸트는 심호흡을 한 뒤 멈춰서 안쪽을 노려보았다.


"괴물 놈들아. 다 태워 죽여주마."


잠시 후, 바닥의 동료를 다시 들쳐 어딘가로 나른 칸트는 자신도 분주히 영주성 주변을 돌며 태울 것을 찾기 시작했다.


* * *


“그르르륵⋯⋯”

"후우. 아직도 안 죽었네."


뿌득.


벽면에 처박힌 채 피를 흘리며 자신을 노려보는 레서 데몬을 보며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를 핥은 아레스가 어깨를 우득 풀었다.

비록 은퇴하며 모든 것이 초기화되었지만 자신은 <영주>였다.

그리고 세상에 밝혀지진 않았지만 그는 고대 문명, 위대했던 주인들의 핏줄을 진하게 이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 육체나 정신의 강력함이 일반인에 비할바가 아니다.

레서 데몬도 강하긴 했지만 도저히 감당 못할 만큼 강력한 몬스터는 아니었고 말이다.


"튜토리얼이니까 그렇겠지. 그나저나 이제 끝내자."


터엉!


싸우다 반토막난 장식용 검을 바닥에 텅텅 두드린 아레스가 곧바로 레서 데몬에게 달려들려던 그 순간.


"⋯⋯?"


서서히 올라가는 주변의 온도, 어디선가 흘러드는 열기와 불씨에 아레스가 이마를 좁히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 * *


"더! 더더더! 빨리 더 들이부어! 특히 입구 쪽으로!"


입구 근처, 활활 타오르는 불속에 건초더미 수레를 처박은 칸트가 주변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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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변방 영주로 살아남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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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주기 수정 23.05.17 21 0 -
21 21화 네놈이 더 나빠! 23.05.30 9 0 11쪽
20 20화 해피앤딩으로 끝나는 악몽이라니. 23.05.27 8 0 10쪽
19 19화 채소 좋아하지? 23.05.26 7 0 11쪽
18 18화 방심하지 말라니까⋯⋯. 23.05.25 10 0 11쪽
17 17화 변태 아니라고! 23.05.24 10 0 11쪽
16 16화 이의 있는 사람? 23.05.23 13 0 11쪽
15 15화 너, 내 부하가 되라. 23.05.20 20 1 10쪽
14 14화 다른 방법이 있어? 23.05.19 18 2 12쪽
13 13화 지 혼자 살겠다고! 23.05.18 24 2 10쪽
12 12화 그런데 진짜 괴물은 저런 못생긴 것들이 아냐. 23.05.17 27 2 12쪽
11 11화 영주씩이나 되어서 아는 게 뭐야! 23.05.16 25 2 10쪽
10 10화 사⋯⋯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23.05.15 34 2 12쪽
9 9화 아저씨. 그거 그렇게 하면 영주성 못 깨요. 23.05.14 38 2 10쪽
8 8화 이계인만 없었으면 은퇴할 수 있었는데 23.05.13 48 2 11쪽
7 7화 안타라스의 ‘현재’ 영주가 누구라고? 23.05.12 49 2 11쪽
6 6화 이계인보다 미친놈이 여기 있었네요. 23.05.11 53 2 11쪽
5 5화 안타라스의 ‘작은’ 영주님. 23.05.10 60 2 13쪽
4 4화 도와달라고 한 거 아니었어? 23.05.10 61 3 13쪽
3 3화 이제 어디로 가지요, 영주님? 23.05.10 69 3 13쪽
» 2화 이상하게 도망칠 수가 없네. 23.05.10 77 3 12쪽
1 1화 설마 바로 우리를 노리진 않겠지? 23.05.10 13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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