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글작가미상 님의 서재입니다.

은퇴 후 변방 영주로 살아남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글작가미상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3
최근연재일 :
2023.05.30 20:00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772
추천수 :
33
글자수 :
105,904

작성
23.05.14 20:00
조회
37
추천
2
글자
10쪽

9화 아저씨. 그거 그렇게 하면 영주성 못 깨요.

DUMMY

“그러면 피곤해지기 전에 빨리 해치우시죠.”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평화하면 카라스 아니겠습니까?

“대가리부터 날릴 거잖아.”

“그러면 모두 평화를 원하게 되겠죠?”

“그래서 넌 안돼.”

“쳇”


카라스의 평화적(?)인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은 아레스는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헬레나가 나서며 의견을 말했다.


“그러면 제가 가서 설득해 볼까요?”

“설득?”

“대가리부터 날리면 죽잖아요? 다짜고짜 사람부터 죽이면 누가 말을 듣겠습니까?”

“오오! 이제야 제법 협상을 할 줄 아는 인재가 영입된 것인가?”

“일단 팔다리부터 잘라내고 잘 알아듣게 타이르면 말을 들을 겁니다.”

“⋯⋯.”

“시대가 어느 시댄데, 사람 막 죽이고 그러면 안 되죠.”

“⋯⋯ 쳇. 그렇게 말랑말랑하게 하면 꼭 뒤에서 딴생각을 한다니까.”


팔다리를 자르는 것이 평화적인 협상이라고 말하는 년이나, 그 말이 말랑말랑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놈이나.

안타라스와 협상하면 몸에 달린 건 전부 날아간다고 소문이 날 판이었다.


“왜 내 주위에는 이런 놈들밖에 없는 거지.”


아레스가 한숨을 크게 내쉬자, 카라스와 헬레나는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탐탁지는 않지만, 헬레나의 의견대로 하시죠. 가끔은 너그러운 아량을 베푸는 것도 영주의 미덕 아니겠습니까?”

“대가리를 날리는 거랑 대가리만 남기는 선택지뿐인 거냐?”

“그럼 어쩌라고요. 자기는 사람 좋은 얼굴로 대충 하다가 뒤통수 맞은 주제에.”


정곡을 찔려 움찔하자 헬레나가 가만히 말을 보탰다.


“별로 좋아 보이는 얼굴이 아니라서 뒤통수 맞은 거 아닌가요? 저런 얼굴로 좋은 사람처럼 웃으면 느낌이 쌔하잖아요?”

“헬레나라고 했었나? 자네 생각보다 건전하고 충직한 인재로 보이는군.”

“고마워요, 카라스. 선배로서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 부탁해요.

“이 연놈들이⋯⋯”


저 연놈들의 팔다리던 대가리던 날려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반란군들의 베이스캠프로 보이는 막사를 가리켰다.


“일단 들어가서 놈들의 우두머리를 만난다. 그리고⋯⋯”

“팔다리를 자르나요?”

“안 잘라.”

“그럼 역시 대가리를?”

“안 날려!”

“에이. 그럼 뭐 어쩌자고요?”

“잘 봐봐. 병력은 반란군 쪽이 많아 보여도, 결국 영주성을 함락시키기는 어려울 거야. 지금도 둘러싸고는 있지만 별다른 공세를 취하지 못하고 있잖아?”


언뜻 영주성을 둘러싸고 포위망을 완성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영주성을 공략하지 못해 그냥 대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했는지 공성 병기를 배치하기는 했지만 배치한 위치도, 공격하는 포인트도 전혀 효율적이지 못했다.

저렇게는 백날 해봐야 잘 훈련된 병사들로 배치된 영주성의 성곽 하나도 넘을 수 없다.


“가서 우리가 알려주자고.”

“예?”

“엥?”

“공성전은 어떻게 하는 건지, 영주성은 어떻게 무너트리는 건지 알려주자고.”

“그러니까⋯⋯ 지금 반란군이랑 손을 잡고 아니타 영주성을 치자는 말씀이신가요?”

“바로 그거야. 팔다리를 날리는 것보다 훨씬 평화적인 방법 아니야?”

“⋯⋯.”

“⋯⋯.”


아레스와 헬레나는 나를 벌래 보는 듯 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뭐 대충 같은 영주끼리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네놈이 사람이냐라는 눈빛이었다.

그런데 내 코가 석자다.

지금 그런 낭만적인 불문율을 논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더 지체하다가 이계인이 보낸 추적대가 도착하면 더 골치 아파진다.


“좋게 좋게 생각하자고. 나 혼자 좋다고 하는 일이야? 다 너희를 위해⋯⋯”

“⋯⋯ 더러워.”

“⋯⋯ 불결해.”

“⋯⋯.”


아레스는 설득을 포기하고 그냥 저 비난의 눈빛을 받으며 언덕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공성 병기를 앞으로!”

“우와아!”


갈색 머리의 건장한 청년, 갈리오는 앞장서서 반란군을 이끌었다.

평범한 농부였던 갈리오는 이전 영주의 선동에 넘어가 누구보다 충실히 중앙 진출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수확하는 작물에서 식구들이 먹을 만큼을 제외한 전량을 자진해서 세금으로 바쳤다.

생업이 끝난 이후에는 무보수로 야간작업에 참여하여 병기를 만들었다.

중앙에 진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더 풍요로운 자원과 군림할 수 있는 권력을 위하여.

그러나 <관문>에서 대가문의 위력을 직접 경험한 이후 모든 것이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앞장서 싸웠던 아니타의 영주는 가장 먼저 목이 날아갔고, 연맹을 자처했던 주변 영주들은 서로 달아나 책임을 넘기기에 바빴다.

단단해 보였던 연맹은 그저 이권이라는 물로 대충 뭉쳐둔 모래알갱이에 불과했다.

그렇게 바스러진 갈리오의 꿈은 새로 온 영주에 의해 완전히 사라졌다.

중앙에서 온 영주는 영지를 식민지에 가깝게 통치했다.

영지의 던전이 폭주해 주기적으로 몬스터의 습격을 받았고, 매년 감당하기 어려운 세금을 전쟁보상금 명목으로 바쳐야 했다.

영지를 떠나고 싶어도 아니타 출신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영지 없이 떠도는 것은 몬스터들의 좋은 먹잇감이 될 뿐이었고, 도적이 되어도 강력한 영지의 토벌군을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기계적으로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드는 던전의 몬스터를 막아내기 위해 싸웠다.

싸우지 않는 시간에만 농사를 지을 수 있었고, 때문에 수확량은 부족하기만 했다.

그나마도 대부분을 세금으로 내야 하기 때문에 매일이 배고팠다.

굶주림은 가족의 생명을 점점 갉아먹었고, 어린 딸은 힘겨운 삶을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갈리오는 분노와 절망을 느꼈지만 참아냈다.

병약해진 아내까지 잃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 열심히 싸우고 더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은 식량을 확보해야 했다.

아내의 꺼져가는 생명을 밝히기 위해서.

그러나 아내의 정신력은 갈리오만큼 튼튼하지 못했다.

촛불만큼 위태롭던 아내의 생명은 스스로 꺼지고 말았다.

갈리오가 원했던 것은 중앙에서의 풍요로운 삶이었지만, 정확하게는 가족의 풍요로운 삶이었다.

아내의 장례식 이후 갈리오는 더 이상 분노와 절망을 참지 않았다.

전혀 다른 속성의 두 감정은 마치 서로를 가속시키듯 갈리오의 내면을 폭발시켰다.

처음에는 열명 남짓했던 분노한 아니타 영지민들은 어느덧 수백을 넘어 천여 명이 되었다.

영주는 영주성을 굳게 닫았지만, 갈리오는 야간작업으로 익힌 공성 병기 제작 기술을 이용하여 그들을 짓밟을 준비를 마쳤다.


“아저씨. 그거 그렇게 하면 영주성 못 깨요.”


그렇지 않아도 생각만큼 공략이 되지 않아 복잡한데, 갑자기 나타는 귀족으로 보이는 놈이 은근히 속을 긁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저는 옆 영지인 안타라스에서 온 칸트라고 합니다. 영주 모가지를 따버리고 이계인 군주를 받아들인 노하우를 알려드리려 왔습죠.”


아레스의 찰진 연기에, 카라스와 헬레나는 표정관리를 실패했다.


* * *


가문의 가택에 도착한 놀란은 차가운 눈빛의 거구 사내를 보고 얼어붙고 말았다.

안타라스와 아니타를 비롯한 에이카 대륙 북쪽에는 강력한 영지들이 제법 많은 편이었다.

아니타를 비롯한 연맹이 관문으로 진격할 수 있었던 이유도 평균적으로 강력한 영지들이 분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별 볼 일 없는 영지이지만 한 명의 영웅이 가진 힘으로 연맹에 가입할 수 있었던 곳이 있다.

바로 <마몬트>영지.

그리고 ‘마몬트의 철인’이라고 불린 ‘마르스’.

평생 도적 캠프를 토벌하며 성장한 마르스는 북쪽 아이카 대륙에서 가장 강력하고 유명한 영웅이었다.

놀란도 연맹 시절 참여한 관문 공략에서 ‘마몬트의 철인’을 본 적이 있었다.

비록 중앙의 압도적인 전력에 선봉에 섰던 아니타의 병력이 갈려 나갔지만, 2선에 배치되어 있던 마르스의 활약으로 연맹 자체의 피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비록 마몬트는 아니타와 비슷한 규모의 피해를 입어 더 이상 영지로서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힘들었지만, 은혜를 입은 다른 영지들의 지원으로 어떻게든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계인 아르곤이 가장 먼저 공략한 곳이 바로 마몬트였다.

마몬트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마르스가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쓰러졌다고 생각했던 마르스가 지금 이곳, 윈드크로스 가문의 가택에서 놀란과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마몬트의 철인’은 조금 전까지 내가 가장 존경하는 무인이었습니다.”

“⋯⋯.”

“당신이 이계인의 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가주를 설득하여 이계인과 손을 잡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

“당신이 이계인에게 붙었다면, 관문 이전까지 다른 세력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놀란은 조용히 어깨에 메고 있던 활을 들었고, 화살통에서 3개의 화살을 꺼냈다.


“나 역시 주군을 배신한 입장이지만, 마몬트를 버리고 주위 영지를 초토화시키는 것에 앞장선 당신에 비할 바는 아닌 것 같습니다.”


놀란은 3개의 화살을 동시에 시위에 올렸다.


“당신에게 마몬트는 무엇이었습니까?”

“명예이고 자랑이다.”

“그럴 것 같았습니다.”


시위를 당겨 마르스를 겨눈 놀란이 날카로운 눈으로 말했다.


“당신은 저의 명예이며 자랑이었던 가주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알고 있지 않은가?”

“이계인 말고 당신에게 묻는 것입니다. 당신은 가주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

“죽이자 하셨습니까?”

“중요한가?”

“중요합니다. 이제 제가 <윈드크로스>이기 때문입니다.”

“⋯⋯.”


놀란의 말에 마르스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지금부터 자네가 마몬트야. 마몬트를 부탁하네.’


이계인의 공격에 무너진 마몬트.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영주와 병사들.

그리고 마몬트 영주가 자신의 품에서 숨을 거두며 했던 마지막 말.

그렇게 오직 자신만 살아남았다.

세상에서 오직 자신만 마몬트의 것이었다.

마르스는 치욕을 견디며 목숨을 구걸했고, 마몬트가 존재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하나가 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은퇴 후 변방 영주로 살아남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주기 수정 23.05.17 20 0 -
21 21화 네놈이 더 나빠! 23.05.30 8 0 11쪽
20 20화 해피앤딩으로 끝나는 악몽이라니. 23.05.27 8 0 10쪽
19 19화 채소 좋아하지? 23.05.26 7 0 11쪽
18 18화 방심하지 말라니까⋯⋯. 23.05.25 9 0 11쪽
17 17화 변태 아니라고! 23.05.24 9 0 11쪽
16 16화 이의 있는 사람? 23.05.23 13 0 11쪽
15 15화 너, 내 부하가 되라. 23.05.20 19 1 10쪽
14 14화 다른 방법이 있어? 23.05.19 17 2 12쪽
13 13화 지 혼자 살겠다고! 23.05.18 23 2 10쪽
12 12화 그런데 진짜 괴물은 저런 못생긴 것들이 아냐. 23.05.17 26 2 12쪽
11 11화 영주씩이나 되어서 아는 게 뭐야! 23.05.16 24 2 10쪽
10 10화 사⋯⋯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23.05.15 33 2 12쪽
» 9화 아저씨. 그거 그렇게 하면 영주성 못 깨요. 23.05.14 38 2 10쪽
8 8화 이계인만 없었으면 은퇴할 수 있었는데 23.05.13 47 2 11쪽
7 7화 안타라스의 ‘현재’ 영주가 누구라고? 23.05.12 48 2 11쪽
6 6화 이계인보다 미친놈이 여기 있었네요. 23.05.11 52 2 11쪽
5 5화 안타라스의 ‘작은’ 영주님. 23.05.10 59 2 13쪽
4 4화 도와달라고 한 거 아니었어? 23.05.10 60 3 13쪽
3 3화 이제 어디로 가지요, 영주님? 23.05.10 68 3 13쪽
2 2화 이상하게 도망칠 수가 없네. 23.05.10 76 3 12쪽
1 1화 설마 바로 우리를 노리진 않겠지? 23.05.10 129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