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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작가미상 님의 서재입니다.

은퇴 후 변방 영주로 살아남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글작가미상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3
최근연재일 :
2023.05.30 20:00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784
추천수 :
33
글자수 :
105,904

작성
23.05.11 10:00
조회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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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6화 이계인보다 미친놈이 여기 있었네요.

DUMMY

“정 그러면 독전대라도 데려가.”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8명의 데몬 독전대가 소환되어 모습을 나타냈다.

헬레나와 놀란은 독전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움찔했지만, 카라스는 귀찮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휘저었다.


“제가 언제 저런 거 치렁치렁 가지고 다녔나요? 넣어두세요.”

“하긴⋯⋯ 그래도 간만의 실전이니 조심하는 게 좋지 않겠어?”


걸음을 멈춘 카라스가 고개만 살짝 돌려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런 변방에서 제가 조심까지 해야 합니까?”


저놈 신났다.

눈은 날카롭게 빛나지만,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 있다.

그 상반되는 표정이 하얀 피부와 긴 생머리에 어울려 소름 끼치면서도 묘한 매력을 내뿜었다.

재수 없다.

저런 다 가진 새끼⋯⋯


“살살해. 흔적 남기면 안 되는 거 알지?”

“영주님이 알아서 해결해 주시겠죠, 뭐.”

“이 새끼가?”


진짜로 사고 칠 기세로 사라졌지만, 걱정하지는 않았다.

저래 봬도 카라스는 집사이기 이전에 내 군사(軍師)이기도 했다.

가끔 지랄 맞은 성격에 불이 붙어서 문제 이긴 하지만, 은퇴 이전 중앙 대륙에서 카라스의 이명(異名)만 들어도 알아서 백기를 드는 영주들이 수두룩했다.

단순히 강한 것을 떠나 전장의 상황파악 능력부터 전국(全局)을 읽는 능력은 대가문의 가주 직속 군사들과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었다.

물론 ‘그녀’라는 좋은 스승을 만났기 때문이었지만, ‘그녀’가 아니었더라도 카라스는 충분히 내가 가진 최고의 전력이었을 것이다.

변방에서 이렇게 내 말을 고분고분 듣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물론 좋은 스승을 만난 덕분이었지. 그녀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이제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카라스의 과거 회상을 대충 마무리하고, 헬레나를 돌아보았다.

비록 카라스가 이탈했지만 데몬 독전대와 윈드크로스 가문의 후계자인 놀란, 거기에 자신을 박살 낸 나까지.

이미 헬레나는 전의를 상실하고 허탈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운 좋게 좋은 핏줄 타고난 도련님인 줄 알았는데, 이계인보다 더한 괴물이었군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이계인만 할까.”

“이계인은 뭐 머리에 뿔이라도 달린 줄 아세요?”

“뿔만 달렸음 도망도 안 갔지. 그나저나 이를 어쩐다⋯⋯.”


아레스는 헬레나를 보며 아쉽다는 듯 턱을 매만졌다.

그리고 놀란을 바라보며 물었다.


“퉁칠래?”

“예?”

“저 귀신 눈깔이 네 부하들 쓸어버린 거 말이야.”

“그게 무슨⋯⋯”

“내가 너 배신한 거 봐주고, 목숨도 살려줬잖아?”

“⋯⋯ 그렇죠.”

“난 지금 네 가주가 뒤통수를 쳐서 영지를 버리면서까지 하려던 일이 꼬였거든? 이거 진짜 스피드가 생명인 작전이었는데.”

“⋯⋯.”

“내 넓은 아량으로 그냥 봐줄 테니, 너도 저년한테 네 부하들 학살당한 거 퉁치자고.”

“⋯⋯.”


아레스의 제안은 타당하면서도 정중했다.

사실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방법으로 하겠다고 명령을 내려도 할 말이 없는 놀란이었다.

충성을 바쳐야 할 영주를 배신하고, 심지어 사로잡아 새로운 영주에게 넘기려 했다.

그런데 배신당한 영주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용서까지 해주려는 분위기다.

사실 놀란은 처음부터 가주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뼛속까지 단순한 무인이기 때문에 가문의 이권보다 기사로서의 명예를 더욱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주는 사사롭게는 자신의 아버지다.

때문에 쉽게 가주의 결정을 반대할 수 없었다.

가주이자 아버지의 결정은 무려 반역이었기 때문에.

만약 자신이 반대하여 가주의 계획이 실패하게 된다면?

놀란은 가문과 가족 모두를 잃게 되기 때문이었다.

물론 자기 자신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나 지금 젊은 영주는 자신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어쩌면 자신의 가문을, 나아가 가주인 아버지를 용서해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때? 콜?”


아레스가 놀란에게 한눈을 팔자 헬레나는 슬쩍 떨어져 있던 두 자루의 검으로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데몬 독전대 하나가 검과 헬레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다른 독전대들이 헬레나를 감쌌다.


“허튼 짓거리하지 마라. 내가 참아줄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야.”


놀란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아레스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했다.

헬레나는 조용히 식은땀을 흘리며 허탈하게 웃었다.

도무지 빈틈이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아레스의 제안을 놀란이 받아들이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아레스가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 없었지만, 당장은 이것 말고는 살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놀란은 아레스의 경고가 헬레나가 아닌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여기까지 양보하는 것도 많이 참아준 것이다, 더 이상 수작을 부리거나 협상할 생각이라면 쓸어버리겠다는.

놀란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아레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안타라스의 기사 놀란 윈드크로스. 영주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충성은 무슨. 아직도 뒤통수가 얼얼한데.”

“다시는 영주님을 실망시키는 일 없을 것입니다.”

“뭐⋯⋯ 때가 되면 싫어도 그래야 할 거니까, 지금은 그냥 말만 잘 들어.”

“예?”

“그런 게 있어. 그런 상황까지는 가지 않기를 바라지만⋯⋯”


영지 제일의 가문인 윈드크로스 가문의 후계자를 굴복시켰으니, 이제 안타라스 영지의 히든 영웅을 포섭할 차례였다.


“야 귀신 눈깔. 이계인이 뭐라고 목숨까지 바치는 거야?”

“몰라서 묻는 겁니까? 영지에 종속된 내가 영지의 주인이 하는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걸?”

“그러니까 딱히 이계인에게 충성심이나 그런 게 있다는 건 아니지?”

“나도 제정신이라고 하긴 힘들지만, 저런 미치광이랑 엮이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방법이 없어서⋯⋯”

“난 영지에서 도망친 거지, 소유권을 포기한 적은 없는데?”

“⋯⋯.”

“⋯⋯.”

“?”


아레스의 황당한 고백에 방금 충성을 맹세한 놀란도, 이계인에게 묶인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던 헬레나도, 이들의 반응을 보고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지?’라는 표정을 읽은 아레스도 말없이 서로를 훑었다.

한숨을 길게 쉰 헬레나가 아레스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계인보다 미친놈이 여기 있었네요.”


* * *


어두운 산길을 오르던 300명의 데몬헌터들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카라스를 보고 진군을 멈췄다.

집사로 보이는 깔끔한 복장에 여인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하얀 피부와 긴 생머리.

잘생긴 외모와 함께 어딘가 신비로운 분위기는 함부로 대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아우라를 사방으로 풍기고 있었다.

데몬헌터들이 주춤하는 사이, 카라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안타라스에서 오신 겁니까?”

“우리는 위대한 영주 아르곤님의 병사들입니다. 소속을 밝히시지요.”

“아르곤? 들어본 적 없는 인물인데요?”

“아르곤님은 혼란에 빠진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신 위대한⋯⋯”

“이계인 말씀이시군요.”


이계인이라는 말에 앞장서 대화를 이어가던 지휘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동시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데몬헌터들에게서도 미묘한 분노가 느껴졌다.


“이계인이 아니라 영주이십니다. 그리고 안타라스를 점령하신 이곳의 새로운 영주님이시기도 합니다. 예를 갖춰 말씀하시죠?”

“방은 빼지도 않았는데 벌써 제집마냥 구시려고요?”

“무엄하다!”


카라스의 빈정거림에 데몬헌터 지휘관은 결국 발끈하고 말았다.

데몬헌터의 정식 보급무기인 두 자루의 검을 뽑아 들며 날카로운 얼굴로 카라스에게 살기를 내뿜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높으신 분 같은데, 네놈이 바로 아레스냐?”


데몬헌터 지휘관의 말에 여유롭게 빈정거리던 카라스는 극도로 분노한 얼굴로 표정을 바꿨다.

이어 어마어마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감히⋯⋯ 감히 너 따위가⋯⋯”

“뭐⋯⋯ 뭐야?”

“터진 입이라고⋯⋯ 뭐가 어쩌고 어째?”

“저⋯⋯ 전군! 전투 준비⋯⋯”


댕강.


그러나 데몬헌터 지휘관은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이미 목이 몸과 분리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데몬헌터 지휘관에게 달려든 카라스는, 그의 목을 손날로 그야말로 날려버렸다.

날아간 데몬헌터 지휘관의 목이 진형을 잡고 있던 데몬헌터들 앞에 떨어졌고, 순식간에 지휘관을 잃은 그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지휘관의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물을 피하지 않은 카라스는 금세 하얀 얼굴과 검은 머리가 모두 붉게 물들었다.

귀신 잡는 병사인 데몬헌터들에게도 그 광경은 오줌을 찔끔거릴 만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적당히 어울려 줄 생각이었다. 간만에 실전이라 힘조절이 어려울 것 같아서.”


아레스가 한 발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데몬헌터들은 한 발 씩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너희들은 선을 넘었다.”

“저⋯⋯ 저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


연대 책임이 억울했는지 입을 열던 데몬헌터의 목이 지휘관처럼 나가떨어졌다.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재빠른 움직임으로 목을 날려버린 카라스는 데몬헌터들의 후방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어찌나 빠른 움직임인지, 카라스의 움직임을 확인한 병사는 단 하나도 없었다.


“네놈들의 지휘관이 영주님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렸으니 그 죄를 너희 모두에게 묻겠다. 그리고⋯⋯”

“으아악!”


카라스의 살벌한 모습에 이성을 잃은 병사가 진형을 이탈하여 카라스에게 달려들었다.

카라스는 또다시 눈으로 따라올 수 없는 움직임으로 그 병사의 목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영주님께서 내가 네놈들의 행동에 분노한 것을 알 수 없도록 모두 죽여주마.”


퇴로를 막은 카라스가 조금씩 다가왔다.

데몬헌터들은 분명 300:1의 싸움인데 천군만마와 싸우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이건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이런 생각이 만연한 상황에서, 카라스가 나타났던 앞쪽으로 도망치려던 병사들은 갑자기 날아온 검에 또다시 목을 잃었다.


댕강


“뭐⋯⋯ 뭐야!”

“지휘관님의 시체가 왜⋯⋯”


기습으로 동료의 목을 날려버린 것은 제일 먼저 카라스에게 목을 잃은 지휘관의 몸뚱이였다.

패닉에 빠진 병사들이 주춤하는 사이, 카라스는 데몬헌터 두 명의 목을 날려버렸다.

섣불리 달려들지 못하고 방어만 하던 병사들 주위로 목이 날아간 시체들이 다시 일어섰다.

온몸에 피를 머금은 귀신같은 사내와 목 없는 시체 병사.

이내 병사들 사이에서는 비명과 함께 절규가 터져 나왔다.


“스⋯⋯ 슬리피 할로우의 기사!”

“헤드헌터 카라스!”


피에 젖어 시야를 가린 앞머리를 근사하게 넘기며 손목에 흐르는 피를 혀로 핥은 카라스는 데몬헌터들을 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보였다.


“이런이런. 모른 척했어야지. 네놈들을 살려줄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잖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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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변방 영주로 살아남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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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주기 수정 23.05.17 21 0 -
21 21화 네놈이 더 나빠! 23.05.30 9 0 11쪽
20 20화 해피앤딩으로 끝나는 악몽이라니. 23.05.27 8 0 10쪽
19 19화 채소 좋아하지? 23.05.26 7 0 11쪽
18 18화 방심하지 말라니까⋯⋯. 23.05.25 10 0 11쪽
17 17화 변태 아니라고! 23.05.24 9 0 11쪽
16 16화 이의 있는 사람? 23.05.23 13 0 11쪽
15 15화 너, 내 부하가 되라. 23.05.20 20 1 10쪽
14 14화 다른 방법이 있어? 23.05.19 18 2 12쪽
13 13화 지 혼자 살겠다고! 23.05.18 23 2 10쪽
12 12화 그런데 진짜 괴물은 저런 못생긴 것들이 아냐. 23.05.17 27 2 12쪽
11 11화 영주씩이나 되어서 아는 게 뭐야! 23.05.16 24 2 10쪽
10 10화 사⋯⋯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23.05.15 33 2 12쪽
9 9화 아저씨. 그거 그렇게 하면 영주성 못 깨요. 23.05.14 38 2 10쪽
8 8화 이계인만 없었으면 은퇴할 수 있었는데 23.05.13 48 2 11쪽
7 7화 안타라스의 ‘현재’ 영주가 누구라고? 23.05.12 49 2 11쪽
» 6화 이계인보다 미친놈이 여기 있었네요. 23.05.11 53 2 11쪽
5 5화 안타라스의 ‘작은’ 영주님. 23.05.10 60 2 13쪽
4 4화 도와달라고 한 거 아니었어? 23.05.10 61 3 13쪽
3 3화 이제 어디로 가지요, 영주님? 23.05.10 69 3 13쪽
2 2화 이상하게 도망칠 수가 없네. 23.05.10 76 3 12쪽
1 1화 설마 바로 우리를 노리진 않겠지? 23.05.10 13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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