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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작가미상 님의 서재입니다.

은퇴 후 변방 영주로 살아남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글작가미상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3
최근연재일 :
2023.05.30 20:00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773
추천수 :
33
글자수 :
105,904

작성
23.05.1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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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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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화 설마 바로 우리를 노리진 않겠지?

DUMMY

"으하하하하! 다 죽여라!"


언덕 위에서 저 멀리서 벌어지는 대참상을 보며 앳된 모습의 청년은 화통하게 웃었다.

몰아붙이는 자신의 군대, 무너져내리는 적의 성벽, 불타오르는 상대의 영지.

<게임> 일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압도적 현실감, 형용할 수 없는 쾌감이 몰려왔다.

<튜토리얼>이 종료됐다느니 하는 소리와 함께 잃었던 정신을 차려보니, 게임 속 세상이었다.

처음에는 낯설고 두려웠지만, 익숙해지고 보니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호탕한 웃음도 잠시.


찰싹.


"아저씨. 혹시 뭐 마음에 안 드는 거라도 있어?"


청년은 저 멀리 전장에서 죽어가는 아군 병사들을 보며 이를 악물고 있는 거구의 사내 머리를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내리쳤다.

그런 청년을 향한 거구의 사내는 표정을 고치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영주께서는 우리의 <주인>으로 내려오신⋯⋯ 거니까요. 다 이유가 있으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그럼. 앞으로 할 일이 많은데, 별거 아닌 일로 불만을 품으면 안 되지."

"⋯⋯."


금세라도 터질 듯 머리에 돋아난 빗줄을 불끈거리는 거구의 남자 <마르스>.

그의 머리에 돋아난 핏줄을 보며 히죽 웃은 청년이 마치 채찍을 치듯 손의 가죽띠로 마르스의 허벅지를 찰싹찰싹 내리쳤다.


"자자 가자고. 병사야 어차피 저 영지에도 많겠지. 아니, 모두 죽였으려나? 으하하!"


청년은 해맑은 웃음을 마지막으로 더는 관심 없다는 듯 거대 몬스터로 뛰어올랐다.


쿵! 쿵쿵!


이세계에서 내려온 자신의 주인을 바라보며, 마르스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 무거운 발걸음으로 적 영주성을 향했다.


* * *


근방 영주성, <안타라스> 영지.


"주변 영주성이 또 함락 됐다고?"

"그렇습니다."

"⋯⋯ 저 이계인은 미친 건가."


영주성 알현실 안쪽, 상석에 앉은 평범하게 생긴 젊은 청년인 영주는 흰 피부에 검은 생머리가 매력적인 집사의 보고를 받고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자리 잡은 이 광활한 <에이카 대륙>에는 수천 개에 가까운 수많은 영지들이 분포하지만, 그럼에도 전면전은 가뭄에 콩 나듯 일어난다.

기껏해야 자원지 약탈전 정도가 전부였다.

왜 전면전이 잘 일어나지 않냐고? 당연하지!

탐욕보다 중요한 게 자신의 ‘목숨’이니까!

자원지 약탈전을 벌이다가 지면 기껏해야 명예랑 보상금 좀 잃고 끝이지만 전면전은 지면 정말 끝장이다.

심지어 이겨도 피해가 어마무시하다.

<중앙>이라면 몰라도, <관문> 밖에 위치한 에이카에서는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한데 하늘에서 갑작스레 내려온 이 <이계인>이라는 놈이 벌이고 있는 짓은 그야말로 광기 그 자체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근처 자원지와 몬스터들을 미친 듯이 갈아엎고, 기어코 주변 영지들과 전면전을 벌이고 말았다.

그것도 지속적으로 영지가 완전히 박살 날 때까지!

근심 중인 젊은 영주 <아레스>을 향해 집사 <카라스>가 덤덤히 물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뭘 어떻게 해?"

"이제 전쟁은 지긋지긋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

“뭐⋯⋯ 영주님께서 전장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이 새끼가⋯⋯.”


심란한 속을 더 긁어대는 집사의 말에 아레스가 긴 숨을 내쉬었다.

그랬다.

중앙의 대가문들이 벌이는 암투도, 연맹들의 전쟁도, 몬스터 서식지와 도적 캠프에서의 혈전도 지겨웠다.

그래서 힘도, 지위도, 아티팩트까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은퇴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만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맞아떨어져 은퇴 후 변방에서의 생활은 실로 만족스러웠다.

한적한 영지는 유니크한 자원도, 강력한 유적도 없었기에 분쟁이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정확하게는 없는 것이 아니라 활성화시키지 않아 아무도 몰랐던 것이지만.


"어쩌겠냐. 이렇게 된 이상 준비해야지."


절그럭.


허리춤에 장식용 칼을 집어 들고일어난 아레스가 가라앉은 눈으로 알현실 밖으로 펼쳐진 도시로 떨어지고 있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이세계에 내려온 이계인은 광기 그 자체였다.

자신이 싸우기 싫어도 녀석들은 무조건 쳐들어올 것이다.

그렇다면 짓밟히기 전에 싸울 준비를 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문제는⋯⋯


"우리 군대 거의 1 티어, 그것도 보병뿐이지? 자원도 별로 없고."

"그나마 숫자도 거의 없지요. 뭐 덕분에 평화로웠던 거니까요."

"⋯⋯."


아레스가 입맛을 다셨다.

병력도 적은데 병종도 한정적이고 자원도 없단다.

그리고 어쩌면 시간도⋯⋯


"설마 바로 우리를 노리진 않겠지?"


머리를 벅벅 긁은 아레스가 카라스를 향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카라스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아레스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거 하면 안 되는 말씀이신데 말입니다.”

“아⋯⋯.”

“뭐 괜찮습니다. 이제 이계인이 쳐들어오면 영주님 탓이니까요.”

"⋯⋯."


* * *


"다음은 여기다."

"<안타라스> 영지군요."


마르스의 대답에 임시로 지어진 천막 안, 탁자 위 마련된 지도를 가리킨 청년이 웃었다.

시간 끌 것 없다.

아니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다른 이계인보다 빨리 에이카를 점령하고 중앙으로 진출해야 하기에 시간은 금보다 가치 있는 자원이니까.


"병력을 준비해라. 곧바로 이동할 테니. 아! 그리고 아까말한 대로 소문 퍼트리는 거 잊지 말고. 우리가 쳐들어간다고 말이야."

"⋯⋯ 기습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마르스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이제까지의 영지들은 모두 소리소문 없이 습격하는 형식의 기습전으로 공략했다.

덕분에 전투 규모에 비해 아군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한데 이제 와서 선전포고를 하고 쳐들어간다고?

그것도 약해빠진 <안타라스> 영지를 상대로 굳이?

그 말에 이계인 중 하나인 청년, ID [아라곤]이 웃었다.


"아저씨는 강해서 잘 모르겠구나. 나약하고 이기적인 녀석들만 보여줄 수 있는 재미가 있는데 말이야."

"⋯⋯."


아라곤의 말에 마르스의 눈매가 지그시 좁아졌다.


* * *


"진짜 전쟁이 났다던가요?"

"설마. 지금까지 계속 평화로웠는데."


이른 밤 영주성 근처의 마을에 캠프파이어처럼 작은 횃불들을 켜고 모인 마을 주민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수군거렸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간간히 왕래하던 외부 상인들이 가져오는 소식들은 그야말로 흉흉하기 이를 데 없는 것들 뿐이었다.

어느 마을이 불탔다느니, 어느 영주성이 무너져 통째로 짓밟혔다느니, 도망치던 이들은 모조리 몬스터들의 먹잇감이 되었다느니.

그때 한 중년 여인이 답답하다는 듯 한쪽의 청년을 보며 물었다.


"네가 최근엔 행상도 할 겸 이곳저곳 다른 마을들 들렀잖니. 뭐 들은 거 없어?"

"⋯⋯."


그 말에 슬쩍 눈치를 살피던 청년, 칸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들은 소문이 있긴 합니다."

"진짜?"

"뭔데?"


사람들의 시선이 단번에 집중되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것인지 잠시 말을 멈췄던 칸트는 이내 호흡을 가다듬고 작게 입을 열었다.


"바깥에 전쟁이 난 건 사실입니다. 완전 난리예요.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미친 이계인들이 사방팔방 영지를 짓밟고 난리라고요."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사람들의 표정이 단번에 창백해졌다.

전쟁이라니⋯⋯ 듣기만 해도 공포가 밀려왔다.

한데 소문으로만 들리던 그 내용이 전부 사실이었다니.

창백해진 사람들이 이내 다급한 표정으로 칸트를 향해 묻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른 영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다니?"

"우리도 뭔가 대비를 해야 하는 거 아냐? 도망친다거나?"

"빌어먹을. 우리 같은 농민들이 도망쳐봤자 거기서 거기지!"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자는 건가요?"


불안이 전염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던 그때.


"그만!"


묵직하고 강렬한 저음이 불안으로 떨던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늙은 촌장을 대신하여 암묵적으로 마을의 리더역할을 맡고 있는 장년 사내의 목소리였다.

사람들을 단번에 조용히 시킨 장년 사내가 칸트를 바라보았다.


"칸트. 뭔가 할 말이 있는 거지?"

"⋯⋯."

"말해봐라. 네가 하는 말이 우리에게 좋은 기회를 가져올 수도 있으니까."


그 말에 침묵을 지키던 칸트가 이내 숨을 길게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실은 다른 영지에서 들은 소문이 있습니다. 영지와 영지민들이 이계인에게 짓밟히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는."

"오오!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뭔데? 그 방법이라는 것이."


화색이 돌며 묻는 사람들의 표정에 입술을 꾹 다물던 칸트가 이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영주의 목을 직접 마을 사람들이 가져다 바치면, 그 영지는 더 이상 건드리지 않는다더군요. 사실 소문 수준이 아니라 아라곤이라는 이계인의 군대들이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

"⋯⋯ 저 젊은 영주의 목을 바치라고?"

"영주가 무능력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딱히 우리를 괴롭히지는 않았는데⋯⋯."


찜찜함을 느낀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 둘 떨떠름해지기 시작했다.


* * *


[영지 이름 : 안타라스]

[영지 레벨 : 0]

[보유 영주 : 아레스]

······


"이걸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니⋯⋯."


영주성 알현실에 홀로 있던 아레스가 눈앞의 창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제는 멸망한 고대 문명의 유적인 <영주성>에 자신을 등록하는 순간 눈앞에 떠오르는 반투명한 창.

영주는 영주성에 자리 잡고 등록함으로써 진정한 영주로 인정받는다.

고대 문명의 대마법사가 영주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었다 하는 이 시스템은, 아레스에게 두 번째 경험이었다.

첫 번째는 가문의 도움으로 큰 어려움 없이 안정적인 영지를 구축했다.

그리고 끝까지 가 보았기 때문에 아무런 지원 없이 바닥부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모진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는 생각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레스가 고개를 내려 반투명한 창의 하단을 보자, 그야말로 휘황찬란하게 유혹하듯 번쩍이는 황금빛 버튼이 눈에 들어왔다.


[대마법사가 미쳤어요!]

> 초보 영주들을 위한 튜토리얼 프로그램.

> 대마법사가 직접 안내하는 다양한 퀘스트와 미션들!

> 이것만 따라 하면 당신도 오늘부터 최고의 영주님!


"⋯⋯."


고대인들의 센스는 그야말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런 낚시에는 분명 후폭풍이 숨어있기 마련이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안 누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꾸욱.


허공의 반투명한 창을 누른 순간, 화려한 이팩트와 함께 화면이 전환되며 새로운 문구가 떠올랐다.


[당신은 <안타라스> 영지의 영주입니다.]

[이런이런··· 영지에 아무것도 없군요. 만약 적군이 쳐들어오면 훈련소도, 병원도, 병사도 없는 이런 허접한 영지는 순식간에 함락되겠는걸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안타라스> 영지는 위대했던 ????? <??????>가 다스리던 영지입니다.]

[이 위대했던 영지를 성장시켜 나간다면 당신도 <??????>에 잠들어 있는 영웅과 병종으로 무장한 위대한 영주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그래. 알겠어. 다음. 다음."


[먼저 당신이 영주로 적합한 인물인지부터 파악해 볼까요?]

[영주성 지하 던전에 잠들어 있는 <레서 데몬>이 던전 입구 밖으로 소환됩니다.]


"그래 그⋯⋯ 뭐?"


[미션 : 레서 데몬을 죽이세요.]

[보상 : 지휘관의 반지]

“이봐! 잠깐만!”

[약하면 죽고 다른 영주에게 빠르게 영지를 넘겨주는 게 낫겠죠? 푸훕.]

"뭐라는 거야?"


쿠르르르릉!


반투명한 창이 사라지자 성 전체가 진동과 함께 울리며 무언가 울부짖는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 * *


"뭐야 이거."

"들어가도 되는 거 맞아?"


어둠 속에서 영주성으로 몰래 숨어들던 마을 사람들이 갑자기 진동하는 영주성을 보며 수군거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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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변방 영주로 살아남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주기 수정 23.05.17 20 0 -
21 21화 네놈이 더 나빠! 23.05.30 8 0 11쪽
20 20화 해피앤딩으로 끝나는 악몽이라니. 23.05.27 8 0 10쪽
19 19화 채소 좋아하지? 23.05.26 7 0 11쪽
18 18화 방심하지 말라니까⋯⋯. 23.05.25 9 0 11쪽
17 17화 변태 아니라고! 23.05.24 9 0 11쪽
16 16화 이의 있는 사람? 23.05.23 13 0 11쪽
15 15화 너, 내 부하가 되라. 23.05.20 19 1 10쪽
14 14화 다른 방법이 있어? 23.05.19 17 2 12쪽
13 13화 지 혼자 살겠다고! 23.05.18 23 2 10쪽
12 12화 그런데 진짜 괴물은 저런 못생긴 것들이 아냐. 23.05.17 26 2 12쪽
11 11화 영주씩이나 되어서 아는 게 뭐야! 23.05.16 24 2 10쪽
10 10화 사⋯⋯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23.05.15 33 2 12쪽
9 9화 아저씨. 그거 그렇게 하면 영주성 못 깨요. 23.05.14 38 2 10쪽
8 8화 이계인만 없었으면 은퇴할 수 있었는데 23.05.13 47 2 11쪽
7 7화 안타라스의 ‘현재’ 영주가 누구라고? 23.05.12 48 2 11쪽
6 6화 이계인보다 미친놈이 여기 있었네요. 23.05.11 52 2 11쪽
5 5화 안타라스의 ‘작은’ 영주님. 23.05.10 59 2 13쪽
4 4화 도와달라고 한 거 아니었어? 23.05.10 60 3 13쪽
3 3화 이제 어디로 가지요, 영주님? 23.05.10 68 3 13쪽
2 2화 이상하게 도망칠 수가 없네. 23.05.10 76 3 12쪽
» 1화 설마 바로 우리를 노리진 않겠지? 23.05.10 13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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