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독자‘가 아닌 ‘소비자‘라는 단어를 썼냐면, 소설이 아닌 판타지물들을 끔찍히 좋아하다 못해 소설도 찾아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즐길만한
판타지 RPG, 만화(2000년 초반에는 판타지 라노벨까지 포함)가 없으면 소설을 하나씩 찾아보는지라.
그래서인지.... 판타지 소설을 보면서 제가 즐겨 소비하는 다른 판타지 콘텐츠와 무의식적으로 비교하곤 하는데요. 가장 아쉬운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왜 더 멋진 장면을 이끌어낼 수는 없을까?”
아무래도 게임과 만화는 명확한 장면을 보여주는 콘텐츠라 소설보다 더 멋진 장면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그 상황 자체만 곱씹어봐도 멋지다 싶은 장면은 많습니다.
예컨대 꼼짝없이 당할 법한 적의 기술을 파훼하고 반격하는 장면, 팽팽하게 대립하던 영웅들이 손을 잡는 장면, 터무니없이 기괴하고 강력해보이는 적과 싸우는 장면 등등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눈동자로 삼은 괴물을 향해 강력한 마법을 쏘아올리는 것처럼)
물론 그러한 상황은 판타지 소설에서도 나타납니다. 나타나는데... 멋진 장면이 될법한 상황을 아주 인상적으로 나타내지 않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인지, 소설을 읽고 난 다음에 명대사나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쉽게 떠올릴 수 잇어도 명장면이라 할만한 대목은 쉽게 떠올릴 수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글이란 매체의 한계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글 쓰는 분들의 필력이 모자라서라고도 생각 안 하고요. 중요 에피소드 당 명장면 하나씩은 제대로 띄워보겠다고 작정하고 쓰는 분이 의외로 적어서 생긴 문제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그외에는 글쎄... 양판소다, 틀에 박혔다, 상상력이 부족하다, 그런 비판들을 보면서 다 일리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것에 질려서 한동안 판타지 소설을 놓은 적이 잇고.
허나 뻔한 소재 우려먹는 건 영화나 게임도 마찬가지지만, 그쪽은 연출력을 강화해서 차별화하고 있잖습니까. 보여주는 바를 달리 하면 같은 소재를 다룬 창작물이라도 ‘양산됐다’고 비판하긴 어렵죠.
소설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작가가 선택한 소재를 보여주는 데에 급급한 글이 많았던 만큼, 뭘 보여주냐에 따라 소설을 차별화할 수 있을 거라고- 소재가 아닌 다른 것을 보여주려는 글이 늘어난다면 장르 문학이 더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뱀발. 생각해보니 보통 소설 리뷰에서 인상 깊은 캐릭터, 명대사가 언급된 적은 많아도 명장면이 언급되는 경우는 꽤나 적은 거 같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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