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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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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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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02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12.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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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75. 주인

DUMMY

추모관에서 마지막으로 나오던 로자릭이 문고리에 열쇠를 걸었다.


“크로우하고 마리는 어때.”


하루의 질문에 그가 몸을 돌렸다.


“둘 다 잘해 나가는 중이야. 저택 고용인들 사이에서도 아주 잘 녹아든 모양이고.”


“뭔가 들은 말은 없어?”


“무슨 말?”


처음엔 단순히 의외라고만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둘에게 관심을 주는 하루를 보며 로자릭이 의구심을 가졌다.


“없으면 됐어. 둘을 만나고 싶은데, 혹시 괜찮을까?”


“물론이야. 무슨 일인지는 신경 쓰이긴 하는데.”


로자릭을 따라나서던 지아와 하루의 뒤로 아니나 다를까 나머지 셋도 따라붙었다.

잠시 고개를 돌려 셋을 바라보면 그들은 회피하기 바빴다.

한숨을 푹 내쉬며 한동안 걸으면 로자릭의 저택이 보인다.


“뭔가 좀 달라졌나?”


가까워지는 저택의 주변을 둘러보며 하루가 의문을 달면 로자릭이 소소하게 웃었다.


“세인님의 대대적인 귀족 개편이 있었네. 사실 이제 귀족이란 신분도 사라진 거나 다름없지. 물론 세인님의 곁에서 정무를 돕는 이들에게 다른 직책들이 생겨났지만.”


“설마 너도 잘린 거야?”


“하하, 그 반대야. 나도 그분의 곁에 있는 자로서, 정세를 가다듬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서. 내 재산의 일부를 반환했네. 물론 독단은 아니고, 영주민들의 찬성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 그때 쓸데없는 물건들을 처리하다 보니 좀 달라졌네. 자네가 보기에도 조금 휑한가?”


저택을 들어서기 이전에 뒤돌아본 거리가 기억에 있다.

틀림없이 저 거리에 거대한 구덩이를 뚫어버렸을 것이다.


‘이미 메워졌나.’


발터의 소식을 물어보려다 문득 들어온 영주민들의 모습에 멈칫했다.

하루는 조금 열린 입을 마저 오므렸다.


그들 중 일부가 자신들을 발견하고 꾸벅 인사를 해온다.

로자릭과 나머지 일행들도 고개를 슬쩍 숙였다.


지금의 자연스러움이 얼마 전까지 감히 상상도 못 했을 광경이라 생각하니 무심코 실소가 나온다.


“세인이 바라던 게 이런 걸지 모르겠네.”


“음?”


“······전혀 휑하거나 하지 않아.”


재차 저택 정문으로 몸을 트는 하루의 답과 함께 로자릭이 활짝 웃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


끼이─



언젠가 유리와 함께 방문한 적 있는 복도다.


끝없는 침묵이 도사렸던 기억과는 정반대로 분주하다.

하루가 이따금 지나치며 인사하는 고용인들을 쫓아 고개를 움직인다.


“오, 확실히 달라졌네.”


제 속이라도 읽은 듯 유리가 뒤에서 한 마디를 꺼냈다.


“하하, 그런가.”


발터와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나쁘지 않은 쪽으로 흘러간 듯해 어딘가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여기면서도 하루는 스스로 안심이라는 단어에 어색함을 느끼고 있었다.


“크로우와 마리가 어딨는지 알 수 있을까?”


로자릭이 중간에 고용인 하나를 붙잡고 물으면,


“데려올까요?”


하고 되묻는다.


“아니, 괜찮아. 우리가 가겠네.”


고용인을 따라 긴 복도를 걷는다.

이내 방문 앞까지 안내를 마친 고용인이 사라지면 로자릭이 조심스레 문을 두들겼다.


똑똑


덜컥


“아, 로자릭님···하고···.”


백발의 여성이 그의 뒤로 있던 인물들을 찬찬히 살피더니 유리에게서 멈췄다.


“유리 언니!”


고조된 목소리로 반갑게 그녀에게 안긴다.

아까까지만 해도 별로 방문한 적이 없는 듯 말하더니, 고용인과도 친분이 있는 걸 보곤 하루는 혀를 내둘렀다.


“유리 언니가 친화력이 좋네요.”


지아 역시 같은 생각이었던 듯하다.


“네가 그걸 말하는구나.”


하루가 어이없다는 듯 받아쳤다.


이번엔 그런 둘을 발견하고 빤히 쳐다보던 여성의 인상이 조금 굳었다.


“아저씨?”


“왜.”


짤막한 답과 함께 지아를 빤히 노려봐도 지아는 멀뚱멀뚱 자신을 쳐다만 보고 있을 뿐이다.


“저 아닌데요?”


현재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인물이 또 달리 있을까 싶을 때, 하루는 지아의 부름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고 뒤돌았다.


단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방금의 여성까지.


그제야 그 여성이 척안을 지니고 있다는 걸 깨닫고 그대로 굳어 섰다.


루돌프나 나탈리를 만날 때 역시 그랬지만, 이들의 성장에는 그만 현실을 직시하고 만다.


“마리였구나.”


“네. 오랜만이에요. 그때는 정말 감사했어요.”


그 이후 만난 적이 없었으니 어색함이 감도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쑥스러운 건지 조심스러운 건지 방금까지 고조된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었다.


“윽, 이 기운은!”


무의식적으로 한숨이 새어 나올만한 대사를 치는 장본인이 방 안에도 하나 있었다는 사실마저 떠올렸다.

마리의 어깨너머에 그가 있었다.


“크로우.”


사무를 보던 직원들 사이에서도 그의 백발은 알기가 쉬웠다.

당연히 외형 때문만은 아니었다.


“역시 자네였군. 내 하나뿐인 혈육을 구해낸 영웅. 이 기운을 내가 몰라볼 리 없지.”


“방금까지 잠자코 있었잖아. 조금만 더 다물고 있어 주면 고맙겠어.”


하루의 차가운 말투에 그가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

그런 점은 조금 변했으려나.


“어떻게 저 녀석은 똑같냐.”


로자릭과 마리만 머쓱하게 웃고 있다.


이후 마리와 크로우를 데리고 나와 로자릭의 집무실로 향했다.


용건을 전달하는 건 간단했다.

심연에 들어가고 싶다.


지아도 처음 듣는다는 듯 하루를 쳐다봤지만, 이 목적만이 처음부터 인계에 되돌아오게 했을 터다.

본론을 꺼내고부터 마리와 크로우가 자신을 보는 눈빛이 다소 진중해졌다.


“어떻게 이분들이 심연에 데려다 줘요?”


“오히려 이 둘밖에 없어. 심연의 전 주인과 아마 현 주인.”


“무슨 일인지 물어도 될까.”


크로우에게서 중2병의 말투가 싹 빠졌다.


“붉은 달의 단장에게 볼일이 있어.”


“붉은······ 달?”


처음 듣는다는 반응이다.

붉은 달은 처음부터 인계에 분점을 둘 생각도 없었던 듯하니 당연한 일이었으려나.

물론 타 세계까지 진출하고 있던 유리나 장은 그들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는 듯 말했다.


“가장 성황인 택배기사단이라······.”


그들의 설명을 허공에 중얼거리던 크로우는 다시금 물음표를 달았다.


“근데 그들을 찾아 왜 심연에?”


그렇게 내놓는 크로우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던 마리를 보면, 하루는 돌연 제 안에 들었던 의구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래서 그곳에 있을 수 있던 건가.”


“무슨 말이야?”


“심연은 지금 너희가 알고 있는 심연이 아닐 거란 말이지. 디아블의 말을 듣고부터 그게 가능한 일인가 생각해봤는데, 빈집의 주인이 누가 침입했는지도 모른다면 당연하고도 남을 일이었나.”


하루가 혀를 찼다.


“아무리 주인이 없다고 해도 심연에 침입할 수 있다는 건 내 평생 처음들은 얘기야.”


크로우가 반박해도 하루는 아주 간단하게 받아칠 뿐이었다.


“그야 네가 나온 적이 없었을 테니까.”


방구석 히키코모리야, 라고 덧붙이고 싶은 마음을 차마 그 동생 앞에서 할 수 없어 억눌렀다.


크로우가 마리를 직시한다.

불안한 듯해 보이는 건 오히려 크로우 쪽이었다.


“걱정 마.”


그리고 그 여동생은 안심을 준다.


“사실 언제부턴가 위화감을 느끼고 있긴 했어. 그냥, 심연을 물려받은 후유증인 줄만 알고 방치했는데······.”


“그게 침입의 신호였던 건가.”


하루가 더욱 인상을 찌푸린다.

붉은 달의 단장이라던 여자를 떠올리면서.


어떻게,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모든 사정을 파악하고 있었다고밖에 할 수가 없다.

확신을 가질 수 없지만, 지금 향하게 될 곳에서 확인하면 그만일 일.


“내키지 않으면 안 해도 돼.”


그런 크로우의 말엔 아무리 하루라도 철렁했다.


“괜찮아.”


마리의 답을 듣고선 다시 안도의 숨을 내었다.

참 여러모로 감정을 뒤흔드는 남매다.


“그때 현자님이 해주신 말이, 이 이후를 보시고 한 걸지도 몰라.”


아무도 모르게 자신에게만 해오던 말.


아무리 현자라도 이 정도의 미래까지 예측했을까 싶지만, 하루는 그녀라면 어쩐지 가능할 것도 같다고 여겼다.


“그리고 문을 여는 것뿐이니까.”


“그러게. 과보호는 좋지 않다고.”


크로우가 옆에서 맞장구치는 하루를 째려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뭣하면 우리도 같이······”


“그 말할 줄 알았다. 뭐 담판이라도 지을 참이야?”


슬쩍 의견을 드러내던 장을 나무라면 그는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었나?”


이젠 익숙해 쏘아붙일 여력도 없었다.


“그렇게 한가하면 네 동족한테 얼굴이라도 한 번 비춰주던가.”


“갑자기 무슨 말이야?”


“글로리아의 왕이 불칸이던데.”


“그곳까지 다녀온 건가? 글쎄······ 접촉이 많이 없기도 했고.”


“내가 신세를 좀 졌어.”


마지막 운을 떼면서 하루는 다리를 들어 바닥을 한 번 내리쳤다.




순식간에 드러난 흑색의 각갑이 주변에 있던 일행들의 눈을 휘둥그레 만들었다.


“거기서 너희들의 기술을 배웠거든.”


그렇게까지 놀랄 일이었는지, 다들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흑갑이 재차 모습을 감추고 나서야 한 마디도 떼지 못하던 장이 하루의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내가 방금 본 게 스킨 오라, 맞나?”


“음. 킹이나 프린은 그렇게 부르긴 했지.”


“······!”


장이 다시 말을 잃고 붙잡고 있던 어깨를 놓았다.

이내 턱을 쓰다듬으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대충 수백의 인원이 같은 훈련을 받았는데.”


장의 턱이 닫힐 틈이 없이 다시 떡 벌어졌다.


“그, 그게 사실이야?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정말 모두 그 기술을 익혔다고?”


“그야 같은 공간에서··· 배···웠······.”


그때의 기억을 상기시키면서 하루는 잠시 말을 아꼈다.

장의 말에 다시금 이상한 부분이 짚인다.


“하드 스킨하고 스킨 오라는 같은 기술 아니야?”


장이 그의 물음에 고개를 젓는다.


“얼핏 비슷하겠지만, 결코 같은 기술이라 치부할 수 없어. 그야, 감히 닿지 못할 영역이니까.”


지금에야 확실하다 할 수 있는 건, 투기장 동료들이 터득하고 선보인 건 하드 스킨이었다는 점이다.

킹과 프린을 제외하고선 결코, 스킨 오라의 훈련이나 터득한 이들을 본 기억이 없다.


“심지어 나조차 그 기술을 터득하지 못했다. 다른 불칸들과는 달리 술식이라는 이점이 있었기에 권성의 경지에 다다랐지만, 내가 그들의 왕이자 무신이 되지 못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는 거야.”


“킹을 말하는 거야? 그들은 당신을 모르던데.”


“왕이 모든 동족을 기억할 순 없겠지. 게다가 내가 권성을 단 건 그곳에서부터 떠난 이후야. 차마 백수왕의 곁에선 그 경지를 넘을 미래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루가 괜히 제 주먹을 쥐었다 펴본다.


부욱─


순간 주먹을 한 번 더 감싼 흑연이 완갑을 만들어낸다.


지아의 눈동자가 커졌다.

빠르다.

각갑을 드러냈을 때도 그랬지만, 처음 흑갑의 그와 마주했던 장면과 비교해도 확연히 빨라졌다.


“말도 안 되는 싱크로율이잖아. 정말 광전사라고 해도 믿겠어.”


“처음엔 이렇게까지 뚜렷하지 않았는데. 프린은 이미지의 훈련이 꾸준하다면 얼마든지 늘 거라고 했어.”


“그게 스킨 오라가 지닌 특성이니까. 기억의 구체화. 자료가 방대하고 뚜렷할수록 강해지는 거야. 당연히 그것만으로 터득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겠지만, 그 둘이 자네의 비밀을 몰랐으니, 자네를 보고 어떻게 된 영문인지 어지간히도 답답했겠군.”


가볍기 그지없게 여기던 기술이 갑작스레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니, 오히려 몸이 몇 번씩 부서지던 훈련이 이제야 납득가던 참이었다.


장은 팔짱을 끼곤 마치 제 일인 것처럼 흐뭇하게 내려다 봤다.


“하루, 자네만이 지닌 기나긴 기억이 그대로 힘이 될 거야.”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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