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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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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35,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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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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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77. 가설

DUMMY

천계의 불가사의.

미스테리 자체라 불릴 수 있는 존재.

자신이 어떻게 불리건 그녀에겐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제가 내려가도 되겠습니까.


세라핌이 그렇게 물었다.

그녀는 자신들의 깃털이 지상에 닿기도 전에 이미 인지도가 있는 천계인이었다.


─지금 와서 그런 걸 신경 쓰는 거니?


그녀에겐 수차례 적임자라고 일러둔 바가 있으나, 아무래도 신경 쓰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끝내 인계에 처음 내려간 이는 세라핌이었다.

그 눈동자에 치품의 상징을 달고서.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모습을 메타트론은 그저 위에서 응시하고 있었다.


세라핌은 끝까지 메타트론 그녀가 직접 내려갔어야 했다며 후회했다.

그 결과를 머잖아 세라핌 자신의 죽음으로서 깨닫게 했다.

천계는 와해되었다.


누군가의 계략인지는 모르겠으나, 필시 제 시야 외의 존재이니 제대로 된 녀석은 아닐 거라 여겼다.

정체가 불명한 자를 경계해 나서지 않은 것이 인계에겐 화근이 되었다.


인계에서부터 원망의 소리가 들려왔다.

끊임없이.

점차 줄어드는가 싶었을 땐, 이미 축복이란 단어 자체가 그들에게서 사라지고 있었다.


인계의 멸망을 점치고 있을 때,

온 세상엔 그토록 갈망하던 종전이 왔다.


참으로 운이 좋은 자들.

축복이란 칭호를 잃고서도 그들은 멸망하지 않았더라.

하지만 그녀는 목격했다.


종전이 있기 직전.

그들 앞에 틀림없이 머물렀던 멸망을.


#


“그래서 메타트론···씨는 천계인이라는 거죠?”


방금의 이야기를 듣고도 지아의 말투에선 혼란이 느껴졌다.

그럼 하루가 정확하게 그녀의 정체를 다시 짚었다.


“정확하겐 모든 천계인들의 수장격이야. 아마도, 라고 밖에 할 수 없을 만큼 미스터리였는데 틀림없겠지. 그 머리 위의 고리, 수상쩍다 싶었어.”


천계인과 닮아있지만, 명백하게 다른 질을 짊어지고 있는 붉은색.

하루가 그녀의 머리 위를 노려본다.


빙글─ 돌아가던 고리가 멈칫한다.


메타트론은 그런 그를 향해 웃고 있었다.


“근데 심연엔 왜 있는 거예요?”


“종전 직후의 세계는 너무나 많은 게 변했거든. 내 심적 변화까지 포함해서. 천계는 많은 법도와 규칙에 얽매여 있다고 생각했지. 그게 이 시대에 녹아들지 못한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난 직책을 져버렸어. 다가온 현실과 변해가는 상황에서 그것만이 가장 큰 변칙을 줄 수 있는 선택지였거든.”


“그게 오히려 인계에겐 독이었고.”


하루의 눈은 현격히 적의가 담겨 있었다.

메타트론은 그의 반응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어깨를 으쓱이면서,


“설마 세라핌을 죽인 녀석이 앱하손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어. 물론 천계인 중에 그에게 가담한 이가 있다는 건 유감인데, 이미 내 손을 떠난 녀석들이라고.”


그녀의 변명에 하루는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빈 심연을 발견했는데, 우연이었어. 그때 인계의 병기라는 존재도 처음 알았고. 인계가 멸망하지 않은 건 운이 아니었단 거였지.”


외에도 틀림없이 그녀는 이곳에서 많은 일을 목격했을 것이다.

심연은 어디에나 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여자는 모든 사정을 간파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과거 이야기는 이제 됐어. 날 찾은 이유는?”


하루가 톡 쏘듯 말한다.

메타트론이 다시 싱긋 미소를 되찾았다.

그리곤 제 책상 앞으로 걸어가 그 위에 걸터앉았다.


톡─


그녀의 손가락에 치인 모형이 흔들린다.

방금까지 제 머리와 심장을 조여오는 모형이 움직이는 걸 보면, 지아가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찾고 있는 게 뭔진 알지?”


“멸망.”


“그래. 참 터무니없는 고객이란 말이야.”


“그걸 받은 너도 마찬가지고.”


이따금 공격적으로 딴지를 거는 하루 탓에 그녀가 웃었다.


“하하, 부정하진 않을게. 하지만 보지도 않았다면 받아들일 생각도 없었을 거야.”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데니, 지아, 하루는 모두 방금보다 더 정색했다.

굳은 안면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통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는 그녀였지만, 결코 거짓을 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메타트론은 증명이라도 하듯 제 책상 위에서 흔들리던 모형을 손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제 눈앞에 가져간 모형을 빤히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종전이 선언되기 직전. 내가 인계의 멸망을 확신하고 있을 때 인계의 한 경계에 그건 나타났어. 아주 흉측하고 뒤틀린 데다 왜곡된 꿈같은 형태였지. 한껏 그것에 사로잡혀 있을 때, 사라졌어. 왜인지는 몰라. 그래서 한 번 더 보고 싶었어.”


단지 그것만이 이 의뢰를 받아들인 이유였는지, 데니 역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녀가 멸망을 찾는 데 열심인 것도, 물론 그게 정신 나간 이유라는 것도 알았지만, 지금처럼 아연한 감정이 피어오를지는 모를 일이었다.


하루 역시 비슷했는지 가차 없이 나무랄 생각으로 열었던 입은, 도중에 다시 끼어든 메타트론에 의해 내놓지 못했다.


“그래, 그건 너와 아주 근접한 곳에 있었어.”


환희에 찬 입꼬리가 씩 올라간다.

하루는 열린 입 채로 그녀를 바라보다 다시 다물었다.


메타트론이 보란 듯 그의 눈앞으로 모형을 들이밀었다.


“본 기억 없어?”


하루의 눈동자 가득 그것이 담긴다.

얼핏 초코볼과도 같은, 하지만 더럽게 맛은 없어 보이던 형태를 빤히 들여다보다가 그대로 너머에 있는 메타트론을 직시했다.


“없네.”


그녀의 기대감에 부풀어 올라있던 눈꺼풀이 가라앉는다.

그럼 하루는 다시 무덤덤하게 그녀에게 꺼냈다.


“설마 그거 때문에 부른 건 아닐 테고.”


“그럴 리가. 어쨌든 그걸 찾는데 상당한 시간을 쏟았는데, 너도나도 코빼기도 구경하지 못했잖아.”


이번엔 다소 분한 듯 모형을 책상에 거칠게 내려두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근데 내가 뭘 발견했게?”


스무고개라도 시작할 심산인가 싶었지만, 하루는 장단에 맞춰주지 않았다.

싱겁다는 그녀의 반응을 조금이라도 끌어낼 줄 알았지만, 혼자서도 곧잘 감정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왜, 달은 어떤 세계에서도 달일까.”


“또 그 이야기야?”


“그래. 제법 돌아왔지만, 아까도 이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거야. 필시 달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거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동조를 구하는 듯한 눈빛.

메타트론은 이미 반쯤 광기에 먹힌 듯했다.

물론 그녀의 반응이 그렇다는 것뿐, 실제로는 지극히 이성적일 터였다.


“여태 심연으로 흘러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하나의 가설을 세웠어. 어쩌면 이 모든 세계의 근본이 같을 수 있다는 거.”


하루는 흠칫했다.

이 여자는 장난이 아니다.

앞서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은 것들에 의구심을 가진 것 또한 그렇지만, 그로부터 추출 해내는 결과물이 이미 정상인의 범주를 넘어섰다.

아니, 어쩌면 그녀 딴에는 그래야 비로소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근본에서 시작된 지식이 남아있는 거지. 방금 예를 든 달이 그거네.”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여자.

진실을 탐구한다는 천계인들의 일부 속성들은 분명 그녀에게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목울대를 꿀렁이던 하루는 속으로 근본에 대해 짐작했다.

틀림없이 불행하기 그지없던 소년 시절의 자신이 머물렀던 곳.

그곳밖에 없다.


이 여자가 정녕 모르고 하는 말인지는 이제 알 수가 없었다.


“이 많은 세계가 전부 근본에서 탄생했다고?”


“그건 아니지. 근본이 언제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고. 하지만 근본으로부터 시작된 ‘첫 번째 세계’가 있으니까. 이 수많은 세계 중 과연 어떤 게 처음이었을까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첫 번째부터 데이터를 축적해 만들어진 두 번째, 그리고 그 두 번째로부터 또 세 번째가 이어졌다는 거야.”


“무슨 이유로──”


“세계를 그렇게 양산해냈냐고? ‘프로젝트’가 실패했으니까. 정말 운이 좋지 않고서야 어떤 실험에서건 첫 번째에서 수확을 내진 못하잖아,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더 나은 결과를 만들려고 한 거야.”


하루는 잠자코 그녀가 내놓는 가설들을 듣고 있었다.

빨려든다.

어쩌면 그게 진실일지도 모른다고 믿어버릴 만큼.

이전에 제 손으로 없애버린 천계인들이 신 따위가 아니라 이 여자를 추종했다면 조금 더 나은 미래로 가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전에 프로젝트를 끝낸 세계를 그렇게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그렇게 ‘그 작자’는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어냈어. 다음 세계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전의 세계를 ‘리셋’시키는 자동화 시스템.”


이미 그녀가 내놓는 것들이 이 세계와 그 인종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라곤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프로젝트라던가, 데이터니 리셋이니.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작업’들로밖에 볼 수가 없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지금껏 쌓아놓은 모든 데이터 사이에 간섭이 일어나는 사건이 발생한 거야. 나는 각 세계의 경계가 뚫린 날이 그 날이라고 보고 있어.”


“너무 형편 좋은 이야기 아니야? 근거도 없고, 말 그대로 가설이었네.”


“그런가? 난 나름대로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근거는 있어. 이게 널 부른 이유야.”


“뭐?”


“그게, 이 가설은 모두 너와 ‘그 작자’들의 대화로부터 시작됐는걸.”


하루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뭐, 짐작되는 거 없어?”


메타트론이 하루에게 다가서면 하루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누군가에게서 물러난다는 행위가 생각보다 드문 하루를 보면, 지아 역시 그가 얼마나 당황하고 있던 건지 알 수 있었다.


─네가 있기에 세계가 유지돼.

─네가 @$*U#! 번째의 너구나?


하루의 눈살이 움찔거리고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메타트론은 그런 반응에도 그저 미소만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그걸로 확신했다.

이 여자, 틀림없이 프로젝트는 자신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하나의 미스테리가 남아.”


그녀는 한숨에 섞어 그렇게 내뱉었다.


“당신의 존재 자체가 미스테리인데요.”


옆에서 지그시 거북목을 내빼고 지켜보던 데니가 툭 던졌다.

역시나 그녀는 팔짱을 끼고 한껏 제 고뇌에 빠진 채 대꾸도 하지 않는다.


“그동안 자동화시켰던 시스템은 어디로 갔을까.”


그런 의문엔 조금 괴로운 표정을 짓던 하루도 고개를 들었다.


“······지워졌겠지.”


“이 세계를 어떻게 보는 거야. 완전히 프로그램으로 보는 거야?”


너무하다는 듯 보는 그녀의 시선이 어이가 없다.

그것들이 여태 자기가 내놓은 단언들인지는 완전히 잊은 건가.


“여기서 말한 리셋이니 시스템이니 하는 건 간략한 설명을 위한 예시잖아. 리셋은 사람들의 ‘기억소각’ 같은 방식이겠지. 시스템은 그걸 수행했던 어떤 생명체고.”


“리셋에 굳이 자신의 대변자를 세울 이유가 어딨어.”


“글쎄. 자동화를 위해서? 뭔진 몰라도 여태 그 작자가 한 방식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직접적인 일은 거의 없었고. 흐음······ 아! 혹시 오류인가?”


과연 그 작자가 하는 일에 오류가 일어날까.

무한한 우주의 관리자다.

아무렴 신이라도 완벽하지 않다는 전제 하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일종의 반복적인 시스템으로 돌아가던 일이라면, 충분히 오류가 일어날 만하지 않겠어? 여태껏 네가 돌아본 세계를 봐. 그만한 수가 일종의 오류 없이 깔끔하게 처리된다는 게 훨씬 비정상적으로 보인다고.”


일리는 있다.

오히려 세계가 충돌한다는 사건에서, 그런 시스템이 사라진다는 건 사소한 오류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번엔 오류 얘기냐.”


하루는 질색하며 한숨과 함께 근처 아무 의자나 끌어와 앉았다.


“정작 우리가 찾는 거하곤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이야기 아니냐고. 난 역사 공부를 할 생각으로 찾아온 게 아닌데.”


방금의 당황이 없던 일처럼 하루는 다리를 꼬았다.

메타트론의 고뇌하던 표정에서 다시금 미소가 드리우면서,


“그래서 그것도 오류 아닌가 생각해봤거든.”


이라고 꺼냈을 땐, 아무래도 천계의 수장보다는 학자가 더 어울리는 여자라고 단단히 인식이 박혔다.

어디 들어나 보자고 무심하게 그녀를 응시하고 있으면 그녀는 알아서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멸망은 사라졌거나, 이미 ‘그 작자’의 손에 있거나.”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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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179. 남은 쪽 22.01.06 4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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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 가설 22.01.04 50 2 13쪽
177 #176. 심연 22.01.03 44 2 12쪽
176 #175. 주인 21.12.31 43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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