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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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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조회수 :
27,912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2.01.13 06:05
조회
98
추천
2
글자
8쪽

#Epilogue. 누군가의 독백

DUMMY

누군가가 사라진 공간.

소멸했음에도 머물렀던 곳이 진공 속에서 기록을 스스로 흩뿌리고 있다는 건, 얼마나 거대한 존재였는지에 대한 방증이었다.


기록은 연거푸 흩날린다.

소멸한 존재를 그리듯, 그마저 서서히 사라져가듯.

언젠가 있던 누군가의 독백을 닮아있다.



수십억의 별을 지우고 재창조한다.

하지만 문득 신이라 불리던 우리는 가장 해선 안 될 의문을 품고 말았어.

그 행위에 대한 의구심.

끝내 별에 있는 이들이 무지해지고 어리석어짐으로써 멸하는 결과를 맞는 거라면, 창조라는 행위는 옳은 걸까.

그저 흥미로 시작해서 습관과 반복으로 지속할 뿐.

자신이 만들고 있던 생명들이 결국 제 손에 사라질 뿐인 무가치한 것이라면, 그 생명을 만들던 이 행위 또한 무가치한 건 아닐까.

그 와중에 소년을 발견했어.

소년의 주위에서 한 번 더 회의감에 빠져갈 즈음, 노인을 발견했어.

그게 너희였다.


이름도 없었을, 하루.


감히 언급할 수 없을 세월을 쉽게 부정하기 싫었기에 네 앞에 섰어.

아니, 네가 내 앞에 섰던가.

누구나가 괴생명체라 칭하는 나를, 넌 나로 봤지.

곧 내가 바라는 소망을 네 입으로 전해 들었어.

기대하지도 않던 수확이었다.


묘한 기분이었어.

너 역시 사라지고 싶어 했으니까.

그런 너라면, 나와 같은 감정을 지니고 있던 너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네 조력을 구하기 위해선, 한 번 네 소망을 들어줘야 했지.

그건 소망을 가장한 눈속임과 거짓에 불과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넌 이후에 날 원망하기도 했지만,

그때 내게 네 의견 따윈 중요하지 않았어.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처음부터 많은 일이 틀어졌어.


모든 별은 태어나고 소멸하기까지 많은 죄를 축적해.

일정 선을 넘었다고 판단하면 우리는 별을 멸하는 작업으로 들어가지.

비커에 차오르는 물과 새겨진 눈금을 관찰하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본래라면 하나의 별을 멸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죄를 한계치까지 부여하면 돼.

그럼 죄를 감당하지 못한 별은 폭발하거든.

별이 소멸하면서 그 별이 품던 죄의 할당량 역시 사라지게 되고.

보통이라면 말이지.

하지만 별은 재탄생했어.

그곳에 충만했던 죄와 함께 말이야.


너를 다시 태어나게 할 별이 필요했으니 어쩔 수 없잖아?

아마 그게 문제였나 봐.

네가 지낼 수 있을 만한 대지가 필요했어.

그래서 별을 재활용한 것뿐인데, 별의 죄까지 사라지지 않고 남게 되었다.


소멸하기 직전인 별의 죄가 얼마나 클지, 상상이나 돼?

만일 그 죄가 곳곳에 퍼진다면 별이 재차 소멸하는 것도 시간문제겠지.

난 고심했어.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지.

그 죄가 흘러 들어갔거든.

마치 죄에 의식이 깃들어 스스로 택한 것처럼 기이한 장면이었지.

이전의 기억을 지닌 인간에게 끌리기라도 했던 걸까.

그래, 바로 너야. 감당 못 할 죄의 간택을 받은 단 하나의 인간.

나는 탄식을 금할 수 없었어.

그야 단 하나의 개체가 별의 죄를 충당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네 심장에 신의 언어를 두른 거야.


그래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어.

단지 우리가 부여한 언어로 한 몸에 억누르고 있기엔, 네 정신이 버틸지 알 수 없었거든.

하지만 놀랍게도 너는 그걸 가능케 했다.

@$*!(#$! 번째 인생의 반복을 감행하면서.


아이러니하게 네 윤회는 죄의 무게를 덜어낼 수 있는 방도가 되었고, 겸사겸사 일석이조라 여겼어.

그렇게나 이기적이었으니 네게 욕을 들어도 쌌지.

단순히 내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만, 자라주고 증명해주면 좋겠다고 여겼어.

하지만 언젠가부터 널 지켜보는 게 즐거워졌던 것 같아.

물론 네가 항상 마지막에 남긴 선택은 날 우울하게 했지만, 그래도 따분하진 않았어.


넌 수많은 생에서 수많은 수를 거듭하고, 경험을 쌓았었지.

어느 때는 물불 안 가리고 모험을 즐기거나, 또 언젠가부터는 뭘 먹고 살지를 중요하게 여기기도 했어.

그래서였을까.

그녀라는 인격이 태어난 건.

널 보며 살고 싶다는 욕망이 커졌던 걸지 몰라.


하지만 놀랍게도 넌 가족을 가지진 않았다.

아마 전생의 경험이 무의식으로 작용했던 걸까.

어느 날은 널 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

그런 감정도 사실 내게서 떨어져 나간 그녀가 간직한 부분이란 걸 안다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 폭소했겠지?


넌 그 소원으로 인해 항상 멸망이었다.

다시 태어나도, 또다시 태어나도.

하지만 계속해서 그곳에 두었어.

언젠가 네가 내게 가져다줄 한 마디를 기대하면서.


끝내 한 별에서 태어난 무한한 세계 때문이었는지,

우리의 프로그램은 붕괴했다.

대전쟁.

무수한 세계가 세계에 간섭하는 오류.

감히 우리조차 손 쓸 도리가 없을 만큼 방대한 세계를, 방관할 수밖에 없었어.


그들은 한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고, 너도 그들을 기억하는 일은 없었어.

너희는 끊임없는 전쟁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우리가 그 세계를 ‘마지막’으로 여겨야 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어.


아쉽다기보단 분했다.

두 가지는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감정이었을지 모르나, 분함이 더 컸던 것 같아.

신이라는 게 그런 감정에 도달할 수 있던 것도 전부 한 남성 덕이었으려나.


그날.

끝내 두고 보지 못하고 네 앞에 나타난 날.

저승의 주민들을 언덕으로 삼고 그 정상에 네가 우뚝 서던 날.

넌 나와 눈을 마주쳤던가.

신기하게도 모든 이들이 검을 내려두고, 각자의 세계로 향하기 시작했더라.


아, 이제 뭐로 먹고살지.


조금 더 이 세계에서 살아보겠다는 말로 들었어.

내가 잘 알아들었었다면 좋겠네.


그렇게 난 다시 오류 덩어리였던 그 세계에서 너를 지켜보았다.

아마 그녀도 이번엔 가망이 있을 거라 봤나 봐.

그래서 더 조바심을 냈던 거겠지.

난 그것도 모르고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그녀에게 떠들고 좋아했는데.

진작에 그녀의 마음을 알았더라면, 네가 아픈 꼴을 겪지 않고 끝났을지 몰라.

아니, 사실 지금에 와선 그 여정마저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 마지막 격투 끝에 넌 나와 함께 섰다.

그때, 너도 나와 같은 날을 떠올렸을까.

한 소년과 일개 신이 마주했던 그때를.


넌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내 바람만을 위해 움직였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어.

아마 내 자신이었던 그녀도 그렇게 철석같이 믿고 있으니까.


하지만 말이야 하루.

내 바람 따위는 뒤로 두고 말이야.

난 네가 자신을 희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세상을 살았으면 하고 바랐어.

그날 넌, 소년이었던 넌 스스로를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으니까.

희생하기만을 위해 태어난 무언가 같아서,


네가 사람이 되어가는 걸 보는 게 행복했어.

그렇게, 넌 사람이 되었다.

그게 가능한 세상을 만들었다.

그러니 그날 하지 못한 이 말은 꼭 하고 싶었어.


부디 마지막까지, 사람이 되길 잘했다고 여기면서 지기를.


작가의말

끝까지 봐주신 여러분은, 제 첫걸음의 소중한 기억입니다.

정말 정말 정말 감사했습니다.

꼭 모두가 본인들이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즐거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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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ilogue. 누군가의 독백 22.01.13 99 2 8쪽
185 #184. 신이란 건 22.01.13 73 2 16쪽
184 #183. 자의식 22.01.12 46 2 14쪽
183 #182. 압도 22.01.11 44 2 13쪽
182 #181. 선택 22.01.10 51 2 14쪽
181 #180. 지상 낙원 22.01.07 42 2 12쪽
180 #179. 남은 쪽 22.01.06 43 2 12쪽
179 #178. 없던 기억 22.01.05 47 2 13쪽
178 #177. 가설 22.01.04 49 2 13쪽
177 #176. 심연 22.01.03 43 2 12쪽
176 #175. 주인 21.12.31 43 2 13쪽
175 #174. 재회 (3) 21.12.30 48 2 13쪽
174 #173. 재회 (2) 21.12.29 42 2 13쪽
173 #172. 재회 21.12.28 48 2 12쪽
172 #171. 인계 21.12.27 48 2 12쪽
171 #170. 다시, 21.12.24 53 2 12쪽
170 #169. 신기루 21.12.23 51 2 13쪽
169 #168. 안식 21.12.22 48 2 13쪽
168 #167. 축제 준비 21.12.21 55 2 13쪽
167 #166. 귀(鬼) 21.12.20 50 2 12쪽
166 #165. 흥미 21.12.17 47 2 12쪽
165 #164. 불가사의 21.12.16 49 2 12쪽
164 #163. 희귀종 21.12.15 45 2 12쪽
163 #162. 자폭벌레 21.12.14 46 2 12쪽
162 #161. 천야 21.12.13 44 2 12쪽
161 #160. 망자 21.12.10 45 2 12쪽
160 #159. 연 21.12.09 48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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