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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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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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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12.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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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71. 인계

DUMMY

자유도시로부터 조금 떨어진 대 황야.


미묘한 흔들림과 함께 지면에서 기던 땅개들이 속속들이 숨어 들어갔다.


쿠웅···


또 한 번의 울림.

근처에 있던 작업반들이 작업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불안해서 작업을 못 하겠네.”


툭 불만을 내는 인부가 하나.


“근처에서 토벌이 있는 모양이야.”


“갑자기 무슨 토벌?”


“왜, 이번에 유해 종으로 지정된 그 뭐냐······ 그 있잖아.”


“트랩 웜이었나.”


“그래,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아.”


대화하던 인부와 근처에서 답하던 인부, 그 주위로 또 다른 불만과 맞장구를 치는 인부까지 이미 일에서 손을 떼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괜히 봉변당하지 말고 이참에 쉬어두자고.”


다들 도구를 내려두고 자리에 앉았다.

저 멀리서 일어나는 모래 먼지 따위에 끌끌 혀를 차기도 한다.


정작 흔들림과 모래 날림을 유발하는 격전지에선 작업 방해 따위를 고려하거나 할 여유는 없었다.


“루돌프!”


지금 들려오는 외침이 그 증거였다.


그렇게 불리던 청년은 외침이 너무 혹독하다고 느끼면서도, 제 몸의 열 배는 되어 보이는 웜의 몸통으로 낙뢰를 발했다.

루돌프의 머리에 난 기린의 뿔이 푸르게 빛나기 시작하면, 몇 차례의 낙뢰가 요란하게 더 울렸다.


“앞으로 몇 마리?!”


웜이 쓰러지는 소음에 목청을 높여도 그녀는 제대로 듣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아무 답도 없이 대차게 다음 웜의 흉측한 입에 기폭을 쳐 먹이고 있었다.


웜은 차마 괴상한 비명을 채 마치기도 전에 몸이 부풀어 터져나갔다.


그 때문에 루돌프는 온몸에 점액질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이걸로 이 주위는 끝.”


구역질을 용케 참아가며 사색이 된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가니, 그녀가 몇 걸음 물러섰다.


“아, 미안. 냄새가···.”


“너무해 나탈리.”


멀리서도 루돌프가 입에 담았던 이름을 부르는 외침이 들려온다.

나탈리는 건조한 바람에 적갈색의 머리를 휘날리며 돌아봤다.


“포르테스 경.”


나탈리를 부르며 달려오던 그가 시무룩해져선 걸음을 늦췄다.


“이제 슬슬 아버지라 불릴 때도 되지 않았니.”


“유해 생물로 지정되자마자 재고 확보 경쟁이라니······ 이대로면 조만간 멸종 위기로 선정되는 것도 한순간이겠어.”


루돌프가 불만을 토로하면서 다가서면 포름 역시 한 발짝 물러났다.


“넌 일단 급한 대로 물이라도 뒤집어써라.”


곁에서 몰래 웃음을 흘리던 나탈리가 루돌프의 시선에 헛기침을 놓았다.


“그쪽은 어떻게 됐어요?”


“우리도 핵은 다 건졌다. 추가로 이빨의 수집도 부탁한다고 도중에 연락이 오는 바람에 좀 늦어졌다.”


“예?”


잠시 당황하던 나탈리가 웜들의 널브러진 몸뚱이가 있는 쪽으로 돌아보면, 포름은 차마 경악조차 내지 못했다.


“나탈리······.”


그의 부름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 금세 쾌활한 웃음으로 무마하려던 그녀였다.


“역시 포르테스 경!”


치켜 올려주려는 대목에서조차 무심코 사기를 깎아버리고 말았다.


“네 호칭을 들으면 하루님의 놀림에도 뭐라 대꾸는 못 하겠구나.”


“에이, 거기서 아저씨 얘기가 왜 나와요.”


어색하게 되묻던 나탈리는 그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잠시 그녀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그럼 곁에서 식을 그려 물을 끼얹고 있던 루돌프도 낌새를 눈치챘다.


다시 그녀가 입을 열었다.


“무슨 소식이라도 있는 건 아니죠?”


그녀와 루돌프의 눈빛에 한껏 들어찬 기대를 읽으면, 포름은 그저 짓궂게 입꼬리만 올리고 있었다.


#


자유도시 번화가.


망치를 두들기려다 빠르게 도약하는 무언가에 대장장이 하나가 고개를 퍼뜩 든다.

앞에서 지켜보던 고객도 뒤를 돌아봐도 이미 사라지고 없다.


“지나갈게요. 죄송합니다.”


뒤늦게 무언가가 지나간 경로에 포름과 나탈리가 무안하게 고개를 숙이며 걸어간다.


“어지간히 신난 모양이네.”


“글쎄요.”


“그게 아니라는 거니?”


“으음······.”


루돌프의 뒤를 보던 나탈리의 눈빛이 알다가도 모르겠다만 전혀 짐작되는 바는 없다.


갑작스레 포름의 얼굴에도 그림자가 졌다.

미리 그의 얼굴을 살핀 나탈리는 괜히 눈치를 봤다.


“아들놈이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어서야······”


“혈육이었다면 달랐을까, 라는 생각을 하시는 건 아니겠죠?”


가볍게 던졌지만 어딘가 묵직하게 오는 말에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런 반응까지도 나탈리는 모두 읽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혈육이어도 읽지 못하는 게 부모 마음이고, 자식 마음이라잖아요.”


포름이 힐긋 쳐다봤다.


“누가 한 말이야?”


“음······ 제가요?”


둘 다 실소를 내비쳤다.


저 멀리서 이미 대기하고 있는 루돌프가 선착장 앞에서 손을 흔들어 댄다.


“어서요!”


나탈리가 괜히 입을 삐죽 내밀었다.


“출항 시간은 알고나 있는 건지.”


불만을 토로하는 것조차 저 녀석은 모를 것이었다.

속으로 그렇게 쏘아붙이던 나탈리는 곧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자신 역시 기대감을 저버릴 순 없었기에.


#


달칵


어두운 방 안을 조용히 방문하던 묵직한 발걸음.

발소리에 맞춰 바닥에 머문 먼지들이 몸을 띄운다.

이따금 새어 들어오는 햇빛에 허공까지 떠오르던 것들은 발광했다.


하루는 가볍기 그지없는 침묵을 뚫고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섰다.


덜컹


창문을 열면 환기된 분위기에 못 버티고 적막이 빠져나갔다.


“너무 멋대로 굴지는 마세요.”


익숙한 목소리에 하루가 뒤돌았다.


“그레이스.”


그녀는 예나 지금이나 이례 없는 유려함을 간직하고 있다.

오랜만에 마주한 탓인가 서 있는 형태도 조금 어색한 것만 같은데, 어쩐지 먼저 말을 건넨 그녀도 볼만 긁적였다.


“뭐, 뭐예요 갑자기 성으로 부르고.”


“너무 오랜만이라, 다짜고짜 이름을 부르기도 좀···. 지아는?”


생각지도 못한 반응은 고사하고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그레이는 다소 낯설어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그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수복되지 않은 것뿐일지 모르겠다.

물론 반사적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 역시 어쩔 수 없었다.


“어디서 저런 아이를 데려온 거예요? 낯설어하기는커녕 이미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친화력 과시 중인데요.”


듣기만 해도 뻔히 그려지는 모습에 차마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나 빨리 올 수 있는 수단이 벌써 개발되다니!


인계에 발을 딛자마자 개발한 당사자가 누구냐느니, 한껏 흥분해선 떠들어댔으니 그 여파가 아직 남아있는 게 틀림없었다.

물론 당시엔 자신도 제대로 답하지 못할 만큼 감탄사를 연발했지만.


말하기가 무섭게 열린 창 너머로 지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루와 그레이는 어색하게 묵시하고 있었다.


“어쨌든 괜히 이것저것 건들지 마시구요.”


“내가 꼭 그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루돌프의 방이라고 했던가.”


“네. 이미 도착했을 때 연락이 들어갔으니까 다들 오고 있을지도요.”


“벌써······.”


그레이가 마지막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지나쳤다.


입맛만 다시던 하루는 다시 방 안을 살폈다.


다소 새로워 보이는 벽지나 물건들.

하지만 이것들은 당연하게도 과거에 봤을 것들이었다.

아마 그녀를 처음 방문했을 때, 그리고 그 이후에도 몇 번.


‘어느 쪽이건 갑작스러운 방문이었나.’


물론 지금도 그레이에겐 별반 다른 형태의 방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책상 위로 슬쩍 손가락을 붙였다.

이내 걷는 경로를 따라 그대로 움직였다.

부드럽다.

그의 성격을 닮지 않은 것들이 곳곳에 보이니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문득 들어온 수첩 하나.


아무리 그래도 열어보는 건 실례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손은 이미 펼치고 있었다.


촤르륵─


딱히 어떤 의도 없이 몇 장을 넘기다 멈췄다.


하루의 입술이 슬쩍 벌어졌다가 닫혔다.

거뭇한 눈동자가 천천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월 ◇일


검은 아저씨가 떠났다.」


“······.”


「○월 △일


나탈리에게 ‘기분 나쁘니까 적당히 해달라고’ 들었다. 아저씨 얘기를 너무 한 것 같다.」


「X월 ○일


포름 아저씨 때문에라도 그만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아저씨는 예전부터 그랬다는데, 언젠가 볼 수 있다는 것만 속에 간직하기로 했다.」


일기장인지 보고서인지 슬슬 알 수 없게 될 즈음 수십 장을 더 넘긴다.


촤릇─


깔끔하게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종이는 뭉텅이로 넘어가 멈췄다.


「△월 ◇일


시험이 공식화되었다는 소식이다. 그만 욕이 튀어나온 탓에 나탈리에게 여지없이 한 소리를 듣고 말았다. 추천제라는 것도 있다는 모양인데, 뭣하면 닥치고 부탁할 생각도 있다. 지인은 많으니 괜찮겠지.」


「△월 ▲일


어제 쓴 내용이 나탈리에게 발각되었다. 젠장. 그 녀석 요새 너무 성격에 가시가 돋은 거 아닌지 모르겠다. 덕분에 아버지에게도 소식이 들어갔는데, 정작 끝까지 쓴소리를 내뱉은 건 나탈리 녀석뿐이다.」


「▼월 ○일


결국 턱걸이로 통과했다. 지원서는 어찌저찌 넣을 수 있는 곳을 찾을 듯하다. 시험 위에 시험이 있는 격인 건 아닌지.

그 사람 때문에 시작한 일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 정작 소식은 전무한 그 사람을 오랜만에 떠올렸다. ······잘 모르겠다.」


한 번에 넘어간 탓에 이쯤 되면 무슨 일인지 종잡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눈을 뗄 수가 없다.


이젠 머릿속으로 그릴 수도 없는 녀석의 모습을 그리고 있자니, 눈앞에 두고 있는 필력과의 괴리감 탓에 쉽사리 겹쳐지지 않는다.


어느새 새겨진 미간의 주름이 사라질 기미도 없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깊어지고 있었다.


덜컹!


갑작스러운 소란에 한 번에 인상이 펴졌다.


“버릇없이 뛰어다닐 나이는 지났어요!”


틀림없이 밑에서 그레이의 측근이라던 레무의 목소리였다.

동시에 계단을 박차고 뛰는 발소리가 요란하게 다가온다.


박진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거치다고 생각할 때쯤 발소리가 멈췄다.


문 앞이었다.


그런 확신과 함께 열려있는 방문 쪽으로 몸을 틀었다.


거친 호흡을 한껏 참고 있던 청년 하나가 숨을 몰아냈다.


“······.”


어째선지 자신을 지그시 쳐다보던 탓에 어떤 말이라도 해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호흡을 진정시키던 청년이 먼저 입 밖으로 냈다.


“남의 일기장은 왜 보고 있는 겁니까.”


역시 일기장이었나.

힐긋 일기장을 보고선 같잖은 깨달음에 젖어 있을 때.

반쯤 뜨고 있던 눈은 시간을 두고 조금씩 커졌다.


하루는 그제야 다시 청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청년의 진중한 표정이 낯설지 않다.

아이치곤 진지하기 그지없던 그때의 얼굴이었다.


#


붉은 달.

과연 그건 달인 걸까.


같잖은 의심을 하고 있을 때 공간을 찢고 나온 자가 그녀의 앞에 섰다.

붉은 달 제복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던 자는, 말없이 손을 바삐 움직인다.


[단장. 다녀왔습니다.]


그녀는 그의 손을 빤히 보면서 알아서 해석하고 있었다.


“수고했어.”


[천야는 사라졌습니다.]


“······천야가?”


그녀가 잠시 창밖에 시선을 두더니 싱긋 웃는다.


[······그가 이곳으로 올 거라 장담하십니까.]


자신의 손짓을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여전히 같은 곳만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가볍게 콧바람을 내던 그가 뒤돌아 가려 할 때,


“올 거야.”


그녀가 던진 말에 멈칫했다.

수화를 건네진 않았다.

잠시 의문을 가진 채 지그시 바라보고 있으면 그녀는 알아서 다음 말을 꺼냈다.


“슬슬 한계일 테니까. 나도, 그자도.”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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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176. 심연 22.01.03 4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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