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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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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13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2.01.03 06:00
조회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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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176. 심연

DUMMY

“그럼 열겠습니다.”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마리는 숨을 가다듬었다.

그녀의 한쪽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이윽고 홍채에 새겨진 무늬가 흘러나오더니 허공에 커다란 테두리를 만들었고,

테두리 내부가 일그러지기 시작하자 원형의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문 너머를 엿보면 명백히 이곳과는 다른 무언가가 비추고 있는 게, 성공한 모양이었다.


마리가 단전에 모으고 있던 힘을 풀고 숨을 한 번에 내쉬었다.


“처음이라 어떻게 될지 몰랐는데, 다행이네요.”


처음이라면 하다못해 그렇다고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하루가 아연실색하게 그녀를 쳐다보던 얼굴을 다시금 게이트로 가져갔다.


게이트가 비추고 있는, 일렁이는 장면이 어딘가 익숙하다.

세상을 붉게 비추는 달.

검은 캡을 눌러쓴 그가 처음 열었던 게이트.

그때 엿봤던 곳과 닮아있다.


“설마 그게 심연이었을 줄이야.”


일찍이 알았다면 이런 고생도 없었을 거라고 지금에야 무의미한 가정을 했다.


한 발짝 게이트 내부로 들이면, 옆에서 괜히 지아가 긴장한 듯 기묘한 음을 흘렸다.

다리 하나만 내부로 향한 하루가 멀쩡한 걸 보곤 안심한 모양이다.


완전히 내부로 진입하기 이전에 하루는 다시금 몸을 홱 돌렸다.

그리곤 유리와 일행들이 있는 방향으로 검지를 척 치켜들었다.


“혹시라도 따라올 생각은 하지 마.”


허를 찔린 듯이 어색한 웃음.


하루는 한 번 더 그들을 노려보다가 완전히 넘어갔다.


일단 시야에 들어오는 건, 포장된 철제 도로, 철제 건물과 네온사인······?


하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아도 이곳으로 넘어온 후에야 하루는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게이트가 완전히 닫힌 걸 확인한 지아도 하루를 따라나섰다.


“심연이라고 다 같은 곳은 아니겠죠?”


“그렇겠지.”


“제발 붉은 달 택배가 가까웠으면 좋겠네요.”


하루도 그녀의 말에 백번 동조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서도 거리에 인기척은 없었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그렇지 않아도 붉은 달빛이 괜스레 기분 나쁘다고 하는데, 더욱 음침해지는 느낌이다.


“저희가 제대로 온 건 맞겠죠?”


“이곳이 심연인 건 확실해. 그 크로우도 바뀐 심연에 대해선 모르니까 확인받을 순 없었지만, 검은 기사들이 열던 게이트 안을 몇 번씩이나 목격했어.”


그렇게 말한 것치곤 불안함만 잇따른다.

여전히 길 한 번 물어볼 누군가도 발견하지 못했다.

누군가는커녕 생명체 하나 없는 듯하다.

혹여 가게 안을 들어가려 해도 문이 닫혀 있거나 비어 있었다.


지아와 하루는 묵묵히 걷는 것만을 고집했다.


“근데 생각보다 아저씨가 태초의 인물이라는 비밀은, 비밀이 아닌 것 같던데요?”


드문드문 침묵을 깨는 건 지아였다.


“뭐, 수명이 그렇게까지 길면 꼬리가 잡히기 마련이니까. 내가 신과 연관되어 있다는 건 모를 거야. 신이라던가, 실은 이 현실들이 후생이라던가, 밝히면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라고. 얘기할 때 별 반응 없던 네가 이상한 거야.”


연신 철제바닥에 굽 소리를 내면서 하루는 답했다.

그런가요, 라던가 별 감탄사도 아닌 비음만 섞어 내기만 하던 지아가 문득 멈춰 섰다.


“아저씨, 아저씨.”


그러다 그렇게 부르니 하루가 뒤돌아봤다.


그녀가 가리키는 골목으로 고개를 빼내면, 누군가 실루엣을 발견하고 모처럼 반가워했다.


“저기.”


하루가 먼저 골목으로 들어가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던 자를 불렀다.


“혹시 이 근처에 붉은 달 택배가 있는지 알 수 있을까?”


질문에 돌연 뒤돈 그가 멀뚱멀뚱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다.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건지, 세계적으로 통용된 언어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면서 다시금 입을 열려고 하던 차에,


“처음이세요?”


그 기사는 대뜸 그렇게 묻는다.


“뭐?”


“여기가 붉은 달이잖아요.”


새삼 간단한 답을 듣고는 하루가 고개를 들었다.

제 양옆에 있는 건물 중 그가 칭한 게 어떤 건지 고민하며 번갈아 보고 있자면,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요.”


대뜸 부정당했다.


그리고 대체 뭐냐고 따지기도 전에 그로부터 괄목할 만한 사실을 전해 듣는다.


“여기가 전부 붉은 기사단이라고요.”


“······예?”


지아마저 황당한 듯 눈썹을 일그러트렸다.


골목에서 나온 지아와 하루가 다시금 주변을 둘러봤다.


붉은 달빛이 서린 대지.

과연, 붉은 달이라 선택한 의미를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지만 터무니없는 규모가 아닌가.


“근데 왜 이렇게 인적이 드물어?”


“아, 그게 지금은 단장님이 따로 지시한 게 있어서······ 어!”


말끝에 붙인 그건 감탄사였을까 강조였을까.

어느 쪽이든 당황하긴 매한가지였다.


“당신들, 손님이군요!”


그럼 대뜸 또 영문 모를 소리를 지껄인다.

이곳에 온 순간부터 이미 뭐가 뭔지 알 수가 없게 되어 정신이 분열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표정이 숨김없이 드러났는지 기사는 면목 없다는 듯 웃었다.


“죄송해요. 단장님이 타지인이 찾아오거든 안내해달라고 웬일로 공지를 내리셨거든요.”


“그런 중요한 걸 잊고 있다뇨.”


지아가 다소 원망하는 투로 내뱉으면 그는 또 사과를 거듭하며 앞장섰다.


“그나저나 이 넓은 도시에 보이는 주민···이랄까, 단원 하나 없다는 건 대체 무슨 지시를 내린 걸까요?”


걷다 말고 속삭여도 차마 하루가 지아에게 해줄 답은 없었다.

짐작도 가지 않는다.

애당초 자신을 초대한다는 발상부터가 이해되지 않는 여자를 무슨 수로 꿰뚫어 볼 수 있을까.


그렇게 한참을 안내에 따라 도달한 곳은 기계 더미를 더덕더덕 붙여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저택이었다.

그건 그것대로 웅장함이 느껴졌지만, 처음엔 건물이라고도 생각지 못했다.


“전 그럼.”


그렇게 기사가 사라지면 둘은 그 자리에 덩그러니 놓였다.


“들어갈까요.”


지아의 말에 맞춰 둘은 동시에 양쪽의 문을 하나씩 잡고 열었다.


끼이─


퍼펑!

펑!


갑작스레 터지는 폭죽과 함께 지아가 흠칫했다.

하루는 반쯤 떠진 눈으로 무미건조하게 제 머리 위로 올라오는 폭죽잔해들을 맞고 있었다.


“이건 대체 무슨─”


하루가 딴지 걸 새도 없이 그녀가 한껏 박수를 내며 등장했다.


“축하축하! 붉은 달 본부의 첫 방문자를 환영해!”


붉은 달의 단장.

잔뜩 고조된 그녀와 달리 옆에서 폭죽을 터뜨렸던 단원들은 무덤덤하게 잔해들만 치워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런 단원들도 단원들이지만, 이 여자는 정말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뭐 하자는 거야.”


“뭐긴. 초대했으니까 환영해준 거지. 자자, 이쪽으로 오라고.”


“예?”


다짜고짜 지아의 손을 붙들고 데려가던 그녀를 따라 하루는 한숨을 뻐억 내쉬면서 나섰다.



여긴 카운터!

여긴 무기창고!

아, 닫혀 있는데 요새로 변환시킬 때 쓰는 제어실이고, 또 여긴─


순간 흘려넘기지 못할 단어를 들은 것 같다.

그녀는 아무 거리낌 없이 회사 내부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어느 기사단에나 있을 법한 요소들부터, 이게 정녕 기사단인가 싶을 구조물까지.

과연 겉보기와 다르지 않다는 걸 체감했다.


“뭐, 처음 맞이한 손님이라 신난 거니까, 이해하세요.”


어느새 옆에 와서 함께 소개를 듣던 부단장이란 녀석은 그렇게 대변했다.


‘정작 그런 너마저 정상은 아닌 것 같다만.’


다루스 영지에서의 첫 대면 때부터 생각했던 건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여기가─ 대망의 사장실!”


“사장실이 아니라 집무실이라고요. 저도 같이 쓰잖아요.”


“이것 봐! 달빛이 가장 잘 드는 곳이야!”


부단장의 말은 일절 신경 쓰지 않는 저 마이웨이.

원래 그런 성격이었는지, 글로리아에서 봤던 모습으로선 차마 알 길이 없을 만도 하다.


그녀가 창문을 활짝 열어 재끼고 바깥으로 상체를 빼냈다.

선선한 고층의 온도를 만끽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 연분홍빛 눈동자에 붉은 만월을 한가득 담았다.


여태 수다스럽던 그녀가 침묵하니 마치 세상에 정적이 온 것만 같다.


셋은 그녀의 정수리에서 이따금 돌아가는 링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지그시 응시하고 있는 하루의 미간이 움찔한다.


방금까지 가장 그녀에게 휘둘리던 지아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다 그녀의 책상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무언가가 한 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검고 칙칙하고, 음흉한, 어쩌면 세상에 그런 장르의 단어들이란 죄다 붙여놓은 것 같은 모형.

보자마자 속이 울렁였다.

머리가 울리는지 가슴이 울리는지, 낯익은지 그리운지 알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울 때,


“그거 알아?”


잠자코 있던 붉은 달의 단장이 입을 뗐다.

그 덕에 지아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익숙함이 주는 곤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곳의 달은 항상 만월이야. 항상 붉고, 항상 같은 자리지.”


“······.”


천야에서도 분명 비슷한 현상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곳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세계만큼은 진짜다.


“저 달이 만들어졌다고?”


“음··· 뭐, 그건 맞는데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아니야.”


창틀에서 훌쩍 내려오던 그녀가 하루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이윽고 얼굴을 코앞까지 들이민다.

이미 시야엔 그녀의 눈동자뿐이라 씩 올라간 입꼬리도 보이지 않는다.


“이 세계의 달도, 달이야.”


여지없이 그녀다운 한 마디다.


“······.”


어이없다면서 넘겨버릴 말이었다.

하지만 하루는 언젠가 태양에 대고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던 자신을 떠올리고 있었다.


“날 부른 이유가 뭐야.”


“너도 슬슬 나하고 같은 의문에 도달했었잖아?”


둘은 서로를 한참 묵시하고 있었다.

묘한 긴장감 속 지아가 식은땀을 흘리면서 좋지 않은 안색으로 지켜본다.


그 와중에 머리를 긁적이던 부단장이 한숨조차 내쉬기 귀찮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데니. D. 헬.”


나른함의 끝을 달리는 말투.

그 안면에 드리운 다크서클이 감정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셋이 동시에 그에게로 고개를 돌리면 일말의 표정도 바뀌지 않고 반복한다.


“우리 제법 알고 지낸 지는 오래된 것 같은데 이름도 모르잖습니까.”


“너희는 이미 날 알고 있잖아.”


하루의 반박에 반응 없던 안면도 움찔한 듯하다.


“단장도, 그런 식으로 말해면 아무도 못 알아듣습니다.”


“흐음. 그는 이미 알아들은 것 같은데?”


어느 쪽이건 제 말에 쉽사리 동의하지 않는 귀찮은 자들뿐이다.

그 사실에 깨달으면 데니는 혀를 차며 시선을 돌렸다.


이번에도 데니를 전혀 신경 쓰지 않던 단장은 오히려 지아에게로 눈동자를 힐긋 돌렸다.

수상할 정도로 지아를 지켜보던 그녀가 자상하게 웃는다.


“뭐, 좋아. 어쨌든 한 사람만 알아들어도 의미 없고. 둘 다 알아줬으면 싶으니까.”


“참고로 저도 뭔 말인지 모르는데.”


데니의 말에 힐끔, 보곤 다시 눈동자를 돌렸다.

부단장의 취급이 너무하다 싶을 만큼, 그녀가 데니에게 주는 관심이 아주 찰나였다.


뒷걸음치면서 하루에게서 떨어져 창가로 다가가던 그녀에게 재차 붉은 빛이 내리쬔다.

머리 바로 위 허공을 맴도는 붉은 고리가 더욱 발광한다.


잠시 입술을 떼던 그녀는 이렇게 소개했다.


“메타트론. 일단 붉은 달의 단장, 하고 있습니다.”


작가의말

2022년 모두가 하시는 일 잘 되길 빌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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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177. 가설 22.01.04 49 2 13쪽
» #176. 심연 22.01.03 44 2 12쪽
176 #175. 주인 21.12.31 43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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