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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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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09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12.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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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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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165. 흥미

DUMMY

“말 잘 썼어요.”


“아무리 봐도 말은 아니지 않나.”


하루의 반박에 지아는 신경도 안 주고 주인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저야 도움을 주셔서 감사하죠.”


그렇게 말하던 마구간의 주인장은 역시 대금을 받은 게 마음에 걸렸는지, 찻잎을 넣은 봉투와 빵을 몇 개 넣은 봉투를 건넸다.

처음엔 손을 내젓던 지아도 빵 내음을 맡고는 마다하지 않았다.

봉투를 품에 안은 지아의 콧노래와 함께 별장에서 나왔다.


“아론씨한테도 답례로 가져다드리는 건 어때요?”


“덤으로 묵을 곳 좀 소개해달라고 해도 괜찮겠네.”


그 말대로 딱히 숙소가 있어 뵈는 공간은 아니다.

평소 같으면 어느덧 해가 지고 있을 터였는데, 저놈의 태양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셋은 곧장 아론의 저택으로 향했다.

길거리를 걷다 어딘가 허전한 느낌에 괜히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그런 기분이 하루뿐만은 아니었는지, 지아와 줄리엣 역시 같은 반응이다.


이내 손바닥을 치며 짤막하게 반응하던 줄리엣이었다.


“축제 준비 소리.”


잠시 하루와 지아도 귀를 기울여 그녀가 말한 소리를 찾았다.

역시 들리지 않는다.


“다들 휴식이라도 하는 걸까요.”


“우리가 모른다뿐이지 그들이 정해놓은 낮과 밤의 개념이 있을지 몰라.”


하루의 말은 확실히 납득가는 말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모든 인원이 잠을 잊고 사는 종족이라도 될 터였다.


어쩐지 그 말을 들은 이후 줄리엣의 발걸음이 조금 더 빨라진 기분이다.


똑똑


이윽고 도달한 아론의 저택 문을 두드렸다.

처음과 같이 그의 답은 늦다.

그래도 한 번 경험했다고 다 같이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자니, 예상대로 안에서부터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연이어 문이 열리면 오늘 가장 많이 보는 푸른 안광이 맞이했다.


“하하, 또 왔네요.”


지아가 머쓱하게 말하면 그는 잠시 벙진 얼굴로 있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내부로 손짓했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났을 터인데, 그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건 틀림없이 같은 하늘 때문이었다.

셋은 오늘 첫 방문 때 앉은 자리 그대로 소파에 앉았다.


지아가 잊고 있던 걸 떠올렸다는 듯 일어서더니, 품에 안고 있던 봉투를 부인에게 내밀었다.


“도움을 받은 보답이에요.”


“뭘 이런걸······”


“그 찻잎은 이 섬에서도 희귀한 종이라고 하더라구요.”


“잘됐네요. 곧 내올 테니 다 같이 마셔요.”


부인과 지아의 화목해 보이는 분위기를 하루는 지그시 보고만 있다.


“참 친화력이 좋은 친구야.”


줄리엣의 말에 금세 수긍했다.

눈치채고 보면 그녀와도 자연스러운 사이가 되어 있었고, 자신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녀석은 만나고 왔습니까.”


아론의 말에 하루는 다시금 지아에게서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떠올리기만 해도 이마에 핏대가 솟지만, 많은 할 말을 삼키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아론은 그의 표정에 실소했다.


“많은 일이 있었겠죠.”


그새 파악한 건가.

단순히 자신이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 뿐인 걸지 모르겠다.


“원체 그런 녀석이었습니다.”


누구보다 형이란 자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그 신빙성이 터무니없다.


“뭐, 한 방 먹이고 왔지만.”


아론이 하루의 말에 잠시 놀란 눈치였다.

아무리 하루라도 그의 오해를 풀고자 덧붙였다.


“물리적인 의미는 아니고.”


“하하, 뭐 그렇다고 해도 그럴만한 짓을 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동생에 대한 물리적인 행사도 이해하다니.

이 얼마나 포용력(?)이 좋은 형인가.

이윽고 디아블을 떠올리곤 그럴 수도 있겠다고 여겨버렸다.


“그보다 디아블도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던데. 당신이 말해주지 않은 요소하고 같은 건가.”


아론은 이번에도 입을 다물었다.

형이고 동생이고 어느 한쪽이라면 들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게 물렀던 것 같다.


하루가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아, 역시 말하기 싫으면 됐어. 나도 억지로 캐내긴 싫으니까.”


아론의 어색하면서도 면목 없다는 웃음이 절로 무안한 기분을 자아낸다.


하루는 창밖을 바라봤다.

역시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없다.


문득 저택을 둘러보다 시계를 찾았다.


“역시 시간 개념은 있었네.”


아론이 하루의 시선을 쫓았다.


“아, 미리 얘기를 드릴 걸 그랬네요. 그사이에 혼란스러운 일이라도······”


“딱히. 하지만 밤과 낮의 구분도 안 되는데, 곤란한 일도 없나?”


“섬에서의 생활은 대충 설렁설렁한 생활이 모토니까요.”


아론이 말에 하루는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다.


“그게 뭐야.”


“일단 구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두긴 했습니다. 광장에 있는 모래시계를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검게 칠해진 부분이 위면 밤, 흰 부분이 위에 있는 동안은 낮입니다.”


“흐음, 그런 게 있었나.”


“모래시계의 모래가 전부 내려오면 자동으로 흑과 백이 바뀌는 식이에요.”


무례한 일일지 모르지만, 생각보다 귀족들은 제대로 생각이란 걸 하며 살아가는구나 싶었다.

긴 세월 축적한 경험과 지혜라는 걸까.


“처음엔 그저 다들 내키는 대로 살았지만요.”


그렇게 중얼거리는 아론의 눈빛이 아득해진다.


“정해진 틀은 사람들의 인식이나 사고 자체를 바로잡아주기도 하지. 이따금 부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줄리엣이 아론의 모습을 지켜보다 문득 꺼낸 말에 그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동의합니다.”


셋이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어느새 부인과 함께 부엌에 있던 지아가 찻잔을 내왔다.

한동안 보이지 않더니 그녀에게 차를 내리는 법이라도 배운 모양이다.


지아가 주전자를 조심스레 기울여 하루 앞에 있는 찻잔에 차를 채웠다.

그러더니 마주 보고 앉아 얼굴만 지그시 응시하고 있다.


하루는 그런 지아를 이상하게 보면서 차를 입술에 적셨다.


진한 향.

하지만 머리가 아플 정도의 향은 아니다.

찻잎 자체의 특성을 고려해 의도적으로 진하게 우린 듯했다.


하루의 입술이 가볍게 올라간다.


“괜찮네.”


그럼 지아가 길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제야 지아는 하루의 옆에 자리하더니 차를 마시지도 않고 향만 한동안 즐겼다.


“그럼 지금은 저녁 시간대라는 건가.”


하루는 다시 방금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습니다.”


“지금 축제 준비는 일단 중지라고 봐도 되겠네.”


“축제 준비에 뭔가 있습니까?”


아론이 의문을 갖고 물으면 하루는 금세 답을 하려다가도 멈췄다.

슬쩍 벌어진 입술을 곧 붙였다.


그런 행동을 관찰하고 있던 지아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처음부터 축제를 꼭 즐겨보고 싶었거든요!”


“아─”


아론은 납득간 얼굴이었다.

대신 답을 내놓은 지아는 힐긋 하루를 쳐다봤다.


하루가 그녀의 시선에 눈치채고 마주 보면 그녀가 여전히 가벼운 미소를 간직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는 씁쓸하게 한쪽 입꼬리만 올렸다.


그녀의 분위기를 읽는 능력이 더 좋아지는 것 같다.

아니 처음부터 눈치는 빨랐던가.


“아마 머잖아 개최될 것 같은데······ 글쎄요. 저도 사실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조금 지체되는 감도 없잖아 있고요.”


“내일 현장에 직접 여쭤볼 테니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예······.”


면목 없단 듯 찻잔만 들이키는 아론이었다.


“혹시 근처에 묵을 수 있는 장소라던가 알려줄 수 있나? 혹시 그것도 비밀이라던가.”


가볍고도 짓궂게 던진 하루의 말에 아론은 그저 씁쓸하게 웃었다.


“뭣하면 여기서 머무셔도 됩니다만.”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 나와 다소 놀랐다.

무심코 대화를 잇지 못하고 그저 눈만 크게 뜨고 그를 보고 있었다.


“정말요?”


“하하, 이런 걸 농담으로 하진 않습니다. 와이프도 마다하진 않을 겁니다.”


“저희야 감사하죠. 축제 거리하고도 멀지 않고.”


“그럼 침실은 미리 정리를 좀 해둘게요. 둘이 쓰기엔 쓸데없이 넓은 저택이라 적적했는데, 잘됐네요.”


부인이 먼저 지아를 향해 싱긋 웃으면, 지아 역시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줄리엣의 흥미는 영 다른 곳에 가 있는 듯했다.


“근처에 상점가라던가 없니?”


아마 그녀에겐 이 저택이 다소 갑갑했을 것이었다.

그게 얼굴에 드러나 있다.

제 의문점을 물어도 답해주지 않는 이만 있어서야, 마녀의 본능이란 것도 제법 억눌려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런 욕망을 상점가를 통해 해소할 계획이었다.


“손님을 매몰차게 대하는 주인은 없겠지.”


내심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아론에 대한 푸념을 던졌다.


“아까 드린 맵은 있나요? 말만으로 설명하긴 힘드니, 이번에도 표시를 해두겠습니다.”


아론의 말에 벌써 들뜬 그녀의 모습에 하루는 콧바람만 냈다.


“그럼 나도 가볍게 바람이나 좀 쐴까.”


“아, 저도요!”


지아가 손을 들면서 벌떡 일어났다.

하루와 줄리엣이 먼저 현관문으로 향하면 뒤따르던 지아가 문득 뒤돌았다.


“혹시 필요한 거 있으시면 사다 드릴게요.”


면목 없다는 듯 손을 내젓는 부인을, 지아는 숙박비 대용이라는 명목 따위로 설득했다.

기어코 부인에게서 장 볼거리가 적힌 쪽지를 얻어낸 후 현관문 밖으로 나섰다.


덜컹


부인이 한동안 그들이 사라진 닫힌 문만 응시한다.


아론이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부인은 그런 그에게 기대어 얕고 길게 숨을 내뺀다.


“우리한테 아이가 있었다면, 그녀처럼 자랄 수 있었을까요.”


그녀처럼이란 말이 어떤 식인지 몰라도 아론은 묵묵히 답했다.


“응.”


답인지 아니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목소리는 낮게 깔렸다.


#


줄리엣은 연금술 가게 앞에서 멈춰섰다.

하루와 지아 역시 그녀를 따라 섰다.


“어떻게 할래?”


“음, 그럼 볼일 먼저 끝낸 사람이 찾아오는 거 어때요?”


줄리엣이 고개를 끄덕이곤 이번엔 하루 쪽을 응시했다.

뒤늦게 하루는 지아를 따라간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루와 지아가 뒤돌아 조금 더 안쪽의 시장가로 향한다.

줄리엣은 그들의 뒷모습을 조금 더 지켜보다 연금술 가게 앞으로 들어섰다.


딸랑


가장 먼저 약재 냄새가 풍겨온다.

맞이하는 주인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게, 안쪽에서 조제를 하고 있던 모양이다.


아랑곳하지 않고 찬찬히 진열대를 살폈다.


플라스크에 담긴 포션류나 책, 아예 소재 자체가 되는 물건들이 보인다.

주로 말리거나 숙성시켜 오래 보관하기 좋은 것들이 위주다.


말이 연금술이지 잡화점인데.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멈춘 곳은 책장 앞이었다.

줄리엣은 슬며시 책장에 꽂힌 책을 손가락으로 훑다가, 눈에 띄는 타이틀을 발견하고 빼냈다.


오컬트 장르.


그만 실소를 내뱉었다.

귀족이 오컬트라니.


첫 장을 넘겨 목차를 살피고 있자니 시선을 빼앗는 문구가 들어온다.


「안식」


“······170페이지, 170페이지······.”


혼잣말을 읊조리며 이윽고 도달한 곳의 첫 구절부터 천천히 읽어나간다.


「이전에 다뤘던 ‘방법’들의 끝엔 반드시 영향 혹은 변화가 있다. 하지만 그 결과들은 우리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식으로든 구별되고 만다. 그 구별된 수많은 성질 중에 우리가 찾아야 할 게 바로 안식이다. ······」


줄리엣의 눈동자가 적막 속에서 움직이길 멈추지 않는다.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으로 몇 번을 반복한다.


“······지고의 존재조차 다다르기까지 고난이었던 한 영역으로······”


무의식적으로 입으로 내용을 흘리고 있을 때,


“누구세요?”


어떤 음성에 줄리엣이 퍼뜩 몸을 틀어 뒤를 바라봤다.

한 손에 플라스크를 들고 헤진 장발을 한 남성이 서 있다.


그의 처져있던 눈매가 줄리엣을 보자마자 꿈틀거렸다.


이내 언젠가 있었던 낯익은 질문이 줄리엣에게 향한다.


“설마, 바깥에서 온 겁니까?”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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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172. 재회 21.12.28 48 2 12쪽
172 #171. 인계 21.12.27 48 2 12쪽
171 #170. 다시, 21.12.24 5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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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168. 안식 21.12.22 47 2 13쪽
168 #167. 축제 준비 21.12.21 55 2 13쪽
167 #166. 귀(鬼) 21.12.20 50 2 12쪽
» #165. 흥미 21.12.17 47 2 12쪽
165 #164. 불가사의 21.12.16 49 2 12쪽
164 #163. 희귀종 21.12.15 4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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