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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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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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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05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12.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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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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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164. 불가사의

DUMMY

드높기도 한 탑이다.

코앞에서 고개를 들어 치켜 올려보면, 절로 긴장하고 말았다.


“탑도 말로 오를 수 있으려나.”


“그럴 리가 없잖아요.”


지아는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는 하루를 뒤로하고 먼저 문을 두드리려 손을 들었다.


끼이─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먼저 열린다.


“기다리기라도 한 건가.”


“여전히 기분 나쁜 녀석이야.”


사라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제멋대로인 놈이라고 여기면서 탑 내부로 들어갔다.


착화음과 함께 조명이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원형의 천장을 비춘다.

곧 사방을 메웠다.


또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리면 그곳에 디아블이 있었다.


드디어.

하루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 디아블은 웃었다.


“탑을 오를 필요가 없어서 안심한 건가요?”


윽.


하루는 질색하며 한 발짝 물러섰다.


“하하, 여전하시네요.”


“이 위로는 장식이냐.”


“예, 뭐. 제 취향인데 문제라도?”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천장은 막혀있다.

혹 비밀스러운 입구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만 딱히 알 바는 아니었다.


한참 그를 보던 줄리엣이 지아에게 속삭였다.


“쟨 또 뭐니?”


“저희가 찾고 있던 단서 제공자요.”


“흐음. 저게······.”


줄리엣은 다시금 주변을 둘러봤다.


공허하다.

딱히 집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로.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테이블 하나만 쓸데없이 수상하다.


하지만 디아블은 테이블 쪽으로 걸어가 슬쩍 앉으라는 손짓을 하고 있다.

셋은 꺼리는 표정을 하면서도 각자의 자리에 안착했다.


디아블이 하루의 맞은편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생각보다 늦으셨네요.”


“이래 봬도 일찍이야.”


도중에 갖가지 발목을 붙잡는 사건들을 떠올렸지만, 어떻게든 반박은 하고 싶었다.

디아블은 미소를 유지한 채 찻잔을 들었다.

그제야 셋의 앞에 뜨거운 김이 오르고 있는 찻잔을 눈치챘다.


“그러고 보니 여진 같은 걸 느꼈는데. 무슨 짓을 하고 오신 건가요?”


디아블의 말에 지아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왜 우리 짓이라고 벌써 확신하는 거예요.”


지아가 게슴츠레 노려보면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 섬에 그런 자연적인 현상이 있을 리 없으니까요.”


셋이 그 답에 눈썹을 꿈틀거린다.

잦지 않다면 이해라도 할 터인데.

있을 리 없다는 단어 선택이 자연스레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귀족 하나를 구했어요.”


“구해요?”


어째선지 그는 실소를 내며 의심하는 투로 되묻는다.


“뭐야, 그 반응은.”


하루가 먼저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그가 한 손을 저었다.


“아, 죄송합니다. 얘기나 한번 들어볼 수 있을까요.”


“······땅속에서 자폭 벌레가 나왔어.”


“자폭 벌레요?”


“그래. 멸종되었을 텐데. 넌 뭐라도 알고 있지?”


하루는 반쯤 확신하며 그에게 물었지만, 그는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잠시 눈동자를 내리깔고 테이블인지 허공인지 모를 것에 초점을 두고 있을 뿐이었다.


“······글쎄요.”


이윽고 싱거운 답을 내놓는다.

진심인지도 알 수 없는 감정이라곤 느껴지지도 않는 투로.


하루는 혀를 찼다.


“어쨌든, 벌레한테 당하기 직전이었던 마구간 주인을 구하고, 벌레의 터를 없앤 거. 그게 전부야.”


“음, 그런 얘기였군요. 뭐, 죽을 만큼의 고통이 잇따를 걸 생각하면, 구했다곤 할 수 있겠네요.”


뭐라는 건지.

하루는 그가 하는 얘기가 뭔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단순히 왜 자신이 이런 얘기를 늘어놓고 있어야 하는지 깨달은 차에, 짜증이 조금씩 오를 뿐이었다.


“그래서, 그날 나타난 붉은 달의 그 기사에 대한 정보는.”


디아블의 슬쩍 올라가던 눈썹이 그날 나타난 부단장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내 묘한 비음을 흘리며 입꼬리를 내렸다.


“딱히 그에 대한 정보를 준다는 약속은 한 기억이 없는데요.”


“?”


하루는 무심코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불량한 투를 내뱉었다.

드물게도 얼굴에 화를 드러내고 있던 하루를 보자마자 지아가 말을 가로챘다.


“여기까지 왔는데 설마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안 하겠죠.”


디아블이 슬쩍 지아를 쳐다보더니 턱을 쓰다듬는다.


“흠. 생각 좀 해보죠. 그러고 보면 이곳에 오면 흥미를 끌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제가 말했었나요? 어때요. 당신의 흥미를 끌만 한 게 있었습니까?”


불편한 짜증을 삼키며 하루가 다리를 꼬고 팔짱을 꼈다.

아무래도 좋은 일을 묻는 척하는 건 심기를 건드릴 의도가 다분하다고 여겨도 좋은 걸까.


“아, 흥미. 척 보니 택배기사단의 발도 닿지 않는 변방에, 웬 영문 모를 축제를 연답시고 시끄럽고, 그만한 경비는 또 어디서 났는지. 움직이지도 않는 태양이나, 멸종했던 녀석들이나. 그런 영문 모를 것들투성이들을 말하는 거라면 아주 많았지.”


돌연 머릿속에 스치는 의문스러운 요소들에 속사포로 내뱉었다.


“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식량이나 기타 물품들은 이 섬에서 충분히 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외부의 재화가 없냐면 그건 아니라는 거네요.”


여유롭게 반응하던 디아블은 돌연 찻잔을 슬쩍 들어 보였다.


“이 섬의 특산물이 찻잎이거든요. 주기적으로 매입하시는 분들이 있을 정도로, 품질과 특성이 괜찮습니다. 물품은 제가 대표로 거래하고 있고요.”


하루가 말을 멈추고 그런 디아블을 빤히 노려봤다.

사람의 반응을 제 유흥거리로나 생각하는 녀석.


어떻게든 반대로 그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다고 생각하던 찰나,


“아, 그러고 보니 네 형이라는 자도 만났던가.”


하루가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면 반격의 서막이 울린다.


“······.”


디아블의 눈매가 날카로워지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사이가 많이 안 좋은 것 같던데. 딱히 남의 가정사를 캐는 취미는 없지만, 그래도 사소한 궁금증 정도는 괜찮잖아. 네 형이 비밀에 부친 걸 넌 말해줄 용의가 있나?”


하루의 입꼬리가 아까보다 확연히 올라가 있다.


둘 사이에 형성된 난기류를 두고 지아는 제 이마를 붙잡았다.

이내 머쓱해진 줄리엣이 다시 한숨을 내쉬는 지아에게 속삭였다.


“단서 제공자 아니었니? 왜들 이래?”


“아··· 자칫 살해당할 뻔했거든요.”


생각보다 훨씬 극적인 답이 튀어나왔는지 줄리엣의 눈동자가 일순간 흔들렸다.

식은땀을 찔끔 흘리던 그녀가 조심스레 둘의 얼굴만 번갈아 봤다.


다시 정색을 풀던 디아블이 숨을 골라내며 찻잔을 들었다.

코를 슬쩍 가져가더니 향을 조용히 들이킨다.


다소 진정된 기색을 보이니 하루가 재미없다는 얼굴을 하고 등받이에 기댔다.

또 먼저 입을 연 건 하루였다.


“내가 뭔가에 흥미를 보인다는 사실이 지금에서야 불편한 모양이지?”


“붉은 달은 심연에 있습니다.”


돌연 예상치도 못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질문에 대한 답도, 연관성이 있는 답도 아니다.


하루의 크게 떠진 눈이 그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얘기를 입에 올린 건지 드러내고 있었다.


하루가 묵묵부답으로 있으면 디아블은 제 입으로 가져가던 찻잔을 멈춰 세웠다.

잠시 곤란한 듯 새겨졌던 미간의 주름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갑자기 뭔 말이야.”


“정말 원하던 거 아니었나요? 본점이 그곳에 있다고 말해준 겁니다.”


“너무 갑작스럽잖아. 믿어야 할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제가 다른 의도를 가졌다고요? 굳이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만. 애초에 전할 계획이었던 것뿐입니다.”


하루는 잠시 입을 다물고 디아블의 눈을 빤히 마주치고 있었다.

지아와 줄리엣이 눈치를 보는 사이, 하루가 의자를 끌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보는 구했다.

이 이상 그의 안면을 볼 필요도 없던 데다, 죽치고 앉아 있다 한들 더 뭔가를 건넬 것 같지도 않다.


하루는 뒤돌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지아와 줄리엣이 서로 시선을 나누다 뒤늦게 일어나 그를 쫓았다.


덜컹,

끼이익─



“············하아아.”


잠깐의 정적 동안 제 발언들을 떠올리니, 그만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디아블이 고개를 숙이고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마지막 하루의 반응.

틀림없이 뭔가 감지한 눈치였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딱히 그의 감이 아니었어도 알아챘을 거야. 나라는 놈이 이런 실수를······.’


하아아아.


더 긴 한숨을 내뺀다.

뒤이어 등받이에 눕듯이 기대어 시선을 천장으로 향했다.


이미 퇴사한 회사의 마지막 의리는 지켰다.

속으로 왜 그녀가 그의 방문을 원하는지 되뇌었지만, 예전부터 알 수 없는 속을 지금이라고 알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단 한 번의 실수가 연쇄작용을 일으키듯 모든 게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쩝. 이미 지난 일 어떡하라고.”


괜스레 입맛만 다시면서 중얼거려도, 제 책임을 묻는 건 방 안에 가득 찬 적막뿐이었다.


#


탑에서 나와 말에 오른 하루가 빤히 태양을 직시했다.


“눈 안 부셔요?”


대뜸 묻는 지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태양의 잔상 때문에 그녀의 머리가 보름달인 것처럼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조용히 찡그린 표정의 하루에게 줄리엣이 다가섰다.


“뭔가 숨기고 있었지?”


줄리엣 역시 이상한 낌새를 느꼈던 모양이다.

아무렴 그 상황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도 이상하리만큼 디아블의 동요가 있던 것도 사실이다.


하루는 팔짱을 끼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흐으으으음─”


묘한 비음을 길게도 흘린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요?”


지아가 물으면 하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관여할지, 이대로 무시하고 내 갈 길 갈지.”


“예?”


지아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쳐다본다.

여전히 고민인지 하루는 머리만 긁적였다.


“이 섬의 비밀이건 뭐건 저 녀석하고 관련이 있는 건 틀림없는데······”


하루가 재차 고개를 들어 탑을 보면, 지아와 줄리엣도 똑같이 고개를 들었다.


“······본래의 나라면 절대 관여하지 않을 테니까.”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그 이후 무슨 말을 내놓을지 몰라도 하루는 지아를 응시했다.


“휘말리는 거라면 자신 있어도, 선택하는 건 역시 힘들어. 둘이 사이좋게 정해보는 건 어때?”


선택권을 넘기면 지아와 줄리엣이 서로를 마주 봤다.

그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웃는다.


“나야 뭐 이 섬에 온 목적이 그거니까. 뭔들 관여해주면 고맙지.”


줄리엣의 답에 지아는 애당초 답은 하나였다는 듯 수긍했다.


그렇게 정해지면 지아는 잠시 환장의 탈것 위에서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아까 디아블이 어물쩍 넘겼던 게 있었죠?”


“뭐야, 알고 있었어?”


하루가 의외라는 투로 말하면 지아는 금세 으쓱해져선 콧바람을 짧게 내뱉었다.


“매번 잘난 듯이 떠들잖아요. 굳이 빼놓은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오.”


“그중에는 분명······ 축제에 관한 것도 있었죠. 전 아무런 의심도 안 했었지만.”


확실히.

수상한 점이라면 수상한 점이었지만, 구태여 언급할 정도로 의심스럽게 보이는 요소는 아니었다.


하지만 단지 축제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에 지아와 줄리엣은 벌써 들뜬 모양이었다.


“불가사의한 존재가 여는 축제는 그만큼 불가사의투성이겠지?!”


이 마녀가 들뜬 초점에 괴리감이 드는 건 이쯤 되면 자연스럽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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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167. 축제 준비 21.12.21 55 2 13쪽
167 #166. 귀(鬼) 21.12.20 50 2 12쪽
166 #165. 흥미 21.12.17 46 2 12쪽
» #164. 불가사의 21.12.16 49 2 12쪽
164 #163. 희귀종 21.12.15 45 2 12쪽
163 #162. 자폭벌레 21.12.14 46 2 12쪽
162 #161. 천야 21.12.13 44 2 12쪽
161 #160. 망자 21.12.10 4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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