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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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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35,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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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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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68. 안식

DUMMY

지아와 줄리엣은 바닥에 떨어진 희디흰 고래 인형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다만 둘의 표정엔 조금씩 차이가 두드러진다.


지아가 당황해선 하루의 앞에 있을 때,


“어떻게 한 거야?”


줄리엣은 거의 확신을 지니고 물었다.


지아의 고개가 이번엔 줄리엣에게로 향한다.

그 탓에 잠시 흠칫한 줄리엣이 머쓱하게 볼을 긁적였다.


그녀는 지아에게도 마찬가지로 ‘안식’에 관한 가설을 전했다.

이젠 가설이라는 단어마저 무색하게 와닿는다.


“딱히 말하지 않으려던 건 아니었어.”


그리고 궁색하게도 줄리엣의 변명이 잇따른다.


“괜찮아요. 그나저나 정말 어떻게 된 거예요? 줄리엣 씨의 말대로 안식···을 찾은 건가?”


하루가 떨어진 고래 인형을 주워 지그시 쳐다봤다.


“나도 몰라. 그냥, 모비딕의 주민이라면 전부 알만한 얘기를 말했던 것뿐이야.”


“그 아이가 모비딕에 살던 건 어떻게 안 거예요?”


“······빛 속으로 사라졌다고 했었지. 모비딕이 생을 마감했을 때 같은 현상이 일어났어. 물론 그 안에 있던 주민들과 함께 생을 마감했지.”


“이미 사라진 주민들이었단 거예요?”


퍼뜩 놀란 지아가 제 양팔을 부여잡았다.


“실컷 그렇다고 말했잖아.”


하루가 별 감흥 없이 말하면 지아는 잠시 하루가 들고 있던 고래 인형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귀신이란 게 무서운 건 아니네요.”


뭔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다.

하지만 지아의 아련한 눈빛만 보면 완전히 이해 못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줄리엣은 조금 허리를 숙여 방금까지 아이가 있던 자리를 살폈다.


완전히 사라졌다.

감쪽같이.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정말 안식에라도 빠진 건가.”


“글쎄.”


“뭐가 계기인 것 같니?”


줄리엣의 질문에 하루는 답할 수 없었다.

아이가 원하던 걸 제공해서?


그게 답인 것은 확실하다.

다만 제공했다는 무언가를 특정하기가 모호하다.

정작 줄리엣이 모른다면 자신으로서도 어쩔 수 없다고, 어째선지 그렇게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셋은 단체로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이 주변을 지나던 다른 이들이 봤다면 다소 당황스러운 광경일지도 모르겠다.


“저기요!”


그때 문득 셋의 고뇌를 깬 건 아이와 함께 있던 남성이었다.

거친 숨을 내몰면서 뛰어와 자신들 앞에 멈춰 섰다.

셋은 그의 호흡이 안정될 때까지 지켜봤다.


“후우. 그 아이, 정말 떠난 겁니까?”


“······뭐야. 본 건가.”


“멀리서 어렴풋이요······. 어떻게 한 겁니까? 생전 부모의 말이라도 전해줬나요? 아니면 아이의 이름이라도 불러줬나요? 그것도 아니면─”


생전이라느니, 이미 그는 자신들의 비밀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무척 다급해 보인다.

아니, 간절하게도 보인다.

아이가 사라진 것보다 또 다른 쪽의 용무를 급하게 여길 정도로.


그럼 지아가 옆에서 코로 가벼운 숨을 내쉬면서 허리에 손을 올렸다.


“진정 좀 하세요.”


그제야 그는 쉬지 않던 입을 멈췄다.


“궁금한 게 많은 건 저희라구요.”


“실례했습니다. 너무 드문 광경에 그만······.”


고개를 숙이던 그는 곧 주변을 둘러봤다.

하나 같이 축제 준비로 정신이 없어 보인다.


“저 말고 다른 목격자는 없나요?”


“보다시피.”


“아······.”


“이제 좀 말해줄 생각이 드니?”


옆에서 줄리엣도 거들었다.

이들의 정체를 알고서부터, 아직 확신할 수 없는 제 가정을 증명하고 싶어 어지간히 갑갑한 모양이었다.


그는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좋아. 그럼 물어볼게. 너희는 이미 죽은 이들이야. 맞지?”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음에도 셋은 다소 놀라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다시 태어난 거야?”


“정확하겐 모르겠습니다. 눈을 떠보면 이곳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알고 있는 분들도 있겠지만······. 방법이 있었다면 아직 이러고 있진 않겠죠.”


“알 만한 사람이 누군지 짐작도 안 가?”


“그건······. 이전에 말해드린 그분 외에는 잘······.”


그분이라면.


하루는 당연하게도 아론을 떠올리고 있었다.

자연스레 지아와 줄리엣의 반응을 살피면 이미 둘 역시 같은 인물을 떠올린 모양이다.


“이젠 제 질문에도 답해주실 수 있나요?”


그의 재촉이 하루의 한숨을 끌어냈다.


“우리도 몰라. 방금은 우연에 불과했어. 지금은 조금··· 짐작 가는 게 없진 않지만.”


누가 봐도 남성은 실망했지만, 애써 표정을 감추려고 하는 듯했다.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그건 이미 무의식에 새겨진 반응이었다.


“당신이 바라는 건, 안식인가?”


질문을 들은 남성의 눈동자가 한 번 흔들린다.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들었을 땐, 남성의 의지가 얼마나 서려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에게서 답이 나오기도 전에 하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맛을 다시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숨을 내뺀다.


“가볼까.”


#



똑똑


근래에 현관문에서 울리는 노크가 벌써 익숙해졌다.

이미 원인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었다.


아론은 이제 딱히 누군지 묻지도 않고 현관문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하루와 그 일행들이 서 있었다.


“축제는 아직···인······”


셋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다, 돌연 자신이 뭘 물어보려고 했는지 잊었다.


아론은 입을 다물고 의중을 최대한 파악하려 애썼다.

아무리 생각해도 좀처럼 그들의 비장함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건지 알 수가 없다.


“무슨 일입니까.”


결국, 단도직입적인 질문밖에 내지 못하면, 돌아오는 것 역시 그만큼 직설적이다.


“아론. 이번에야말로 귀족에 대해 감추고 있는 걸 말해줘야겠어.”


하지만 이번에도 시치미 뗀다는 선택지에는 변함없다.

그렇게 마음먹고 입을 열면,


“그들을 이 섬에 부른 게 당신이야?”


하루의 덧붙인 질문에 다시 입을 다물었다.

마치 시치미 떼지 말라는 식으로 쏘아붙이는 것만 같다.


아론은 그만 실소하고 말았다.


이번만큼은 침묵이나 어영부영 넘긴다는 선택은 무리일 듯하다.


“아닙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의 답이라곤 생각되지 않는, 그런 어조와 억양.

하루가 다음 답을 기다리고 있자니, 아론은 첫 대면과 같이 슬쩍 비켜서면서 안쪽으로 손짓한다.


“들어오시죠.”


이젠 익숙하게 셋은 각자 정해진 자리인 것처럼 소파에 앉았다.


아론이 손깍지를 끼고 앉아 고개를 숙였다.


하아.


한숨은 의심할 여지 없이 아론의 것이었다.

양 엄지로 관자놀이를 빙글빙글 돌리다가 고개를 슬쩍 들었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아이 하나가 사라졌어.”


어딘가 오해의 소지가 있을 법도 한 말이었다만 아론은 곧장 어떤 의미인지 파악한 모양이었다.

조금 놀란 아론의 눈이 커졌다.


“설마.”


쉽사리 믿지 않았다.


“그런 거짓말을 왜 해.”


“음, 그렇네요. ······안식이라.”


그 현상을 뭐라 칭할 수 없어 내놓은 단어였는데, 아론은 어딘가 복잡미묘하면서도 희미한 미소를 간직하고 있었다.


“방법은 아시는 겁니까.”


“몰라서 찾아온 건데.”


금방이라도 장본인을 알려줄 것처럼 불러 앉혀놓곤 아론은 몇 번을 더 망설였다.

하루가 속으로 하품을 삼키기 직전에,


“여러분도 잘 아는 인물입니다.”


대뜸 수수께끼도 아닌 답을 끌어낸다.


잠시 찌푸렸던 하루의 눈썹이 자연스레 펴졌다.


“디아블이냐.”


“이 섬을 처음 발견한 게 녀석이었죠. 아마도.”


“아마도?”


“저 역시······ 귀족이니까요.”


청안귀라면 당연히 귀족, 그런 당연시한 개념을 꺼낸 건 아닐 터였다.

하루와 지아, 줄리엣은 말없이 아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전과 다른 그 눈빛이 왜인지 아프다.

딱히 날카로운 성질도 아닌, 따지자면 반대의 성질을 지닌 것이 더욱 파고든다.

아론은 그걸 이겨내고 겨우 미소를 드러냈다.


“사실 귀족이란 단어도 처음 만들어낸 겁니다. 굳이 나누자면 청안귀같은 이들은 도깨비에 속하니까요. 그렇다고 귀신이라 불리기 싫잖습니까.”


“이 섬에서 태어난 이들은 그렇게 불린다고, 당신은 그렇게 말했지. 이제 좀 알겠네. 뭐, 호칭이 어떻든 알 바는 아니지.”


“어쨌든 제가 다시 깨어났을 때 처음 본 게 녀석이었습니다.”


아론의 분위기가 그때를 떠올리듯 서서히 가라앉는다.


“기뻐하는지, 혼란스러운 건지도 모를 표정으로 말하는 게, ‘미안해 형. 일이 조금 커진 것 같아.’라는 거였습니다. 당시 제겐 수 초 전에 이별한 얼굴이었는데, 왜 그렇게 열불이 터졌는지.”


녀석의 얼굴은 말도 아니었다.

흐느끼고 있던 안면은 이미 눈물이고 콧물이고 젖어 나무랄 때가 아니었다.

지금에 와선 상상도 못 할 녀석의 표정이 그곳에 있었다.

이윽고 자초지종을 파악하기 위해 둘러본 섬 곳곳엔, 혼이 내려앉고 있었다.

감히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수가.


“······그게 디아블이 말한, 커졌다는 일인 건가.”


“무슨 수를 썼는지 짐작도 안 갔습니다. 단지 ‘이 섬 자체가 적합하기 그지없었다.’ 하더군요.”


아론의 이야기를 듣던 줄리엣이 입을 열었다.


“혼을 묶어둘 매개체로 섬 자체를 이용한 것 같은데? 특수한 지맥이라도 품고 있던 건가. 어찌 됐든 제대로 된 소생은 실패했단 거네. 물론 준비된 몸체도 없었는데, 혼이 형태를 갖추고 있는 건 놀랍지만.”


지레짐작이긴 해도 그녀의 말이 그만큼 신빙성 있던 적이 없었다.

지금만큼은 전문가의 견해라고 봐도 무방했다.


“녀석이 어떤 짓을 했건, 아마 혼자 감당할 순 없었던 일일 겁니다. 여태 추궁해도 알려준 적은 없지만요.”


“그거라면··· 대충 짐작 가는 곳이 없진 않아. 그럼 당신들은 그때부터 줄곧 여기에 갇혀 있던 건가?”


“예. 살아있는 녀석을 제외하면요. 저흰 죽을 수조차 없으니까요.”


“과연, 이곳의 특산물이니 뭐니, 디아블이 거래 담당이라 했던 것도 납득가네. 바깥하고 특성이 다른 식물이 생기는 것도 특수한 지맥 때문이라거나.”


“그건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곳에 갇혀 있는 건 지능이 높은 생물뿐만은 아닙니다.”


그제야 하루는 마구간에 있던 희귀종의 말들이나, 그전에 습격한 자폭 벌레 따위를 떠올리고 있었다.

동시에 자연스럽게 품게 된 의문.


“무차별적인 소환은 아니란 건가. 보기 드문 생물만 불러들이고 있나?”


하루의 읊조리는 듯한 말에 지아 역시 떠올린 일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줄리엣씨도 그때 그랬잖아요. 적어도 나는 본 적이 없다고.”


지아가 얘기하는 일을 쉽사리 떠올리지 못한 건지, 줄리엣은 재차 물었다.


“뭘?”


“이곳의 주민이요. 아저씨는 보기 드문 종족이라고 했었죠.”


아.


반응한 건 하루와 줄리엣 둘 다였다.

축제 거리에서도 재차 확인한 바 있었지만, 줄리엣은 역시 주변에 있던 이들 누구도 생소했다.


동시에 반응하던 둘은 지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리둥절하던 지아는 곤란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근데 그 공통점이 안식하고 무슨 연관성이 있어요?”


정작 중요한 지점에선 도루묵이었다.

원점으로 돌아온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암울했다.


“심지어 청안귀는 희귀하다고도 볼 수 없잖니.”


줄리엣이 이 분위기에 더해 재를 뿌린다.


“뭐, 저는 예외로 두죠. 녀석이 목적으로 한 건 저뿐이었으니까요.”


아론이 애써 환기하려 하지만 셋은 여전히 심각했다.

말없이 생각만 열심인 셋 사이에서 아론은 어색하게 찻잔을 들었다.


“디아블은 알고 있지 않을까.”


“알까요? 게다가 알아도 알려주겠어요? 그 형님도 이 모양인데.”


그럴 의도는 없지만, 지아의 말이 아론의 뼈를 때렸다.

찻잔을 들이키다 사레가 들려 한껏 기침하던 아론은, 한없이 심각한 셋의 모습에 그만 실소했다.


이들은 대체 뭔데 정작 당사자들이 포기해가던 것들에 열중하는가.

그러고 보면 축제니 뭐니 처음엔 안식을 노렸던 수많은 행위에도, 어느 순간 목적들은 잊히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몰입했는지마저.


“전생도 잊은 채 살아가고 있었네요.”


아론의 묵직한 목소리에 하루가 고개를 돌렸다.


다시 차로 입술을 홀짝 적시던 아론이 그의 시선에 눈치챘다.

자신이 뭔가 잘못 꺼냈는지 의심할 정도로 노려봐지고 있었다.


이윽고 하루는 아론을 응시하며 이렇게 던졌다.


“그거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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