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조회수 :
27,907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12.29 06:00
조회
41
추천
2
글자
13쪽

#173. 재회 (2)

DUMMY

그레이의 저택 정원.

기지개를 켜던 지아가 막 정문에서 나오던 하루와 눈이 마주쳤다.


“인사는 끝냈어요?”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지아.”


그리고 대뜸 자신을 나지막이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위화감을 느꼈다.


“여기에 남을 생각은 없냐.”


“네?”


“그레이라면 충분히 포용하고도 남을 여자야. 성녀라 인망이나 덕은 보장되어 있고.”


지아가 답도 없이 잠자코 하루를 지켜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나 했더니. ······위험해서요?”


“······.”


“설령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른다고 해도 여기 남는 일은 없어요. 이전에도 이런 적 있지 않았어요?”


확실히.

하루는 그때를 떠올리더니 짧게 콧바람을 내뱉었다.

이 이상 그녀와 이 건에 대해 다뤄도 의미는 없을 것이었다.


그렇게 판단하면 하루는 묵묵히 걸었다.

씩 미소를 짓던 지아도 뒤를 따른다.


물 흐르듯 서로의 모든 행동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수도!


지아는 외쳤다.


신문물이라도 발견한 학자처럼.


다행히 다루스 영지에서부터 수도까지 이어진 편이 생겨 시간을 줄였다.

하지만 하루는 다시 주머니를 뒤적거려 티켓을 꺼냈다.

수도편 티켓이 틀림없다.


선착장에 서서 굉장히 낯설게 수도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곧 당연한 일이라고 스스로 여길 수 있었다.


‘통째로 사라졌었던가.’


그 이후로 수도의 재건축을 목격한 바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반응이다.


“이번엔 아저씨하고 저하고 별반 다를 게 없겠네요.”


지아는 이미 그에 대해 언급한 건을 떠올리고 있던 모양이다.


어딘가 분하단 감정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이전의 왕실은 고사하고 비슷하게 보이는 건물조차 없었다.


왕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상기시켜도 낯설기는 매한가지다.

예상컨대, 보이는 가장 큰 건물이 왕실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새로운 지도자에게 들르는 일은 일단 상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거리마저 달라져 있으니 어디로 먼저 향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여기가 인계가 맞나.”


무심코 중얼거리고 있으면 지아가 옆에서 실실댔다.


“일단 물어보면 되지 않겠어요?”


지아의 말대로 선착장을 내려가기 이전에 선객 하나를 붙잡았다.


“저기······”


그러나 열리던 입은 도로 닫힌다.


“······하루?”


그 선객이 자신을 먼저 알아봤기에.


“하트.”


실례라는 걸 알면서도 아직도 이승에 남아있다는 걸 의심케 했다.

물론 그녀의 나이만큼이나 외적으론 가장 변화가 적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더 마주했을 땐 예전처럼 대할 자신이 있었는데,

무심코 제 심장을 오른손으로 감쌌다.


무의식에서부터 드러나는 감정들이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지고 있다.

동시에 제게 있어 가장 큰 변화가 그녀를 대하기 꺼리는 이유가 되어있었다.


하트의 눈가에 조금 더 자잘한 주름들이 겹겹이 겹쳐지고 있었다.


“또 나만 변하고 당신은 그대로일 줄 알았는데.”


“넌 그대로야.”


“내 나이에 그런 말을 들어도 기쁘게 받아들일 순 없는데.”


하트가 피식하고 내는 웃음에 하루는 무안해졌다.


“당신은 변했네.”


“그런가, 난 잘 모르겠던데.”


“말투도, 외적으로도. 어떻게 그 심장으로 용케 살아있었어.”


제 심장 쪽으로 옮겨가는 하트의 시선을 발견했다.

멈칫했다.

그녀의 눈은 마치 제 속까지 꿰뚫어 볼 것만 같아서.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적어도 주치의였던 그녀에게만큼은 털어놔야 할 일이었을지 모른다.


“한 작자가 심장에 있던 식을 거둬갔어. 새 심장을 이식받았다고 해도 좋아. 아마 심장을 좀먹는 일도 더 없을 거고.”


하트가 다소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조용히 납득간 듯 눈꺼풀을 가라앉혔다.


“필시 당신에게 식을 걸었던 존재라면, 거두는 것 역시 가능하겠지. 설마 누적된 피해까지 사라졌다는 일을 믿긴 힘든데······”


말을 흘리던 그녀가 다시금 하루와 눈을 마주쳤다.

서글서글한 인상으로 가볍게 웃는다.


“······당신이 멀쩡한 걸 보면 믿기 싫어도 믿을밖에.”


“덕분에 술식은 못 다루고, 나이 먹는 몸이 되었지만.”


“그래서 달라 보였던 건가? 불노의 성질이 사라지고 나서야 병이 낫는다니. 아이러니하네.”


서로의 생사를 확신할 수 없던 사이.

어딘가 묘한 관계성에 하루는 가벼운 코웃음을 내었다.


그새 하트는 옆에서 빤히 자신을 바라보던 지아를 발견했다.

그녀의 얼굴을 보니 어쩐지 박물관의 전시품이 된 듯한 느낌이었지만, 그녀를 향해서도 인자한 미소를 보이는 하트였다.


“안녕.”


먼저 인사하면 지아는 그제야 멍하니 있다가 퍼뜩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네가 길동무구나.”


“아마도요?”


“고생이 많겠네.”


하루가 힐긋 노려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쿨하게 농담을 던지는 것도 여전하다.


“하트씨 얘기도 들었어요.”


하트가 의외라는 듯 바라보는 건 둘째치고, 옆에서 하루가 흠칫했다.

혹여 그녀에게 뭔가 이상한 얘기를 꺼내진 않았던가.

차를 좋아하는 양반.

틈만 나면 방 안은 약 냄새로 진동을 한다던가.


“처음으로 아저씨를 구해주신 분이잖아요.”


하루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중에 하트가 호탕하게 웃는다.


“뭐 종전 이전에는 감히 그를 구해낼 사람은 없었을 테니까. 정확하겐 이삭이라는 친구가 먼저 내게 데려오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지.”


지아는 그 이름도 들은 기억이 있었다.

먼저 행방을 묻기도 전에 하트가 입을 열었다.


“지금은······. 음, 자연으로 돌아갔어.”


하루의 동공이 축소되었다.

한껏 흔들리던 눈동자는, 씁쓸하지만 이렇다 할 미련이 없이도 보이는 하트의 얼굴에 떨림을 멈췄다.


“자연으로 돌아갔다뇨?”


“드루이드는 생을 마감했다고 하지 않아. 인격체로서의 지능과 소통을 할 수 없게 될 뿐, 두 번째 생을 그대로 이어가니까.”


먼 숲을 바라보던 하트가 하루를 한 번 쳐다봤다.


“기회가 되면 가봐. 로자릭이라는 청년이었지? 이전에 만들었다고 했던 추모관에 녀석도 있어.”


그러고 보니 그런 걸 만들었다고 했었다.

차마 들르겠다는 약속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지만.


하루는 이전과는 달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트는 그런 반응이 만족스럽다는 듯 있었다.


“어디 가려던 거 아니었어?”


“아.”


그제야 용건을 떠올린 하루와 지아가 동시에 짤막한 반응을 내었다.


길을 물으려 했다는 얘기를 듣고 하트는 또 한참을 웃었다.


차마 대꾸할 말도 없이 있으면, 뒤늦게 그녀가 당연하긴 하다는 말투로 길잡이 노릇을 자처했다.


“왕성에서 살지 않았잖아?”


“진찰실을 옮긴 지는 꽤 됐어. 오래된 터는 도태되기 마련이거든.”


터를 두고 꺼낸 말이 자꾸만 예시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태라는 단어가 새삼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하루는 그녀의 옆모습만 지켜보고 있을 뿐 따로 말을 꺼내진 않았다.


선착장을 내려가는 길마저 없던 길이어서 낯설기 그지없다.

그곳에서 내려온 순간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더욱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새로운 건물, 새롭게 포장된 타일.

새로운 사람들에 새롭게 정착된 법과 구도.


“이곳은 얼마 전에 연 옷가게고, 저긴 예전에 있던 연금술 가게 아가씨가 다시 연 곳.”


하트는 한 보 나아갈 때마다 보이던 건물들의 설명을 빼놓지 않았다.


줄곧 나아가다 하트가 멈춘 곳은 백색의 건물.

그녀를 따라 고개를 들어 건물을 한눈에 담았다.


“여기도 수도로 돌아왔었지.”


그 말에 추측하자니 생각나는 거라곤 한 군데뿐이었다.


“물론 본관은 여전히 자유도시지만.”


하트가 덧붙인 덕에 이젠 확신했다.


“한 번 들렀다 가실래요?”


지아의 말에 돌연 솟았던 의문은, 유리가 묘하게 잠잠하다는 것이었다.

이 묘한 정적이 괜스레 찜찜했지만, 하루는 건물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함께 나란히 있던 하트와 지아만 마주 보며 어깨를 으쓱인다.


조금 더 걷던 중에 하트는 다시금 무언가를 가리켰다.


“아, 여긴 들르는 게 어때.”


드물게 그녀가 추천한 곳은 콜로사이니.

하루가 빤히 간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목울대를 꿀렁였다.

언젠가 맛봤던 그의 음식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는지 혀가 꿈틀대 참을 수가 없다.


이렇게만 표현한다면 음식에 사족을 못 쓰는 지아와 같은 급이라고 의심받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셰프가 손수 만든 녀석이라면 그런 일은 아무렴 좋았다.


실제로 타 세계를 전전하면서 그의 음식에 비교할 때가 많기도 했다.


“여기가······!”


얼마나 비교를 했는지는 지금 눈을 빛내는 지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딱히 내가 추천하지 않아도 됐으려나.”


둘을 보던 하트가 실소를 냈다.


식당으로 걸음을 옮기던 하루는 멈춰 서더니 잠시 배를 쓰다듬었다.


“식후긴 하다만.”


“뭐 어때요. 한 끼 더 하면 되죠.”


“포장도 가능하니까 싸가는 건?”


그런 말을 듣자마자 하루는 망설일 시간도 없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몇 분─”


손님을 받기 위해 나온 종업원 하나가 하트를 보고 한 번, 그리고 하루를 보곤 완전히 굳었다.

하루도 그런 그를 게슴츠레 노려봤다.

어디선가 본 이목구비다 싶으면, 셰프의 제자 중 하나였다.


“아앗!”


뭐라 답하기도 전에 그가 먼저 감탄사를 내뱉었다.


“뭐하는 거야! 손님을 세워두고···!”


주방 쪽에서 고개를 내빼던 제자 중 하나도 제 눈을 의심하더니 묘한 괴성과 함께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뭔가 요란하더니 곧 반가운 얼굴이 나왔다.


“셰프.”


이제껏 하루가 맞이한 때 중 가장 반갑게 맞이한 얼굴이었을지 모른다.


“이게 누구야!”


셰프와 반갑게 어깨를 감싸며 인사를 나눴다.


“오랜만이네.”


반말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셰프는 그를 발부터 머리끝까지 훑어보더니 다시 반갑게 웃었다.


“어떻게 된 거야,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더니.”


“정말 그리웠어, 이 냄새.”


가게 안에 떠도는 냄새를 한껏 만끽하던 하루가 수차례 입맛을 다셨다.

그럼 호탕하게 웃던 셰프가 그의 등을 툭 쳤다.


“은인은 언제나 환영이야. 모처럼이니까 먹고 갈래?”


“아, 미안하지만 오늘은 포장이야.”


“그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오랜만에 얼굴이라도 봤으니 만족할게. 크게 찾는 게 없으면 신메뉴 위주로 어때. 신메뉴라곤 해도 네가 없는 동안 생긴 요리들이 산더미지만.”


“그럼 제가 골라도 될까요?”


이때다 싶어 치고 들어온 지아가 메뉴판을 훑었다.

한참 고민하는 모습을 보던 셰프는,


“마음대로 골라봐. 입은 은혜가 있는데, 서비스야.”


차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내놓았다.


홱 돌아보던 지아가 이제껏 없던 밝기로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차마 제안한 당사자도 식은땀을 흘리고 있자니, 감사하게도 지아가 먼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아쉬운 듯,


“정 그러시면 드링크정도는 받을게요.”


라며 툭 놓았다.

그런 발언들이 셰프의 마음에 쏙 들었던 모양이다.

통쾌하게 웃어대는 옆으로 하루만 진땀을 뺐다.


“돈은 내가 내는 건데.”


하루의 중얼거림은 들은 채도 않고, 지아가 메뉴를 하나씩 부르면 셰프의 제자가 옆에서 옮겨적기 시작했다.


차라리 호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나았겠다 싶을 만큼 입이 쉬질 않는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보따리를 한가득 손에 넣었다.


딸랑─


“다음엔 한 턱 내게 해달라고. 그때의 보상도 못 했으니까.”


가게 앞까지 마중 나오면서 건넨 셰프의 말이 어딘가 적적하다.

하루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아가 한없이 해맑게 양손에 보따리를 들고 흔들면 셰프도 같이 손을 흔들어 마중했다.


“서로 잘 맞네.”


“맞아요! 셰프님 정말 좋으신 분이에요.”


“음식을 준다고 다 좋은 분이라는 얄팍한 인식은 벗도록 하자.”


둘의 만담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하트의 눈앞으로 돌연 도시락 하나가 등장했다.


“거리 구경시켜주신 보답 겸 선물이에요!”


지아가 보따리에서 꺼낸 하나.

얼 타던 하트는 소소한 미소와 함께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산 거라고.”

“아저씨하고 저 사이에 네 거, 내 거가 어딨어요.”


여전히 끊이지 않고 다투는 둘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트가 홀홀거리며 웃는다.

그 탓에 입김이 뻐억 내쉬어졌다.


“그러고 보니 이제 여긴 겨울이구나.”


희디흰 겨울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도시락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따스했다.


작가의말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감사합니다 :) 22.01.13 71 0 -
공지 업로드 시간 변경 21.10.24 29 0 -
공지 40화 부재를 이제 확인했습니다 21.07.01 128 0 -
186 #Epilogue. 누군가의 독백 22.01.13 98 2 8쪽
185 #184. 신이란 건 22.01.13 73 2 16쪽
184 #183. 자의식 22.01.12 45 2 14쪽
183 #182. 압도 22.01.11 44 2 13쪽
182 #181. 선택 22.01.10 51 2 14쪽
181 #180. 지상 낙원 22.01.07 42 2 12쪽
180 #179. 남은 쪽 22.01.06 43 2 12쪽
179 #178. 없던 기억 22.01.05 47 2 13쪽
178 #177. 가설 22.01.04 49 2 13쪽
177 #176. 심연 22.01.03 43 2 12쪽
176 #175. 주인 21.12.31 43 2 13쪽
175 #174. 재회 (3) 21.12.30 48 2 13쪽
» #173. 재회 (2) 21.12.29 42 2 13쪽
173 #172. 재회 21.12.28 48 2 12쪽
172 #171. 인계 21.12.27 47 2 12쪽
171 #170. 다시, 21.12.24 53 2 12쪽
170 #169. 신기루 21.12.23 51 2 13쪽
169 #168. 안식 21.12.22 47 2 13쪽
168 #167. 축제 준비 21.12.21 55 2 13쪽
167 #166. 귀(鬼) 21.12.20 50 2 12쪽
166 #165. 흥미 21.12.17 46 2 12쪽
165 #164. 불가사의 21.12.16 49 2 12쪽
164 #163. 희귀종 21.12.15 45 2 12쪽
163 #162. 자폭벌레 21.12.14 46 2 12쪽
162 #161. 천야 21.12.13 44 2 12쪽
161 #160. 망자 21.12.10 45 2 12쪽
160 #159. 연 21.12.09 48 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