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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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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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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2.01.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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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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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180. 지상 낙원

DUMMY

“대체 이게 무슨 봉변이야. 여긴 또 어디고.”


급격하게 진행되는 상황과 시시때때로 변하는 장소에 하루의 목소리는 맥이 없었다.


포탈은 닫혔다.

재차 돌아갈 방법은 고사하고 이제 그 작자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하루는 제 머리를 헤집어 놓았다.

그러다 문득 떠올린 장면에 메타트론을 노려봤다.


“그때 그 작자가 거기서 나올 거라고 예상했었지?”


흠칫하던 메타트론이 식은땀을 흘리며 어색하게 미소를 흘리는 게,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나저나 아까 여신의 손목에 둘려있던 룬 발견했어?”


이제야 놀랍지도 않은 일인지라 급하게 화제를 돌리던 그녀에게 응해줬다.


“그게 왜.”


기억을 더듬던 하루가 툭 던졌다.


“내가 봤을 땐, 거기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아. 본래라면 그 작자들은 직접적인 관여는 못 한다고 했지?”


“둘로 나뉘었으니까. 나도 들은 말이지만.”


“그래서 그 팔찌를 의심한 거야. 누군가의 공격에 접촉이 있거나, 접촉할 때마다 반응했어. 결정타로 내 말에 적잖이 놀란 것 같단 말이지. 뭐라 적힌 건진 모르겠지만─”


“저도요.”


그때 끼어든 게 지아였다.


“거기서도 모형을 처음 봤을 때의 비슷한 감정을 느꼈어요.”


지아의 이야기를 듣던 메타트론이 씩 웃었다.

반면 하루는 조금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었다.


“그게 그 작자라고?”


“이쯤 되면 정말 여신이 말하던 ‘멸망’이란 게 누굴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둘 다라던가.”


하루의 맥없는 말에 메타트론이 번뜩인 듯 답했다.


“그거네! 왜 그 작자를 손에 넣고도 지아를 손에 넣으려는지 모르겠는데, 그 여자가 의뢰품이 택배로 배송도 되기 전에 빼돌리려 한 건 사실이고. 거래는 결렬이야!”


“여기까지 와서 그런 걸 신경 쓰는 거냐.”


“밥벌이는 중요하다고! 내 밑으로 몇 명의 식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다소 손해는 있겠지만, 이 정도면 녀석들도 이해해주겠지?”


“괜찮은 거예요?”


지아마저 쓸데없이 동요하고 있다.

그럼 또 친절하게도 메타트론은 그녀의 말에 안심을 주는 답을 내놓았다.


“뭐, 택배업체엔 생각보다 흔히 있는 일이야. 의뢰자가 의뢰한 물품을 기사가 손에 넣기 직전에 빼돌리곤, 없는 의뢰라면서 발뺌하는······.”


메타트론이 그런 작자들과 여신을 비교하면서도 스스로 어이가 없었는지 코웃음을 쳤다.

혀를 차고 발을 구르는 등 괘씸하다는 듯한 반응은 전부 보였다.


“악질이긴 한데······ 그래서 결국 제가 뭔데요?”


지아가 무지성 공감을 하던 중에 중요한 요건을 떠올렸다.

그제야 하루와 메타트론도 집무실이 날아가기 전 그녀가 던졌던 질문을 떠올렸던 모양이다.


잠시 지아를 빤히 바라보던 둘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니까, 멸망으로 착각할 만한 무언가라고.”


메타트론이 그렇게 내놓으면서 지아를 바라보는데 지아는 고개만 갸웃거렸다.

이내 하루마저 메타트론의 시선을 쫓아 자신을 응시하면, 그녀가 의심의 눈초리로 검지를 들고 스스로를 가리켰다.


“저요?!”


“정확하겐 망각의 용.”


그녀가 처음으로 그 단어를 꺼냈다.

하루가 하던 기억 얘기를 듣고서, 마음 깊숙이 의심의 끄트머리만 잡고 있던 존재를 끌어낸 것이다.


생각보다 듣기 힘든 단어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전 세계의 종족들이 알고 있을지도 모를, 세계급의 동화 같은 이야기.


전설이나 신화보다도 미확인 생명체에 가까웠을 것이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싹트면서 일종의 썰이 생기기까지 했다.

단순히 웬만한 세계에 모르는 이들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생각보다 여론은 존재한다는 것에 몰렸다.


“에이, 무슨 미확인 생명체에요.”


“그럴 수 있어. 과장해서 말하면, 현재 생성되어있는 세계는 우주만큼이나 넓다는 게 WSO(세계학자기구)의 공식 입장이니까. 그만한 생물이 있어도 이상하진 않지. 그보다, 네가 정말 망각의 용이라면 자라의 예상도 맞아떨어져.”


“자라씨가 무슨 말을 했는데요?”


“역할을 지닌 용.”


의심보다 이쯤 되면 여태 겪었던 모든 이야기가 그녀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듯 조립되고 맞춰진다.


“제 역할이 망각이라고요?”


“망각을 시키는 일. 생각해봐. 네가 매번 의심했던 이상 현상들, 너 스스로도 의심시켰던 그런 현상들도.”


하루가 재차 지아에게 말하면, 지아는 지그시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그건 망각이라기엔 너무나 비대한 능력이지만, 그렇다고 그 개념에서 벗어나는 모습들도 아니었다.


모든 게 자신을 그렇다고 가리키고 있다.


지아는 제 양 손바닥을 펼치고 바라봤다.

마치 거기에 어떤 힘이라도 작용할 것처럼.


하루는 혼란스러워하는 지아를 두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이곳은 어디기에 이토록 푸근한가.

따스한가.


푸른 잔디와 꽃밭이 깔린 언덕의 정상.

그곳에 서서 보는 광활한 세상엔, 그저 그렇게 ‘아름다움’이라 정의되는 것들만이 끝없었다.

이곳이 바로 에덴이었다.


속으로 그런 감상을 늘어놓고 있자니, 멀리서 후광을 받으며 걸어오는 그림자를 발견했다.

점차 다가오는 마르고 큰 실루엣은 점차 뚜렷해지더니 익숙한 얼굴을 드러냈다.


“발터?!”


지아가 그 말에 퍼뜩 놀랐다.

이윽고 그의 시선을 쫓았지만, 모르는 얼굴이다.

하지만 분명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발터 로자릭.”


지아가 나지막이 입에 담으면, 그는 하루의 앞까지 다가와 그녀를 내려다 봤다.

하루 그리고 메타트론을 차례로 눈에 담는다.


“정말 왔군.”


그 말의 의미를 유일하게 알고 있던 메타트론만이 또 혼자 민망하게 웃고 있었다.

발터도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지그시 눌렀다.


“이 여자가 찾아왔을 땐 이런 미친 자도 있는 건가 싶었는데······. 여행을 하는 동안 믿음과 신뢰라는 것만 거듭 쌓지 않았어도 무시했을 걸세.”


“이번에도 네 짓이냐.”


하루의 추궁이 있기 전에 메타트론은 허리춤에 척 손을 올렸다.


“이 남자는 원래 여기 있었어!”


의기양양하게 말한다는 게 고작 그런 주장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녀 덕에 하루는 이 장소로 관심의 초점을 바꿨다.


발터가 이곳에 있었기에 비로소 그녀가 이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본래 이 장소는 심연이 없던 장소라는 게 되었다.


“여긴 뭐지.”


하루가 중얼거리니, 발터는 특유의 중후한 미소와 함께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고선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에덴.”


잠시나마 농담으로 속에서 중얼거리던 단어를 그의 입에서 들었을 땐 아무리 하루라도 실소를 냈다.

발터의 반응이 농담이 아니라고 확인하면 하루는 다시 정색했다.


지상 낙원.

하루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개념으로 에덴을 떠올려봤지만, 본래의 지식에 맞는 장소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말은 낙원이지, 실제론 처형장이나 다름없다고 생각되네만.”


“으아, 갑작스레 흉흉한 단어가 튀어나왔어요.”


질색하는 지아에게 발터는 부가적인 설명을 했다.


“비교하자면 그렇다는 거야. 이 세계는 아무래도, 신을 없애기 위한 장소인 것 같으니까.”


“뭐?”


갑자기 터무니없는 말을 들었다는 반응으로 하루가 노려봤다.

발터는 그의 뒤쪽으로 시선을 옮기더니 그를 지나쳐 걸어갔다.


이내 멀뚱멀뚱 제 행동을 보고 있는 일행들에게 고갯짓한다.


“잠시 따라오겠나.”


셋은 영문도 모른 채 그의 뒤를 따랐다.


언덕을 조금 더 올라 보이는 나무 한 그루.


발터가 그 옆에 섰다.

그리곤 조심스레 나무 기둥에 손바닥을 올리더니 다시금 하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하루가 의문을 가지면서 그에게로 다가갔다.

자세히 보니 나무 기둥에 무언가가 기록되어 있는 것 같다.


하루와 일행들은 천천히 문자를 읽어나갔다.

점차 그의 미간이 좁혀진다.


「놀라운 변화다. 이제껏 이런 적은 없었다. 이 세계가 결말을 맞이했을 땐, 그 어떤 생명도 남지 않았을 터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만들어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게 무슨 말이죠? 신이 쓴 걸까요?”


지아가 의문을 달고 있으면 메타트론은 조금 더 읽어보자며 재촉을 금했다.


「황폐한 대지였던 땅엔 푸른 잔디가 끊이질 않았고, 한 송이 꽃은 따스한 바람에 무한한 번식을 태워 보냈다. 이곳에 내 은총을 내리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지만, 감히 그런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이곳은 그야말로 신의 은총 따위가 아닌, 오로지 희망만으로 일궈졌다. 내 손길이 닿는 순간 이 세계는 그 의미를 상실할 것이었다.

그래서 일개 신이 아닌, 기록하는 자의 역할로서 이 기쁨을 기록하려 한다.


그에게서부터 시작된 변화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처음으로 그가 타에게 관심을 보인 날이자, 처음으로 내 제안에 응한 날. 그건 이레귤러를 만들어내기엔 충분한 조건이다.

나 자신이 둘로 나뉜 이후로 처음 맞는 안심감이다. 모든 세계를 천천히 둘러보길 잘했다. 이런 땅을 발견한 건 기적이다. 그래서 조금 더 욕심을 부려 에덴이라 가명을 지었다. 이곳은 우리가 사라지기에 충분한 장소라고 판단했다. 우리가 사라져도 좋다는, 우리에게 안식을 주기에 적합하기 그지없는 신의 손길이 머물지 않은 증거. 물론 또 하나의 나는 나만의 바람이었다면서 반박할지 모르겠다만.


그래서 언젠가 그와 함께 이곳으로 올 동료들에겐, 언젠가 내가 그에게 물었던 것과 같은 질문을 해줬으면 한다. 세계의 끝에서 매번 반복했던 질문을.


최근 택배기사를 시작한 그가 언젠가 내가 바라는 것을 전해다 주길 바라면서.

마지막으로 정정하고 싶다. 칠십팔조 삼천 팔백구십억 째의 실패가 아닌, 기적으로서.」


하루와 지아는 말문을 잃었다.

서로 기록을 보는 동안 숙이고 있던 허리를 폈다.

곧게 펴곤 뒤돌아 드넓은 평야를 내려다본다.


이곳이 정녕 제 기억 속 황야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언제 이런 걸 적은 거지?”


“아마 종전 직후 아니었을까. 자세히는 몰라도 그 작자가 분열하기 시작한 때도 비슷한 시기였을 것 같은데.”


기록에서 눈을 막 떼던 메타트론이 답했다.


하루는 발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여길 어떻게 발견한 거야?”


발터가 머리를 긁적였다.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여긴 언젠가 그대가 도착했어야 할 장소 같네. 그날, 거기서 먼 여행에 나선 건 그대와 나, 둘뿐인 것 같네만······.”


“뭐야. 이미 만들어져있던 길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네만···. 아니, 혹시 모르지. 이 기록에 따르면 언젠가 도달할 예정 아니었겠나? 확실한 건 나로선 도달할 수 없던 길이었을 거라는 점일세.”


발터는 저도 모르게 드레이코를 떠올렸다.

그 외에도 자신을 나락에서 끌어올린 수많은 인연을.

그 초기엔 분명······ 하루, 그도 있었다.


발터는 하루를 응시했다.


“에덴으로 향하는 길을 타기 위한 트리거라도 존재했다는 건가.”


하루는 발터로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꺼내고 있었다.


모르겠다.

그 작자가 떨어진 날, 당시엔 귓등으로 흘리던 것들마저 지금에야 수상하고 의심스러운 것들뿐이다.

그날 자신을 보던 그 작자의 눈빛, 제 앞에서 사라지면서 하던 그 작자의 한 마디마저.


─네가 여태까지 내린 선택과 지나쳐 온 과정들은 모두······


“이번에도 같은 결말을 맞을 거라 두려워했던 거야?”


답해주는 자 없는 질문이 허공에서 흩어진다.

그때 사라진 언어로 어떤 말을 했는지 좀처럼 예상할 수가 없다.

다만 그건 틀림없이 우려의 목소리였다.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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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 지상 낙원 22.01.07 43 2 12쪽
180 #179. 남은 쪽 22.01.06 4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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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177. 가설 22.01.04 50 2 13쪽
177 #176. 심연 22.01.03 44 2 12쪽
176 #175. 주인 21.12.31 43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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