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조회수 :
27,914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12.30 06:00
조회
48
추천
2
글자
13쪽

#174. 재회 (3)

DUMMY

“설마 정문 위치까지 옮겨버릴 줄이야.”


하루가 불평하는 동안 하트는 지아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그를 잘 부탁해.”


지아는 그녀가 그런 염려를 내놓는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듯했다.

훨씬 많은 세월을 보내왔다거나 그가 겪은 고난은 문제가 아니었다.

단순히 자신이 그의 등을 보면서 늘 하던 생각을, 그녀도 하고 있던 게 분명했다.

그 사실을 떠올리던 지아는 싱긋 웃었다.


“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그녀의 답을 듣곤 안심하면서 하루에게도 안녕을 고한다.


“살아서 보자고.”


자신에게도, 그에게도 할 수 있는 최선의 한 마디를 콕 집어서 내놓으면 그는 실소한다.


“고마웠어.”


누가 누구에게 고맙다고 하는 건지.

슬쩍 미간을 좁히며 웃던 하트는 그들이 떠나는 뒷모습을 마중했다.


정문을 지나 다리 위를 걷던 하루가, 이동수단을 구하지 않은 데에 후회하려 할 즈음.

우뚝 섰다.

뒤에서 지켜보던 하트도 의문을 띄었는데, 아마 앞서 둘이 본 것과 같은 걸 발견하고 이해했을 것이다.


다리 끝에 세워둔 마차에 기대 세월 가는 줄 모르고 허공만 응시하는 여성.


흰색 롱코트에 흰색 머리칼.

이전과 다른 단발이라 착각할 뻔도 했지만, 그 고양이 귀에 달린 장식은 달리 없었다.


짤랑─


그들의 인기척을 눈치채고 그녀의 귀가 반응한다.


“아, 이제 와? 얼마나 기다렸는데.”


언제부터의 기다림을 지칭하는 건지 한참 생각해도 무의미하다 여겼다.

참으로 그녀다운 재회의 한 마디었다.


“유리.”


그렇게 중얼거린 건 하루도 아니고 하트도 아닌 지아였다.

의문이 새겨진 얼굴을 한 유리와 하루가 고개를 돌렸다.


지아는 빤히 유리를 응시하고 있다.


그녀로선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하루의 이야기 속에 등장한 유리라는 인물이, 제 눈앞에 있다면 그런 모습이었을 터라고 몇 번씩이나 그려봤다.


“언제 봤던가?”


그럴 리가 없다고 여기면서도 묻는 유리를 향해 지아는 고개를 절레 젓는다.

마찬가지로 지아와 마주 보며 잠시 멍하던 유리는 싱겁게 웃었다.


“역시 그렇지?”


이번엔 둘을 번갈아 보던 하루가 말을 건넸다.


“어쩐지 잠잠하다 했더니.”


“설마 로자릭의 영지까지 걸어갈 참이었어?”


심지어 목적지까지 알고 있어서야 두손 두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맞는 이 기분을 뭐라 형용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아쉽던 차에 온 기회를 걷어찰 만큼 어리석진 않다.


하루는 그녀를 마주한 순간 이미 제 의견을 반쯤 내려두었다.

지아는 천천히 마차로 향하는 하루를 따라 올랐다.


마차는 덜그럭거리며 그렇게 수도에서 완전히 빠져 나왔다.


“얼추 전해 들은 게 있어서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 그때를 떠올리면 확실히 다른 사람 같네.”


“정보의 출처는 블라드인가.”


줄리엣의 여관에 묵었을 때 그 앞에서 이런저런 떠드는 게 아니었다.

자신에게 거처를 마련해줬다고 디아블이 완전히 방심한 탓이었다.


“그것도 그건데, 이전에 투움한테도 사실 소식을 들었어.”


“투움······?”


“솔라스에 들렀다고 했거든. 그때 무용담을 전해 들었나 봐.”


“무용담은 무슨······.”


유리가 뒤돌아 그렇게 말을 흘리는 하루를 힐끔 쳐다봤다.

옆에 있던 지아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더니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 점은 안 바뀐 것 같네.”


하루가 유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다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멋대로 떠났다고 화라도 낼 줄 알았는데.”


“화는 무슨. 우리 모두 너에게 구해진 거나 다름없어.”


“내가 없었어도······ 아니, 내가 없었다면······.”


도중에 쓸데없다고 판단한 이야기를 꺼내다 말고 입을 텁 다물었다.

불편한 듯한 숨을 내뱉으면서 하루는 재차 허공에 초점을 뒀다.

어느새 유리는 그런 그를 다시 돌아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그 머리······.”


하루가 분위기 전환 겸 꺼낸 이야기에 유리는 다행히도 올라줬다.


“아, 이거? 별거 없어. 이런 스타일도 괜찮으려나 싶어서. 어때?”


“음, 나쁘지 않네.”


“뭐야 반응이 싱겁네. 네가 장발이 더 괜찮다고 하면 기르고.”


“······.”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돌렸을 땐 그녀는 특유의 짓궂은 웃음을 선보이고 있었다.

뭐가 하고 싶은 건지, 통 알 수 없는 여자다.

그러다가도 애초에 지녔을 고양이들의 특성을 떠올리곤 혼자 이해해버렸다.

그런 얘기를 꺼냈다간 또 고양이가 아니라면서 발끈할지도 모를 일이다만.


“그나저나 친구 이야기 좀 해줘 봐. 오랫동안 안 봤으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네.”


멍하니 있던 지아가 뒤늦게야 제 얘기인 줄 알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하루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짓을 보내도, 한 번 해보라는 고갯짓만 까딱 올 뿐이다.

잠시 우물쭈물하던 그녀가 천천히 입을 뗐다.


처음에 어설프게 떼던 운은, 틈틈이 유리가 보이는 반응에 조금씩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자신에게 있어 처음으로 가장 아팠던 기억까지도.

하루는 이따금 폭소하거나 씁쓸해하는 둘을 지켜보며 묵묵히 나아가는 거리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마차가 로자릭 영지의 땅을 밟기까진 썩 오래 걸린 느낌은 아니었다.


“같이 가는 거야?”


“나도 추모관에 볼일이 있어서. 어차피 갈 거면 같이 가도 되잖아?”


“그래요. 어차피 들를 예정이었다면서요.”


합이 맞는 둘에 하루는 할 말을 잃었다.

이제 소외되는 것쯤은 익숙하다.


또 군말 없이 유리를 따라 추모관이란 곳으로 가면, 무심코 코웃음이 나왔다.


“이, 이게 누구야!”

“하하······ 오랜만이네.”


어색한 연기와 인사를 준 건 다름 아닌 장과 자라였다.


반가워해도 모자람 없는 얼굴들이었지만, 이미 그들의 반응이나 유리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의심할 여지는 충분했다.


한마디 대꾸도 없는 하루가 오히려 둘을 머쓱하게 했다.

이윽고 하루가 유리를 노려보면 어색한 휘파람이나 불어대며 시치미를 떼려는 듯했다.


“안 봐도 뻔하니 추궁도 못 하겠네.”


하루의 말에 자라는 발뺌도 못 하겠다는 듯 털어놨다.


“나도 길드원들을 떼놓고 오느라 힘들었어.”


그러고 보니 루아라는 보기만 해도 골치 아픈 다크엘프가 있었던가.

용케 그 녀석을 떼놓고 혼자 왔다는 것에 한해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하! 뭘 그렇게 죽상인가! 오랜만에 만난 전우끼린데!”


장, 이 자는 여전했다.

등을 팡팡 두들기며 호쾌한 웃음을 내놓기는.


한숨을 한 번 내쉰 하루가 먼저 추모관을 방문하면, 나머지는 서로 괜히 무안한 눈빛만 주고받았다.


“하루!”


심지어 내부에는 이미 로자릭이 기다리고 있던 탓에 하루가 순간 정색할 뻔했지만, 그가 영주라는 사실을 떠올리곤 다시 그와 반갑게 포옹했다.


“말없이 와서 미안하다. 이건 오다 산 음식이야. 저택 사람들하고 나눠 먹어.”


“선물까지. 언제든 와달라는 말은 내 쪽에서 먼저 했었으니 신경 쓰지 말게.”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로자릭에게 순수히 감사와 미안함을 전하던 하루가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요소는 아무렇지 않게 와닿을 만큼 기쁨이 앞서고 있었다.


그와 덕담을 주고받은 하루는 주변을 둘렀다.


수많은 비에는 날짜와 추모글이 적혀있다.

이따금 적히지 않은 이름들이 심장을 따갑게 했다.


“조금 더 빨리 왔다면 좋았을까.”


하루의 혼잣말에 로자릭이 지그시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자네의 방문이 이들의 안식을 도울 거야.”


사실일지 아닐지도 모를 말이었는데 이전과는 다르게 위안이 된다.

하루는 그를 향해 씁쓸한 미소를 내었다.


그의 몇 발짝 뒤를 따르며 지아는 가장 근래에 치렀던 장례를 떠올렸다.

무의식에서 떠오르던 얼굴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게 했다.

그런 제 얼굴을 가볍게 감싸 안은 건 유리였다.


“별이 된 그분에게 부디 안녕을···.”


지아가 한창 유리에게 위안을 받고 있을 때 자라가 하루의 어깨를 두드렸다.


“저 아이는 누구야?”


자라가 가리킨 쪽을 힐긋 돌아보면 지아가 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녀석.”


이 무슨 대충인 답인지.

딴지를 걸어도 충분했을 텐데, 자라의 심각하게 되묻는 질문에 그만 무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종족은 몰라?”


“음, 글쎄······. 얘기해준 적은 없는데, 아마 자기도 모르지 않을까. 용인족 치고는 힘이 조금 모자라니까 역시 드래곤 칠드런 쪽에 가까운 게······”


“용족일지 몰라.”


대뜸 그렇게 말을 끊는 탓에 하루는 잠시 당황했다.


“용족? 그건 아니겠지. 누가 봐도···”


“나도 사실 용족이니까.”


“뭐?”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지 어안이 벙벙했다.

쉽사리 믿지 못할 말에 의심하고 있거든,


“이전에 칠성교와 담판 지을 때, 자라가 용이 된 모습은 나도 목격했어. 아마 보지 못한 건 너뿐일 거야.”


옆에 있던 장이 의견을 뒷받침했다.


“형태변형은 용제 외엔 본 적 없는데. 그런 용이 또 있었어?”


“역할을 부여받은 용이라면. 사실 용제도 그 예시 중 하나야.”


“역할이 뭔데?”


“용제의 경우엔 균형이었어.”


확실히 그 말만 들어보면 납득가는 단어다.

대전쟁에서 용제는 여타 진영을 옮겨 다니면서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십분 역할을 다했다고 봐도 무방했을 것이다.


“참고로 넌······”


“난 사실 이전에 네게 그 역할을 보인 적이 있어. 넌 기억할지 모르지만.”


“언제 만난 적이 있던가?”


“대전쟁 때 한 아이와 함께 생사를 걸던 용종 하나를 기억하고 있니?”


용종.

확실히 당시의 그런 짓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따금 정신을 놓고 방황하던 증상을 곧잘 보이던 때였으니, 그때 자신의 행동을 뚜렷하게 되살리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내가 공정의 길을 막 던졌을 때, 넌 무수한 공세 속에서 우리 곁을 지켰어.”


추가적인 이야기를 듣고 어설픈 기억 속 떠오른 게, 누군가 끌어안고 있던 흑빛의 피부를 지닌 아이였다.


“설마 그때의 아이······.”


“그래, 그게 루아야.”


“그 건방진 녀석일 줄 알았으면 무시해도 좋을 뻔했어.”


“하하, 예전부터 그랬던 건 아니야. 널 기억 못 하기도 할 테고, 내 쇠약이 루아를 그렇게 만든 것도 한몫하니 뭐라 할 말은 없네.”


“역할이란 거, 원래 그렇게 스케일이 큰가?”


“모르겠어. 나도 용제에게 한 번 물어본 적이 있지만, 그녀도 어디서, 어떻게, 왜 역할을 가지게 됐는지는 몰랐어. 하나같이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역할들이긴 하지.”


그의 이야기는 둘째치고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자라가 지아를 그런 자들과 동등한 존재라 의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봐도 그 역할을 지닌 것 같진 않고. 의심하는 이유가 뭐야?”


“겉보기, 라고 하면 조금 이상하려나.”


“튀는 외모라는 건 의외로 들은 것 같은데, 설마 역할을 지닌 녀석들은 다 반반한가?”


자라를 찬찬히 살펴보는 하루의 눈이 부담되어가고 있었다.

금세 정정하던 자라는 손을 내저었다.

하루의 시선은 다시 지아쪽으로 향했다.


유리에게 딱 붙어있던 지아가 의문스럽게 눈을 맞춰왔다.


“하지만 유리가 아무 말도 없다는 건······.”


“그래서 단순히 기분 탓인 건가 의심 중이야. 함부로 무시하기 힘든 위화감이 들지만······”


자라도 그녀들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아무래도 둘의 심각한 얼굴을 마주하니 이상함을 감지하면서도 그녀는 시선을 슬쩍 피했다.


그러다 하루가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었다.

그럼 자라는 괜한 얘기를 꺼냈나 싶어 면목 없다는 듯 웃었다.


“뭐, 금안을 빼고도 그녀의 감은 좋은 편이니까. 저렇게까지 친밀하게 있을 수 있는 건 역시 본성은 의심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어이없는 이유로 의심하던 네 예상이니 믿어도 될진 모르겠지만.”


무덤덤한 억양으로 던지는 딴지를 자라는 서글픈 웃음으로 받았다.

하루가 다시금 지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껏 착실히 담아온 그녀의 모습들을 상기시킨다.

지그시 눈을 감으면 드리우는 어둠 속에서도 호흡은 편안해진다.


“나도 마지막 말은 공감해.”


작가의말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감사합니다 :) 22.01.13 71 0 -
공지 업로드 시간 변경 21.10.24 30 0 -
공지 40화 부재를 이제 확인했습니다 21.07.01 128 0 -
186 #Epilogue. 누군가의 독백 22.01.13 99 2 8쪽
185 #184. 신이란 건 22.01.13 73 2 16쪽
184 #183. 자의식 22.01.12 46 2 14쪽
183 #182. 압도 22.01.11 44 2 13쪽
182 #181. 선택 22.01.10 51 2 14쪽
181 #180. 지상 낙원 22.01.07 42 2 12쪽
180 #179. 남은 쪽 22.01.06 43 2 12쪽
179 #178. 없던 기억 22.01.05 47 2 13쪽
178 #177. 가설 22.01.04 49 2 13쪽
177 #176. 심연 22.01.03 44 2 12쪽
176 #175. 주인 21.12.31 43 2 13쪽
» #174. 재회 (3) 21.12.30 49 2 13쪽
174 #173. 재회 (2) 21.12.29 42 2 13쪽
173 #172. 재회 21.12.28 48 2 12쪽
172 #171. 인계 21.12.27 48 2 12쪽
171 #170. 다시, 21.12.24 53 2 12쪽
170 #169. 신기루 21.12.23 51 2 13쪽
169 #168. 안식 21.12.22 48 2 13쪽
168 #167. 축제 준비 21.12.21 55 2 13쪽
167 #166. 귀(鬼) 21.12.20 50 2 12쪽
166 #165. 흥미 21.12.17 47 2 12쪽
165 #164. 불가사의 21.12.16 49 2 12쪽
164 #163. 희귀종 21.12.15 45 2 12쪽
163 #162. 자폭벌레 21.12.14 46 2 12쪽
162 #161. 천야 21.12.13 44 2 12쪽
161 #160. 망자 21.12.10 45 2 12쪽
160 #159. 연 21.12.09 48 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