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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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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3 06: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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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35,798

작성
21.12.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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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72. 재회

DUMMY

하루는 제 앞의 청년이 그 아이일 거라 예상했다.

단정은 짓지 않은 채 일단 손에 들고 있던 일기장부터 내려놓았다.


차마 뭐라 설명해야 할지.

애당초 허가 없이 남의 물건을 뒤적이고 있었으니 설명이고 뭐고 없었다.


“그레이씨도 참······ 왜 멋대로 들이시는 건지.”


청년의 말에 하루가 움찔했다.


“구경만 할 참이었는데, 놓여 있어서 무심코. 실례했다.”


그렇게 답하면 청년은 다시 한번 하루를 빤히 들여다본다.

뚜벅뚜벅 걸어와 앞에서 한번 머뭇거리더니 일기장을 집어 서랍 안에 그대로 처박았다.


그의 얼굴이 눈앞에 있다.

하루는 청년의 얼굴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있는지조차 몰랐던 뿔이 슬며시 드러나 있다.

이목구비가 조금 더 뚜렷해진 것 외에 까칠한 성격은 그대로인듯하다.

당시에는 건방진 이미지가 더 강했던가.

무엇보다 그의 키가 자신보다 살짝 작을 정도만큼 컸다.


“뭔가······ 달라지셨네요.”


청년이 하루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묻는다.

반면 하루는 여전히 청년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되물었다.


“그런가.”


“예. 존대가 아니게 됐다던가···.”


“그건 너도······”


“크면서 존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요.”


너무 당연한 반박에 하루가 입을 다물었다.

그나저나 언제부턴가 청년이 루돌프라는 사실은 이미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다.

아무렴 일기장이 제 것이라는 얘길 한 순간부터 사실 정해져 있던 얘기였다.


“루돌프.”


“······.”


그럼에도 끝까지 확인하지 않고선 믿지 못할 것 같았다.


“잘 지낸 것 같네.”


자신이 떠나온 세월을 체감하기 위해서일지 모른다.


청년, 아니, 루돌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한번 혀를 차면서 하루를 피해 몸을 돌리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어딘가 과거의 흔적이 보이는 듯해서, 하루는 그만 희미한 미소를 간직하게 되었다.


복도가 또 요란하다.

평소에도 그런 발소리가 잦은 일인가 싶을 때,

거친 호흡과 함께 이번엔 한 여성이 등장했다.

뒤이어 보이는 익숙한 얼굴.


“포름.”


하루는 무심코 그 이름을 내었다.

그의 곁에 있었을 아이들에 비하면 변화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겠지만, 드문드문 보이는 세월을 지녔던 변화가 시선을 끌었다.


“하루님.”


포름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지면서 동시에 환희가 감돌고 있었다.

그럼 포름 앞에 있는 여성의 정체를 예상하자니, 그녀가 박차고 달려와 덥석 안았다.


“야, 너!”


왜인지 루돌프가 분하다는 듯 버럭한다.


안았다기보다 역시 감쌌다는 표현이 들어맞았다.

양팔 채로 당한 포옹에 하루는 옴짝달싹 못 하고 서 있을 뿐이었다.


“정말이야.”


이내 그녀의 중얼거림을 들었다.


하루는 차분하게 그녀를 내려다 봤다.

정수리만 내어준 채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옆에서 분한 표정을 짓던 루돌프도 머쓱하게 뒷머리만 매만지고 있었다.


“고마웠어요, 정말.”


대뜸 그런 말에 의문이 피어난다.

하루가 루돌프에게로 고개를 돌리면, 이번엔 루돌프도 씁쓸한 미소로 눈을 마주쳤다.


“저도요.”


그제야 하루는 이들이 무슨 얘기를 꺼내는지 알아챘다.

언제의 감사를 지금 내놓는 건지.

혹은 그렇게 마음에 담고 있지 않아도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답은 짧게 던진다.


“그래.”


그런 답을 듣고 나서야 나탈리는 하루에게서 한 걸음 떨어졌다.


“하하, 죄송해요. 당황하셨죠.”


어색한 웃음으로 무마하려는 그녀의 얼굴을 겨우 담을 수 있었다.

주근깨는 조금 옅어졌나.

그때보다도 머리칼이 많이 긴 것 같다.


“많이 컸네.”


괜히 그녀의 웃음이 더 어색해진다.


나탈리의 뒤로 포름이 천천히 걸어왔다.

지금 이 공간에서 그와 하루만이 같은 시간대를 걸어온 것처럼,


“여전하시네요.”


말마따나 여전했다.

둘은 서로의 변화를 틀림없이 눈에 새기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여전히 적응은 안 되네요. 다음에 떠나시거든 귀띔이라도 주세요.”


차마 대꾸할 말도 없다.


“미안하게 됐어.”


오로지 사과만 던질밖에.

포름은 다시 씁쓸한 웃음으로 맞이한다.


“말투도 조금 더 예전으로 돌아오셨네요.”


그가 짚었던 조금 더, 라는 시절에 짐작이 간다.


“사실 여기 올 때까지 반신반의했습니다. 저희에겐 정말 감감무소식이었던지라.”


“백묘가 보이는 세계도 방문한 건 최근뿐이었으니까 그랬을 수도. 다른 아이들은?”


“진작에 다들 독립했습니다. 저희처럼 간혹 들르러 오긴 합니다만.”


그제야 하루의 눈엔 나탈리와 루돌프가 입고 있던 제복이 들어왔다.

여태 보였던 반응 중에 가장 놀랐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눈이 떠졌다.

루돌프는 하루의 시선을 눈치채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더욱 제복을 과시하는 포즈를 취했다.


그 덕에 하루는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소속은?”


물으면 다시 루돌프의 행동이 움츠러들었다.


“백묘엔 들어가지 못했어요.”


대신 답해준 건 나탈리였다.

루돌프가 다시 변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포름이 다음으로 끼어든 탓에 그대로 벙졌다.


“그러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냐. 나탈리도, 괜히 이놈 따라서 백묘까지 포기하고 갈 필요는 없었는데.”


“아, 그래요. 제가 나쁜 놈입니다.”


루돌프가 툴툴대는 상황이 어딘가 자연스러운 게 한두 번 있는 일은 아닌 듯하다.

셋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던 하루가 무안해지기 전에 나탈리는 다시 그에게 답했다.


“아우라에 들어갔어요. 이렇게 말해도 모르실 테고······ 예전엔 개다래였던가요?”


“옴니아 가의 쌍둥이를 말하는 건가. 그들에겐 금기어였을 텐데.”


“그러게요. 자세히는 몰라도, 그동안 심적인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요?”


제복 어깨춤엔 폭풍의 눈과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다.

얼핏 보면 은하의 형태를 띠고 있는 듯도 하다.

쌍둥이의 근본에는 어울린다고 여겼다.


“그래도 좋은 곳이잖아. 이번에 내가 인계에 올 때 썼던 신형 선박도 그들이 개발했다고 하던데.”


“그쵸?”


다시 우쭐해지는 루돌프였다.


똑똑


“여러분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메이드가 찾아온 이후에야 넷은 방에서 나왔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중에도 나탈리와 루돌프 사이에서 이어지는 여담을 들어야 했다.


1층에 다다라 식당으로 향하는 중에 현관에서 래무와 지아의 모습을 발견했다.


“아저씨!”


지아가 외치자 그들은 말을 멈추고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인계는 생각보다 대단해요!”


“다짜고짜 감상평이냐.”


“확실히 뭔가 여태 있던 세계하곤 다르다고 할까요. 물론 스네이크 월드도 만만찮았지만, 인계는 조금 더 건축과 주변의 조화를 추구한 면에서 디테일이······”


그녀가 신나게 떠들다가 말았다.

하루는 그녀의 시선이 어디로 향해있는지 알아챘다.


지아가 돌연 꾸벅 허리를 숙인다.

그럼 하루의 곁에서 조금 얼 타고 있던 셋이 얼결에 같이 허리를 숙였다.


“지아 버스데이예요.”


이름을 내놓던 지아를 따라 통성명을 하는 흐름 중에 루돌프가 한쪽 눈썹을 올렸다.


“근데 누구······”


“하루님과 함께 오신 분입니다.”


지아와 함께 있던 래무에게서 소개를 받으면, 셋은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경악한 표정이었다.

그에 이어서 하루에게로 일제히 시선을 향한다.


“그래, 자연스러운 반응이지.”


무감각하게 받아쳤다.


하루는 둘째치고 셋은 생각보다 훨씬 동요하는 모양이었다.

갑작스레 머리를 맞대고 서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제 또래처럼 보이는데요?”

“설마 떠난 이후에 바로 아이를···?!”

“뭐야, 그럼 상대는?”

“설마 불가항력으로 떠맡게 된 딸!”

“근데 아저씨라고 했잖아.”


지켜보고 있던 하루가 땅이 꺼질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내 이미지고 뭐고 남아있는 게 없는 것 같은데.”


제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듯하다.

대충 그들만의 회의가 끝났는지 맞댄 머리를 떼고는 어색하게만 웃었다.

이후 자신보단 지아에게 다가가더니, 지아의 어깨를 턱 잡는다.


“고생이 많아요.”


“아저씨, 뭔가 재밌는 분들이네요.”


“그렇게 여겨주면 다행이고.”


셋이 지아를 데리고 식당으로 간다.

한창 소란이 일었던 자리에 래무와 둘만 남겨져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한 번 더 한숨을 내쉬는 하루를 보며 래무가 실소를 냈다.


“어디 출신인지도 모른다고 하셨죠?”


그게 지아에 관한 질문이란 걸 떠올리기까지 잠시 시간을 갖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지아를 지그시 쳐다보는 래무의 시선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에 빠져있으면,


“아무래도 용족하고 닮지 않았어요?”


래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 걸 생각하고 있던 건가.


“글쎄. 홍채가 비슷한 요소긴 하지.”


“저도 사실 거둬진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비슷한 자를 보면 무심코 생각하게 되네요. 어쨌든 좋은 친구인 것 같아요.”


그렇게 내놓곤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어딘가 심장을 가렵게 했다.


“다행이었네요.”


마지막 한마디마저.


그녀는 조용히 걸어갔다.

하루만 혼자 남아 이유 모를 머쓱함을 만끽했다.

이내 입맛만 몇 번 다시다가 뒤를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어느 세계에서든 음식에 적잖은 집착성을 보이던 지아는, 래무를 포함한 메이드들의 음식도 잘 들었다.

그야 걸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입에 담기 시작하면, 래무의 안에서 그녀의 호감도가 수직으로 상승했을지 모른다.


그레이도 수저를 든 팔을 멈추고 흐뭇한 미소를 지을 만큼 지아는 시선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럼 다시 백묘에서 일하실 생각이에요?”


하루는 들던 수저를 멈춰 세웠다.

질문하던 루돌프도 그의 경직을 발견했다.

둘뿐 외에도 일순간 침묵이 감염되듯 퍼져가면, 지아는 괜히 오물거리다 눈치만 보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거 아니었습니까?”


“저도 블라드씨에게 맡겨졌을 뿐이지 아직 사정은 듣지 못했네요.”


포름이 띤 의문에 그레이도 덧붙이며 하루를 쳐다봤다.

그가 수저를 마저 내려둔다.


“누굴 만나야 해서. 겸사겸사.”


그들이 하루에게서 지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지아는 입안 가득한 음식을 꿀떡 삼키고 멋쩍은 미소만 보였다.


“저도 사실 들은 게 없어서요.”


“예? 하루 아저씨, 적어도 동행자한텐 의견을 구해야죠.”


뜬금없는 나탈리의 쓴소리가 있어도 아까와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였다.


하루는 수저를 더 들지 않았다.

이윽고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볼 얼굴들은 봤으니까. 슬슬 가볼까.”


“벌써요?”


루돌프가 포름에게로 도움을 요청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도, 포름은 그저 얕은 한숨만 내쉬었다.


“저희가 붙잡을 권한도 없으니까요.”


“아버지······.”


“······다시 돌아오시는 겁니까.”


포름의 망설임이 느껴지는 말이다.

그리고 그가 예상한 대로 하루는 입을 열지 않았다.

언젠가처럼 지그시 눈만 마주칠밖에.


지금에야 다시금 깨달은 건, 그런 남자였다는 점이었다.

지키지 못할 약속 따윈 함부로 거론조차 하지 않는.

누군가에겐 예의로라도 담는 대사를 그에게선 단 한 번을 들어본 적이 없다.


마주치고 있던 시선을 거두며 씁쓸한 미소를 흘릴 때,


“노력은 할게.”


한마디를 들은 포름의 눈동자가 떨린다.

퍼뜩 다시 올려다 봤다.

과연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의심하는 눈짓이었다.


하루는 볼만 긁적였다.

한 번 더 내주진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포름은 방금보다 만개한 얼굴이었다.


둘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던 지아가 마저 수저를 입에 넣고 물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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