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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스노우

에드거 앨런 포는 작가로 살고 싶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완결

제이스노우
작품등록일 :
2023.07.02 10:33
최근연재일 :
2023.09.2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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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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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30.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5)

DUMMY

폭풍우가 잠잠해지고 나서야 사람들은 배가 어떤 상태인지 확인했다. 사실 모두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배는 너무나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 배가 지금까지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어.”


나는 지금도 헨리의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형은 정말로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헨리가 한 말은 진심이었다.


헨리만이 아니었다. 선상 반란을 일으켰던 선원 모두가 그와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배를 살피면 살필수록 점점 더 망연자실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돛은 완전히 무너져 애당초 수리가 불가능했다. 거기다 키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제멋대로 움직였다.


배 이곳저곳에 구멍이 나서 파도에 움직일 때마다 계속해서 바닷물이 들어왔다. 당장 배가 뒤집히거나 가라앉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항구로 가기는커녕 당장 배를 버려야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보트마저 진작 폭풍우에 휩쓸려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다 쓰러져 가는 배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방법뿐이었다. 육지조차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말이다.


선원 중 누구도 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걸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당장은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했다.


“어이! 살고 싶으면 먹고 마실 것부터 찾아! 상자를 전부 뜯어서 전부 조타실로 가져오라고!”


덩치 큰 흑인이 소리쳤다.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만큼 큰 그는 우람한 팔뚝을 휘두르며 사람들에게 명령했다.


그 모습은 사실 놀라운 일이었다. 흑인이 백인들을, 물론 혼혈도 있었지만, 마치 자기 부하처럼 지휘하는 모습을 나는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그건 헨리도 마찬가지였다. 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쩌면 선원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텐데, 놀랍게도 그들은 흑인에게 전혀 반항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흑인이 선상 반란을 주도했다. 아마 그 때문에 선원들이 그의 말을 따르는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그러니 나나 헨리, 핌 또한 흑인의 말을 따랐다. 우리는 선원들과 함께 상자를 뒤적였다. 그동안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보스턴에서 이미 선장을 만난 적이 있다는 거지? 그리고 그놈이 너희를 이 배에 데려와서 가두었고?”

“맞아요.”

“그럼 선장이 보스턴으로 너희를 데려갈 작정이었나? 왜 그랬을까?”

“정확히는 몰라요. 하지만 보스턴에 데려가서 우리를 괴롭히려고 했겠죠.”

“그래, 그놈은 그러고도 남지.”


나는 인디언 피가 섞인 선원, 피터스에게 우리가 왜 이 배에 있게 되었는지 알려줬다. 그는 내 말에 꽤 흥미를 보였고, 때로는 맞장구쳐 주기도 했다.


피터스는 키가 작았지만 몽둥이처럼 단단한 팔에 두툼한 허리를 지닌 남자였다. 그리고 허리춤에 찬 짧은 도끼를 자기 팔처럼 능숙하게 다루었다.


상자를 뜯을 때도 그는 자신의 도끼를 사용했다. 그는 도끼로 다른 선원들을 가리켰다. 누런 이를 늑대처럼 드러내며 웃었다.


“여기 있는 놈들, 모두 선장한테 호되게 당했지. 이 배를 맡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온갖 거드름을 다 피웠지. 그러니까 너희와 우리는 통하는 게 있어.”


다른 선원들은 우리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피터스는 달랐다. 그는 우리와 자기가 같은 처지였다고 여겼다.


그러다 피터스의 도끼가 흑인을 가리켰다.


“모리스가 정말 많이 당했지. 선장이라는 치를 떨었어. 나는 그가 한 행동에 동의해. 다들 나랑 똑같이 생각해. 핸더슨도 그랬고, 나중에 우리 편이 된 리처드 그래. 선장은 죽어도 쌌어.”


덩치 큰 흑인 요리사 모리스, 팔을 다친 호리호리한 일등항해사 핸더슨, 그리고 마지막에 선장을 버린 리처드 모두 같은 처지였다는 걸 피터스가 강조했다. 여전히 짧은 도끼를 든 채 말이다.


파악!


도끼날이 번쩍이더니 둔탁한 소리와 함께 상자가 열렸다. 안에는 고래 뼈와 고래 가죽만 가득했다. 당연히 먹을 건 없었다. 이번에도 허탕이었다.


그걸 보고는 피터스가 내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입술을 씰룩였다. 그러나 상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짓는 게 아니었다.


그는 똑바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선장은 우리를 괴롭혔어. 제멋대로 행동했다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그날도 마찬가지였어. 핸더슨이 팔을 다친 것도, 버나드 씨의 아들놈이 저렇게 된 것도 다 선장 때문이야.”


핸더슨과 어거스터스가 다친 건 부러진 돛 때문이었다. 하지만 피터스에게 그건 상관없는 일이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선장에 대한 증오심이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자기 편이 되어주길 바랐다.


“우리는 살려고 선장을 바다에 던졌어. 그러지 않았으면 너희도 큰일 났을 거야. 이해하지?”

“이해해요.”

“좋군. 정말 좋아.”


피터스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는 그때부터 나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헨리와 핌에게도 접근해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피터스의 태도가 나중을 위한 처세술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당장은 그가 진심으로 우리를 대했기에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다들 모여! 한번 보자고!”


모리스가 사람들과 함께 조타실에 모은 식량을 살폈다. 먹을 수 있는 건 몽땅 모았지만, 내가 보기에도 상당히 부족한 양이었다.


모리스는 못마땅하다는 듯 고릴라처럼 콧바람을 연신 내뱉었다.


“젠장. 이걸로는 며칠도 못 버텨. 물이 너무 부족해. 이걸로 어떻게 살 수 있겠어?”


식량도 식량이지만 모리스가 말한 대로 물이 너무 부족했다. 기껏해야 몇 갤런밖에 없었다. 모두 나눠마시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핸더슨이 다친 팔을 어루만졌다. 어거스터스만큼은 아니어도 그의 부상도 심한 편이었다. 지혈을 단단히 했는데도 계속 피가 흘렀다.


“모리스. 주방에서 더 찾은 건 없어?”

“없어! 몽땅 비에 젖어서 그나마 쓸 수 있는 건 이게 전부라고! 그리고 다들 뭣들 한 거야? 내가 제일 많이 찾았잖아!”


모리스가 분노를 터뜨렸는데도 다들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처럼 주방에서 찾은 식량 말고는 선원들이 찾은 건 거의 없었다.


결국 모리스가 사람들에게 선언했다.


“내가 요리사니까 먹을 건 내가 담당하겠어. 불만 없지? 그리고 다들 어떻게든 먹을 걸 찾아. 어떻게든 찾으라고.”

“차라리 입을 줄이는 건 어때?”


핸더슨이 음침한 시선으로 어거스터스를 바라봤다. 여전히 바닥에 누워 시름시름 앓고 있는 그를 모두가 내려다봤다.


핌이 곧장 친구 곁에 다가가 소리쳤다.


“어거스터스를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괜한 소리하지 말아요! 내 친구는 아직 안 죽었어요!”

“그래, 우리가 살려면 저 둘이 필요해.”


피터스가 핌을 옹호했다. 나나 헨리도 같은 생각이었다. 나중에 구조되면 결국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핌과 어거스터스였다.


핸더슨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가지고 있던 단검으로 핌의 강아지, 타이거를 가리켰다.


“정말 입이 모자라면 네 강아지는 무사하지 못해. 그건 알아두라고.”


다시 사람들이 흩어질 때, 나와 형이 핌과 어거스터스에게 다가갔다. 어거스터스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나와 헨리, 핌을 번갈아 보았다.


핌은 울먹이는 표정으로, 그러나 단호한 눈빛으로 어거스터스에게 약속했다.


“약속해, 어거스터스. 널 어떻게든 지켜줄게. 항구에 도착할 때까지 내가 널 보살펴 줄 거야.”

“우리 형제도 도와줄게, 핌.”


당장은 살아야 했기에 모두가 힘을 합쳤다. 그러나 더 상황이 안 좋아지면 누구랄 것도 없이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내칠 것이다.


모두가 같은 편이면서 모두가 적이었다.


그때 핌이 내게 슬쩍 물었다.


“저기, 우리가 있었던 창고에도 음식이 있었잖아요? 그건 어떡하죠?”

“거긴 포기해, 핌.”


창고에는 어거스터스가 핌을 위해 준비한 음식들이 있었다. 아마 핌은 그 음식들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힘들었다.


나는 갑판으로 올라오는 계단을 바라봤다. 갑판 밑에 무너져 내린 상자들이 아무렇게 놓여 있었다. 그걸 뚫고 창고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상자 때문에 음식을 포기하라고 말한 게 아니었다. 나는 갑판 밑으로 차오르는 바닷물을 봤다. 바닷물이 배 후미에 뚫린 구멍으로 자꾸 들어왔다.


그러니 음식은 단념해야 했다. 그걸 찾으러 갑판 밑으로 들어간다는 건 자살행위에 불과했다. 핌도 그 사실을 알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흐릿한 하늘 때문에 낮과 밤의 경계가 무너져 막연하게 시간만 보낼 뿐이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모아둔 식량이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모리스는 처음에 사람들에게 마른고기에 야채를 조금씩 주었다. 그러다 이제는 밀가루로 대충 구운 빵을 주먹보다 작은 크기로 주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람들은 어떻게든 식량과 물을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배를 전부 뒤졌고, 어설프게 낚싯대를 만들어 고기도 낚으려고 했다.


부족한 물은 처음 폭풍우가 몰아쳤을 때 쌓인 물을 어떻게든 병에 담았다. 상자에 고인 물이든 천에 짜든 상관없었다.


모든 걸 동원했는데도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보니 다들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고안했다. 그러나 대부분 소용없는 짓에 불과했다.


“내가 갑판 밑에서 돌아다니는 물고기를 봤어. 그걸 잡아 오지.”


언젠가 피터스가 작살을 만들고는 갑판 밑으로 내려갔다. 그때까지 갑판 밑에 물고기가 있는 걸 본 적 없던 사람들은 피터스의 행동을 우습게 여겼다.


그러나 놀랍게도 한나절이 지난 뒤에 피터스가 물고기 세 마리를 잡아 왔다. 그건 배가 난파된 뒤 얻은 최대의 성과였다.


그 모습에 흥분한 사람들이 하루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물고기 사냥을 나서기로 약속했다. 모두 그것이 유일한 희망으로 여겼다.


나는 창고에 있던 음식이 미끼 노릇을 했기 때문에 물고기가 배 안으로 들어왔다고 짐작했다. 음식을 포기한 게 오히려 행운이었다.


그러나 그 행운도 잠깐이었다. 피터스 말고는 누구도 물고기를 잡지 못했다. 심지어 피터스도 자기 차례에서 물고기를 잡지 못했다.


이제 사람들은 모든 행동을 그만두었다. 차라리 절망에 모든 걸 맡겼다. 그저 무기력하게 갑판에 누워 있는 날이 더 많아졌다.


“다 죽을 거야. 모두 죽는다고. 선장의 저주가 맞았어. 그가 바다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극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놓은 건 핸더슨이었다. 그는 이제 피부가 썩어 악취가 나는 팔을 붙잡고는 구석에 앉아 중얼거리기만 했다.


다들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어거스터스가 먼저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핌만 빼고 말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오히려 핌의 보살핌 때문인지 어거스터스는 가끔 핌과 대화를 나눌 정도로 기력을 회복하였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핸더슨에게 눈길이 쏠렸다.


그러다 모리스가 참지 못하고 분노를 터뜨렸다.


“핸더슨! 이 망할 자식! 입 닥치지 못해?! 어디서 재수 없는 소리를 하는 거야?!”

“밤마다 보여. 죽은 선장이 우리를 따라다닌다고. 우리가 죽을 때까지 쫓아올 거야. 우리를 길동무로 삼을 거야.”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모리스의 무식한 주먹이 핸더슨의 턱에 제대로 꽂혔다. 힘없이 나가떨어진 핸더슨은 바닥에 누워 숨만 헐떡였다.


그만하라고 말리는 사람도, 더 때리라고 부채질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멍하니 모리스의 폭력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날 밤, 다시 폭풍우가 몰아칠 것 같은 어두운 하늘이 이어질 때 핸더슨이 사라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누구도 핸더슨을 찾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며칠이 지났다. 이제는 완전히 식량이 바닥났고 간신히 물만 마시는 정도였다. 심지어 물도 한 모금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모두가 야위어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때까지도 숨이 붙어 있던 어거스터스는 너무나 심한 고통에 핌에게 애원했다.


“제발, 핌. 차라리 날 죽여줘. 이대로는 못살아. 날 바다에 던져줘. 그게 내 소원이야.”

“그런 말 하지 마. 아직 살 수 있어. 괜한 소리하지 말고 숨이나 잘 쉬어.”


어거스터스를 격려한 사람은 핌이 아니라 피터스였다. 이제 핌은 어거스터스 곁에 간신히 있을 뿐이었다. 타이거와 함께 말이다.


어느 날은 피터스가 자신에게 배분된 물을 어거스터스와 타이거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자기도 힘들 텐데 이 시간을 견뎌야 한다고 우리를 다독였다.


그는 진심으로 우리에게 친절한 태도를 보이며 호감을 얻었다. 점점 포악해지는 모리스나 이제 자기만 생각하는 리처드와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오늘 밑으로 내려가는 사람 누구야? 얼른 움직이지 않고 뭐해?!”


모리스가 조타실에서 나와 소리쳤다. 그제야 갑판에 누워있던 리처드가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윈 몰골의 리처드가 모리스에게 항변했다.


“이봐, 모리스. 이제 이 짓은 그만두자고. 어차피 나오는 게 없잖아.”

“헛소리! 피터스가 가져온 물고기를 잊었어? 너도 네 밥값은 하라고!”


모리스가 격분해서 리처드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그러자 리처드의 눈빛에 번쩍였다. 당장에라도 덤빌 기세였다.


그 모습에 모리스가 콧바람을 거칠게 내뱉었다.


“뭐 어쩔 건데? 여기서 한 판 할까? 자신 있나 보지, 리처드?”

“···됐어. 이거 놔. 내려가면 되잖아.”

“그래 그래야지. 아니 잠깐만. 나도 같이 내려가. 네 놈이 밑에서 뭔 짓을 하는지 지켜보겠어.”


그렇게 모리스와 리처드가 갑판 밑으로 내려갔다. 피터스가 만든 작살을 든 채 말이다. 나와 헨리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는 그들이 물고기를 잡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차라리 갑판 밑에 돌아다니는 물고기가 없다고 믿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갑판 밑에서는 상상도 못 할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갑판 밑에서 희미하게 비명이 들릴 때까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방금 무슨 소리 듣지 못했어?”


내 곁에 누워있던 헨리가 일어나 갑판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바라봤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나와 헨리뿐이었다.


“맞아. 갑판 밑에서 들렸는데.”

“두 사람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


헨리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계단을 살피더니 점점 밑으로 내려갔다. 나도 그를 따라 계단으로 움직여 밑을 살폈다.


쓰러진 상자들, 점점 차오르는 바닷물만 보였다. 나는 바닷물을 해치며 안으로 들어가는 형의 발소리만 들렸다.


“형, 안에 무슨 일 있어?”


그런데 한참이 지났는데도 형은 오지 않았다. 갑판 밑에서 삐걱거리며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게 형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쿵! 쿵! 쿵!


그때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형이 계단을 올라왔다. 그런데 헨리는 새하얗게 질려서 사람들 앞에 섰다.


나는 그게 무슨 일인지 몰랐다. 이제 모두가 형을 따라 눈길을 돌렸다. 그러다 형이 단검을 빼들자 피터스는 의아한 눈길로 형을 위아래로 훑었다.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무슨 일이야, 형? 왜 그래?”

“미친놈. 이제 돌았어. 완전히 돌았다고!”

“대체 무슨 일인데? 누가 미쳤다는 거야? 갑판 밑에서 둘이 무슨 짓을 했어?”


형이 즉시 계단을 가리켰다. 그리고 계단을 따라 모리스가 올라왔다. 한 손에는 식칼을, 다른 한 손에는 작살을 든 채 말이다.


식칼과 작살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또 누런 옷에도 피가 잔뜩 묻어 몸에 달라붙었는데, 두툼한 뱃살과 넓은 가슴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 모습은 사냥이 끝난 짐승처럼 보였다.


그는 부릅뜬 눈으로 사람들을 노려봤다. 입을 우물거리면서. 그의 입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밑에 고기가 있으니까 먹을 사람은 먹어.”


고기라니? 무슨 고기? 갑자기 무슨 고기가 생겼다는 건가? 순간 나나 헨리, 핌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이내 경악했다.


피터스는 조용히 짧은 도끼를 손에 쥐며 물었다.


“모리스. 리처드는?”

“밑에 있지.”

“그를 어떻게 했지?”

“밑.에.있.다.고.”


모리스가 한 단어 한 단어 강조하면서 말했다. 누런 이에 피가 잔뜩 낀 채. 그 역겨운 모습에 나는 토악질이 날 지경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모리스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그 자가 끔찍한 짓을 했다는 건 분명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아무리 극한 상황이라고 해도 누구도 시도조차 하지 못한 일을 모리스가 했다는 것에 나와 헨리, 핌은 공포에 휩싸였다.


모리스가 피 묻은 식칼로 피터스를 겨누었다. 이제 그는 광기에 휩싸여 히죽였다.


“괜한 짓 하지 마, 피터스. 너도 잡아먹히고 싶지 않으면.”

“역겨운 놈. 네 놈은 짐승이야.”

“살 사람은 살아야지.”


곧 모리스가 식칼과 작살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식칼이 피터스의 옆구리를 찌를 기세로 허공으로 날아갔다.


피터스와 모리스의 싸움에 어거스터스를 제외하고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았던 사람들이 이제 모리스를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이 망할 놈들이 누구한테 지랄이야?!”


모리스가 짐승처럼 포효했다. 입에서 피가 섞인 침을 취면서. 이제 이 끔찍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모두가 알아차렸다.


피터스를 중심으로 나와 헨리, 핌이 무기를 들었다. 두려움에 손을 부들부들 떠는 핌이었지만 그는 살기 위해서 칼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나와 헨리는 모리스의 옆을 노렸다. 피터스가 앞에서 모리스를 압박하는 동안 나는 왼쪽에서, 헨리는 오른쪽에서 그를 노렸다.


“이 버러지 같은 것들! 지금까지 누구 덕분에 살 수 있었는데!”

“선장한테 안부나 전해, 깜둥아!”


헨리가 모리스의 옆구리에 칼을 쑤셨다. 동시에 내가 놈의 머리를 몽둥이로 가격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놈의 머리에서 피가 솟구쳤다.


이윽고 피터스가 단단한 팔로 모리스의 어깨에 도끼를 내리찍었다. 정신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놈이 버티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어 모두가 모리스를 바다로 내밀었다.


첨벙!


바다에 빠진 모리스는 금세 사라졌다. 그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모두가 숨을 헐떡이며 바다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이제 끝났어.”


피터스가 중얼거렸다. 이제 그마저 포기했다는 생각에 헨리와 핌은 절망했다. 배에서 가장 강인했던 남자도 이 지옥을 더는 견디기 어렵다고 여겼다.


그러나 피터스의 의도는 달랐다. 그는 손가락으로 바다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모두가 고개를 들었다.


멀리서 배가 보였다. 180톤 급 상선. 그건 분명 헛것이 아니었다. 단지 배를 목격했다는 사실만으로 다들 울먹였다.


그리고 그 배가 그램퍼스 호를 향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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