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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스노우

에드거 앨런 포는 작가로 살고 싶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완결

제이스노우
작품등록일 :
2023.07.02 10:33
최근연재일 :
2023.09.26 22:25
연재수 :
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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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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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
글자수 :
39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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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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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27.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2)

DUMMY

시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정리하기도 전에 나는 곧장 낸터킷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나는 헨리가 위험에 처했다는 걸 마리아 숙모에게 알렸다.


물론 모든 상황을 전부 밝힐 수는 없었으나 마리아 숙모는 내 말에 깜짝 놀랐다.


“얼른 가서 도와주렴, 에디. 여기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헨리를 도와주고 무사히 다녀오렴.”


나는 마리아 숙모에게 인사한 뒤 곧장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현관에서 버지니아가 내 옷깃을 잡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버지니아의 큰 눈에는 어떤 의도가 담겨 있는지 나는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만 갑자기 떠나는 내 모습에 서운해하는 것 같아 나는 얼른 인사했다.


“버지니아. 형한테 무슨 일이 생겼어. 가서 도와줘야 해. 돌아올 때까지 숙모님이랑 잘 지내고 있어. 나중에 다시 오면 시를 보여줄게.”

“에디. 이번에는 조심해야 해요.”

“그래, 고맙다. 항상 조심할게.”

“그게 아니라,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요.”


나는 버지니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을 조심하라는 건가? 내가 다시 물어보려고 하니 마리아 숙모가 다가와 버지니아를 데려갔다.


“버지니아, 에디는 이제 가야 해. 얼른 보내주렴. 에디도 얼른 나가보렴. 앞으로 먼 길을 가야 하는데 빨리 출발해야지.”

“네, 그럼 다녀올게요.”


나는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떠나면서 버지니아를 슬쩍 쳐다봤다. 소녀는 떠나는 내게 살짝 손을 흔들며 손인사했다.


낸터킷으로 가는 동안 나는 버지니아의 경고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그냥 넘겨도 되는 말이었다. 가끔 버지니아는 이상한 말을 했으니까.


그러나 나는 낸터킷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야 버지니아의 경고를 이해했다. 내가 낸터킷에서 겪었던 사건은 정말 최악이어서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 * *


매세추세츠주 남동쪽에 코드 곶이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나가면 낸터킷이 있다. 낸터킷은 섬이자 작은 도시였다.


나는 코드 곶에서 낸터킷으로 가는 배를 얻어 탈 수 있었다. 그때는 늦은 저녁이었는데, 낸터킷으로 가는 동안에 짙은 안개를 볼 수 있었다.


배를 모는 선원은 능숙하게 안개를 해쳐나갔다. 그는 휘파람을 불다가 안개를 바라보는 나를 보고는 큰 소리로 웃었다.


“여기 낸터킷에는 일주일에 몇 번이고 이렇게 안개가 자욱하게 생기지요. 조심해야 합니다, 외지에서 온 양반. 경험 없는 배를 탔다간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르거든요.”


늙은 선원의 치아가 많이 빠져서 웃음소리가 자꾸만 새어 나왔다. 나는 그의 살벌한 말을 듣다가 안개 너머로 무엇이 움직이는 걸 보았다.


바다에서 무언가 움직였는데, 검고 둥근 물체가 수면으로 올라왔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었다.


“저건 뭐죠?”


내가 검은 물체가 들어왔다가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늙은 선원에게 물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또 웃으며 알려줬다.


“고래군요. 낸터킷의 돈줄이죠.”

“돈줄이요?”

“여기 사정을 잘 모르는군요. 낸터킷은 오랫동안 포경 산업으로 도시를 유지했었지요. 우리 말고 원주민들도 고래를 사냥했다고 했었어요.”


원주민. 바로 아메리카 인디언을 말한다. 나는 그때 인디언을 원주민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처음 봤기에 이상한 느낌마저 들었다.


내 속을 모르는 선원은 신나서 계속 설명했다.


“여기 낸터킷은 물론이고 코드 곶 인근에서 원주민들이 많이 살았지요. 지금이야 다들 떠나서 흔적도 찾기 어렵지만요.”

“그럼 당신도 여기서 오랫동안 지냈었나요?”

“여기 토박이지요. 미국이 영국한테 독립하기 전부터 살았지요.”

“그럼 계속 이렇게 뱃일을 하셨었나요?”

“그럼요. 젊을 때는 포경선을 탔었죠. 지금이야 늙어서 이렇게 낸터킷으로 들어가는 배를 몰고 있지요.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지내요.”


원래 토박이를 밀어내고 다른 사람이 자리를 잡아 자신을 토박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전 인디언의 생활방식을 이어받아 도시를 올렸다.


낸터킷, 아니 미국은 그런 곳이었다. 새로운 곳을 개척하려고 서부로 진출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인디언의 터전을 이어받아 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 둘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결국 본질은 똑같았다. 국가를 팽창시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육지는 육지의 방식대로, 바다는 바다의 방식대로.


그리고 팽창하는 역사에는 문명과 야만이 공존했다. 누가 문명이고 야만인지 그건 생각에 따라 다르다. 다만 그걸 누구 하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는 낸터킷의 작은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형 헨리를 만났다. 두 달 만에 만난 형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처음에는 옷이 바뀌어서 못 알아봤다. 그러나 단순히 옷만 바뀐 게 아니었다. 거칠었던 수염을 정갈하게 다듬었고, 퀭한 눈도 또렷해졌다.


무엇보다 음주 때문에 늘 벌겋던 얼굴에 이제 생기가 돌았다. 여전히 피곤해 보였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훨씬 나은 모습이었다.


형은 배에서 내리는 나를 진심으로 맞이했다.


“왔구나, 내 동생. 이렇게 빨리 와줘서 고마워.”

“그렇게 걱정 가득한 편지를 썼는데 어떻게 가만있겠어? 그나저나 형 모습이 달라진 것 같아.”

“전에 말했잖아.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할 거라고. 이제는 술도 거의 안 마셔. 일도 금방 익숙해졌고. 그 실버 선장만 아니라면 말이지.”

“그 사람, 정말 여기에 있는 거야?”

“내 판단을 의심하지 말아줘. 분명 그놈이야. 이 항구에서 날 빤히 쳐다보는 걸 봤다고.”


헨리는 조금 흥분했지만 나는 실버 선장 때문에 그렇다고 여겼다. 나와 형은 우선 항구에서 멀지 않은 여관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형 헨리는 어느 사무소에서 일했다. 포경 산업으로 만든 상품을 인근 도시로 납품하는 사무소였는데, 형은 거기서 도시까지 상품을 옮기는 일을 했다.


이제 형은 음식을 먹을 때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건 정말 놀라운 변화였다. 달걀에 얇게 썬 고기를 먹으며 형은 물만 마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웃었다.


“이제 정말 술 생각은 안 나는 거야?”

“물론 안 날 수야 없지. 지금도 한 모금만 마셨으면 좋겠다고. 그래도 그냥 참는 거지.”

“인내심이 깊어졌네.”

“좋게 지내려고 했지. 솔직히 여기서 충분히 만족하고 있어. 사람들도 좋고, 보스턴처럼 시끄럽지도 않아. 그러니까 실버 선장만 해결하면 된다고.”


대화는 다시 실버 선장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실버 선장에 대해 우선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 사람,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정확히는 몰라. 내가 본 건 3주 전이야. 어느 날부터 여기서 보이더라고. 처음에는 나나 선장이나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어. 그러다 어느 날 항구에서 딱 마주쳤는데, 나나 선장이나 동시에 알아봤지.”

“그때는 아무 대화도 없었고?”

“나나 선장이나 같이 어울리던 사람들이 있어서 가까이서 보지는 않았어. 그런데 그 사람, 분명 날 알아봤어. 날 살벌한 눈으로 바라봤으니까.”

“그리고 그다음부터 형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단 말이지?”

“맞아. 당장 엊그제까지만 해도 항구에서 날 지켜봤었어.”

“그럼 그 사람은 여기서 뭘 하는지 알아?”


헨리가 항구를 가리켰다. 나와 헨리가 만났던 작은 항구 말고, 낸터킷의 북서쪽에 위치한 큰 항구를 가리켰다.


“네가 왔던 항구는 이 섬으로 들어오는 뱃길에 불과해. 다른 도시로 나가는 상선은 북서쪽 항구에서 정박하고 있지. 실버 선장도 거기서 봤어.”

“그럼 여기서도 선장으로 있다는 말이네.”

“이미 네가 오기 전에 미리 알아봤어. 그램퍼스라는 상선에서 선장으로 일해. 보스턴의 바타비아 호에 비하면 작지만 이 섬에서는 알아주는 배야.”

“좋아, 이제 그 사람 어떻게 할 거야?”

“당연히 먼저 선수 쳐야지. 내가 널 부른 이유가 뭐겠어?”


헨리의 계획은 이러했다. 그가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그램퍼스 호는 내일모레 출항 예정이어서 실버 선장이 배에 머무를 것이다. 그러니 몰래 배에 잠입해 실버 선장에게 접근하는 것이다.


나는 형의 계획을 듣다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내 예상보다 형의 계획이 너무 무모해서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그 사람한테 쉽게 접근할 수 있을까? 거기에 선원들도 있을 텐데.”

“늦어서 별로 없을 거야. 몰래 들어가서 기습만 하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기습이라. 좀 무서운 표현이네.”

“보스턴에서 에드워드한테 했던 짓 기억 안 나? 그보다는 덜 위험하지.”


사실 내가 보기에 에드워드를 납치했던 일이나 실버 선장에서 몰래 접근하는 일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나는 다른 계획이 없으니 형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우리는 여관을 나와 곧장 북서쪽 항구로 향했다. 이제 마을 곳곳에서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달과 별이 보이는 하늘을 따라 우리는 부지런히 걸었다.


항구에는 아직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술에 취한 선원이 흥얼거리는 소리를 뒤로 한 채 우리는 그램퍼스 호에 도착했다.


그램퍼스 호는 180톤 정도의 상선이었다. 영국처럼 멀리 나가기는 힘들었지만 보스턴이나 프로비던스, 아니면 남쪽으로 더 내려가기에는 충분한 배였다.


그램퍼스 호에서도 불빛이 보였다. 아직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다. 나와 형은 배에 들어갈 수 있는 순간을 기다렸다.


나와 형은 은밀하게 움직이면서 실버 선장이 보이는지도 확인했다. 그러다 형이 내게 바짝 붙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나저나 너는 어떻게 지내는지 안 물어봤네, 에디. 볼티모어는 어때?”

“숙모님께서 잘해주셔. 리치몬드에서 지낼 때보다 더 아늑해.”

“그거 잘됐네. 글은 계속 쓰고?”

“시? 안 그래도 요새 고민이 많아. 얼마 전에 정리했는데 시가 꽤 모였더라고. 그래서 시집으로 엮어볼까 생각하고 있어. 아니면 잡지사에 투고할 수도 있고.”

“아니, 시도 중요하긴 한데.”

“그럼?”

“그 백작이라는 사람한테 보내는 원고도 잘 진행하고 있어? 어쨌든 그 사람은 에디 너한테 돈을 주는 사람이잖아.”

“원고는 여기 오기 전에 끝냈어. 편지로 부쳤는데 지금은 받았을지 모르겠네.”


나는 헨리가 백작에 관해 묻는 걸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형의 의도는 달랐다. 그는 백작에 대해서 더 물어봤다.


“그러면 여기 낸터킷에 있다는 것도 백작에게 말했어?”

“아니, 전혀. 굳이 그걸 말할 이유는 없지.”

“네가 안 보이면 걱정하지 않을까?”

“형이 급하게 찾는데 말할 시간이 있어야지. 그런데 백작은 왜 이렇게 궁금한 거야?”

“네가 일을 잘하고 있는지 궁금한 거야.”


형은 슬쩍 말을 돌렸다. 그때 나는 형을 슬쩍 쳐다봤다. 아무래도 형이 무슨 의도를 갖고 내게 백작에 대해 묻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형이 보인 눈빛은 내가 이전에도 본 적 있었다. 백작에게 호기심과 경외감을 가지는 그 눈빛은, 불타는 저택으로 끌려 들어간 페리와 비슷했다.


나는 그 눈빛을 보자마자 바로 경고했다.


“형, 백작한테 너무 관심 두지 마. 그 사람, 형이 생각하는 사람이랑 전혀 달라.”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 나는 그냥 네가 잘 지내는지 궁금할 뿐이야.”

“그게 아닌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내가 그렇다는데 무슨.”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백작이 신기할 수 있지. 사람을 끌어모으는 재주도 상당하니까. 형처럼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도 제법 많아. 하지만 백작은 온갖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이라고.”

“너는 그걸 알면서도 백작한테 후원받으면서 글을 쓰는 거야?”


만약 내가 지금까지 백작과 겪었던 일을 모두 말한다면 형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 말이 사실이어도, 그걸 전부 믿을 형이 아니었다.


물론 형의 말도 일리 있었다. 위험한 걸 알면서도 여전히 백작에게 후원을 받아 글을 쓰는 건 분명 모순이었다.


그러나 그 모순은 이미 바꿀 수 없는 문제였다.


철컥.


익숙한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내 등을 찔렀다. 그 소리에 나와 헨리는 간담이 서늘해져 할 말을 잃었다.


이어 낮은 목소리가 우리에게 명령했다.


“배에 올라가. 뒤돌아보지 말고.”


나와 헨리가 명령에 따라 그램퍼스 호로 향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짐작이 됐지만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그렇게 갑판에 올라가니 목소리가 다시 명령했다.


“저기로 들어가. 어서.”


목소리가 말한 곳은 갑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었다. 나와 헨리가 순순히 걸어가고 있을 때, 형이 나지막이 말했다.


“실버 선장,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만하지요?”

“뭘 안다고 떠들어, 애송아?”


파악!


둔탁한 소리와 함께 형이 앞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는 뒷머리를 손으로 감싸며 앓은 소리를 냈다. 나는 즉시 등을 돌려 저항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 저항은 순식간에 끝났다. 뒤에 서 있던 실버 선장이 날카로운 눈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두 손에 총을 들고 나와 형을 겨눈 채 말이다.


“쓸데없는 짓하지 말고 빨리 내려가.”


결국 나와 헨리는 어떤 창고에 들어갔다. 구석진 창고에는 온갖 잡다한 물건들이 쌓여 있었는데, 실버 선장은 우리를 구석에 몰아놓았다.


그가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보스턴에서 너희가 무슨 짓을 했었는지 말해.”

“나랑 형은 에드워드의 부탁을 받아서 블랙아이 섬으로 어떤 물건을 옮겼어요.”


나는 순순히 그때 있었던 일을 말했다. 실버 선장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총구로 내 가슴팍을 찔렀다.


“그래, 바타비아 호에 몰래 빠졌던 놈들이 바로 너희군. 의심하고 있었지만 이제 속 시원하게 알게 되었어. 그럼 너희가 옮긴 상자는 뭐지?”

“몰라요. 에드워드가 알려주지 않았어요.”

“실버 선장, 당신이 만약 에드워드를 의심했다면 당신도 위험했어요. 나와 내 동생은 상자를 옮기자마자 인신매매 당할 뻔했다고요. 우릴 납치하려고 했던 놈들이 다른 바타비아 호의 선장들이 입던 옷도 가지고 있었어요. 무슨 뜻인지 알죠?”


헨리가 있는 사실을 말했는데도 실버 선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저 가늘게 뜬 눈으로 우리 형제를 번갈아 쳐다볼 뿐이었다.


그래도 헨리의 말에 선장은 내 가슴팍을 총구로 찌르지 않았다. 대신 나와 헨리를 동시에 겨누면서 계속 물었다.


“에드워드가 사라지는 바람에 나는 일자리를 잃었어. 망할 바타비아 호는 이제 다른 사람 소유주가 되었지. 에드워드는 어디에 있지?”

“그게 당신이 궁금한 거예요?”

“대답이나 해. 에드워드는 어디로 갔어?”

“죽었어요. 보스턴에서 못 들었나요?”


실버 선장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반응을 보니 정말로 몰랐던 게 분명했다. 아마 그때 있었던 일을 알면 더 놀라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실버 선장이 물었다.


“어떻게 죽었지?”

“유령선 때문에요.”


역시나 실버 선장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내 말을 우습게 여겼지만, 동시에 진지한 내 말투에 조금은 의심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때 있었던 일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러자 실버 선장의 뺨과 눈썹이 파도처럼 움직였다. 고민이 많아지는 얼굴이었다.


이제 내 말을 믿고 안 믿고는 실버 선장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내 말을 절대 믿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지금 그 말을 믿으라고?”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에요.”

“헛소리. 너희 모두 날 너무 우습게 생각했어.”

“이봐요, 선장. 우리가 하는 말을 모두 사실이라고요. 전부 있었던 일이에요.”


헨리까지 거들었지만 실버 선장은 듣지 않았다. 그는 점점 나와 헨리에게서 멀어졌다. 여전히 총을 겨눈 채 말이다.


그러다 창고로 나간 실버 선장이 문을 잠갔다. 나와 헨리가 바로 문을 열려고 했지만 단단히 잠긴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거기서 얌전히 있어.”

“이봐요, 실버 선장! 우리를 여기에 가두면 당신만 곤란하다고요!”

“죽기 싫으면 얌전히 있으라고.”


실버 선장이 더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분명한 말투로 우리에게 경고하고는 창고를 떠났다. 결국 나와 헨리는 꼼짝없이 창고에서 밤을 지내야 했다.



헨리가 문을 열어보려고 시도했지만 소용없었다.


“젠장. 언제부터 우리를 쫓아왔지? 아무도 모르게 그램퍼스 호에 접근했잖아.”

“진작 눈치 채고 있었을 수도 있어. 그래도 좋게 보자, 형. 보스턴보다는 낫잖아. 이번에는 우리가 배에 몰래 들어온 게 아니야. 나중에 선원들이 배에 타면 도와달라고 하면 되잖아.”

“그래, 긍정적으로 보자고.”


결국 헨리가 문 여는 걸 포기했다. 나는 그래도 실버 선장이 우리를 진심으로 공격하지 않았다는 점에 안도했다.


정말 죽일 생각이었으면 진작 총을 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나와 헨리만 있었던 그 창고에서, 바닥에 있는 문이 조금씩 열리는 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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