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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스노우

에드거 앨런 포는 작가로 살고 싶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완결

제이스노우
작품등록일 :
2023.07.02 10:33
최근연재일 :
2023.09.2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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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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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25. 병 속에서 찾은 수기 (7)

DUMMY

백작의 배는 바타비아 호보다는 작았지만 수십 명은 탈 수 있을 만큼 컸다. 나와 헨리는 배에 올라가자마자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마침 영국에서 오는 길에 자네를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물귀신이 되었을 거야.”


백작이 나를 놀렸다. 나는 젖은 옷을 갈아입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헨리는 살았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술부터 찾았다.


백작이 직접 헨리에게 술을 건넸다. 그러면서 백작이 헨리를 훑어봤다.


“자네가 에디의 형이라고?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에디를 후원한다는 사업가인가요?”

“그렇지. 어쩌다 이렇게 됐나?”


헨리는 할 말 없다는 듯 고개만 젓고는 술을 들이켰다. 백작은 그의 표정을 살피더니 어깨만 으쓱거린 뒤 내게 물었다.


“말해봐, 에디. 바다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 모양이 된 거야?”

“사연이 길어요.”

“누구나 사연이 있지. 아직 갈 길이 머니까 들어보자고. 자네가 겪은 일이 무척 궁금한데.”


결국 나는 내가 겪은 일련의 사건을 모두 털어놓았다. 보스턴에서 만난 에드워드의 수상한 행동, 블랙아이 섬에서 겪었던 일, 그리고 정체 모를 배까지.


이야기를 듣던 백작은 이내 크게 웃었다.


“그러니까 에디 자네는 어떤 이상한 배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건진 줄 알았는데 그대로 바다에 빠져 죽을 뻔했다는 거지? 그걸 구한 사람이 나라고?”

“네, 맞아요.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라고요.”

“참 놀라운 경험이군. 자네라면 충분히 그 경험을 글로 쓸 수 있겠어. 다음 글도 기대하지. 유령선 덕분에 목숨을 건진 사내 이야기라. 듣기만 해도 흥미롭군.”


유령선. 나는 그 정체 모를 배에 있던 선원들이 산 사람과는 전혀 다르다는 걸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유령선이라고 하니 기분이 묘했다.


그러면서 백작이 내게 유리병을 건넸다. 바타비아 호의 선장들이 쓴 종이가 들어있는 유리병 말이다.


“이것도 그 유령선에서 가져온 병이지? 얼른 원래 자리로 돌려놓으라고. 안 그러면 그 유령선이 자네를 계속 쫓아올 테니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유령선에 대한 전설 모르나? 유령선에 있는 물건을 함부로 가져온 사람을 유령선이 계속 쫓아다닌다는 전설이지.”

“처음 듣는데요?”

“내가 방금 지어낸 전설이니까. 하지만 자네에게 좋지 않은 일은 확실하니까 빨리 원래 자리로 돌려놓으라고. 정말 유령선이 찾아오기 전에.”


백작이 한 말은 농담이었지만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백작의 말처럼 인신매매했던 배에서 내가 유리병을 발견했을 때 유령선이 덮치지 않았나.


그런데 이제 유리병은 내가 갖고 있었다. 마치 나를 따라다니는 듯이 말이다. 믿기 싫었지만, 그건 유령선의 저주였다.


“바다까지 나와서 저주에 걸리다니.”

“저주? 아하, 에디 자네는 유령선의 저주에 걸렸다고 생각하나? 그럼 저주를 풀어야지.”

“어떻게 풀어야 하는데요?”


백작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내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그게 무슨 의도인지 몰라 따뜻한 차만 마셨다. 머리가 몽롱해졌다.


백작이 은밀한 말투로 내게 알려줬다.


“저주를 푸는 건 어려워, 에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그러지 말고 저주를 다른 사람한테 넘기는 건 어때? 정말 저주라면 다른 사람한테 넘겨야 자네가 살 수 있어.”

“그걸 누구한테 넘겨요?”

“당연히 자네를 이렇게 만든 사람한테 넘겨야 속이 편하지 않겠나?”


나는 에드워드를 떠올렸다. 그가 은밀하게 블랙아이 섬에서 전하려고 했던 그 상자는 이제 기억에 없었다. 그게 무엇인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와 형을 인신매매로 팔아넘기려고 했던 그의 의도는 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만 생각하면 정말 끔찍했다.


내 분노를 이해한 백작이 제안했다.


“복수하고 싶다면 도와주지. 나는 자네의 후원자이잖아. 내 후원을 받는 자네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건, 내게도 충분히 모욕적인 일이니까.”

“하지만 그 사람을 어떻게 만나야죠?”

“찾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 에디. 어떻게 저주를 넘길지 고민하라고.”


나는 헨리를 쳐다봤다. 형은 취기가 올라온 얼굴로 나와 백작을 바라봤다. 그도 나와 백작의 대화를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 * *


보스턴 항구에 도착한 나와 헨리, 백작은 곧장 에드워드부터 찾기로 했다. 항구에 도착할 무렵에는 수평선 너머로 아주 조금씩 햇살이 나타나고 있었다.


배에서 내린 나는 헨리와 함께 곧장 항구에서 거리로 나왔다. 그 뒤로 백작이 뒤따랐다.


“에드워드가 있는 곳을 알아?”

“아직 자기 사무실에 있을 거야.”

“그 사람은 이렇게 이른 새벽부터 사무실에서 일해? 그렇게 부지런해야 나쁜 짓도 꾸미겠지.”


내가 빈정댔는데도 헨리는 어쩐지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분노를 터뜨리거나 결의에 찬 눈빛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걷기만 했다.


나는 그런 헨리의 모습을 힐끗 쳐다보다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 형이 진실을 말해주길 바랐다.


“솔직히 말해줘, 형. 지금 에드워드가 사무실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아?”

“내가 그 사람 밑에서 오랫동안 일했으니까.”

“정말 그걸로 아는 거야?”

“무슨 말이야, 에디?”

“그 사람한테 잘못한 건 없고?”


헨리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어떤 말도 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있었지만 눈은 불안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백작은 바로 뒤에 있으면서도 나와 헨리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내가 이어 말했다.


“형 매일 술 마시잖아. 술 살 돈은 어디서 생겼어? 혹시 에드워드한테 빌린 거야?”

“···그래, 맞아.”

“얼마나?”

“몰라.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아. 적어도 수백 달러는 돼.”


나는 한숨만 내뱉었다. 왜 형이 이렇게 위험한 일을 맡으려고 했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형은 에드워드에게 진 빚 때문에 이 일을 시작한 것이다.


아마 에드워드도 일부러 이 더러운 일을 형에게 맡겼을 것이다. 이미 빚 때문에 형이 순순히 일했을 테니까. 그리고 형이 일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 때문에라도 에드워드는 처음부터 나와 헨리를 처리할 작정이었을 것이다. 그게 가장 편안하고 깔끔한 방법이니까.


“솔직히 말해줘서 고마워, 형. 처음부터 형이 왜 에드워드한테 이런 부탁을 받았는지 궁금했었어.”

“명목 없다, 에디. 이런 일인 줄 알았으면 하지 않았을 거야.”

“그렇게 술을 진탕 마시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나와 형은 할 말이 더 있었지만 우선 에드워드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우리는 곧 거리를 나서서 에드워드의 사무실로 향했다.


에드워드의 사무실은 항구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2층 목조건물이었는데, 정문에는 <바타비아 무역 사무소>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근데 바타비아는 무슨 뜻이야?”

“에드워드의 선조가 네덜란드 사람이었대. 가문 대대로 무역을 했었는데, 식민지 인도네시아에서 제법 잘 나갔나 봐. 거기 도시 이름을 따왔대.”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식민지화하면서 수도 암스테르담과 연결하는 항구 도시를 개발하였다. 그곳이 바로 바타비아였다.


나는 헨리의 말을 듣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선조가 식민지에서 무역을 했으니까 자기도 여기서 무역을 하는 거네.”

“무슨 뜻이야, 에디? 미국이 식민지였던 때를 말하는 거야? 그게 에드워드랑 무슨 상관이야?”

“상관없어. 근데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서 선조니 뭐니 가문에 있었던 일을 끌고 오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선조는 유럽에 있었으면서 굳이 여기 미국까지 와서 그 일을 들먹인단 말이야.”

“전에 그런 사람을 본 적 있어?”


과거의 영광이든 망령이든 그 무엇에 사로잡혀서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었다. 나는 웨스트포인트에서 그런 사람들을 봤지만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른 질문을 했다.


“에드워드는 이 시간까지 사무실에서 뭘 해?”

“아마 늦게까지 도박했었을 거야. 술도 진탕 마시면서.”

“설마 그 사람이랑 도박도 했었어?”

“아니. 나는 도박은 못하겠더라고.”

“나도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안 할 줄 알았어.”


그 말에 헨리가 웃었다. 어쨌든 에드워드는 안 하는 짓이 없었다. 하지만 그게 우리에게는 기회였다. 나와 헨리는 곧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로 들어간 우리는 도둑고양이처럼 은밀하게 움직였다. 사무소 곳곳에서 에드워드의 사람들이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늦게까지 술을 마셨는지 탁자에 술잔이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그들을 살피던 헨리가 먼저 움직이면서 내게 따라오라 손짓했다.


2층으로 올라간 나와 헨리는 조용히 사무실 문 앞에 섰다. 나는 어쩐지 묘한 익숙함이 느껴졌다. 그건 마치 배에서 짐을 옮겼을 때와 비슷했다.


그리고 사무실 문을 여니 헨리의 말처럼 에드워드가 있었다. 그는 술에 취한 채 곯아떨어져 우리가 들어오는지도 몰랐다.


입을 쩍 벌린 채 자는 그에게 다가갔다. 헨리는 미리 준비한 밧줄로 그의 팔다리를 묶었다. 아예 의자까지 같이 묶었다.


깜짝 놀란 에드워드가 얼른 눈을 뜨고는 소리치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밧줄과 같이 미리 준비한 수건으로 에드워드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형을 도와 에드워드를 더 밧줄로 묶었다.


“상자가 도중에 문제가 생겨서요. 가서 한 번 살펴봐야겠는데요?”


에드워드가 무어라 소리치면서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나와 헨리는 그대로 의자에 묶인 에드워드를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가는 동안 에드워드가 몸을 마구 흔들었지만 밧줄로 단단히 묶어서 헛수고에 불과했다. 나와 헨리는 그를 1층까지 별문제 없이 옮길 수 있었다.


에드워드가 자고 있는 자기 사람들을 향해 소리치려고 했지만 누구 하나 잠에서 깨지 않았다. 헨리는 그런 그를 비웃었다.


“마음껏 해보라고. 여기라면 나도 훤히 아니까.”


그리고 무사히 사무소로 나왔을 때, 백작이 묶여 나온 에드워드를 마치 박제된 동물 보듯이 흥미롭게 쳐다봤다.


“놀랍군, 에디. 자네가 이런 짓을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행동이 점점 과감해지는군.”

“레이놀즈 당신이랑 있으면 이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요.”

“복수는 늘 짜릿하지. 하지만 조심해야겠어.”

“뭘요?”


백작이 사무실 쪽을 가리켰다. 나와 헨리가 동시에 고개를 2층 창가를 바라봤다. 거기에는 바타비아 호에서 만났던 창백한 얼굴의 하인이 서 있었다.


그는 나와 헨리, 그리고 묶여 있는 에드워드를 부릅뜬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창가에서 멀어졌다.


헨리가 그 모습을 보고는 당장 에드워드를 들어 올렸다.


“젠장, 에디! 뛰어! 얼른!”

“이 사람을 들고 어떻게 뛰어?!”

“빨리 움직이기나 하라고!”


그때 우리가 한 짓은 너무나 무모했다. 만약 형이 술에 덜 취했다면, 그리고 내가 배에서 차를 마시지 않았다면 그런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와 헨리는 에드워드를 들고 보스턴 항구까지 열심히 뛰었다. 뒤에서 죽음이 쫓아오는 것처럼 정말 열심히 뛰었다.


뒤에서 함께 따라오던 백작은 이 상황을 즐겼다.


“이거 정말 재미있는데? 내 평생 이런 경험은 처음이야.”

“하나도 재미없어요, 레이놀즈.”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에디. 더 열심히 뛰어야 해. 안 그러면 항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잡힐 테니까. 잡히면 골치만 아프다고.”


그러면서 백작이 에드워드의 사무실을 가리켰다. 점점 멀어지는 사무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그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몽둥이며 칼이며 온갖 무기를 들고 있었다. 바로 앞에 창백한 얼굴의 하인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그 모습에 나와 헨리는 죽기 살기로 뛰었다.


간신히 항구에 도착한 나와 헨리는 곧장 백작의 배에 올라탔다. 백작이 선원들에게 손짓하니 배는 곧장 출항했다.


갑판에 놓인 에드워드가 여전히 의자에 묶인 채 몸을 마구 흔들었다. 백작은 그 모습을 보고는 귀찮다는 듯 입을 틀어막았던 수건을 뺐다.


한참 기침을 내뱉던 에드워드가 우리를 보고는 오리처럼 꽥꽥 소리쳤다. 그 멋졌던 콧수염은 진작 엉망진창이 되었다.


“이 망할 자식들! 나한테 이딴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아?! 헨리! 네 놈은 내 은혜를 모르고도 이딴 짓을 해?!”

“그러는 당신은 나랑 동생을 팔아넘기려고 했잖아! 간신히 도망쳤다고!”

“하! 네 녀석이 내게 진 빚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싸지! 네 몸값은 백 달러도 안 돼. 알아들어?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워야지!”

“바타비아 호의 선장들도 그렇게 사람들 몰래 처리했지?”


내가 묻자 에드워드가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처음에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다시 말했다.


“바타비아 호의 선장들도 몰래 처리했잖아. 블랙아이 섬에서 만났던 그놈들이 선장의 옷들을 가지고 있는 걸 봤어.”

“망할 자식들! 잘 좀 처리하라고 했더니 그딴 식으로 나와!”

“당신 무슨 짓을 꾸몄던 거야? 당신이 무슨 짓을 꾸몄으니까 바타비아 호의 선장들이 수상하게 여겼을 거 아냐? 그래서 모두 처리했지?”

“하! 물건 좀 몰래 빼돌리려고 했더니만 그놈들이 자꾸 들쑤시는 바람에 내 선에서 처리했다. 알겠냐, 꼬맹아?”


만약 이 사실이 보스턴 항구에 알려지면 에드워드는 더는 활동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에드워드는 끌려왔을 때와 달리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에드워드가 고갯짓으로 점점 멀어지는 항구를 가리켰다.


“지금이라도 날 풀어줘. 내 부하들이 여기 와서 너희들을 바다에 처넣기 전에 말이야.”


항구를 보니 에드워드의 사람들이 보트를 타고 백작의 배에 접근했다.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보트 세 척에 나눠 타서는 열심히 노를 젓고 있었다.


그들은 에드워드의 말처럼 살기 가득한 기세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에드워드가 그 모습을 보고는 백작을 조롱했다.


“이봐. 이 배는 당신 거지? 이 멍청한 놈들 도와줬다가 곤란해지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라고.”

“에디, 이제 놈을 풀어줘.”


백작이 내게 말했다. 그러자 헨리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항변했다.


“잠깐만요! 이렇게 끝낼 거면 처음부터 데려오지 않았다고요!”

“빨리 풀어주라고.”


헨리가 다시 저항하려고 했지만 백작은 내게 단검을 건넸다. 직접 풀어주라는 의미였다. 그 모습을 에드워드가 보더니 승리감에 취해 웃었다.


나는 백작에게 단검을 받았다. 그리고 점점 다가오는 보트들을 바라봤다. 백작의 배는 항구에서 멀리 나왔지만, 보트는 끈질기게 따라왔다.


결국 나는 에드워드를 묶었던 밧줄을 끊었다. 그 모습에 헨리가 할 말을 잃고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지금까지 한 행동은 한바탕 소동에 불과했다.


“이제야 정신을 차렸군. 멍청한 짓은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아.”


에드워드가 밧줄이 묶였던 몸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천천히 난간으로 향했다. 그는 다가오는 보트에 여유롭게 손까지 흔들었다.


“가져가야 할 게 있는데.”


자기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던 에드워드가 내 말을 듣고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에게 유리병을 건넸다.


종이가 담긴 유리병을 보고는 에드워드가 콧방귀를 뀌었다.


“뭐야, 이건? 이딴 게 뭐라고 나한테 주지?”

“바타비아 호의 선장들이 남긴 수기들이지. 당신이라면 읽어볼 필요가 있겠는데?”


그때 에드워드의 콧수염이 움찔거렸다. 그가 무슨 말을 내뱉기도 전에 나는 그를 힘껏 난간에서 밀었다. 내 행동에 헨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백작이 내게 단검을 건넨 진짜 이유는 에드워드를 풀어주라는 뜻이 아니었다. 저주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내가 직접 행동하라는 뜻이었다.


첨벙!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에드워드가 바다로 떨어졌다. 바닷물이 사방으로 퍼지더니 이어 흠뻑 젖은 그가 수면으로 올라왔다.


“이 망할 자식! 보스턴에 발도 붙일 생각 마라! 너희 형제 모두!”


에드워드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치면서 들고 있던 유리병으로 수면을 내리쳤다. 그 사이 백작의 배는 더 멀어졌다. 보트는 에드워드에게 가까워졌다.


“바다에 처넣어서 속은 시원한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이대로 끝나는 거야?”


헨리가 아쉬움을 숨기지 않고 내 곁으로 와 난간에 기댔다. 나와 헨리는 계속해서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에드워드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에드워드가 보트에 올라탈 때쯤에는 이미 그가 손바닥만큼 작아졌을 때였다. 사람들이 바다에서 에드워드를 올리는 모습을 나는 지켜봤다.


그리고 동이 틀 무렵 , 나는 바다에서 무언가가 솟구치는 걸 목격했다. 그건 에드워드의 보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나타났다.


나는 처음에 그것이 상어나 고래인 줄 알았다. 그러나 바다에서 올라온 그것은 그런 동물 따위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크고 위협적이었다.


다름 아닌 유령선이었다. 블랙아이 섬에서 봤던 그 배 말이다. 그 배는 수면으로 솟구쳐 오르더니 빠르게 에드워드의 보트를 향해 돌진했다.


콰앙!


사람들의 비명과 함께 끔찍한 소리가 바다에 퍼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곧장 박살 난 보트와 함께 바다로 처박혔다.


그리고 유령선은 다시 바다로 가라앉았다. 마치 수면에 있는 먹이를 낚아채는 물고기처럼 말이다. 나는 그 모습을 분명히 목격했다.


“방금, 봤어? 저거 지금 봤냐고?”


방금 상황에 넋이 나간 헨리가 제대로 말도 못 하면서 바다를 가리켰다. 그도 나처럼 유령선이 에드워드를 집어삼키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저 배는 저주를 내리는 게 아니라 재물이 필요했던 모양이군.”


백작이 내 곁으로 와 바다를 살피면서 말했다. 이제 바다에는 보트 잔해 몇 개만 둥둥 떠다닐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자네가 가져온 유리병 말이야. 그건 미끼였어. 미끼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낚았던 거야. 자기네들이랑 똑같은 처지로 만들려고 말이야. 전형적인 유령선의 전설이군.”

“그것도 지어낸 전설인가요?”


백작은 그저 웃기만 했다. 나는 그의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백작은 유령선이 사라진 바다를 보면서 가볍게 난간을 두들겼다.


“이제 끝났군. 마음 편히 자네의 글을 기다려도 되겠어. 이번 경험으로 한 번 잘 써보라고.”

“궁금한 게 있어요.”

“뭐지?”

“혹시 알고 있었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백작이 내 곁에서 멀어졌다. 그는 흥얼거리며 콧노래까지 불렀다.


태연한 백작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쩌면 그가 이미 이 모든 상황을 알고 있던 게 아닐까 의심했다. 마치 이 사건을 내가 겪길 바라면서 말이다. 물론 내 착각일 것이다. 그러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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