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먼 우주에서 돌아오는 중 ☽

Noces

웹소설 > 일반연재 > 시·수필

이웃별
작품등록일 :
2018.12.11 16:54
최근연재일 :
2023.12.29 23:10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475
추천수 :
42
글자수 :
13,685

작성
18.12.25 13:45
조회
59
추천
5
글자
2쪽

티파자 / 2.회귀

DUMMY

몇 걸음 걸으려니 압생트 향기에 목이 아리다. 그 회색빛 융단은 시선이 닿는 폐허 끝까지 펼쳐져있다. 열기 아래에서 발효된 압생트 향유는 더욱 풍부하고 알싸한 정수가 되어 땅에서부터 태양까지, 온 세상에 스며들어 하늘까지 취하게 만든다.

한 걸음 한 걸음, 사랑과 욕망을 만나러 앞으로 나아간다. 위대해지기 위한 쓰라린 철학이나 교훈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여기에서는 태양과 저 입맞춤들, 야생의 향기들 외에는 모두 부질없게 느껴진다. 이곳은 혼자 머물기엔 좋은 장소가 아니다. 나는 주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왔고, 줄곧 그들의 밝은 미소 속에 피어나는 애정을 엿보곤 했다. 이곳에서 질서라든지 절도는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나는 바다와 자연에 온전히 마음을 빼앗긴 철저한 무신론자일 뿐이다.

부서진 유적지에 내린 봄과의 혼인잔치를 통해 폐허는 인간에 의해 강요된 형식을 벗어던지고 본연의 돌이 되어, 자연으로 귀향한다. 이 방탕한 딸들을 맞이하기 위해 자연은 꽃들을 흐드러지게도 피워놓았다. 유적지 광장의 포석들 사이로 헬리오트로프는 둥글고 순결한 머리를 내밀고, 제라늄들은 집들과 사원, 공공장소였던 곳에 피를 흘린 듯 붉게 피어났다. 수많은 학문을 쌓은 이들이 결국은 신에게로 귀착하듯이 수많은 세월의 풍파가 폐허를 어머니의 집인 자연으로 회귀시켰다. 마침내 오늘, 폐허는 과거의 손을 놓고 불가항력에 이끌려, 사그라지게 마련인 사물의 중심부로 무방비로 걸어들어 간다.

1597-absinthe-2.jpg

Pont-Wild-Absinthe-I-110KB.jpg

식물 압생트(上)와 술 압생트(下)

Absinthe-glass.jpg

fairyroom_accoutrements.jpg


작가의말

Absinthe 압생트 (부연설명) :  

압생트는 [초록색 요정]이라고도 불리는, 알콜 농도 약 40~70도 정도의 독주입니다. 예술가들이 사랑했다는 그 술이죠. 알콜 함유량이 높은데다가 저렴해서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너무 독해서 구멍 난 티스푼에 각설탕을 올려 적셔 마셨다고 해요. 

독주와 예술가가 결합되니 결과가 어떨까요? 고흐가 압생트를 즐겨 마셨고, 귀를 잘랐을 때도 압생트를 마신 상태였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그만큼 압생트는 마약이니 환각제니 여러 좋지 않은 수식어가 따라다녔습니다. 실제로 압생트는 방향성 식물인 압생트(향쑥)를 베이스로 만든 술인데 향쑥 자체에 환각성분이 약간 들어있다고 합니다. 

카뮈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고, 작가는 그 점을 중의적으로 표현했다 생각합니다. 방향성 식물 압생트에서 예술가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한 독주 압생트를 연상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은 향쑥 말고 압생트로 그대로 번역하였습니다. 


참고로 압생트(식물)는 이미 3000년 전부터 약용식물로 이집트 등지에서 널리 알려진 허브라고 합니다. 술로 유명해진 것은 고작 200년! 



- 원문 

Au bout de quelques pas, les absinthes nous prennent à la gorge. Leur laine grise couvre les ruines à perte de vue. Leur essence fermente sous la chaleur, et de la terre au soleil monte sur toute l'étendue du monde un alcool généreux qui fait vaciller le ciel. Nous marchons à la rencontre de l'amour et du désir. Nous ne cherchons pas de leçons, ni l'amère philosophie qu'on demande à la grandeur. Hors du soleil, des baisers et des parfums sauvages, tout nous paraît futile. Pour moi, je ne cherche pas à y être seul. J'y suis souvent allé avec ceux que j'aimais et je lisais sur leurs traits le clair sourire qu'y prenait le visage de l'amour. Ici, je laisse à d'autres l'ordre et la mesure. C'est le grand libertinage de la nature et de la mer qui m'accapare tout entier. Dans ce mariage des ruines et du printemps, les ruines sont redevenues pierres, et perdant le poli imposé par l'homme, sont rentrées dans la nature. Pour le retour de ces filles prodigues, la nature a prodigué les fleurs. Entre les dalles du forum, l'héliotrope pousse sa tète ronde et blanche, et les géraniums rouges versent leur sang sur ce qui fut maisons, temples et places publiques. Comme ces hommes que beaucoup de science ramène à Dieu, beaucoup d'années ont ramené les ruines à la maison de leur mère. Aujourd'hui enfin leur passé les quitte, et rien ne les distrait de cette force profonde qui les ramène au centre des choses qui tombent.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 작성자
    Personacon 二月
    작성일
    18.12.28 10:28
    No. 1

    작가 선생님! 압생트는 녹색 증류주 아닌가요? 그림에는 식물인데 비유인가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8.12.28 21:25
    No. 2

    압생트 하면 당연히 술이 먼저 떠오르니까 설명을 넣을까 하다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 그냥 스리슬쩍 지나갔는데.. 마침 잘 지적해주셨어요^^ 부연설명 첨부하였습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79 서백호
    작성일
    18.12.29 19:14
    No. 3

    작가님, 술마시면 안되는 호랑이는 보기만해도 괴로워요. ㅠ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8.12.29 23:50
    No. 4

    다행이에요. 호랑이님을 오래 볼 수 있어서...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8 검고양이
    작성일
    18.12.30 00:29
    No. 5

    이웃별님 건필하시고 선호작으로 올릴 께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18.12.30 23:43
    No. 6

    카뮈의 책 중에서는 별로 유명하지 않지만 좋은 글입니다. ^^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Noces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제밀라 / 7. 극복 +2 23.12.29 12 2 3쪽
14 제밀라 / 6. 죽음 +2 23.12.28 14 2 4쪽
13 제밀라 / 5. 대면 23.12.27 16 2 2쪽
12 제밀라 / 4. 이치 +2 23.12.26 15 1 2쪽
11 제밀라 / 3. 편재遍在 23.12.23 16 1 2쪽
10 제밀라 / 2. 방황 +2 23.12.22 17 2 2쪽
9 제밀라 / 1. 침묵 +2 23.12.21 19 1 2쪽
8 티파자 / 8.퇴장 +1 19.02.04 26 3 2쪽
7 티파자 / 7.기쁨 19.01.23 23 3 3쪽
6 티파자 / 6.긍지 19.01.13 26 3 3쪽
5 티파자 / 5.영광 +3 19.01.03 40 4 2쪽
4 티파자 / 4.완성 +2 18.12.28 41 4 2쪽
3 티파자 / 3.폐허 +8 18.12.27 42 4 2쪽
» 티파자 / 2.회귀 +6 18.12.25 60 5 2쪽
1 티파자 / 1.입장 +7 18.12.18 109 5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