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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손 님의 서재입니다.

무주택자 무신론자 무연고자 김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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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손
작품등록일 :
2020.05.11 20:07
최근연재일 :
2020.10.02 23:14
연재수 :
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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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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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
글자수 :
414,107

작성
20.05.29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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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8화 - 뜻밖의 손님 (1)

DUMMY

며칠 뒤, 사람 셋을 잔인하게 살해한 여자의 이야기가 뉴스를 통해 보도됐다.

여자는 창고에서 두 명을, 그리고 강원도 산골 마을의 한 민가에서 한 명을 각각 살해했고, 경찰에 붙잡힌 뒤 범행을 자백했다는 내용이었다.

며칠이나 함께 붙어있었던 여자가 살인범으로 몰릴 때, 나와 천둥이는 은근슬쩍 경찰서에서 풀려났고, 여자와 우리의 연관성은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어디서 걸려오는 연락도 없었다.


하지만 미심쩍은 느낌은 그런 사실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창고에서 죽은 두 남녀에 대한 보도는 언론에서 특히 더 자극적으로 다뤘는데, 두 사람 모두 토막 살인된 채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냥 살인도 아니고 토막 살인이다.


우리가 한 짓이 아니라서 무서운 게 아니었다. 너무 끔찍하게 살해돼서 무서운 것도 아니었다. 분명히 자신이 하지 않은 짓을 진미경이 인정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도대체 왜?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을 왜? 더군다나 언론에 보도돼서 악마 취급을 받게 될 일을 왜? 저건 분명히 내가 모르는 거대한 힘이 작용한 결과였다.


“저런 것들은 가스실에 처 넣어버려야 되는 건데.”


친구 의명이었다. 밖에 나가기 겁나 집에만 붙어 있었더니 녀석이 놀러 와 있었다.

저건 저 사람이 한 짓이 아니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겉으로는 나도 욕 한 마디 보탤 수밖에 없었다.


조직에서 모든 걸 뒤집어 쓰라고 했을까? 아니면 혼자서 조직을 상대하기가 겁이 나서 감옥에 갇혀 있는 게 더 안전하다고 판단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경찰에서 조직의 사주를 받아 진미경을 범인으로 몰아버린 걸까?


답을 알 수가 없었다. 내게 남은 건 의문과 그 의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뿐이었다.


“야, 근데 너 이렇게 계속 쉬어도 되는 거냐? 회사에서 뭐라고 안 해?”


의명이가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내게 물었다. 사실, 회사에는 일주일 정도 쉬겠다고 말을 해놓긴 했는데,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하지는 못해서 어쩌면 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진이 눈 앞에 있었기에 뭔가 아쉬웠지만,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었다.

밖에 나가는 것이 아직도 두려웠다. 택배 박스를 안에 들여놓을 때도, 문 밖에 아무도 없다는 걸 몇 분 이상 확인해야만 잠깐 동안이라도 문을 열 수 있었다.


“연차는 직원의 정당한 권리야, 회사에서 뭐라고 하면 안 되지.”

“아니, 별다른 이유도 없이 연속으로 일주일 가까이 쉬면 누가 좋아하겠냐?”

“해외 여행 갈 때 2주일씩 쉬는 사람들도 있는데, 뭐.”

“넌 해외 여행 간 것도 아니잖아.”

“꼭 해외에 가야만 오래 쉴 수 있다고 누가 그러는데?”

“걱정돼서 하는 소리야, 걱정돼서. 꽤 오래 붙어 있었던 회산데 짤리면 아깝잖냐.”

“지금은 그냥 아무 것도 하기 싫어서 그래.”

“너 정말 괜찮은 거지?”

“응?”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지?”

“없었어. 그냥 번아웃이야, 번아웃.”

“다음주부터는 회사 나가. 일 하기 싫어서 그런 거면 그냥 출근한 다음에 땡땡이 치란 말야. 괜히 집에만 붙어 있으면 더 나가기 싫어진다고 이 자식아.”

“아, 알았어. 잔소리 좀 그만해.”

“아, 진짜, 잔소리가 아니라 너 걱정돼서 해 주는 따뜻한 조언이잖아. 좀 새겨들어, 임마.”

“네, 알겠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현자, 황의명님.”

“체, 입만 살아가지고. 아무튼 일 하기 싫은 거 말고는 아무 일 없는 거지?”


의명이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든 말하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친구끼리는 무엇이든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거라고.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아무 말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제일 친한 친구까지 이런 더러운 조직 일에 끌어들이긴 싫었다.

원래는 집에도 오지 말라고 했는데, 녀석이 너무 막무가내로 쳐들어와서 어쩔 수 없이 집에 들인 거였다. 적당히 얘기하다가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이 일에 끌어들인 천둥이 이야기를 하자면, 녀석은 의외로 강심장이었다. 경찰서에서 풀려난 뒤 병원에서 발가락 치료를 받고 그 다음날부터 바로 회사에 출근했다. 무슨 깡으로 출근을 하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었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놈들이면 집에만 있는다고 피하지도 못할 테니까.”

“아니, 그래도 밖에 돌아다니는 게 훨씬 위험할 것 같은데.”

“형님아, 형님은 형님대로 생각해. 나는 나대로 알아서 판단할 테니까.”

“그래, 알았다.”

“유선형 대리님은 퇴사일을 조금 앞당겨서 일찍 나갔어.”

“아, 그래?”

“어떻게 말도 안 해주고 장기 휴가를 쓰냐고 나한테 뭐라고 하던데? 고백 받았다면서?”

“아··· 그게··· 그런 일이 있긴 했었지.”

“아이고, 형님아. 그런 건 그 자리에서 답을 했어야지.”

“너는 지금 그게 중요하냐?”

“나 같으면 그 자리에서 오케이 했겠다. 아니지, 여자 입에서 그런 말 나오기 전에 내가 먼저 고백했을 건데.”


참 신기했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일을 겪고도 마음 편히 밖에 돌아다닐 수 있다니. 어느 지점에서 또 납치될 지 아무도 모르는 일인데, 도대체 무슨 베짱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집에만 있는다고 놈들이 못 찾아올까? 이미 내 집이 어딘지도 다 알고 있을 텐데. 게다가 영영 집 안에만 있을 수도 없었다.

슬프지만 회사에 언젠가는 나가야 돈을 벌고, 돈을 벌어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의명이는 내가 걱정됐는지 갈 생각을 안 했다. 나도 그런 녀석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보내기가 싫었다. 그래서 밤이 깊어질 때까지 술을 마시며 얘기를 계속했다.


“야, 너 이 시키, 너, 분명히 말 안 하는 게 있어.”


술에 얼근히 취한 의명이가 투박하게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우리가아··· 몇 녀언을 알고 지냈는데··· 어? 내가 그냥 딱! 보면 척! 이지, 그냥. 너어!”

“아, 왜에··· 시끄러우니까 좀 조용히 얘기하라그!”

“섀키가··· 쯧. 내가 말 좀 허겠다는데, 조용히 하는 게 중요하냐?”

“아, 몰라. 머리 아파.”

“너, 무슨 일 있는지 빨리 말해. 너 그 무슨 차 사고 났을 때부터 쫌 이상해. 알아?”

“미친, 눈치는 빨라가지고.”

“맞지? 맞지? 내 말 맞지? 캬~ 이것 봐라. 내가 거의 이런 건 점쟁이 수준이거덩. 어? 그래서, 무슨 일인데? 그 사고 난 다음에 또 뭔 일이 있었지, 그쥐?”

“아니거든.”

“맞거든? 맞거든?”


걸걸한 녀석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술에 많이 취했는지 벽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시끄러웠다.


“아, 조용히 좀 하라니까아!”

“아, 이번에는 내가 생각해도 좀 컸나? 으히히히히히!”


기이한 웃음소리조차 벽을 때렸다. 이 정도면 항의 민원이 들어와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야, 제발 목소리 좀 낮추자. 응?”

“니가 말해줄 때까지 계속 떠들 거야. 알아?”

“아 왜 술 취해가지고 남의 집에서 행패냐고!”

“섭섭한 소리 집어쳐, 섀캬. 우리가 남이야? 남이야?”


어느 쪽인지 확실치 않은 쪽 벽에서 쿵쿵 소리가 났다. 옆 집에서 더 이상 못 참고 항의 표시를 한 것이다. 작은 오피스텔이라 거실을 감싸주는 다른 방이 없어 소음이 더 잘 전달되는 게 사실이었다.

나는 녀석을 바닥에 쓰러뜨리고 입을 막았다. 평소 같으면 잘 하지 않는 행동인데, 술기운에 분노가 올라 그렇게 해 버렸다. 의명이가 격하게 저항하면서 차려놓았던 작은 술상이 엎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더 이상 주변에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


“읍, 읍!”

“가만 있어! 조용히 하라고!”

“읍읍읍!”


녀석이 다급하게 내 몸을 손으로 쳤다. 숨이 막힌다는 표시로 보여서 얼른 풀어줬다. 녀석이 누운 채로 켁켁대면서 숨을 골랐다.


“야, 괜찮냐?”


걱정이 돼서 물었는데 의명이는 숨이 안정된 이후에도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엎어진 술상을 보기만 했다.


“야, 왜 그래? 아니 나는 니가 너무 시끄럽게 하니까···”

“야, 김무결.”


술기운이 싹 가신 차가운 목소리였다. 눈빛도 표정도 태도도 그랬다.


“아니, 몇 분 전까지 그렇게 떠들다가 갑자기 왜 그렇게 심각해?”

“방금 나 죽는 줄 알았어.”

“아니, 말 좀 그만 하라고 입 막은 거잖아··· 그리고 바로 풀어줬잖아.”

“너는 니가 그렇게 할 때 어떤 표정인지 못 봤지?”

“응?”

“그냥 말 좀 그만 하라고 장난스럽게 입을 막는 표정이 아니라, 아예 한 마디도 더 못 하게 죽여버리려는 표정이었어.”


그 순간 몸 속에 큰 돌덩이가 쿵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의명이가 한 말이 소름 끼쳐서가 아니라, 그 때 내 감정이 정확히 읽힌 기분이어서 그랬다.

의명이를 죽일 생각은 당연히 없었지만, 순간적으로 살의가 생겼던 건 사실이었다.


“아까는 그냥 장난스럽게 물어봤는데, 너 정말 무슨 일 있어. 나한테 얘기하기 싫으면 어디 가서 상담이라도 받아라.”


알겠다는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너무 미안했다. 또, 유일하게 친한 친구를 잃는 순간인 것 같아서 슬프기도 했다.


“나 간다. 또 보자.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라.”


문을 닫고 나갈 때까지 아무 말도 안 나왔다. 그저 엎어진 술상을 풀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술병 옆에 쏟아진 소주, 엎어진 양은 냄비와 라면 국물. 벽까지 굴러간 술잔과 옆으로 서 있는 술상. 숟가락과 젓가락.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런 일을 겪었다고 이렇게까지 폭력적으로 바뀐 걸까? 아니면 원래 그런 놈이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그런 성향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 걸까? 뭐가 됐든 친구를 두려움에 빠뜨릴 정도로 엄청난 일을 저지른 건 맞았다.


우울한 생각에 조금 더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엉망이 된 거실을 치우기 시작했다. 많이 차린 것도 없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일찍 청소를 끝냈다.


설거지를 하면서 다짐했다. 이것만 끝내고 의명이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아까는 말이 떨어져서 아무 말도 못했지만 사과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고, 용서해주지 않아도 할 말은 없겠지만 적어도 미안하다는 말은 하는 게 도리니까.


수건으로 손에 묻은 물기를 닦고 휴대폰을 찾았다. 주머니에 없어서 어디에 뒀나 싶어 침대 이불을 떠들러 보고 있는데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의명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현관문을 여는 게 두려웠던 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한 순간이라도 빨리 문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녀석이 다시 왔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 타이밍에 다른 사람이 올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


그래서 아무런 고민도 없이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그런데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의명이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질문이 튀어나왔다.


“누구세요?”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여자치고 큰 키에 긴 생머리를 하고 있었다. 야구 모자를 썼는데 얼굴의 반 이상이 그림자에 가려져 있어 살짝 미소를 띤 입술만 보였다. 그리고 그 입술이 움직이며 이런 말을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변소희라고 합니다.”


순간, 문을 연 것이 큰 실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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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화 - 내부 조사 (2) +1 20.06.22 296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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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화 - 김무결의 임무 (4) +2 20.06.12 318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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