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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손 님의 서재입니다.

무주택자 무신론자 무연고자 김무결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수레손
작품등록일 :
2020.05.11 20:07
최근연재일 :
2020.10.02 23:14
연재수 :
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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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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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
글자수 :
414,107

작성
20.07.15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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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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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42화 - 새로운 시작 (1)

DUMMY

“도대체 몇 개나 더 해야 돼요?”

“몇 개 더 해야 되는지 물을 시간에 하나라도 더 하세요.”

“더 이상 못하겠어요.”


바닥에 누운 채로 땀을 뻘뻘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 쉬는 나를 변소희가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왜요?”

“겨우 열 다섯 개라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해요.”

“제 나이에 이 정도면 준수한 거 아니에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변소희의 눈이 깜짝 놀란 듯 커졌다. 물론, 윗몸 일으키기를 열 다섯 개하고 더 이상 못 하는 수준을 준수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지금 이 힘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헛소리라도 지껄일 수 있었다.


“다섯 개만 더 하죠.”

“그냥 오늘은 이만 하죠.”

“그럼 다시 웨이트하러 갈까요?”


이번에는 내 눈이 번쩍 떠졌다. 겨우 그 죽음의 지대에서 벗어났는데 다시 끌려갔다간 몸이 남아나지 않을게 분명했다. 쉴 만큼 쉬기도 했고, 없던 힘까지 끌어 모아서 부들부들 윗몸을 일으켜 세웠다.


“좋아요. 네 개 더.”


***


병원에서는 생각보다 오래 있지 않았다. 5일차, 몸이 어느 정도 안정됐다고 느꼈을 시점에 병원에서 퇴원해도 좋다고 했다. 솔직히 완전히 회복하려면 2~3일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다음 사람을 위해 빨리 방을 빼라는 압박처럼 느껴졌다.


퇴원 후에는 또 어디에서 살아야 하나 막막했는데, 고맙게도 단체에서 돈을 모아 투룸을 얻어주었다. 원래는 천둥이와 둘이 살도록 마련된 곳인데, 어느 날 세 번째 손님이 찾아왔다.


“어? 매니저님, 아니 백태진 님 안녕하세요?”


언제나처럼 무뚝뚝한 표정으로 외투 안 쪽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은 그가 문 앞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해놓고 이런 곳으로 사라져버리면, 내가 못 찾아올 줄 알았습니까?”


사실 정이인의 집에서 일어난 일 이후로 그와의 연락이 의도치 않게 끊겨버렸다. 박도현 씨와 정이인은 각기 다른 병원으로 호송됐고, 외상이 없는 백태진만 현장에 남겨졌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단체에서는 당연히 그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고, 그도 내가 어느 병원에 입원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기에, 우리의 인연은 이 정도에서 끝난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그가 이 곳을 알아내 찾아온 것이었다.


“매니저님!!”


뒤에서 엄청난 소리를 내며 천둥이가 뛰어나와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백태진 씨를 반갑게 맞이했다. 녀석은 그의 소매를 붙들고 어떻게 됐는지 너무 궁금했다는 둥, 몸은 무사하냐는 둥, 이런 저런 인사말을 건넸다. 백태진 씨는 녀석을 보며 살짝 웃는 얼굴이 되었지만,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다시 표정을 굳혔다.


“들어오세요.”

“당연하죠. 그러려고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셋이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백태진이 들고 온 커다란 여행용 가방 두 개가 그의 뒤에 놓여 있었다. 안에 뭐가 들었을지 어떤 식으로 추리해 봐도 불안한 상황이었다.


“별 일 없으셨죠?”


커다란 가방이 말을 걸어달라고 몸부림치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간단한 안부부터 물어보았다.


“음··· 일단 집과 잡이 동시에 없어져 버려서 꽤나 처량한 신세가 됐죠. 그 와중에 정신과 치료도 받았고, 분노 조절 수업에도 처음 나갔어요.”

“아··· 분노 조절··· 분노가 있으시구나···”


갑자기 너무 많은 것을 나누는 그의 태도에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헛소리처럼 중얼거렸다.


“그게, 무조건 욱하는 게 보이는 사람만 분노 조절 수업의 대상이 되는 게 아닙니다. 이건 저도 불과 며칠 전에 배운 거긴 하지만요.”

“아··· 욱하는 성격···”


백태진이 뭐라고 말을 해도 자꾸 그의 등 뒤에 똬리를 틀고 있는 특대형 여행용 가방에 정신이 팔려 있어 입에서 무슨 말이 나가는 지도 알 수 없었다.


“정이인은 당신 덕분에 골절상을 입어서 아직까지 병원에 입원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치료 끝나면 바로 구속 수감될 예정인 건 알죠?”

“네, 그 얘긴 들었어요. 근데···”

“이런 데서 둘이 살면 위험하지 않습니까?”

“아직까지는 별 일 없었어요.”


그런데 웬일로 옆에서 잠자코 듣기만 하던 천둥이가 백태진에게 대뜸 물었다.


“저 가방들은 다 뭐예요?”


백태진은 질문을 한 천둥이를 잠깐 쳐다보더니 다시 내 쪽으로 무뚝뚝한 시선을 준 다음 헛기침을 한 뒤 말했다.


“잠깐 머물 곳이 필요해서 그런데···”


사정을 들어보니 이랬다. 원래 그는 정이인을 위해 일하면서 정해진 날에 월급도 받고 그녀의 집에 살면서 자연스레 거처도 해결되어 있었는데, 막상 그녀가 체포되고 나니 갈 곳이 없어진 것이다.

그것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건데, 문제는 돈이었다. 월급을 받아도 딱히 쓸 곳이 없었던 그는 정보에 밝은 정이인의 제안을 받아들여 월급의 대부분을 다시 그녀에게 맡기고 그녀가 투자하도록 한 것이었다. 그래서 현재 돈이 엉뚱한 데 묶여있어 무일푼 신세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방도 안 줘도 됩니다. 거실에서도 얼마든지 잘 자거든요. 잠도 없어서 늦게 자고 새벽 같이 일어나니까 거실 다니기 불편한 일도 없을 겁니다.”


가방을 보자마자 대충 예상했던 일이긴 한데, 정작 새로운 식구를 들이자니 머리가 아팠다. 선뜻 받아주고 싶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천둥이가 갑자기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 표정도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정이인의 집에 있을 때 두 사람이 나름 가까워 보였는데 왜 대놓고 저런 반응인지 의아했다.


“뭐 그런 걸 물어보고 허락 받으려고 하세요! 당연히 되죠! 그리고 무슨 이런 좁아터진 거실에서 주무신다고 그러세요! 큰 방은 저랑 무결이 형이 같이 쓰면 되니까, 작은 방은 매니저님이 쓰세요! 작은 방에 있는 제 짐은 얼른 옮겨드릴게요!”


그럼 그렇지. 녀석은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나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자기 방으로 가서 짐을 꺼내 내 방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형, 여기 한 쪽 벽에 쌓아놓은 형 물건 저 쪽으로 치워도 되지?”

“어? 응··· 그래···”


그렇게 해서 얼렁뚱땅 백태진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런데 인생 고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집에서 한 달 정도 쉬면서 몸도 꽤 회복이 되었다고 느끼기 시작할 무렵, 이번에는 변소희가 집으로 찾아왔다.

거실에 앉은 그녀는 목을 뒤로 쭉 빼서 작은 방 안을 들여다 보고, 다시 나와 천둥이의 방을 힐끔 훑더니 내게 말했다.


“무결 씨랑 천둥 씨 말고 또 누가 더 살아요?”

“아, 그게··· 정이인 씨 밑에서 일하던 백태진이라는 분이 갈 곳이 없다고 찾아오셨거든요.”

“그런데요?”

“아, 그래서 같이 살게 되었다는 얘기였어요.”

“아··· 그러니까 김무결 씨를 죽일 뻔한 여자 밑에서 일했던 남자를 아무런 의심 없이, 그것도 우리 단체에서 어렵게 모금을 통해 마련해준 이 집에 들이셨다는 거예요?”

“그···렇죠.”


그녀는 모르겠지. 애초에 총에 맞아서 죽을 뻔했던 것도 이 집에 들인 그 남자를 구하러 갔기 때문이라는 것을.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후우··· 알겠어요. 그럼 저도 걱정하지 않도록 노력해 볼게요.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거나 저... 방을 쓰게 된 사람이 조금이라도 수상한 낌새를 보이면 무조건 저한테 알려주셔야 돼요. 알았죠?”

“네, 그렇게 할게요.”

“혹시 위험한 걸 즐기는 스타일이신가요?”

“네?”

“지금까지 김무결 씨가 걸어온 길만 봐도 뭔가 이상하거든요. 냉동 창고에서 어렵게 탈출해놓고 마약 운반책을 따라 산 속으로 간 것도 그렇고···”

“아 참, 진미경 씨는 어떻게 됐어요?”

“아직 1심 재판도 안 끝났는데, 많이 불리해요. 우리 쪽에서 돕는 것도 원치 않아서 거의 손 놓고 있어요.”

“그렇군요.”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오긴 했는데, 마침 말 잘 꺼냈어요.”

“네?”

“아무래도 김무결 씨가 직접 나서야 할 것 같아요.”

“그게 무슨 소리죠?”

“진미경 씨의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는 조직에서 김무결 씨에 대한 감시의 끈을 놓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아요.”

“그럼 제가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나요?”

“그건 아직 몰라요. 다행히 제가 이중 스파이의 역할을 잘 하고 있거든요.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현재 행방을 모른다고 둘러대긴 했는데, 사실 얼마나 더 시간을 끌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죠?”

“일단, 체력부터 기르셔야 할 것 같아요.”


변소희는 그렇게, 이제 겨우 몸을 가눌 수 있게 된 나에게 찾아와서 다음 날부터 체력 훈련을 시작하겠다는 말만 던지고 급하게 사라져버렸다. 역시 기자 일을 하면서 양 쪽 조직에 속해 있다 보니 엄청나게 바쁜 모양이었다.

다음 날, 그녀가 알려준 헬스장으로 찾아갔더니 그녀가 이미 운동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면 티에 트레이닝 바지만 걸친 내 옷차림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좋아 보이는 복장이었다.


“편하게 입고 오랬더니, 딱 그렇게 오셨네요.”

“아시다시피 제가 살림이 거의 없거든요.”

“이걸로 갈아입으세요.”


변소희가 종이 봉투를 건네주며 말했다. 안에는 그녀가 입은 것과 비슷한 색깔과 디자인의 운동복이 들어있었다.


“이런 건 비싸지 않아요?”

“걱정 마세요. 집들이 선물이라고 생각하세요.”

“누가 집들이 선물로 운동복을···”

“싫으면 말구요.”

“싫다고는 안 했는데···”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마자 지옥이 펼쳐졌다. 변소희는 높은 강도로 나에게 온갖 종류의 운동을 시켰다. 처음에는 가볍게 몸을 푸는 운동부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역기를 들고, 난생 처음 보는 모양의 운동 기구들을 거쳐가며 각종 근육들에게 차례로 작별 인사를 고했다.


“이건··· 운동이 아니라··· 고문··· 셀프 고문 기계야.”

“엄살 떨지 말고 세 개 더!”

“으아아아아아!”


정말 이대로 죽는구나 싶은 기분이었다. 고통을 넘어선 무력감이 머리 위에 얹혀진 커다란 바위처럼 온 몸을 내리 눌렀다. 도대체 운동을 하는 인간들은 왜 이런 짓을 하러 이 곳을 주기적으로 찾는지 궁금했다.


두 시간의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마치고 바닥에 쓰러져 누워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변소희가 말했다.


“그럼 이틀 뒤에 봐요.”

“벌써 가세요?”

“이틀 뒤부터는 저 대신 다른 분이 김무결 씨 담당 트레이너 역할을 해줄 거예요.”

“도대체 나한테 이러시는 이유가 뭐예요?”

“흠. 어느 정도 짐작한 게 있어서 따라오신 거 아니었어요?”

“아뇨. 그냥 집 주인이 시키는 거니까 한 건데요.”

“정말 생각이 없으시군요. 내려가서 얘기해요.”

“저는 이틀 뒤까지 이 자세로 있을 예정이라서. 여기서 말씀하시죠.”

“아, 진짜.”


변소희가 픽 웃으며 바닥에 앉았다. 나도 몸을 일으켜 그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각오를 단단히 하셔야 돼요.”

“그러니까 왜요?”

“왜냐하면, 이제 더 이상 조직에서 쫓기는 몸으로 버티기가 힘들어질 거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체력을 기르는 건가요? 도망갈 때 빨리 뛰라고?”

“아뇨. 정 반대예요.”


변소희의 얼굴이 진지함으로 꽉 찼다. 가볍게 던진 농담이 무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 정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돼요, 김무결 씨.”


침을 꿀꺽 삼켰다.


“한 번 표적이 된 이상, 조직에게서 영원히 도망 다니며 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요.”

“그··· 그렇군요.”

“이렇게 된 이상··· 김무결 씨도 조직에 합류를 하는 수밖에 없어요.”


순간, 변소희의 말을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조직···이라면 마약 조직 말씀하시는 거 맞죠?”

“다음 주에 가입식이 있을 거예요.”


갑자기 운동을 했을 때보다 더 몸이 가라앉는 것처럼 느껴졌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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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화 - 새로운 시작 (1) +1 20.07.15 243 2 12쪽
41 41화 - 일단락 +2 20.07.13 251 2 12쪽
40 40화 - 잘못된 선택 +4 20.07.10 252 3 12쪽
39 39화 - 백태진 (2) +1 20.07.08 251 1 11쪽
38 38화 - 백태진 (1) +2 20.07.06 254 2 11쪽
37 37화 - 정이인 (2) +1 20.07.03 266 2 11쪽
36 36화 - 정이인 (1) +1 20.07.01 267 2 12쪽
35 35화 - 내부 조사 (5) +1 20.06.29 279 2 13쪽
34 34화 - 내부 조사 (4) +1 20.06.26 285 2 12쪽
33 33화 - 내부 조사 (3) +2 20.06.24 290 4 11쪽
32 32화 - 내부 조사 (2) +1 20.06.22 295 3 11쪽
31 31화 - 내부 조사 (1) +1 20.06.19 30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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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화 - 새로운 사실 (2) +2 20.06.16 311 6 12쪽
28 28화 - 새로운 사실 (1) 20.06.15 308 4 12쪽
27 27화 - 김무결의 임무 (4) +2 20.06.12 317 3 11쪽
26 26화 - 김무결의 임무 (3) +1 20.06.11 313 4 11쪽
25 25화 - 김무결의 임무 (2) +1 20.06.09 316 5 11쪽
24 24화 - 김무결의 임무 (1) +1 20.06.08 322 5 12쪽
23 23화 - 새로운 단체 (3) +2 20.06.05 335 7 13쪽
22 22화 - 새로운 단체 (2) 20.06.04 347 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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