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수레손 님의 서재입니다.

무주택자 무신론자 무연고자 김무결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수레손
작품등록일 :
2020.05.11 20:07
최근연재일 :
2020.10.02 23:14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20,721
추천수 :
359
글자수 :
414,107

작성
20.06.22 23:52
조회
294
추천
3
글자
11쪽

32화 - 내부 조사 (2)

DUMMY

문의 반대편에는 예상과는 달리 가정집 분위기의 공간이 나타났다. 어리둥절해하며 집 안으로 발을 들이는데, 저절로 신발을 벗고 올라가게 만드는 마루가 시작됐다.

안에 누가 사는 것처럼 밝은 조명 아래 반질반질해 보이는 원목 바닥을 밟으며 더 안 쪽으로 들어가자 평범한 거실이 드러났다. 정이인의 저택처럼 거창한 집이 아니라, 흔히 볼 수 있는 중형 아파트 느낌이었다.

주방도 화장실도 모두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음은 물론, 사람이 사는 곳처럼 필요한 가구나 물건들이 야무지게 들어차 있었다. 정이인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이 곳에 오는 것 같았는데, 도대체 이런 곳을 왜 만들었는지, 그리고 이 곳에서 뭘 하는지 궁금했다.


일반 가정집처럼 꾸며져 있고, 수납 공간이나 물건들도 꽤 많아 이곳 저곳 뒤지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문이란 문도 모두 열어보고 그 방마다 안에 있는 서랍이며 책이며 뒤질 수 있는 건 모두 뒤져봤지만 특별한 건 찾을 수 없었다.


도대체 이 곳은 뭘 하는 곳일까? 비밀 공간까지 찾았는데 그 용도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 너무 답답했다. 거실에 놓인 작은 소파에 털썩 앉아 잠시 생각했다. 이 공간을 보면서 생각을 해야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화장실이야?]


천둥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암호였다. 화장실이냐고 묻는 건, 별 문제 없느냐는 뜻이었다.


[응. 조금 걸려]


곧장 답이 왔다. 조금 여유가 있는 것 같다는 의미였다. 다시 고개를 들어 집 안을 둘러보았다.


정이인이 매일 저녁 이 곳으로 오는 건 거의 확실했다. 그녀가 집에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20분~30분 정도였다. 그렇다면 그 시간 동안 여기 와서 도대체 뭘 하고 가는 건지, 그게 궁금했다.


혹시 텔레비전을 틀면 뭔가 단서가 나오지는 않을까 싶었는데, 채널을 아무리 돌려봐도 평범한 유선 방송이었다. 이런 곳에도 유선 방송을 들였다는 사실이 좀 의외이긴 했지만, 그것 외에 특별한 점은 없었다.


혼자 집에서 즐겨보던 다큐멘터리 채널에서 본능적으로 멈췄다. 특이한 습성을 가진 식물들에 관한 내용이 방송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배경에서 사람의 고함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다큐멘터리의 배경은 인기척이 거의 없을 것 같은 깊은 숲 속이었는데 인간의 소음이 들린다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무심코 다음 채널로 돌리자 요리 프로그램이 나왔다. 그런데도 고함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 텔레비전을 황급히 꺼 버렸다. 그런데도 고함 소리가 들렸다. 사실 그 소리가 희미해서 아파트 밖 저 아래 1층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고함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쪽은 없는지 집 안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녔는데, 그나마 거실에서 가장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설마, 아래 쪽에서?’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친 순간 엎드려 바닥에 귀를 붙여봤다. 역시, 고함 소리가 더 또렷이 들렸다.


거실에는 꽤 넓은 카펫이 깔려 있었는데, 그 위에 작은 소파와 커피 테이블이 올라가 있었다. 그래서 가구들을 한 쪽으로 치우고 카펫을 뒤집었다.

청소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는지 자욱한 먼지가 일어났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카펫을 들추자마자 한 가운데 위로 잡아 올릴 수 있는 작은 나무문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 이건··· 비밀 통로?’


떨리는 마음으로 손을 뻗어 문에 연결된 동그란 쇠 손잡이를 힘껏 당겼다. 문이 생각보다 쉽게 열렸고, 어두컴컴한 지하 공간에서 억눌려 있던 고함 소리도 함께 쏟아져 나왔다


“으아아아아아아!”


열린 문 틈으로 주입된 거실의 조명 빛은 안에서 고함을 지르는 누군가의 얼굴을 비추지는 못했다. 고함 소리로 가늠해 봐도 생각보다 많이 깊게 느껴졌다.


“아래 누구세요? 저 보이세요?”


휴대폰 플래시 기능을 이용해 안을 비춰보았다. 내부가 더 잘 보이긴 했지만 미지의 누군가가 눈이 부셨는지 손으로 얼굴을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김··· 김무결 씨?”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목소리는 익숙했다. 차분하면서도 전문가의 권위가 느껴지는 듯한 말투는 박도현 씨의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 천둥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형 혹시 변비야?]


이건 정이인이 나를 찾는다는 뜻이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놀라서 휴대폰을 구멍 아래로 떨어뜨려버렸다. 하지만 지금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제가 나중에 다시 올게요! 제가 왔었다는 얘기는 절대 하지 마세요!”

“잠깐만요!”

“지금은 안 돼요!”


황급히 비밀 문을 닫고 그 위에 다시 카펫을 깔고 소파와 커피 테이블을 최대한 원래 위치라고 생각했던 곳으로 옮겨놓았다. 잘못된 것이 없는지 빠르게 눈으로 훑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문을 닫은 뒤 정이인의 저택 현관문 앞으로 내달렸다.

숨을 고르며 기다리고 있는데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안에서 천둥이가 입술에 손을 올려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했다. 살금살금 중문을 닫고 긴 복도가 꺾어지기 전에 천둥이가 먼저 들어간 다음 안으로 들어오라는 표시를 했다.

다행히 거실에는 아무도 없어 주방을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천둥이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정이인이 나 찾았다며?”

“쉿. 화장실 갔다고 하니까 다시 오겠다고 다른 데로 갔어.”

“그럼 알려줬어야지.”

“알려줬는데 답장을 안 하던데?”


그제야 휴대폰이 수중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실감했다. 정이인이 찾는다는 말에 머릿속에 아드레날린이 대량으로 펌프질을 해버려서 휴대폰이 어떻게 됐는지도 잠시 까먹은 것처럼 되어버렸다. 갇혀버린 박도현 씨와 비밀 공간을 발견했다는 사실까지 더해져 온 정신이 뒤죽박죽이었다.


“할 얘기가 너무 많은데···”

“그래도 이따가 하자. 형 지금 말 너무 많아.”


녀석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런 정보의 홍수에 너무 흥분 상태였다. 하지만 잘 때까지 기다리자니 답답했다. 하지만 가장 큰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비밀 공간에 갔던 사실이 들통나면 그 땐 나도 그 곳에 갇힐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 회사에서 할당 받은 일을 해야 했지만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신경이 온통 비밀 공간에만 쏠려 있었다. 정이인은 박도현을 말도 안 되는 곳에 가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두컴컴한 곳에 내가 갇힐 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정이인이 우리를 불렀다. 최대한 긴장한 티를 내고 싶지 않았지만, 자꾸 표정이 굳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정이인이 먼저 말을 걸었다.


“김무결 씨, 무슨 일 있어요?”


정말 간단한 이 질문이 얼마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무슨 일이 있는지 바로 물어볼 정도로 티가 많이 났나 싶어 대답하는 말소리에 더 긴장감이 실려버렸다.


“아, 아뇨, 아, 아무 일 없는데요.”

“그래요? 표정이 너무 안 좋아 보여서요.”

“점심 먹은 게 좀 잘못 됐나 봐요. 속이 좀 안 좋다고 아까부터 툴툴대던데.”


천둥이가 끼어들었다. 대신 침착한 톤으로 대답해주니 내 마음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는 느낌이었다.


“아, 아까도 그래서 화장실에··· 오래 계셨구나. 우리 점심에 뭐 먹었죠?”


정이인이 옆에서 함께 밥을 먹던 일명 ‘삼촌’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자기 밥 그릇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식사를 하던 그는 고개도 안 들고 기계처럼 대답했다.


“잡곡밥에 갈비찜, 계란말이, 근대된장국, 배추김치, 오이김치, 육전, 꽈리고추 멸치볶음을 먹었죠.”

“흐음. 육전이 좀 이상했나? 나도 아까부터 살짝 속이 더부룩한 것 같더라구요.”


급식 메뉴를 바로 읽는 것처럼 반찬을 줄줄 외는 그의 말에 정이인이 맞장구를 치는 모습이 지금껏 본 그들의 사이 중 가장 친근해 보였다.


“글쎄요. 저는 딱히 이상할 거 없었는데요.”


천둥이가 말했다. 나를 도와주는 듯 도와주지 않는 것처럼 줄타기에 능숙한 녀석의 솜씨에 마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저녁 식사를 마칠 시간이 다가오면서 긴장감이 미칠 듯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심장 뛰는 게 귀에서 느껴질 정도로 온몸이 요동쳤다. 밥을 먹어도 아무런 맛을 느끼지 못한 채 삼키기에만 바빴다. 이러다가 쓰러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김무결 씨, 안색이 너무 안 좋아요. 아무래도 그만 드시고 좀 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정이인이 젓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도 그게 좋을 것 같네요.”

“제가 방까지 데려다 주고 올게요.”

“그러세요.”


천둥이가 나를 부축하진 않았지만 옆에서 지켜보며 함께 걸어주었다. 어느 정도 주방에서 멀어졌을 때 녀석에게 물었다.


“내 얼굴이 그렇게 안 좋아?”

“창백해. 겁에 질린 사람처럼.”

“오늘은 정말 힘드네.”

“나중에 얘기하자. 일단 좀 쉬어.”


일부러 불을 끈 방 침대에 누워 또렷한 정신 상태로 천장만 바라봤다. 정이인이 비밀 공간에 갈 시간이 다 됐다. 안에 들어가서 하나라도 이상한 낌새를 발견하면 어떻게 될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소파를 제 위치에 놨는지, 커피 테이블의 각도가 조금 틀어지지는 않았는지, 이것저것 뒤지다가 물건 위치가 바뀌지는 않았는지, 닫혀 있던 문을 열어두거나 그 반대로 해놓지는 않았는지, 신경 쓰이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도대체 왜, 그런 생소한 공간에 들어가서 내 집처럼 설쳐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럴 때 걸리라고 아주 작정한 사람처럼 행동한 것 같았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이 말을 최대한 많이 되뇌어보려고 노력했지만 머릿속은 이미 어린아이가 헤집어놓은 물 웅덩이처럼 말도 안 되게 헝클어져 있었다. 그래서 도저히 방 안에 잠자코 누워있을 수만도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1층으로 내려왔는데 거실 한 켠에 놓인 소파에 앉아 있던 천둥이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의 옆에는 의외로 ‘삼촌’이 앉아 있었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지 꽤 심각해 보이는 눈치였다.


“벌써 일어났어?”


천둥이가 물어 고개만 끄덕이고 둘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둘이 얘기 중이었나 봐?”

“아, 그냥 오늘 점심 메뉴에 대해 분석하고 있었어. ‘매니저’ 님이 점심 요리를 한 담당자를 색출해서 문책하려나 봐.”

“매··· 매니저 님?”


그런데 그 때, 마치 천둥소리처럼 요란하게 문을 닫는 소리가 쾅 하고 현관 쪽에서 들려왔다. 얼마 후에 잔뜩 화가 난 정이인이 거실에 들어왔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우리 셋이 있는 곳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나는 알 것 같았다. 그녀의 불타는 눈길이 향한 진짜 표적이 누군지. 그녀의 눈빛이 너무 이글거려서 저절로 시선이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당장이라도 그녀가 나에게 소리를 지를 것만 같았다.


그런데 정이인은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매니저님! 나랑 얘기 좀 할까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주택자 무신론자 무연고자 김무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8 48화 - 김연희 (2) 20.07.29 197 0 11쪽
47 47화 - 김연희 (1) 20.07.27 209 1 13쪽
46 46화 - 뜻밖의 재회 (1) 20.07.24 207 1 12쪽
45 45화 - 새로운 시작 (4) 20.07.22 211 2 12쪽
44 44화 - 새로운 시작 (3) 20.07.20 222 2 12쪽
43 43화 - 새로운 시작 (2) +1 20.07.17 229 2 12쪽
42 42화 - 새로운 시작 (1) +1 20.07.15 242 2 12쪽
41 41화 - 일단락 +2 20.07.13 251 2 12쪽
40 40화 - 잘못된 선택 +4 20.07.10 252 3 12쪽
39 39화 - 백태진 (2) +1 20.07.08 251 1 11쪽
38 38화 - 백태진 (1) +2 20.07.06 254 2 11쪽
37 37화 - 정이인 (2) +1 20.07.03 266 2 11쪽
36 36화 - 정이인 (1) +1 20.07.01 267 2 12쪽
35 35화 - 내부 조사 (5) +1 20.06.29 279 2 13쪽
34 34화 - 내부 조사 (4) +1 20.06.26 285 2 12쪽
33 33화 - 내부 조사 (3) +2 20.06.24 290 4 11쪽
» 32화 - 내부 조사 (2) +1 20.06.22 295 3 11쪽
31 31화 - 내부 조사 (1) +1 20.06.19 301 3 12쪽
30 30화 - 새로운 사실 (3) +1 20.06.18 305 3 11쪽
29 29화 - 새로운 사실 (2) +2 20.06.16 311 6 12쪽
28 28화 - 새로운 사실 (1) 20.06.15 308 4 12쪽
27 27화 - 김무결의 임무 (4) +2 20.06.12 317 3 11쪽
26 26화 - 김무결의 임무 (3) +1 20.06.11 313 4 11쪽
25 25화 - 김무결의 임무 (2) +1 20.06.09 316 5 11쪽
24 24화 - 김무결의 임무 (1) +1 20.06.08 322 5 12쪽
23 23화 - 새로운 단체 (3) +2 20.06.05 335 7 13쪽
22 22화 - 새로운 단체 (2) 20.06.04 347 5 15쪽
21 21화 - 새로운 단체 (1) +1 20.06.02 361 3 14쪽
20 20화 - 뜻밖의 손님 (3) 20.06.01 359 5 13쪽
19 19화 - 뜻밖의 손님 (2) +2 20.05.30 358 5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