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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손 님의 서재입니다.

무주택자 무신론자 무연고자 김무결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수레손
작품등록일 :
2020.05.11 20:07
최근연재일 :
2020.10.02 23:14
연재수 :
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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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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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
글자수 :
414,107

작성
20.06.16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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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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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2쪽

29화 - 새로운 사실 (2)

DUMMY

“그게 지금 무슨 말이에요?”


변소희의 질문에 어이가 없어 되물었더니 그녀 역시 어이가 없다는 듯 ‘허’ 하고 헛웃음을 짓는다. 변소희의 꿍꿍이가 무엇인지 너무 헷갈려서 머리가 아파질 지경이었다. 이중 첩자인줄 알았는데, 되려 나를 마약 조직원으로 모는 그녀의 연기는 적어도 겉보기에는 완벽했다.


“내가 모를 줄 알았어요? 삼겹살에 소주에··· 아주 나를 취하게 만들려고 기를 쓰는 게 다 보이는데 어디서 그런 얕은 수로 내 정보를 빼가려고!”

“그게 무슨 소리에요?”


모르는 척했다. 괜히 여기서 어떻게 알았냐는 식으로 반응해 버리면 내가 수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 자백하는 꼴이었으니까.


“처음부터 만나자고 할 때부터 수상해서 미리 다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 날 밤에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면 괜히 여러 날에 걸쳐서 피곤해질 것 같아서 아예 집 안에 있는 것까지 준비해 놓고 있었죠. 노트북도 다른 걸로 바꿔놨어요. 아마 힘들게 자료 빼내셨는데 별 게 없어서 실망하셨겠죠?”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정말로 고마워서 보답하려고 한 거였어요.”

“그만하세요. 제발. 내가 뭐 물증도 없이 심증만 가지고 이러는 줄 알아요?”


변소희가 휴대폰을 내 얼굴 앞으로 내밀었다. 이미 재생되고 있는 영상 안에서 내가 그녀의 주방 인덕션을 들어 노트북을 꺼내고 있었다. 이어 USB를 꽂고 현관에 다녀오는 모습까지 전부 찍혀있었다.


“이 날 특별히 설치한 카메라인데, 아주 유용했죠. 당신이 딱 내 생각대로 움직여 줬으니까.”


할 말이 없었다. 명백하게 증거가 잡힌 상황이었다. 어떤 변명을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완벽한 물증이었다.


“어서 설명해 봐요. 안 그러면 이거 들고 당장 경찰서로 갈 테니까.”

“그러니까 그게 사실은···”

“얼버무리거나 거짓말 지어낼 생각하지 말고 빨리 말해요, 어차피 시간도 얼마 없으니까.”

“제가 주도한 일은 아니에요.”

“그건 당연히 아니겠죠. 꽂기만 하면 비밀번호도 열어버리는 USB까지 들고 오셨는데. 배후가 누구에요?”

“그 전에 저도 질문 하나만 하면 안 될까요?”

“안 돼요. 지금 상황 파악 잘 못하시는 것 같은데, 당신 아주 불리한 위치거든요.”


혼란스러웠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자초지종을 털어놓자니 변소희가 마약 조직원이라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고, 또 안 그러자니 또 경찰서에 잡혀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전 당신이 이중 스파이라고 들었는데요.”

“누가 그런 얘기를 해줬는데요?”

“그럼 아니에요?”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마음으로 던진 질문에 변소희가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녀 역시도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게 굉장히 조심스러운 듯한 눈치였다.


“당신, 한 번만 더 나한테 질문을 하면 그 땐 나도 더 이상 아무 말 않고 바로 경찰서로 갈 거니까 그런 줄 알아요.”


자꾸 경찰을 언급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망설임이 느껴졌다. 그녀는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일부러 하지 말라는 질문을 하나 더 했다.


“그럼 그냥 경찰서에 가면 됐잖아요. 왜 굳이 나를 불러냈어요?”

“역시 보통은 아니네요. 하긴, 그랬으니까 냉동 창고에서도 살아나오셨겠지만. 그럼 왜 이런 짓을 하셨는지는 말 못하시겠다?”


변소희가 휴대폰을 화면을 흔들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미 여러 번 말했지만 사실 경찰은 나도 안 믿어요. 그래도 우리 단체 안에 얘기할 수는 있겠죠. 적어도 그렇게 하면 이 단체에서도 당신을 더 이상 받아주지는 않을 테니까. 어디 갈 곳 없는 신세 돼 봐요, 그럼.”


변소희가 먼저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일단은 그녀를 붙잡았다. 공허한 협박이라고 해도 만약의 가능성은 피해야 했다.


“잠깐만요. 일단 얘기 좀 더 해요.”

“왜요? 전 할 얘기 없는데요. 그 쪽에서 할 얘기는 많겠지만.”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일단 좀 멈춰봐요.”


변소희가 다시 계단에 섰다. 나보다 위쪽에 있어서 이제 올려다 봐야 했다.


“일단 저도 많이 혼란스러운데,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시니까 말할게요. 먼저 저는 당신이 이중 스파이라고 들었고, 그래서 당신이 가진 정보를 빼내려고 했던 거예요. 저는 절대 마약 조직을 위해서 일하고 있지 않아요.”

“그건 모르는 거죠. 당신에게 일을 시킨 사람들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니까.”


사실 내가 가장 두려워하고 있었던 점이 그거였다. 이미 천둥이와도 이야기를 나눴던, 정이인 씨가 마약 조직원일지도 모른다는 바로 그 사실이.


“정이인 씨죠?”


내가 말하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말해버렸다. 사실 변소희 쪽에서 추측하는 게 너무 쉽기도 했다. 어차피 내가 있는 곳이 정이인 씨 집 밖에 없었으니까.


“맞아요.”


변소희가 대답을 듣자마자 한숨을 쉬며 시선을 다른 곳에 두었다. 뭔가를 잠시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러면 일단 지금은 다시 올라가 봐야 하니까, 나중에 더 얘기해요.”

“나중에 언제요?”

“오늘 여기 나오신 게 정말로 진미경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네?”

“김무결 씨가 정이인 씨 집에 갇혀 있는 셈이니 볼 수가 없어서 일부러 만든 행사예요. 다음에 또 이런 기회를 만들어 볼 테니까, 그 때 더 얘기해요. 자리를 너무 오래 비우면 정이인 씨가 이상하게 생각할 거예요.”


일단 알겠다고 얘기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내가 먼저 들어가고 몇 분 뒤에 변소희 씨가 들어왔다. 다행히 정이인은 구석에서 다른 사람들과 얘기 중이어서 우리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지는 못한 듯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천둥이를 보니 녀석은 여전히 심각한 얼굴이었다. 휴식 시간 이후에도 경찰 신문에 대한 질문은 계속됐지만 정작 먼저 질문을 꺼낸 여자는 자리에 없어서 더 이상의 갈등은 없었다. 의문의 여자가 녀석의 마음을 헤집어놓은 셈이었다.


“김무결 씨, 아까 어디 갔었어요?”


앞 자리 조수석에서 정이인 씨가 물었다.


“잠시 바람 좀 쐴까 하고 나갔는데 그냥 계단만 있더라구요.”

“그럼 그냥 들어오지. 꽤 오래 있던데요?”

“아까 질문 때문에 머리도 식힐 겸 그냥 혼자 생각 좀 하다 왔어요.”

“그래요, 그럼.”


정이인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 말은 마치 그런 식으로 거짓말을 할 거면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들렸다. 안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자리를 오래 비웠다는 것까지 알고 있어 내심 불안했다. 설마 변소희랑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도 다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밤에 잠들기 전에 천둥이와 쪽지를 교환했다. 평소와는 달리 엄청난 소식을 담은 내 쪽지를 읽은 천둥이가 화들짝 놀라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녀석의 손에는 이미 펜과 종이가 들려 있었다.


[그래서? 변소희의 정체는?]

[그건 아직 몰라]

[정이인은? 마약 조직?]

[그것도 몰라]

[그럼 뭘 알아?]

[둘다 위험한 사람들인거]


대화 대용으로 사용한 종이는 잘게 찢어 변기에 내려버렸다. 서로 제대로 대화를 못하니 답답한데, 아직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니 더욱 답답했다.


별 일 없이 몇 일이 지나갔다. 천둥이와 나는 서로 조직이나 단체에 대한 대화를 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평소에도 특별히 쪽지를 주고받지 않게 되었다. 그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 연기에 몰입하다 보니,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마음을 비우게 되는 면도 있었다.


그러던 중에 또 다시 연락이 왔다. 물론 변소희가 내게 직접 보낸 연락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보낸 신호였다.


“김무결 씨.”


정이인 씨의 얼굴이 또 내 모니터에 갑자기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딱히 기쁘지도, 슬프지도, 화나지도 않은 사심 없는 무표정이었다.


“네, 이인 씨. 이건 정말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돼서 계속 놀라게 되네요.”

“미안. 그런데 오늘 잠시 밖에 좀 나갔다 오셔야겠어요.”

“무슨 일로요?”

“김무결 씨 회사 일이에요.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는데 안 되네요.”

“제 회사요? 무슨 일인데요?”

“클라이언트 한 명이 김무결 씨를 직접 뵙고 저녁을 사고 싶다고 했대요. 안 그러면 일감을 더 이상 안 주겠다고 장난스럽게 협박을 했다나요.”

“아, 그런가요.”

“쩝, 이런 것까지 막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특별히 보내주는 거예요. 간단히 저녁 식사 하고 최대한 빨리 돌아와주세요.”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아저씨랑 경호원 두 명 붙여드릴게요. 위험한 일 생길 때 대비해서요.”


이야기를 듣자마자 변소희가 꾸민 일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클라이언트가 일개 번역 편집 담당자에게 저녁을 직접 사는 일은 아예 없었으니까.

클라이언트는 자기가 맡긴 일감을 누가 번역하고 또 누가 그걸 감수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맡긴 일에 오역은 없는 지 매의 눈으로 확인하며 컴플레인을 제기할 꼬투리를 잡아낸다면 모를까.


식당은 생각보다 고급스러운 갈비 집이었다. 먼저 가서 예약자 이름을 대니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아무도 없이 텅 빈 방에 홀로 앉아서 ‘클라이언트’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지로 덧댄 한옥식 문이 드르륵 열렸다.


“안녕하십니까.”


상대방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40대 중반의 깔끔한 외모의 남자는 실제로 우리 회사의 거물 클라이언트 담당자였기 때문이다. 변소희나 그녀가 보낸 사람이 들어올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그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깍듯이 인사했다.


“부장님, 안녕하세요.”

“김무결 대리님, 맞죠?”

“네, 맞습니다. 어서 앉으시죠.”

“하하, 네. 그럴까요?”


부장이 먼저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도 다시 내 자리에 앉았다. 어색한 분위기가 감도는 중에 그가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회사는 다닐만 하시죠?”

“네, 그럼요, 덕분입니다.”

“하하, 아닙니다. 오늘 이렇게 뵙자고 한 건 다름이 아니라 김 대리님이 일을 너무 잘해줘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럴 리가요, 누가 안 되면 다행이죠.”

“이번에 진급하실 줄 알았는데, 재택 근무를 신청하셨다고.”


나의 승진 소문이 고객사에까지 전달됐을 줄은 몰랐고, 또 일개 거래처 사원의 근무 형태까지 파악하고 있어 무척이나 놀랐다.


“뭐, 그렇게 됐습니다. 당분간은 집에서 일하게 될 것 같네요.”

“흠, 유감이네요. 유능하신 분이 승진도 못하는 길을 선택하셨다니.”

“과찬입니다. 그냥 겨우 하는 수준인걸요.”

“데이터는 거짓말을 못 합니다. 김무결 씨가 편집을 담당한 영상들 반응이 더 좋다는 자료 분석 결과도 있어요.”

“아, 네···”

“이렇게만 말씀 드리면 못 믿으실 것 같아서 직접 가져왔습니다.”


부장이 주섬주섬 가방을 뒤지더니, 밀봉된 서류 봉투를 하나 꺼내 아직 빈 저녁상 위에 올려놓았다. 처음에는 정말로 데이터를 건네준 줄 알았는데, 봉투 겉면에 매직펜으로 쓴 듯 굵은 글씨는 데이터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절대!! 혼자만 볼 것. 보고 나면 제거 요망]


부장의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봉투에 써 있는 문구는 무시하고, 원래 하던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하라는 뜻이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직접 뽑아서 주실 것까진 없는데요.”

“아뇨, 뭐든지 직.접. 읽는 게 더 신뢰가 가니까요.”


그가 일부러 “직접”이라는 말을 더 강조했다.

봉투를 두 손에 쥐고 부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없이 가방 안에 봉투를 넣었다. 봉투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변소희가 나에게 알려줄 이야기가 꽤나 두둑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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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2화 - 새로운 시작 (1) +1 20.07.15 245 2 12쪽
41 41화 - 일단락 +2 20.07.13 251 2 12쪽
40 40화 - 잘못된 선택 +4 20.07.10 253 3 12쪽
39 39화 - 백태진 (2) +1 20.07.08 251 1 11쪽
38 38화 - 백태진 (1) +2 20.07.06 254 2 11쪽
37 37화 - 정이인 (2) +1 20.07.03 267 2 11쪽
36 36화 - 정이인 (1) +1 20.07.01 269 2 12쪽
35 35화 - 내부 조사 (5) +1 20.06.29 281 2 13쪽
34 34화 - 내부 조사 (4) +1 20.06.26 287 2 12쪽
33 33화 - 내부 조사 (3) +2 20.06.24 291 4 11쪽
32 32화 - 내부 조사 (2) +1 20.06.22 295 3 11쪽
31 31화 - 내부 조사 (1) +1 20.06.19 301 3 12쪽
30 30화 - 새로운 사실 (3) +1 20.06.18 307 3 11쪽
» 29화 - 새로운 사실 (2) +2 20.06.16 312 6 12쪽
28 28화 - 새로운 사실 (1) 20.06.15 308 4 12쪽
27 27화 - 김무결의 임무 (4) +2 20.06.12 317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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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화 - 김무결의 임무 (2) +1 20.06.09 317 5 11쪽
24 24화 - 김무결의 임무 (1) +1 20.06.08 32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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