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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손 님의 서재입니다.

무주택자 무신론자 무연고자 김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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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손
작품등록일 :
2020.05.11 20:07
최근연재일 :
2020.10.02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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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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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6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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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4화 - 내부 조사 (4)

DUMMY

박도현 씨가 어디 있냐는 매니저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도대체 왜 이걸 물어보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매니저가 말하는 그와 정이인의 관계가 철저히 집을 관리하는 것에서만 최측근이라는 사실도 석연치 않았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과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듯한 그의 태도가 모두 꾸며낸 것 같았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박도현 씨가 어디 있는지 왜 저한테 물어보시는지···”

“나도 몰라서 묻는 겁니다. 이 집 어딘가에 박도현 씨가 있는 거죠? 그래서 주인님이 저렇게 흥분을 한 거죠? 웬만한 일로 저렇게 불 같이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잘 냈던 것 같기도···”


이해가 안 돼서 머뭇거리는 내 말에 그가 다시 치고 들어왔다.


“왜 자기만의 휴식 공간에 몰래 들어왔냐고 노발대발하더군요. 그런데 나는 이 집에 내가 모르는 주인님만의 휴식 공간이 있는지도 몰랐고, 또 그런 게 있었다 한들 그런 걸로 길길이 뛰는 사람이 아닌데 왜 저러나 싶었죠. 최근에 박도현 씨가 잘 안 보이던데 아무래도 그것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아서 물어보는 겁니다.”

“그럼 지금 이 집 어딘가에 박도현 씨가 갇혀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말을 하시는 거예요?”


모르는 척 그에게 질문했더니 그가 아차 싶었는지 입을 필요 이상으로 꾹 다물었다.

그가 다시 미심쩍은 말투로 물었다.


“정말 모르고 하는 말입니까?”

“매니저님에겐 박도현 씨가 중요한 사람인가 봐요?”

“내가 먼저 질문했는데요.”

“역시 그런 모양이네요. 친척인가요?”


매니저는 표정을 거두고 잠시 뒤로 몸을 빼더니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시선이 살짝 먼 곳을 향하는 듯했다.


“당신은 말이 통하질 않는군요.”


매니저가 다소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주인님이 한 얘길 다시 하자면, 앞으로 주의하라고 하셨어요.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부턴 이런 일 없었으면 좋겠고, 또 어차피 그럴 일도 없을 거라고 하셨죠. 김무결 씨가 거기에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못 들어가면 그 안에 있는 박도현 씨도 구하지 못하겠죠.”


갑자기 솔직해진 분위기와 박도현 씨가 더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말에 나까지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친척이든 절친이든 그런 식으로 가까워서가 아닙니다. 주인님을 오랫동안 가까이서 봐 왔는데, 자신이 원하는 게 뚜렷하고, 그런 목표가 생기면 물불 안 가리는 성격이라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저는 옆에서 그런 일을 최대한 막는 걸 제 임무 중 하나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무결 씨와 구천둥 씨에 대해서도···”


매니저가 갑자기 말을 잇지 못하고 헛기침을 했다.


“우리들에 대해서도···?”

“그러니까 당신들에 대해서도··· 꽤나··· 신경을 쓰고 있다··· 이 말이겠죠, 뭐, 흠.”


귀를 의심했다. 제대로 들은 게 맞는다면 수시로 나를 무시하는 듯한 눈으로 깔아뭉개고 감정 한 톨 내비치지 않은 저 석상이 나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었다고 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나올 뻔했다.


“하, 매니저님이 우리를 신경 썼다고요?”

“물론 김무결 씨는 전혀 못 느꼈겠죠. 나의 진짜 활약상은 당신이 못 보는 곳에서 거의 다 펼쳐졌으니까요. 당신이 거래처 사람을 만나러 나가겠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거리가 생겼을 때도 전부 내가 밀어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그 안에서 무슨 정보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문제삼지 않았고 주인님에게 그런 낌새를 보고한 적도 없었죠.”


전부 진짜인지 확인할 길 없는 말들뿐이었다. 만에 하나 그랬다고 쳐도, 그를 믿고 그와 함께 어떤 일을 도모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너무 큰 일이었다.


“뭐가 어떻게 됐든, 저는 도와드릴 수가 없어요. 아는 게 없는데 억지로 도와드릴 수는 없는 거잖아요.”

“좋습니다. 그럼 이건 꼭 기억해요. 만약에 김무결 씨도 박도현 씨가 감금되어 있었던 걸 알고 있었다면··· 박도현 씨가 잘못됐을 때 당신도 일부 책임을 지게 될 거라는 걸 말이죠.”


이 말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다. 만약에 이 일을 어딘가에서 조사하게 된다면, 내가 빠뜨린 나의 휴대폰도 함께 발견하게 될 테니, 내가 이 일에 연관되어 있다는 물증이 범죄 현장에 있는 셈이었다.

그래도 그건 나중에 생각할 일이었다. 지금은 내가 비밀 공간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들켜선 안 됐다. 어쩌면 정이인이 경찰보다 더 막강한 돈의 힘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나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정말 몰라요. 자꾸 물어봐도 소용없으니까 그만 좀 하세요.”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거짓말을 하는 겁니까?”

“거짓말이 아니니까요.”

“박도현 씨가 어떻게 돼도 상관 없다 이겁니까?”

“정이인이 알게 됐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어차피 그 사람도 못 구하는 거 아닌가요?”

“맞아요. 그렇죠.”


매니저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갈 곳을 잃은 듯한 두 눈동자가 좁은 공간을 빠르게 헤집고 다녔다. 어쩐지 아까부터 정신이 산만하고 어투도 불안정한 것이 그 동안 내가 알던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도대체 아까 정이인과 무슨 말이 오갔길래 저러는 건지 궁금했다.


“흠.”


그가 잠시 말을 안 하다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이 돌아온 듯 매서운 눈으로 나를 다시 쳐다봤다. 순간적으로 흠칫 놀랐는데, 그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게 말했다.


“웬만하면 혼자서 해결하려고 했더니 안 되겠군요.”

“그게 무슨···”

“따라와요.”


어리둥절해진 나를 뒤로 하고 그가 먼저 문을 열고 나갔다. 어쩐지 내가 따라오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저벅저벅 걸어가 버리는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까 무서워 얼른 그를 따라갔다.


다시 거실로 올라온 그는 정이인이 늘 들어가는 그 문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갔다. 뒤따라가다가 깜짝 놀란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니, 거길 같이 가자구요?”

“지금이 아니면 안 되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아니 어쨌든, 저도 같이 여기 들어가야 한다는 거잖아요?”


어느새 문 앞에 도착한 그는 내 질문에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문을 밖으로 열어젖히고, 문간에 있던 작은 경첩 따위를 한 쪽 발로 살짝 치워냈다.


“왜요? 저까지 같이 끌고 들어가서 삼자대면이라도 하시겠다는 건가요?”

“들어와 보면 압니다. 그리고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그가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 밖에서 보니 안 쪽에는 웬만한 집의 안 방만한 공간이 드러났다. 방 한 가운데에 고급스러운 원목 받침대와 그 위에 놓인 화려한 도기 작품이 내부에 갖춰진 유일한 가구였다.

하지만 시선을 끄는 건 값비싼 예술품이 아니었다. 사각형 방의 다른 세 벽면에는 문이 하나씩 달려 있었는데, 결국 매니저가 들어 있는 저 공간은 다른 공간으로 통하기 위한 예비 공간일 뿐이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뭐 합니까? 안 들어오고.”

“아, 네.”


솔직히 정이인을 만나게 되는 건 굉장히 꺼려졌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곳에 대한 호기심도 상당했다. 과연 거실 뒤에 있는 그녀만의 공간은 어떨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걸음을 옮기니 살짝 서늘한 기운이 들었다. 어떻게 된 건가 싶어 여기저기 고개를 돌려봤지만 에어컨 따위가 보이지는 않았다.


“인테리어 감상은 나중에 하고 얼른 따라와요.”

“아, 네, 죄송합니다.”


매니저가 가운데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함께 따라 들어가자마자 마음 속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높이의 천장과 함께 드러난 거대한 규모의 공간이 압도하듯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 쪽 벽은 높은 통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어 바깥 야경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었다.

내가 주로 생활했던 바깥 거실에는 앉을 만한 공간이 부족하고 유리창도 작게 나 있어 어쩐지 편히 쉴 수가 없다는 느낌이었는데, 그건 이 안에 진짜 거실이 숨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디귿 자로 넓게 펼쳐진 소파와 그 위에 사치스럽게 널려 있는 푹신한 베개들, 바닥에 깔린 고급스러운 카펫과 크기조차 가늠하기 힘든 벽걸이 TV까지. 편안한 거실의 모든 것은 다 그녀가 독점하고 있었던 것이다.

매니저는 소파를 끼고 돌아 훨씬 안 쪽으로 들어갔다. 거실을 가로지르는 데에도 꽤 시간이 걸릴 정도로 넓은 공간이었다.


“빨리 빨리 따라와요. 구경은 나중에 하고.”


내 걸음이 자꾸 늦어졌는지 매니저가 타이르듯 계속 말했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공간을 처음 보면서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하는 건 본능을 거스르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창가를 따라 계속 걷다 보니 왼쪽으로 벽이 꺾여 있었다. 벽을 끼고 돌자마자 또 다른 넓은 공간이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달리 좁은 복도 길이 나타났다.

매니저의 넓은 등판만 보며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복도 끝은 벽으로 막혀 있었고, 문 하나가 닫혀 있었다.


‘저 안에 정이인의 개인 작업실이 있겠구나.’


순간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모델 하우스를 보러 온 것 같은 들뜬 마음이 확 사라지고, 긴장감이 다시 몰려왔다. 저절로 숨을 들이쉬며 문 뒤에 있을 정이인을 마주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매니저는 문 앞에 멈춰 서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준비 됐습니까?”

“네.”

“문을 열기 전에 한 가지 약속을 해 줬으면 좋겠군요.”

“무슨 약속이죠?”

“이제부터 무슨 일이 생기든 제 편이 됐으면 합니다.”

“그게 약속으로 가능한 일인가요?”

“부탁 좀 합시다.”


이런 부탁을 하는 그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그의 편이 되어주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에겐 정이인이라는 엄청난 사람이 이미 자기 편일 텐데. 설마 내가 비밀 공간에 들어간 것 때문에 둘 사이가 엄청나게 나빠진 걸까.

대답을 주저하며 시선을 돌리는데 문 손잡이를 잡고 있는 그의 손에서 두 눈이 멈춰버렸다.


“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그의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저절로 이런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알겠어요. 약속할게요.”


그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손잡이를 돌렸다. 이제 정말 정이인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에 다시 심호흡을 했다. 안에 있는 공기도 함부로 들이쉴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내는 생각보다 간소했다. 여기저기 모니터도 많이 붙어 있고, 컴퓨터도 여러 대 놓여 있을 줄 알았는데, 넓은 방의 한 쪽을 차지하고 있는 건 커다란 책상과 그 위에 놓인 데스크톱 컴퓨터 한 대뿐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해커의 작업 환경이 웬만한 사무실 직원의 책상보다도 초라했다. 고작 저거 한 대로 다른 사람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복잡한 보안을 뚫는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놀랍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다. 어느새 방 안 쪽에 서서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는 매니저에게 물었다.


“정이인 씨는요?”


그는 대답 대신 자기 앞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책상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이상한 마음으로 한 발자국씩 그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는데, 이내 멈출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쓰러진 두 발이 보였기 때문이다.


작가의말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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