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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손 님의 서재입니다.

무주택자 무신론자 무연고자 김무결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수레손
작품등록일 :
2020.05.1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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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2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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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
글자수 :
414,107

작성
20.07.22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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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5화 - 새로운 시작 (4)

DUMMY

가입식 이후로 중독과 관련한 특별한 위기는 없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처음 알게 되는 자리에서만 분위기를 띄우는 용도로 나눠준 것일 뿐, 평소에도 권하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 사실 담배보다 훨씬 귀한 물건이라서 그냥 공짜로 누가 준다는 걸 기대하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기도 했다.

가끔씩 그 때의 좋은 기분이 생각나긴 했지만, 엄청나게 간절하진 않았다. 그래서 참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조직에서 하는 일 그 자체였다.


일터는 생각보다 깔끔한 사무실 같은 곳이었다. 누가 와서 보면 절대로 마약을 파는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았다. 지역 사무실에는 20여명 남짓한 ‘영업 사원’들이 일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중 한 파트의 인턴 같은 신분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야, 신참.”


가입식 때 주도적으로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했던 남자가 불렀다. 그의 이름은 조현기였다. 아직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아무 것도 모르는 나에게 일을 가르쳐 줄 선배이기도 했다. 번역 회사에 처음 취직했을 때 편집을 가르쳐주었던 사수의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네!”

“나가자. 따라와.”

“네!”


조현기가 먼저 밖으로 나갔고, 나는 지갑 등 필요한 것들을 서둘러 챙겨 허겁지겁 그를 뒤쫓았다. 그는 우리가 하는 일도 일종의 영업이기 때문에 이른바 외근이 많다는 식으로 농담을 했는데, 그런 말을 듣고도 전혀 긴장이 풀리지는 않았다.

난생 처음으로 중범죄를 저지르는 현장을 지켜보고 그 행위에 가담하게 될 그 순간이 마음을 무겁게 내리 누를 뿐이었다.


“면허 있지?”


조현기가 밖에 나오자마자 내 쪽으로 자동차 스마트 키를 던지며 말했다. 얼떨결에 손으로 키를 손으로 받은 나는 이번에도 ‘네!’라고 힘차게 대답했다. 그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쿡 비웃었고, 나는 스마트 키로 자동차를 찾아 먼저 운전석에 탔다.


“어디로 갈까요?”

“야, 미친병아리.”

“네?”

“이제부터 그게 니 별명이다. 이 미친병아리야.”

“네!”

“미친··· 너 지금 우리가 뭐 하러 가는지 대충 감 잡았지?”

“뭐, 그렇죠.”

“우리가 하는 일이 뭐라고 생각해?”

“어, 그건··· 그냥··· 유통 일···인가요?”


질문의 요지를 몰라서 얼버무리듯 대답했는데 그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 진짜, 미친병아리 새끼가 은근히 웃기는 새끼였네.”

“어···”

“그래, 뭐, 유통 일 맞지. 그런데 더 중요한 게 뭐냐고 하면, 우리가 하는 일은 독점이라는 거야. 우리 나라에서 유통되는 모든 약은 다 우리가 유통시키는 거거든.”

“아··· 그렇군요.”

“뭐, 잔챙이들이 똥구멍에 숨겨서 들고 들어오는 것들은 다 합해봤자 전체 시장의 0.001 퍼센트도 안 된단 말야. 우리가 독점이고, 결국 타고 타고 올라가면 우리 조직이 다 가지고 있는 거야.”

“네.”

“왜 안 놀라냐? 뉴스에서 막 누가 마약을 했다는 둥 이런 얘기가 나오면, 어차피 불법적인 경로니까 출처도 제각각일 거라고 생각하잖아. 그런데 그게 아니라니까? 전부 타고 타고 올라가면 우리 조직이란 말야. 우리가 유일하게 공급줄이랑 연결되어 있거든. 다른 유통 경로가 생겨도, 우리한테 안 돼. 경쟁에서 밀리든, 힘에서 밀리든, 어떻게든 밀리게 되어 있어. 우리는 거기다가 유일하게 공권력까지 업고 있단 말야. 그래서 다른 애들은 다 잡아들여도, 우리 애들은 괜찮아. 사실은 그래.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가서 하는 일 때문에 너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결국 이 말 하려고 긴 얘기를 꺼냈는데, 이 얘기만 명심하면 돼.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주소 불러줄 테니까 내비에 찍어 봐.”

“네.”


그가 불러준 주소는 어쩐지 낯이 익었는데, 정확히 어딘지는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일단 운전을 하고 익숙한 동네를 벗어나 지방 도로에 올랐을 때쯤, 조현기가 다시 말을 걸었다.


“야, 미친병아리.”

“네?”

“니가 왜 미친병아리인줄 알아?”

“아, 혹시··· 가입식 날 있었던 일 때문에···”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는데 조현기가 다시 미친 듯이 웃어댔다. 평소에 원래 웃음이 많은 건지 아니면 지금도 살짝 취해 있는 건지 궁금했다.


“사실 나도 그 땐 제정신이 아니어서 까먹고 있었는데, 니가 그 날 좀 미치긴 했었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안 알려주셔도 됩니다.”

“어차피 알려주고 싶지도 않고, 그런 이야기 내 입에 올리기도 싫으니까 걱정 마라.”

“네.”


도대체 그 날 무슨 일이 있었으면 입에 올리기도 싫다는 표현을 쓴 건지 궁금했다. 기껏해야 술 취했을 때처럼 주사를 부리고 고함이나 지른 줄 알았는데, 혐오스러운 일까지 벌였다는 것 같아 온몸이 싸늘했다.


“원래 하려던 얘기 계속하면, 니가 가입식 날 했던 짓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에 했던 짓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은 거야.”

“아···”

“뭐가 ‘아’야, 무슨 짓인지 알기는 하는 거냐?”

“모릅니다.”

“그럼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너 지금 어디 가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어?”

“제가 아는 곳인가요?”

“당연하지. 게다가 당분간 거기서 일할 거야.”


내가 알고 조현기가 알만한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순간 그가 어디를 말하는지 바로 깨달았다.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은 곳. 내가 죽을 뻔했던 곳. 바로 냉동창고가 있는 곳이었다.

눈이 가려진 채 그곳에 납치되었을 때, 나를 가둔 놈들이 배달 주문을 하면서 무심코 말해 버린 주소, 그래서 머릿속에 새겼던 그 주소였기에 내비를 찍을 때 알 수 없는 익숙함을 느꼈던 거다.


“아, 이제 알겠네요. 어디로 가는 건지.”

“하, 보기보다 머리가 안 좋은 모양이야. 기억력도 안 좋고, 아무리 약을 했다지만 정신병자처럼 굴고, 어느 모로 보나 미쳤다 이거지.”

“네···”

“우리가 지금 가는 데서 니가 한 짓 때문에 그 별명이 붙은 거 아냐. 아직도 모르겠다고 발뺌할 거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왜 자꾸 모르는 척을 하지? 너랑 니 패거리가 우리 조직원을 두 명이나 토막 낸 거 아니었어? 하, 아무리 지네들을 가둬놓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렇지, 대충 기절시켜서 탈출만 하면 될 걸 뭐하러 토막까지 냈냐? 그렇게까지 증오심이 폭발할 수도 있는 거냐?”

“네?”

“와, 완전 연기파네 요거. 그렇게 얼빠진 표정 지으면 누가 믿어준대? 그런 식으로 계속 오리발 내밀 거야, 이 미친병아리야?”


사실 토막 살인 이야기는 경찰서에서도 전해 들었지만, 당연히 내가 한 짓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조직과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내 옆에 앉아 있는 조직의 일원은 오히려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


“전 그게 조직에서 한 일인 줄 알았는데요.”

“우리가 뭐하러 우리 조직 사람들을 토막까지 내겠어? 그것 때문에, 아무리 형식적인 거라지만, 우리가 경찰 조사를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알아? 왜 이렇게 뻔뻔해? 뭘 우리한테 떠 넘겨?”

“제가 안 했으니까요.”

“그럼 우리가 거짓말한다는 거야? 그래?”

“저도 좀 헷갈리네요. 지금까지는 당연히 조직에서 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정말 안 했다고?”

“네.”

“젠장.”

“왜 그러세요?”

“아니야, 아무 것도. 알았으니까 운전이나 해.”

“네.”


지방 도로에서 좁은 길로 빠져 익숙한 풍경의 2차선 도로로 진입했다. 냉동 창고에서 벗어나 신이현의 집으로 향하기 위해 지나왔던 곳을 다시 되짚어 올라가는 기분이 묘하게 서늘했다.

마치 그 곳에 도착하면 이진숙과 남자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기도 했고, 나를 다시 조직의 손으로 넘겨버린 경찰관과 마주칠 것 같기도 했다.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이 공간이 그들의 존재로 정의되는 걸 피할 수도 없었다.


“여긴 별로 다시 오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됐네요.”

“말이 점점 길어지네? 긴장 다 풀렸나 봐?”

“아뇨.”

“괜찮아. 나는 나 혼자 말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 니가 말 더 많이 해서 채워.”

“알겠습니다.”


말을 많이 할 자신은 없었지만, 적어도 군대 훈련소처럼 닥쳐야 하는 분위기보단 나았다. 조현기는 어떤 무리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걱정 없어 보이는 형 같은 느낌을 풍겼다. 자존심만 건드리지 않으면 무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 여기로 가는 이유가 있나요?”

“벌써 알려주면 재미 없지. 도착하면 자동으로 알게 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네, 알겠습니다.”

“처음에는 나보고 미친병아리 맡으라고 해서 소름 돋게 왜 그러냐고 따졌는데, 니가 그런 짓 한 것도 아니면 애초에 간 볼 필요도 없었겠다 싶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가입식 말이야. 그 날 니가 했던 게 까라앉게 만드는 류거든. 여차했다가 토막 나기 싫어서 나름 그런 말도 안 되는 행사를 엮어본 거지. 근데 괜한 짓 한 거잖아.”

“아,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는 몰랐네요.”

“에이, 진짜, 윗것들이 신참한테 나불거리지 말라고 했는데 자꾸 나불거리게 되네. 어쨌든 내가 하는 말은 그냥 한 귀로 흘려버려. 알았지?”

“네.”


냉동 창고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긴, 이 곳을 탈출했을 때도 생각보다 큰 길이 나오지 않아 답답했던 기억이 났다. 더군다나 뒷자리에 앉은 천둥이가 안절부절하는 모습이 신경 쓰여 더 안달하기도 했었다.


“여기서 오른쪽. 알지?”


중간에 나오는 두 갈래 길이 보이자 조현기가 말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부패한 경찰이 나를 데리고 가던 그 길이었다. 당시에는 헷갈려 했었는데, 밝은 길에서 다시 보니 오히려 더 명확했다.


며칠 전에 우연히 만났던 유선형 씨가 생각났다. 지금쯤 뭘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 날은 정말 예상하지도 못한 시점에 마주쳐서 당황했는데, 반가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정상적인 사회 활동을 했을 때의 기억으로 돌아가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조금 더 운전을 해서 올라가니 정말 지금은 십 년도 더 전에 두고 온 것 같았던 냉동 창고와 그 옆의 간이 사무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상상했던 모습보다 훨씬 더 또렷한 형체가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어때, 감회가 새롭지 않냐?”

“그렇네요.”

“사실 저 안에서 탈출한 것만으로도 미친병아리 타이틀 얻는 건 충분했어.”

“그런가요?”


그 때의 나는 목숨을 걸고 나온 건데,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에게는 우스갯소리로 타이틀이나 붙여주는 가벼운 일로 여겨졌나 보다.

빈 공간에 대충 주차하고 차에서 내려 조현기 옆으로 갔다. 나보다 살짝 키가 큰 그는 나를 내려다 보면서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우리는, 내가 처음 갇혀 있었던 간이 사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갑자기 유선형 씨가 깜짝 재회를 했을 때 해 준 말이 생각났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어차피 기다리는 건 익숙해졌거든요. 대신, 내가 다른 사람 좋아하게 돼도 억울해하지 마세요.”


아마도 내가 마약 조직의 일원으로서 사람을 가두고 마약을 거래하는 아지트에 드나들게 될 사람이라는 건 꿈에도 몰랐겠지.


문 앞에 먼저 도착한 그가 나를 기다렸다. 그리고 손잡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열어 봐.”

“제가요?”

“응. 깜짝 선물이야.”


문만 열면 선물이 안에 있다는 건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손잡이를 감싸 쥐고 천천히 돌렸다. 그리고 문을 안 쪽으로 밀어 열었다. 어둑한 내부가 문이 열리는 만큼 조금씩 환해졌다.


선물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마음에 들어?”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녀였고, 그녀의 이름은 진미경이었다.

그녀가 내가 그랬었던 것처럼, 안대를 하고 묶인 채로 방 구석에 앉아 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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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1화 - 일단락 +2 20.07.13 25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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