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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손 님의 서재입니다.

무주택자 무신론자 무연고자 김무결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수레손
작품등록일 :
2020.05.11 20:07
최근연재일 :
2020.10.02 23:14
연재수 :
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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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56
추천수 :
359
글자수 :
414,107

작성
20.06.09 08:15
조회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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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1쪽

25화 - 김무결의 임무 (2)

DUMMY

온몸에 땀이 젖었다. 하필이면 변소희가 사는 아파트 건물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어서 의식이 없는 그녀를 끌고 계단으로 8층까지 올라가야 했다.

아예 시체처럼 의식이 없는 건 또 아니어서 어물어물 부축만 잘 해주면 따라와 주기는 했는데, 자꾸 다른 집에 들어가려는 걸 말리고 실랑이하느라 힘을 많이 뺐다.

이인 씨가 알려준 그녀의 집 호수 앞에 도착했을 때, 나도 모르게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든 안에 있으면 도와달라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는데, 당연히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힘이 들었다.


“변소희 씨.”

“네?”

“집에 다 왔어요. 비밀번호 좀 눌러봐요.”

“엥? 집에 왔다구? 앙대~ 2촤 가귀로 했짜나아~”


주먹이 꽉 쥐어졌다. 임무만 아니면 한 대 때리고 싶었다. 빨리 비밀번호나 좀 눌러줬으면 했다. 이인 씨도 어째서인지 변소희 씨 현관문 비밀번호는 모른다고 했다. 거의 매일 새로운 비밀번호로 바꾸는 것 같다고 했고, 생각보다 복잡하다고 했다.


“어서 누르세요. 안 그럼 여기 두고 난 내 집으로 갈 거니까.”

“에이~ 말은 봐로 하셔야쥐··· 이인이네 언쳐솰면숴···”

“그러지 말고 비밀번호 좀 누르세요.”

“아이, 귀차나, 몰라, 왜이뤠!”


변소희가 갑자기 흥분을 하며 부축하고 있던 내 팔을 뿌리치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지만 너무 막무가내였다. 마치 예전의 아버지를 보는 것처럼.

그래서 생각이 났다. 아버지에게 주로 써 먹던 방법이 있었다.


“그럼 2차 가요.”


변소희가 오랜만에 또렷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정말? 진짜 갈 거야?”

“그러자니까요. 근데 나 화장실만 좀 쓰면 안 될까요?”

“아, 그뤠요. 얼뫄든지!”


변소희가 마침내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술에 떡이 된 사람치고는 명료한 정신력으로 복잡한 숫자를 빠르게 입력해냈다. 역시 술꾼은 술로 유혹하는 수밖에 없다.


“얼른 쓰구 나와요. 여귀서 귀다륄테니꽈!”

“그래요.”


드디어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왔다. 불을 켜는 스위치를 못 찾아서 잠시 헤맸는데 금새 실내를 밝힐 수 있었다. 평범한 크기의 아파트였다.

바로 주방으로 향했다. 거실보다도 주방이 넓은 구조였다. 커다란 냉장고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옆으로 인덕션, 싱크대를 거쳐 넓은 조리대가 ‘기역’자로 꺾이는 구조였다.

이인 씨가 지시한대로, 인덕션 앞으로 다가갔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인덕션이었는데 앞 부분을 두 손으로 잡았 위로 밀어 올렸더니 이인 씨가 말한 대로 인덕션이 들려 올라갔다. 인덕션 아래엔 베개 하나 정도 들어갈 만한 크기의 홈이 패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노트북이 있었다.


‘뭐야, 생각보다 술술 풀리잖아?’


한 손으로 인덕션을 지지하고 다른 손으로 조심스레 노트북을 꺼내어 조리대 위에 올려놓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현관과 주방 사이에 벽이 있어서 만약 변소희가 들어온다면 다시 숨길 시간은 충분해 보였다. 어쨌든 지금은 그녀가 안 들어오는 게 최선이긴 했다.

노트북에도 암호가 걸려 있었지만 이인 씨가 준 USB를 꽂았더니 1분 안에 암호가 풀려 자동으로 실행되었다. 이인 씨의 실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USB를 연결하기만 해도 암호가 풀린다는 사실이 살짝 무섭기도 했다.


“야, 김무결! 똥 싸고 인냐!”


현관 쪽에서 그녀가 외쳤다.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그녀가 안으로 들어올 것 같았다. 사실 원래 계획은 그녀를 침실로 데려가 재우는 사이에 이 일을 처리하는 거였는데, 일이 이렇게 풀릴 줄은 몰랐다.


“아이, 진짜, 나메 쥡에다가 그러퀘 더러운 걸 말이야···”


변소희의 투정이 계속됐다.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일을 빨리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USB는 노트북 암호를 풀어 운영 체계에 진입하자마자 안에 있는 모든 파일을 자신에게로 옮겨 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양이 많아 예상 시간이 10분 넘게 잡혀 있었다.


“조금 더 빨리 받아주면 안 될까?”


USB를 보면서 애원하듯 말했지만 예상 시간은 정확하게 1초씩 줄어들었다. 10분이나 변소희를 혼자 둘 수는 없어서 일단 다시 현관으로 나가 보았다.


변소희는 아예 엉덩이를 깔고 앉아 문 옆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2차고 뭐고 피곤했는지 살짝 잠이 든 것 같기도 했다. 그녀의 사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알코올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니 마약 중독자일 가능성도 높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우리 이줴 가는 건가···”


나를 발견한 그녀가 졸린 목소리로 물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줄래요? 아까 너무 힘을 썼더니 목이 마른데.”

“아··· 냉즌고 안에 물··· 거 꺼내 믁든그···”


조금만 더 놔두면 아예 잠들 태세였다. 일단 잠이 들더라도 파일 옮기는 게 끝난 뒤에 안으로 들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알았어요. 고마워요.”

“그짓말쟁이···”


변소희의 눈이 감겼다 떴다 했다. 다시 주방으로 들어간 나는 파일 전송 상태를 살폈다. 아직도 8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변소희의 말대로 물이나 마시며 기다릴까 하는 생각에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놀라서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아니, 이건 도대체···”


튀어나오는 혼잣말을 삼켰다. 냉장고 안에는 그 흔한 과일이나 소스, 반찬 통 하나 없이 온갖 종류의 술로 가득 차 있었다. 맥주는 동네 작은 편의점보다 더 많은 종류로 갖춰져 있었고, 소주, 막걸리, 청주는 물론 화이트 와인이나 보드카, 각종 리큐르까지 들어 차 있었다.

물도 있긴 했지만 구석에 몇 병 겨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정도였다. 어쨌든 마시라고 했으니 생수 한 병을 꺼낸 뒤 다시 냉장고 문을 닫았다. 도대체 술을 얼마나 좋아하면 저렇게까지 쟁여놓았을까 싶었다.


[잘되고 있어요? 변소희는 자요?]


이인 씨의 문자였다. 다시 현황을 체크해 봤더니 아직도 7분이나 남아 있었다. 어쩐지 시간이 더 안 가는 기분이었다.


[네, 7분 정도 남았어요]

[ㅇㅋㅇㅋ 조심해요]


휴대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노트북을 올려 둔 조리대 앞에 서 있는데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귀를 기울여 자세히 들어보니 코 고는 소리였다. 현관 쪽으로 나가 보니 생각 보다 코 고는 소리가 컸다. 콧소리뿐 아니라 숨을 들이 쉬는 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앞집 이웃이 신경 쓰일 정도였지만 굳이 깨울 생각은 없었다. 남은 시간만큼만 더 곤히 잠들어있기를 바랄 뿐이었던 나는 다시 조용히 주방 쪽으로 들어왔다.


초조한 와중에 특별한 일은 벌어지지 않아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런데 시간이 3분 정도 남았을 때, 밖에서 엘리베이터가 작동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살짝 현관 쪽으로 걸어가려는데 드르륵 엘리베이터 문 열리는 소리가 나자마자 심장이 멎을 것처럼 큰 목소리가 아파트 문 앞 현관을 쩌렁쩌렁 울렸다.


“아니 여기서 주무시면 어떡해!”


전형적인 아파트 관리인의 목소리였다. 젠장, 왜 하필 이 시간에 여기에 왔지. 살금살금 주방 쪽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들고 조리대를 벽 삼아 앉았다.

머리가 하얘졌다. 이제 어떡하지. 주방까지 들어오지는 않겠지.


“아이고, 술을 왜 이렇게 많이 드셨어. 그래도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되죠! 어서 들어가세요!”

“아··· 누구세요···”


때마침 우려했던 이웃집에서도 누가 나왔는지 새로운 남자 목소리가 대화에 추가됐다.


“앗,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에요?”

“아니, 엘리베이터 고장 나서 점검 끝냈는데 여기 아가씨가 잠들어 있잖아요!”

“오늘도 많이 드신 모양이네. 어쩐지 소란스럽다 했더니.”

“그러니까 뭘 그렇게 허구헌 날 술을 마셔가지고.”

“아까는 남자 목소리도 들렸던 것 같은데, 그냥 두고 간 모양이네요.”

“아니, 누구 다른 사람도 있었어요?”

“아닌가? 분명히 들었던 것 같은데···”

“아니 이렇게 현관문까지 데려왔으면 안 까지 들여놔야지! 도둑 들면 어쩌려고 문까지 열어놓고 그냥 가 버려!”


생각보다 일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내 목소리를 누군가 들은 것도 모자라 아파트 관리인까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신경 쓰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며 진행 상황을 살폈더니 어느새 완료되어 있었다. 아까는 1분도 하루처럼 느껴졌는데 3분은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았다.

일단 USB를 뽑고 재킷 주머니 안에 넣었다. 노트북도 제 자리에 두고 싶었지만 어느새 앞 집 남자와 아파트 관리인이 변소희를 부축해서 안으로 들이기 위해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이고, 누가 이렇게 안에 불까지 죄다 켜뒀어!”


차오르는 숨소리 사이로 꼬박꼬박 탓하는 대사까지 치는 관리인이 툴툴거리듯 말했다. 목소리가 소름 끼칠 정도로 가까워서 이러다 들키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제발 조리대 뒤 쪽까지 살펴보고 가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으아! 방이 어느 쪽일까요?”


앞 집 남자의 목소리였다. 둘 다 친절해지는 음식만 먹고 자랐나. 대충 현관 앞 복도에 던져두고 갈 것이지 변소희를 침실까지 모셔다 드릴 생각인 모양이었다.


“집 구조가 우리 집이랑 반대라서 은근히 헷갈리네요, 하하하.”


누가 들으면 집이라도 보러 온 줄 알겠다 싶은 대사였다. 대충 하고 가라고, 좀!


“저기 저 쪽으로 가 봅시다.”


관리인이 말했다. 어쨌든 주방은 아니겠지. 두 사람의 가쁜 숨소리와 변소희 씨의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하지만 어느 방으로 갔는지 굳이 두 눈으로 확인할 용기는 없었다. 조리대 뒤에 꼼짝 않고 앉고 있을 정신밖에 없었다.

곧 이어 관리인의 조심하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변소희를 침대 같은 곳에 눕히는 모양이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에 이제 빨리 각자 위치로 돌아가라고 빌었다.


“아이고,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고생하셨어요.”


감사 인사는 밖에서 나누면 안 될까 싶은 그 순간 방 안에서 변소희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야 김무겨어어얼! 어디 가아아!”


소름이 쫙 돋았다. 내 이름까지 부르다니. 이인 씨, 어쩌자고 나를 이런 공포 상황에 몰아놓으셨어요.


“그럼 이만 갈까요?”


앞 집 남자가 멋쩍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곧 불이 꺼졌는데 그 때 다시 한 번 변소희가 소리를 빽 질렀다. 술이 깼는지 내 귀에는 너무나 정확한 발음이어서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야 김무겨얼! 화장실에서 똥 싸고 냉장고에서 내 물만 꺼내 마시고 가 버리겠다 이거지!”


그녀의 말에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멈췄다. 왠지 두 사람이 주방 쪽을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광경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불을 꺼 어두워진 주방에 열린 냉장고 문 사이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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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1화 - 일단락 +2 20.07.13 25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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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 백태진 (2) +1 20.07.08 251 1 11쪽
38 38화 - 백태진 (1) +2 20.07.06 254 2 11쪽
37 37화 - 정이인 (2) +1 20.07.03 267 2 11쪽
36 36화 - 정이인 (1) +1 20.07.01 269 2 12쪽
35 35화 - 내부 조사 (5) +1 20.06.29 281 2 13쪽
34 34화 - 내부 조사 (4) +1 20.06.26 287 2 12쪽
33 33화 - 내부 조사 (3) +2 20.06.24 291 4 11쪽
32 32화 - 내부 조사 (2) +1 20.06.22 295 3 11쪽
31 31화 - 내부 조사 (1) +1 20.06.19 30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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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화 - 김무결의 임무 (4) +2 20.06.12 317 3 11쪽
26 26화 - 김무결의 임무 (3) +1 20.06.11 313 4 11쪽
» 25화 - 김무결의 임무 (2) +1 20.06.09 316 5 11쪽
24 24화 - 김무결의 임무 (1) +1 20.06.08 32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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