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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손 님의 서재입니다.

무주택자 무신론자 무연고자 김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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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손
작품등록일 :
2020.05.1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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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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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8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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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0화 - 새로운 사실 (3)

DUMMY

부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식당 앞에서 헤어졌다. 바로 앞 차도 갓길에는 이름도 정체도 알 수 없는 정이인의 ‘친척’이 차를 대고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은, 이 사람의 차에 탈 때는 언제나 그렇듯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도 나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정면만 응시한 채 차 안에 앉아 있는 게 더 편했다.


“잠깐 편의점에 들를게요.”


정적을 깨고 남자가 말했다. 애초에 그가 입을 연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집에 가기 전에 어딘가에 들른다는 것과, 그렇게 하겠다고 남자가 내게 말을 해줬다는 사실이었다.


남자가 부드럽게 차를 세운 곳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상가에 딸린 편의점 앞이었다. 젊은 남녀 넷이 간이 탁자에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며 간간히 욕을 하거나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요.”


남자가 말하더니 문을 닫고 나갔다. 그는 젊은 패거리 옆을 우아하게 지나쳐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 쪽 구석까지 들어간 그는 음료수가 가득 들어있는 냉장고 앞에 멈춰 섰다. 특정한 음료수를 찾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이런저런 음료수들을 관찰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 됐거든! 누가 신경이나 쓴대?!”


젊은 패거리의 한 여자가 소리쳤다. 무리 중에서도 특히나 취해 보였지만, 다른 세 명도 딱히 말리지 않고 낄낄대는 걸 보면 분위기에 취해 자신들이 얼마나 소란스러운지도 모르는 지경이었다.

남자는 여전히 냉장고 앞에 서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음료수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아니, 음료수들을 지켜보고 있긴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아무런 동작이 없었다.


운전석 옆 기어박스 근처의 작은 수납 공간엔 그가 두고 간 차 열쇠가 놓여 있었다. 비상등을 켜두고 나가서 달칵달칵 소리가 적막한 내부를 채우고 있었다.


‘나를 시험하는 건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 내가 이 차를 운전해서 도망갈 수도 있었다. 다시 편의점을 보니 남자는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거래처 부장님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궁금했다. 그가 변소희와 아는 사이일까? 그래서 변소희의 부탁을 들어준 걸까? 그가 건네준 두둑한 봉투 안에는 도대체 어떤 자료가 들어있는 걸까? 정말 궁금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꺼내보고 싶지는 않았다.


남자가 마침내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냉장고 문을 열고 안에서 음료수 캔 하나를 꺼내 카운터로 가져갔다. 그런데 계산원이 뭐라고 하자 다시 냉장고로 가서 음료수 한 캔을 더 꺼내왔다. 계산을 마치고 차 안으로 들어오는 그는 나를 무표정하게 훑더니 캔 하나를 내게 내밀며 말했다.


“원 플러스 원이래요.”

“네?”

“음료수가 원 플러스 원이래요. 마시려면 마시라고요.”


그가 그토록 열심히 고른 음료수는 체리 맛 탄산음료였다. 무뚝뚝한 사람 손에 쥐어진 음료수 캔의 디자인은 미치듯이 현란하고 촌스러웠다. 그런 그가 친절까지 베풀다니 여러모로 어색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래서 더욱 마다하기가 어려웠다.


“네, 고마워요.”


손에 닿는 차가운 음료수 캔의 감촉이 나쁘지 않았다. 이걸 고르겠다고 그렇게 오랫동안 냉장고 속을 뚫어지게 쳐다봤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코웃음이 나왔다.

남자는 거의 한 입에 음료수를 털어 넣더니 다시 차 밖으로 나가 편의점 앞 쓰레기통에 빈 캔을 버리고 돌아왔다.


“그럼 다시 출발합니다.”


아직 마시지 않은 음료수 캔을 손에 쥔 채로 남자를 쳐다봤다. 저 사람에 대한 내용도 두둑한 봉투 안에 들어있을지 궁금했다.


집에 돌아와 방에 들어가니 천둥이가 바닥에 앉아서 휴대폰을 보고 있다가 나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묻고 싶은 게 엄청 많은 눈빛이었지만 완곡하게 말을 하는 게 힘든 눈치였다. 일단 남자가 준 체리 맛 탄산음료를 작은 탁자 위에 두고 녀석에게 다가갔다.


“어, 형, 잘 다녀왔어?”

“응. 뭐.”

“그, 거래처 부장님이 맛있는 거 사줬어?”

“그냥 양념갈비.”

“아, 진짜 맛있었겠다. 나는 언제 그런 대접 받아보나.”

“사실 너무 특수한 일이긴 해서. 이런 일이 또 있을지는 모르겠다.”


겉으로는 이런 평범한 대화가 오갔지만, 천둥이는 온몸으로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와서 앉으라고 손짓을 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어달라고 종이와 펜을 내 얼굴에 들이밀기도 했다. 내가 가방 안에서 두툼한 서류 봉투를 꺼내자 녀석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갈비까지는 아니어도 좋으니까 뭐라도 얻어먹었으면 좋겠다.”

“그렇구나, 아이고, 그래도 나갔다 오니까 좋기는 하네.”


사실 봉투 안에 든 건 나도 아직 못 봐서 빨리 뜯어보고 싶었지만, 테이프 뜯는 소리가 크게 나지 않게 최대한 조심해서 열었다. 안에 들어있는 자료는 생각보다 다양했다.

일단, 정이인에 대해 조사한 내용이 꽤나 많았다. 사진이나 각종 신문 기사 스크랩 등 이것저것 나왔지만 가장 앞에 모든 자료를 요약한 글이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김무결 씨,


일단 당신의 정체에 대해 확실하지도 않고, 정이인 씨 집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위협을 무릅쓰고 이 자료를 보내드려요.


먼저 김무결 씨의 거래처 부장님은 개인적으로 아무런 친분이나 연고가 없었지만, 제가 특별히 찾아 뵙고 부탁 드렸더니 흔쾌히 응해주셨어요. 물론 자세한 사정은 얘기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김무결 씨가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건 눈치채셨을 테니 나중에 감사 인사 따로 드리고 설명도 하길 바랄게요.


그럼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정이인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해커예요. 우리 단체에는 작년에 합류했어요.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합류하고 나서 그녀가 보여준 성과는 눈부실 정도였죠. 실제로 마약 조직에 관해 이전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알아냈고, 그 조직의 구조나 작업 방식, 자금의 흐름에 대해서도 상당하게 파악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녀가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물론 이건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저도 제 분야에서는 꽤나 집요한 인간으로 통하고, 또 육감이나 눈치가 좋아서 그녀에 대한 이상한 기류를 느끼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정황적인 증거라면 정이인이 처음 단체에 합류했을 때에 비해 최근 3개월간 알아낸 자료의 양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거예요. 물론 정이인은 이미 많이 알아내서 더 이상 알아낼 것이 많지 않다고 변명했지만 거짓말이에요. 마약 조직도 상당히 규모가 크고 복잡해서 정이인이 이미 파헤친 자료도 전체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었으니까요.


제 생각에는 정이인이 조사해서 알아낸 자료를 단체에 제공하지 않고 개인적으로만 보관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특히 중요한 정보일수록 더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순간부터 정이인은 우리 단체 사람이 아니게 됐어요. 물론 본인은 우리 단체를 위해 충분히 헌신하고 있는 것처럼 어필하는데 딴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건 분명해요.


뛰어난 해킹 실력을 가진 그녀가 마약 조직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갖고 혼자서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마약 유통을 통해서 돈을 번다는 뚜렷한 목적이 있는 조직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죠.


그녀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더 불안하고, 또 그 집에서 반 강제로 갇혀 지내고 있는 김무결 씨와 구천둥 씨가 걱정돼요.


물론 지금까지 이야기한 건 오로지 제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고, 판단은 김무결 씨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첨부한 자료들을 잘 검토해보고, 혹시라도 그 곳에서 나올 마음이 생기면 제 휴대폰으로 문자 보내주세요. 어떤 문자든, 수상한 내용만 안 들어가게 보내주시면 될 것 같아요.


덧붙여서 저에 대해 말씀 드리면 저는 마약 조직과 우리 단체 양 쪽에 모두 적을 두고 있는 이중 첩자가 맞아요. 하지만 엄연히 우리 단체에 조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고, 개인적으로 마약을 하거나 그 쪽 조직을 위해 일하겠다고 마음 먹은 적은 없어요.


물론 유혹도 있었고, 흔들릴 뻔한 적도 있지만 제 자신을 잘 지켜냈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 말을 믿는 것도 김무결 씨가 알아서 해야겠지만, 그래도 제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도 함께 첨부할게요.


마지막으로 이 자료가 절대로 정이인이나 그녀와 관련된 사람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충분히 검토한 후에는 알아서 잘 없애주길 바랄게요. 양이 상당히 많아서 처리가 곤란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더 신경 써주시면 고맙겠어요.


-----


편지 내용이 생각보다 길었지만 순식간에 읽어 내렸다. 천둥이는 나보다 읽는 속도가 빠른지 먼저 다 읽고 첨부된 자료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말을 하는 것이 조심스러웠기에 서로 자료에 필기를 하며 대화를 대신했다.


정이인에 관한 자료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다만 누군가와 함께 만나는 듯한 사진과 사진 속 인물이 누군지 알려주는 신문 기사 스크랩을 통해 그녀가 실제로 세계적인 해킹 기술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자료가 대부분이었다.


정작 궁금한 것은 정이인의 계획인데, 그건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가보지 않는 이상 알기가 힘든 게 사실이었다.


오히려 변소희에 대한 자료가 더 흥미로웠다. 주민등록번호를 가리지 않은 신분증 사본부터, 그녀의 마약 검출 검사지, 신문사에서 받은 각종 표창장 사본과 최근에 마라톤을 완주하고 찍은 사진 등이었다. 마약과 관련이 없다는 것과 성실함을 어필하기 위해 공을 많이 들인 느낌이었다.


결론적으로 오늘 받은 자료를 요약하면 정이인은 마약 조직에 속해 있지 않지만 무서운 능력을 가지고 있고, 어떤 일을 꾸밀지 모르는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 그리고 변소희는 신문사와 마약 조직, 단체를 넘나들며 활약하고 있는 의인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자료의 신뢰도였다. 이 모든 자료들은 사실 보는 사람이 믿으면 사실이고, 안 믿으면 거짓이 되는 것들뿐이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충분한 근거가 없는 음모론을 읽은 기분이었다.


[믿을 만한 것 같아?]


변소희의 마약 검출 검사지 한 켠에 적어 물었다. 천둥이가 곧 대답을 적었다.


[너무 애 쓰니까 의심스러워]

[그럼 어떡하지? 다 지어낸 걸까?]

[잘 모르겠어. 근데 한 가지는 분명해]

[그게 뭔데?]


천둥이가 살짝 망설이더니 내 눈을 한 번 힐끔 쳐다보고 나서 다시 종이에 이렇게 적었다.


[자력으로 여기서 나가고 싶어]


녀석의 글을 보자마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변소희의 도움을 받아 나가는 건 조금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다시 녀석이 마지막으로 쓴 글씨 아래에 이렇게 적었다.


[어떻게?]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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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화 - 내부 조사 (3) +2 20.06.24 290 4 11쪽
32 32화 - 내부 조사 (2) +1 20.06.22 295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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