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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손 님의 서재입니다.

무주택자 무신론자 무연고자 김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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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손
작품등록일 :
2020.05.1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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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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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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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6화 - 정이인 (1)

DUMMY

별 것도 아닌 일에 매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하다. 예를 들면 통장의 의미 없는 숫자를 조금이라도 더 크게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들, 물건 살 때 얼마 깎아주지도 않는 쿠폰을 받으려고 시간 버리는 사람들, 몇 만원 혜택이 아쉬워 신용카드를 만드는 사람들 말이다.


왜 그런 자잘한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까? 조금만 더 크게 생각하면 훨씬 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데. 심지어 그런걸 ‘정보’라며 공유하고 퍼 나르는 사람들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기업의 마케팅 상술에 정보라는 표현을 갖다 붙이다니, 그건 정보에 대한 모욕이다.


오히려 일개미처럼 ‘정보’를 퍼 나르는 사람들은 정말 중요한 자신의 정보를 기업에게 기꺼이 갖다 바친다. 새로운 카드에 가입하고, 새로운 쿠폰을 발급 받으면서 기업에게서 혜택만 쏙쏙 빼 먹었다고 생각하는 머저리들이다.


큰 그림을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조잡한 생활 속에서 만족하며 자신이 이익을 봤다며 소소하게 즐거워하고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그러면서 자기만 잘났다고 생각하고 남들보다 앞서나갔다고 자위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멍청하긴.


나는 해커다. 위에서 말한 사람들을 비웃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할인 정보라며 좋아하면서 몇 백원을 아끼는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정보를 가지고 놀기 때문이다.


정보의 과부하 시대가 열리면서 해킹의 의미도 상당히 바뀌었다. 예전에는 무엇을 훔치느냐가 상대적으로 명확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정보의 양이 방대하고 그 구성도 상당히 복잡해졌기 때문에 알고리즘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만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단순히 벽을 뚫고 안에 들어가는 은행 강도 같은 사람들이라고 우리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사실상 정보는 눈 앞에 펼쳐진 바닷물처럼 고개만 들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 안에서 뭘 뽑아낼지, 그리고 뭘 걸러낼지 아는 게 기술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강도가 아니라 설계자나 논리학자에 더 가깝다. 논리를 더 잘 구성하고 그물을 더 잘 설계하는 것에 우리의 일이 좌우된다.


정보가 뭔지도 모르는 일개미들은 내가 하는 일이 그깟 쿠폰 하나 하사 받는 일보다 백만 배 더 가치 있다는 사실을 모를 거다. 그러니까 그깟 쿠폰 하나에 목숨을 걸겠지. 그래서 난 이 세상이 좋다. 그런 하찮은 것들을 위에서 마음껏 비웃을 수 있으니까.


다들 내 나이가 어리다고 놀라는데, 사실 인간의 두뇌는 20대 초반에 정점을 찍고 서서히 내려간다고 알고 있다. 머리가 보통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이쪽 세계에서는 금방 도태된다. 피겨 스케이팅이나 리듬 체조, 프로 게임처럼 이쪽 업계도 나이가 많을수록 버티기 힘들어진다.


어쨌든 그래서 나는 적은 나이에도 이 세계에서 암암리에 유명한 존재가 되었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더 어릴 땐 여기저기서 의뢰를 받아 일을 했고, 유수 기업과 각국 정부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돈이 어느 정도 모였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남 좋은 일을 하지?


정보는 그 자체로 큰 가치가 있다. 꼭 돈을 받고 남에게 넘길 필요도 없다. 직접 그 정보를 이용하면 더 큰 이익을 챙길 수 있다.


그 때부터 자산을 직접 키웠다. 그러자 자석에 이끌리는 쇳가루처럼 내 쪽으로 돈이 저절로 모여들었다. 금융계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도 나에게 수수료를 바칠 정도였다. 생각보다 너무 쉬웠고, 그래서 쉽게 재미가 없어져버렸다.


모든 것에 싫증을 느끼고 쇼핑하듯 익명으로 자선 단체에 돈을 나눠주는 것도 무지하게 지루해질 무렵, 우연한 기회에 변소희를 알게 되었다. 말이 잘 통해서 술도 마시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마약 조직을 와해시키려는 모임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처럼 언니언니 하며 그녀에게 달라붙어 정보를 캐냈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지원했지만 이 단체가 무너뜨리려고 하는 마약 조직에 대해 알면 알수록 재미있었고, 또 나만 알고 싶다는 욕망이 점점 커졌다.


얼마 되지 않아 이 조직을 완전히 소유하고 싶어졌다. 나의 해킹 능력만으로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결국엔 정보를 가진 사람이 모든 것을 장악하는 법이니까.


사실 중간 조직이나 말단 영업원들은 내가 알 바 아니다. 제일 윗사람이 누군지 알아내서 그 사람하고만 계약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대기업 총수가 회사를 인수하면서 부장 과장 사원들 하는 일을 일일이 알아낼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어쨌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약 조직을 와해시키려는 이 단체부터 와해시켜야 했다. 정보도 조금씩 줄여서 제공하고, 안에서 의심이 싹트도록 일련의 사건들을 조장했다. 김무결을 이용한 것도 그 중 하나였는데,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기대했던 효과는 어느 정도 거두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박도현이 눈에 거슬리는 짓을 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나의 자작극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런 생각을 입 밖에 내는 실수를 한 것이다.


그런 인간을 도저히 가만 놔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자리를 마련해 따로 불러냈다. 고급 음식점은 밝히는 타입이라 화가 잔뜩 난 표정을 하면서도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크흠.”


건방지게 내 인사를 씹고 헛기침을 하는 놈의 얼굴을 보니 가소로워서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이 어떤 처지가 될 줄도 모르고 뻣뻣하게 구는 것들은 제대로 밟아줘야 정신을 차리는 법이다.


“메뉴는 알아서 제일 좋은 걸로 주문 넣어놨는데, 괜찮죠?”

“네, 뭐.”

“오늘 왜 불렀는지는 아세요?”

“글쎄요. 간단히 해도 될 얘기 같은데 이렇게 거창하게 만드는 이유가 있습니까?”


겉으로는 고고한 척하는 그가 역겨웠다. 이 정도는 되야 꿈쩍이라도 할 것 같으니까 거창해진 걸 마치 자신은 모른다는 듯이 새침한 척했다.


“그냥 저번 회의 때 좀 이야기가 격하게 오간 것도 있었고, 사실 저도 좀 당황스러워서, 이런 저런 얘기하려고 불렀어요.”

“어떤 점이 그렇게 당황스러웠는데요?”


박도현이 이미 깔려 있는 반찬 중 신선한 도미 회 한 점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그냥 박도현 씨가 저를 의심했던 것도 그렇고··· 아무런 근거도 없었잖아요?”

“죄송하지만 먼저 저랑 노유강 씨를 스파이로 지목했던 건 정이인 씨였는데요.”

“설마 우리가 같은 위치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죠?”

“내가 너를 의심했으니까 너도 나를 의심할 수 있다는 말이 성립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는 말이지, 이 돌대가리야.”


갑자기 반말을 한 것 때문인지, 교수 입장에서 돌대가리라는 말을 들은 것 때문인지 도미 회를 씹던 그의 입이 멈추고 얼굴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너랑 나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클래스가 다르잖아. 솔직히 좋은 자료는 다 내가 퍼왔고, 초도 분석까지 내가 다 했는데 너는 그냥 그 위에다가 숟가락 얹는 시늉한 거나 다름없지 않니? 그런 입장이면 니가 무슨 말을 듣든 닥치고 있어야지, 뭘 얼마나 잘났다고 나한테 대들어, 대들기는.”

“그런 말을 할 거면 왜 나를 이런 데 불러냈지?”


애써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듯 반말로 응수하는 그의 모습이 오히려 주눅들어 보여 안쓰러웠다.


“교수씩이나 하면서 아직도 그렇게 모르는 게 많아서 어떡해? 지금 이런 얘기를 너한테 해 주려고 부른 거 아냐.”

“왜 갑자기 반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정말 그것 때문에 불러냈다고? 자존심 때문에?”

“자존심이라니? 지금 능력 안 되면 까불지 말고 자기 분수에 맞게 살라는 얘기잖아.”

“그러니까. 니가 생각하기에 나처럼 낮은 사람이 대든 것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다는 말이잖아.”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음을 느꼈다. 무식한 것들은 말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것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다. 그래서 그냥 닥치라고 하면 닥치질 않고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면서 까불어댄다. 더 어처구니 없는 건 그런 자신을 보면서 자기가 잘난 줄 안다는 거다.


저런 족속들은 존재 자체가 역설이다. 못난 걸 감추려고 쓰레기 같은 헛소리를 지껄여놓은 주제에 그 헛소리에 스스로 취해서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다니. 이 정도면 미워할 가치도 없다. 그냥 불쌍하다.


더 이상 말을 섞으면 내 입만 아프다는 건 이미 경험해 봐서 알았다. 그래서 인당 50만원이 넘는 한정식 풀코스가 그 잘난 입에 들어가는 걸 보면서 잠자코 있었다. 술도 마셨다. 깔깔대고 웃기도 했다. 말까지 놓으니까 누가 보면 절친이라고 착각했을 거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니까.


기분이 좋으니 내 집에서 한 잔 더 하자고 했다. 그냥 그렇게만 말하면 안 따라올게 뻔해서 200만원짜리 양주를 따겠다고 했다. 궁상맞은 놈답게 미끼를 물었다.


그래서 그렇게 잠시 집에 들어와서 비밀번호를 누른 뒤 아지트로 데려갔다. 마침 그 곳에 말했던 양주병이 있기도 했다.


일반 가정집처럼 꾸며놓았기 때문에 놈도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 술 몇 잔 마시다가 놈이 화장실에 가겠다고 해서, 그 사이에 카펫을 걷고 출입문을 열어놓았다.


“아니! 이건 또 뭐야!”


술에 취한 놈이 굉장히 오버하면서 거실 한 가운데 난 구멍을 보며 소리쳤다.


“이 안에, 더 귀한 것들을 모셔놨지.”

“아니 그으래?”

“나는 여자니까, 니가 좀 내려가서 제일 좋은 걸로 가지고 올라와 봐.”


출입구에 사다리가 걸려 있어 위 아래 이동이 가능했다. 놈은 그것도 신기했는지 비틀거리다가 출입문 안 쪽에 머리부터 쑤셔 넣고 말했다.


“우와, 이게 다 술 창고라고?”

“그렇다니까.”


놈은 잠시 고민하는 척했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제일 좋은 걸’ 고를 수 있는 기회를 놈이 놓칠 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 내가 내려갈게. 정말 아무거나 골라도 되는 거지?”

“아이, 그렇다니까. 어서 가서 가져와! 테이스트가 얼마나 고급진지 한 번 시험해보겠어.”

“크하하. 이러다가 내 술 안목 다 까발려지겠네.”


가식적으로 놈의 헛소리에 깔깔 웃으며 맞장구 쳐줬다. 그리고 놈이 바닥에 닿아 안 쪽 공간으로 사라지자마자 사다리를 꺼내 다른 곳으로 치워버렸다. 얼마 후에 구멍 안에서 놈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어디 갔어, 사다리!”

“그러게, 없어졌네!”

“야, 정이인.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장난 치지 말고 빨리 사다리 줘.”

“그건 좀 곤란해. 내가 생각해 봤는데, 넌 당분간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 소리를 지르든 뭘 하든 다 니 맘이긴 한데, 반성의 시간이 좀 오래 필요해 보이니까 너무 미리 힘 빼놓지는 마.”


사실 놈의 목소리만 들렸지만, 불안한 기운이 얼굴과 눈빛을 뒤덮었을 모습이 안 봐도 눈에 선했다. 이런 일을 당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겠지.


“그럼 난 이만.”


문을 닫고 다시 위에 카펫을 깔았다. 그렇게 놈은 내 아지트 안에 있는 감옥에 갇힌 채 생활하게 되었다. 하루 두 번 밥을 가져다 주고, 필요한 건 그 때 그 때 아래로 던져주었다. 휴대폰을 미리 빼놓긴 했지만, 혹시 몰라 전파 방해기도 설치했다.


놈은 내가 문을 열 때마다 애원하듯 말했다. 지금쯤 가족이 찾고 있을 거라나 어쨌다나. 경찰에서 자신을 찾을 수도 있으니 빨리 풀어달라고 협박조로 말하기도 했다. 경찰에서 찾은들, 나를 찾아올 걱정은 없었다. 어차피 관련된 곳의 CCTV 영상은 다른 것으로 바꿔놓았고, 음식점에는 미리 현금을 전달해 두었다.


그래서 마음 놓고 병에 가둔 벌레처럼 가지고 놀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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