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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손 님의 서재입니다.

무주택자 무신론자 무연고자 김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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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손
작품등록일 :
2020.05.11 20:07
최근연재일 :
2020.10.02 23:14
연재수 :
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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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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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
글자수 :
414,107

작성
20.07.10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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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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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40화 - 잘못된 선택

DUMMY

나는 다시 매니저와 박도현 씨가 있는 정이인의 아지트 쪽으로 뛰어갔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천둥이의 엄청난 반발과 고함 소리도 나를 막진 못했다. 그냥 그 곳에 가 봐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너라도 먼저 나가. 같이 가자고 안 할 테니까, 너도 나한테 강요하지 마.”

“강요가 아니라···”


녀석이 격앙된 목소리로 뭔가 더 말하려다가 갑자기 멈추고 숨을 고르듯 손으로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리고 다시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강요가 아니라, 누가 봐도 사는 길을 선택하라는 거잖아, 응? 형님아 좀!”

“그건 나도 아는데, 지금은 그렇게를 못하겠어. 그러니까 나는 두고 너라도 빨리 탈출하라고.”

“왜 이렇게 답답하게 굴어! 그 사람들 얼마나 알고 지냈다고? 그렇게 목숨을 걸 정도로 신경 쓰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궁금해서 그래!”


손에 든 휴대폰을 바라보면서 온갖 생각이 들었다. 아까 매니저가 그 깊은 구멍에서 정확히 던져 올려준 내 휴대폰이었다. 휴대폰을 되찾아줘서 도와주러 가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 그의 행동이 마음을 뒤집어놓은 건 사실이었다.


“그건 나도 몰라.”

“뭐··· 뭐라고?”

“나도 몰라. 내가 왜 이러는지. 그런데 그냥 감이 그래. 도와주러 가야 된다고.”

“그런 감··· 때문에 지금 목숨까지 걸겠다는 거야?”


그렇다. 결국엔 또 이 ‘감’이라는 게 내 발목을 잡았다. 이진숙이 보험금으로 내민 돈을 받았을 때 더 깎아서 받아야만 했을 때도, 진미경이 신이현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도, 변소희가 집까지 찾아와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을 때도 발동했던 감.

그 감이 항상 맞는 선택으로 이끌어주지 않는데도 계속 그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목숨이 걸렸는지는 모르는 거잖아. 지금 여기서 탈출해도 목숨이 위태롭기는 마찬가지기도 하고.”

“당장, 그것도 꽤 큰 위험에 처할 가능성은 충분히 높아 보이는데?”

“여기서 더 얘기하는 것도 아깝다. 미안한데 먼저 가 볼게.”

“이 형이 진짜!”


주방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오는 계단 뒤로 녀석이 외쳤다.


“야! 김무결!”


왠지 나를 자극할 수 있는 이런 저런 수를 쓰는 느낌이 들었지만, 선택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녀석은 혼자 나갈 엄두는 안 났는지 정이인의 아지트까지 따라왔다.


“우와, 여기 집이 또 있다고?”


아지트 안으로 들어서며 녀석이 말했다. 그리고 바닥에 뚫린 구멍을 보고 놀랐는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저기에 사람들이 갇혀 있는 거야?”

“응.”

“왜 오자고 했는지 알 것 같아.”


녀석은 그런 알 수 없는 말을 하더니 오히려 밖으로 나가버렸다.

의아함은 잠시 미뤄두고 구멍 쪽으로 달려갔다. 매니저를 불렀더니 그가 뭐라고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생각보다 거리가 멀어 잘 들리지 않아 살짝 말을 잘랐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사다리 같은 걸 찾거나 그런 게 없으면 이불을 엮어 밧줄처럼 만들어오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정말 어딘가에 사다리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매니저에게 알겠다고 말한 뒤 비밀 공간 안에서 다른 곳을 뒤져보았다. 하지만 사다리는 없었다. 이 공간에 전자제품이나 인테리어용 소품은 많이 있었지만 정작 이불이나 옷가지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밖으로 나가려는데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혹시 몰라서 방 문 뒤에 숨어서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초조해?”


정이인의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아마도 구멍 안에 대고 하는 말 같았지만, 나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히 쓰러져 있었는데, 기절 상태에서 깨어나 바로 이 곳으로 온 모양이었다.

이후 말을 계속 들어보니 나에게 하는 말은 확실히 아니었다. 자신을 기절시킨 매니저에 대한 분노를 조용히 드러내는 그녀의 말투는 불 같이 화를 낼 때보다 오히려 더 무섭고 잔인하게 들렸다. 그리고 바닥의 문을 쾅 닫는 소리로 그들의 일방적인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갑작스런 큰 소리에 놀라 하마터면 작게 비명 소리를 낼 뻔했다.


“안에 있는 거 알아.”


어차피 소리를 내도 상관없을 일이었다. 차가운 그녀의 목소리는 방 안에 있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안이라 잘 안 보일 거라서 말해주는데, 총이 있어. 그러니까 죽기 싫으면 머리 위에 손 얹고 천천히 걸어 나와.”


총. 역시 정이인은 모든 걸 가지고 있었다. 군대와 예비군 이후로 구경도 못해 봤던 물건을 그녀는 집에 상비해두고 있었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어깨에 힘이 축 빠졌다. 나의 감이라는 게 결국엔 내 몸뚱이를 정이인의 총구 앞으로 데려다 놓는 역할을 한 셈이 되어버렸다. 허무하고 또 후회스러웠다.


“뭐해? 안 나오고? 지금 내가 장난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왜 나는 항상 천둥이의 말을 듣지 않는 걸까. 도대체 이런 고집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녀석의 말대로 확실히 사는 길을 택하지 않고, 모두가 죽는 방법에 마음이 가는 걸까. 나라는 인간은 왜 항상 잘못된 선택의 연속일까?


“셋 셀 때까지 안 나오면 그냥 쏴 버린다.”


눈물이 툭 떨어졌다. 무심한 듯 한 방울만. 슬프지는 않았다. 굉장히 억울했다.

머리에 손을 얹고 그녀가 셋을 세기 전에 밖으로 나갔다. 꽤 멋져 보이는 까만색 권총을 든 그녀는 입 꼬리만 살짝 올린 만족스런 표정이었다.


“그래야, 말 잘 듣는 김무결이지.”


그녀의 표정을 읽고 싶었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선택지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나를 쏘거나, 아니면 구멍에 들어가라고 하거나. 뭐가 됐든 지금 죽냐 아니면 천천히 죽어가느냐의 문제였다.


“무릎 꿇고 앉아.”


그 말에 손을 머리에 얹은 채로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총구도 내 가슴을 따라 함께 내려왔다.


“마음 같아선 당장 죽여버리고 싶은데, 내가 또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서. 몇 가지 질문 좀 할 테니까 성의 있게 대답해. 알았지?”


대답할 마음이 나지 않아서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러면 곤란하지. 네, 라고 대답을 해야 나중에 내가 하는 질문에도 성의 있게 대답하지. 안 그래?”

“네.”

“옳지.”


기분이 더러웠다. 목숨을 붙잡고 가지고 노는 그녀의 태도가 역겨웠다. 얼굴이 희열로 가득 차 광이 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어쩌면 저 여자는 다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에서 가장 큰 기쁨을 느끼는 타입인 모양이었다.


“여긴 언제 발견했어?”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

“야, 누가 반말하래?”

“······”

“다시 얘기해, 정중하게.”

“몇 시간밖에 안 됐어요.”

“옳지.”

“······”

“왜 박도현 씨에게 니 휴대폰이 있었는데?”

“그건 그냥 실수로 빠뜨려서 그랬어요.”

“연락하라고 준 건 아니라는 거지?”

“아니에요.”

“어차피 연락도 못했겠지만.”


정이인은 잠깐 구멍 쪽을 바라보더니 다시 내 눈을 날카롭게 쳐다보며 다음 질문을 했다.


“백태진이랑은 무슨 관계야? 내가 모르는 둘 만의 사정이 있었어?”


매니저의 이름이 백태진이었구나. 사실 이름도 몰랐는데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아뇨, 그런 건 없는데요.”

“아니 그럼 왜 백태진은 너를 잡아오라고 한 나를 기절시키고. 너는 왜 굳이 여길 다시 왔어? 그냥 밖으로 나가도 됐을 텐데? 쟤 구하려고 온 거 아냐?”


또 그 질문이었다. 나도 정확하게 대답할 수 없는 그 질문. 솔직히 나도 그게 궁금했다. 매니저, 이제는 백태진이라는 이름이 생긴 그를 왜 구하려고 했는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천둥이가 극구 말릴 정도로 위험한 상황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은 맞다. 그런데 왜 그런 위험을 무릅썼는지 모르겠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요.”

“허, 뭐 착한 일을 하는데 이유가 있냐 이거야? 알겠어. 다들 착한 일 하는 건 좋은데, 먹여주고 재워준 사람 뒤에서 일을 꾸미고 때려눕히는 건 너무 심하지 않나? 왜 나는 좋은 일 하고 이런 대접을 받아야 되는데?”

“그런 게 아니라···”

“이건 대답하라고 물어본 거 아냐!”


그녀가 소리를 빽 질렀다. 갑자기 또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이 찾아온 것 같았다. 홧김에라도 방아쇠를 당기면 어쩌나 싶어 격앙된 그녀의 모습이 다른 의미에서 두렵고 무서웠다.


“죄··· 죄송해요.”


어떻게든 그녀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싶어서 한 말인데, 그녀의 눈망울이 더 커지고 얼굴에 핏대가 섰다.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할 거면 그냥 영원히 죽어버리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돈 있고 능력 있고 모든 걸 다 가진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건 시기 질투 아니면 입바른 소리밖에 없어. 다들 속으로는 나를 증오하고 어떻게 하면 나를 무너뜨릴까 하는 생각밖에 안 해. 그걸 아니까 나도 행동이 좋게 나가질 않는 거야. 잘해줘 봐야 어차피 나만 손해거든.”


어쩐지 총을 쥔 손에도 잔뜩 힘이 들어갔는지 그녀의 가는 손목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사실 그녀의 말은 거의 들리지 않고 온 신경이 그녀의 손에 든 총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질문도 끝난 것 같고, 남은 식순은 정이인님 훈화와 총알 발사뿐이었다.


“그러니까 다들 내가 너무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자기가 어땠는지 그것부터 돌아봐. 모든 게 인과응보라고 느껴질 테니까.”

“그럴게요.”


너무 떨려서 정말 마음에도 없는 대답이 나왔다.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눈이 감겼다. 무서워서 더 이상 그녀의 표정과 총을 직면할 수가 없었다.


“고개 들어!”


그녀가 다시 크게 소리쳤다. 화들짝 놀라 바로 고개를 위로 향하고 눈도 번쩍 떴다.


“그래야지. 그렇게 겁먹은 모습을 숨겨 버리면 내가 너무 재미가 없잖아. 니가 눈빛 흔들리는 것도 보고 입술 떨리는 것도 보고 공포에 질려서 눈물도 흘리는 꼴을 봐야 재밌지.”


이 말에도 대답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고 고개만 간신히 끄덕였다. 정말 그녀의 말대로 입술이 떨리고 공포를 가눌 수가 없었다. 냉동 창고에서도 그대로 갇혀 있었다면 죽었겠지만, 지금처럼 순간에 목숨이 끊기는 상황 앞에서는 도저히 침착함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이 총에 목숨을 잃은 사람이 이미 한 명 있어. 그 때는 내 집에서 죽이진 않았지만.”


이미 살인까지 저지른 적이 있었다니, 죽음이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영광으로 생각해. 네 이마에 박힐 총알도 어렵게 주문한 명품이거든. 그런 총알에 맞아 죽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어? 안 그래?”


어쩔 수 없이 정이인을 바라보면서 이제 정말 끝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녀는 나를 죽일 의지도 그녀 나름의 명분도 그리고 충분한 분노도 가지고 있었다.


“형님!!”


갑자기 상황에 뛰어든 목소리는 아까 홀연히 밖으로 나가 버렸던 천둥이의 것이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정이인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천둥이는 정이인이 들고 있는 총을 못 봤는지 내가 무릎을 꿇고 있는 그림 자체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순간적으로 발에 힘이 들어갔다. 자리를 박차고 몸을 일으켜 정이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시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이 놀라 커져 있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밀어서 쓰러뜨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총알은 나보다 훨씬 빨랐다.


‘타앙!’


엄청나게 큰 총소리로 인해 이명 소리가 모든 소리를 덮어버렸고, 나는 정이인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작가의말

피드백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40회까지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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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5화 - 새로운 시작 (4) 20.07.22 211 2 12쪽
44 44화 - 새로운 시작 (3) 20.07.20 222 2 12쪽
43 43화 - 새로운 시작 (2) +1 20.07.17 229 2 12쪽
42 42화 - 새로운 시작 (1) +1 20.07.15 242 2 12쪽
41 41화 - 일단락 +2 20.07.13 251 2 12쪽
» 40화 - 잘못된 선택 +4 20.07.10 252 3 12쪽
39 39화 - 백태진 (2) +1 20.07.08 251 1 11쪽
38 38화 - 백태진 (1) +2 20.07.06 254 2 11쪽
37 37화 - 정이인 (2) +1 20.07.03 266 2 11쪽
36 36화 - 정이인 (1) +1 20.07.01 267 2 12쪽
35 35화 - 내부 조사 (5) +1 20.06.29 279 2 13쪽
34 34화 - 내부 조사 (4) +1 20.06.26 285 2 12쪽
33 33화 - 내부 조사 (3) +2 20.06.24 290 4 11쪽
32 32화 - 내부 조사 (2) +1 20.06.22 294 3 11쪽
31 31화 - 내부 조사 (1) +1 20.06.19 301 3 12쪽
30 30화 - 새로운 사실 (3) +1 20.06.18 305 3 11쪽
29 29화 - 새로운 사실 (2) +2 20.06.16 311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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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화 - 김무결의 임무 (4) +2 20.06.12 317 3 11쪽
26 26화 - 김무결의 임무 (3) +1 20.06.11 312 4 11쪽
25 25화 - 김무결의 임무 (2) +1 20.06.09 316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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