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수레손 님의 서재입니다.

무주택자 무신론자 무연고자 김무결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수레손
작품등록일 :
2020.05.11 20:07
최근연재일 :
2020.10.02 23:14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20,720
추천수 :
359
글자수 :
414,107

작성
20.06.11 08:15
조회
312
추천
4
글자
11쪽

26화 - 김무결의 임무 (3)

DUMMY

“아니 누가 냉장고 문을 열어놨지?”


관리인의 목소리였다. 냉장고 문을 닫으러 오는지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이 상태에서 걸리면 정말 이상하게 보일 것이 분명했다. 어떤 변명을 해야 할지 머리를 열심히 굴렸지만 긴장감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때 침실에서 다시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다.


“우웨에에에에에엑!”


다행히도 두 사람 모두 침실 쪽으로 달려갔다. 방 안에서 소란스러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기회는 이 때다 싶어 밖으로 달려나가고 싶었지만, 품에 들고 있는 노트북이 문제였다. 다시 인덕션을 들어올려 노트북을 안에 집어넣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시간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방법은 이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 발로 소란스러운 침실 안으로 들어갔다.


“소희 씨!”


내가 외치자 변소희 주변에서 허둥대고 있던 두 남자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이 분이랑 오늘 같이 오신 분이구나! 어디 있다가 온 거예요?”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숙취해소제 구하러 나갔는데 편의점을 못 찾았네요.”

“바로 앞이 편의점인데?”


솔직히 나가 보지도 않아서 거짓말을 해 봤는데 그렇게 바로 앞에 편의점이 있을 줄은 몰랐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관리인이 말했다.


“뭐 모르겠고! 우리는 여기서 빠질 테니까 정리 좀 부탁합시다!”

“아, 네네. 그럼요. 먼저 가세요.”

“가시죠.”


관리인이 앞집 남자에게 말했다. 앞집 남자는 어쩐지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고, 관리인의 가자는 말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 빨리 가자니까요.”


관리인이 재촉하는데, 옆집 남자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편의점에 맨발로 다녀오셨어요?”

“네?”

“현관에 남자 신발이 있던데, 그 쪽 신발 아니에요? 아까는 그냥 남자 신발 한 켤레 두는구나 하고 넘겼는데, 지금 보니까 그쪽 신발 같은데, 어디 다녀왔다면서 신발은 왜 두고 가셨어요?”

“아, 거 얘기할 거면 좀 나가서 합시다. 냄새가 영···”


관리인의 제안으로 모두 거실 쪽으로 나갔다. 두 남자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아까는 소희 씨가 제 신발을 뺏어서 품에 꼭 쥐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맨발로 다녀왔어요.”

“아이고, 것도 말이 되네.”


관리인이 추임새처럼 치고 들어오는데 옆집 남자는 의심의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평소에 탐정 시리즈 같은 걸 즐겨보기라도 하는지 자꾸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 관리인 아저씨랑은 왜 마주치지 않았죠? 보니까 아저씨는 이 분 와 있는지도 몰랐잖아요.”

“그건, 제가 편의점 가려고 할 때만 해도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안 하고 있어서 계단으로 내려갔었거든요. 아마 그래서 엇갈리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무래도 수상하지 않아요? 저렇게 술이 떡이 된 사람한테 숙취해소제를 사 주겠다는 것도 이상한데, 솔직히 맨발로 나갔다 와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일도 아니잖아요.”


남의 집에 와서 뭐가 그렇게 당당한지. 내 입장에선 온갖 논리적인 추론을 자신 있게 내세우는 그의 태도가 더 수상했다. 평소 직업이 경찰이라도 되나?


“저렇게 취한 사람이 자꾸 현관문을 열어놓고 숙취해소제 내놓으라고 하니까 저도 당황해서 그랬던 것 같네요.”


내 쪽에서도 놀랄 정도로 거짓말이 술술 잘도 흘러나왔다. 아까는 긴장해서 한 마디도 못할 것 같았는데, 지금은 저 이상한 남자에 대한 오기가 발동한 모양이다.


“뭐, 그렇다면. 괜히 남의 집에서 이러쿵저러쿵 한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가시죠.”


옆집 남자가 마침내 관리인에게 말하며 밖으로 향했다.


“그럼 뒷정리 좀 잘 부탁합니다. 먼저 갑니다!”


관리인이 내 허리 쪽을 툭툭 두드리며 인사를 했다. 두 사람이 나가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그 때 겨우 긴장이 풀렸다. 침실에서 흘러나오는 향기로운 냄새를 뒤로 하고 일단 노트북부터 원위치에 두었다. 열려 있던 냉장고 문도 닫았다.


생각보다 뒤처리도 빨리 끝났다. 침대 위에서 토하긴 했는데 이불을 걷어내니 아래로 스며든 흔적은 거의 없었다. 급한 대로 화장실로 이불을 옮기고 변소희의 입 주변도 잘 닦아주었다. 간간히 소리지르던 기운도 다 빠졌는지 중간에 깨지도 않고 잠들어 있었다.


모든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새벽 3시가 다 되어 있었다.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이인 씨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잘 끝났어요?]


막 답장을 하려고 하는데 큰 길로 나오자마자 내 앞으로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고급 세단이었다. 창문이 내려오더니 그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타시죠.”


몸을 숙여 안을 확인하니 집사가 운전석에 있었다. 짜증나는 얼굴을 이런 곳에서 보게 되어 유감이었지만 너무 피곤하고 기운이 없어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뒷자리에 타려고 문을 열었는데 잠겨 있어 어쩔 수 없이 조수석에 탔다. 아마도 사장님 자리에 앉히지 않으려고 집사가 잠가둔 것 같았다. 쪼잔하긴.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 시각에 나와 준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는데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머쓱해진 나머지 휴대폰으로 동영상이나 보려고 했더니 집사가 헛기침을 했다.


“차 안에선 아무 것도 안 했으면 좋겠군요.”

“네?”

“조금이라도 신경이 쓰이면 운전을 제대로 못 하거든요.”

“그럼 이인 씨도 집사님이 모는 차 안에서는 아무 것도 못하겠네요?”


때마침 신호등에 차를 멈춘 그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쩐지 평소보다 더 험상궂은 표정이었다.


“집사···라고 하셨습니까?”


아차. 생각해보니 저 남자가 집사라는 건 내 추측이었을 뿐이었다. 마음 속으로는 집사라고 정해뒀지만, 그렇게 부른 적도 없었는데 그런 호칭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와버렸다.


“아, 그게 아니라, 제 말은···”

“누가 그러던가요? 제가 이인 씨의 ‘집사’라고?”

“아··· 죄송합니다. 누가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저 혼자···”

“넘겨 짚으셨네요, 그렇죠?”


얼굴이 화끈거렸다. 맞는 말인데도 저 남자의 입으로 확인 사살 당하니 몇 배는 더 무안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니까요.”

“그럼 어떤 호칭으로 불러드려야 할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났는지 상처를 받았는지 아니면 이런 기회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안을 주고 남몰래 기뻐하는지 표정만 보고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더 이상의 불편한 상황도 귀찮았다. 그래서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이인 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넓은 부지에 건물은 몇 채 없는 고급 단지에 속해 있었다.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타고 들어가면 그녀만 사용할 수 있는 전용 출입구가 따로 있었다. 그 통로는 차를 다섯 대 주차할 수 있는 전용 공간으로 이어졌고, 전용 엘리베이터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특별히 마음을 먹지 않아도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과 교류할 일이 없었다. 아파트지만 단독 주택처럼 사는 셈이었다.


집사로 추정했던 남자가 주차장에 진입해서 차를 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되는 광활한 거실에 도착하자 그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만의 공간으로 사라져버렸다.

아직도 술기운이 가시지 않아 주방에 들어가서 물을 한 잔 마시려고 찬장에서 컵을 꺼내는데 이인 씨가 갑자기 튀어나와 말을 걸었다.


“무결 씨!”

“네, 이인 씨. 안녕하세요.”

“임무는 잘 마쳤어요? 메시지에 답을 해야죠!”

“아, 그게, 뭐, 그럭저럭 잘 했어요.”


이인 씨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활짝 편 손바닥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USB를 꺼내주었다.


“여기요.”

“고마워요. 고생했어요.”


생각해보니 고생스러운 하루긴 했다. 억지로 삼겹살 자리를 만들어서 인사불성이 된 여자를 부축하고 집까지 데려다 준 다음에 자료까지 빼낸 것도 모자라 들킬 뻔한 위기를 넘기고 토사물로 범벅이 된 이불까지 처리하고 왔으니까.


“그럼 쉬어요! 나도 좀 자야겠으니까.”


이인 씨가 밝은 표정으로 USB를 손에 쥐고 주방을 나섰다.

아까 마시려고 한 잔 따라두었던 물잔이 카운터 위에 있었다. 아직도 술 기운이 남아 목이 타서 한 잔 들이켰다. 그런데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이상해.’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이진숙에게 돈을 받을 때처럼, 변소희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이상한 기분일 뿐이었다. 또 한 번 나쁜 ‘감’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또 뭘까?

일단은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그런 감을 느껴봤자 그 때 적절한 대처를 했던 것도 아니고, 나중에 또 밝혀지면 그 때 생각해야겠다고 대충 넘겨버렸다.


방 안에 들어가니 천둥이가 자고 있었다. 나도 내 침대에 기어올라가 누웠는데 정말 눈을 감자마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익숙한 목소리가 또 나를 깨웠다.


“형님아, 일어나.”

“응?”

“이인 씨가 빨리 내려오라는데.”

“아.”


어제 입었던 옷 그대로 심각하게 구겨진 차림에 잠도 덜 깨서 눈도 제대로 못 뜬 채로 천둥이와 함께 아래층 사무 공간으로 내려갔다.

이미 준비가 된 회의실 안에는 박도현 씨와 노유강 씨가 저번 회의 때와 같은 자리에 앉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앉아요.”


이인 씨가 냉담한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 그제야 뭔가 평소와 기운이 다른 것이 느껴졌다. 박도현 씨와 노유강 씨도 그리 반가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자리에 앉으며 괜히 구겨진 옷을 당겼다. 행색이 거지 같아서 그런가, 그런데 그런 걸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나.


“결론부터 말하면, 어제 임무는 완전히 망했어요.”


이인 씨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빛나는 두 눈동자가 내 머리를 꿰뚫고 들어올 기세였다.


“망···했다구요?”

“한 말 또 하게 만들지 말고, 듣기나 해요.”

“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USB에 든 내용을 분석하려고 컴퓨터에 꽂았는데, 안에 아무 것도 없었어요.”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꿈틀거리며 올라왔다. 새벽에 주방에서 물컵을 보며 느꼈던 나쁜 예감이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질문을 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요? 어제 10분이나 걸려서 옮겨 담았어요.”

“당연히 그랬겠죠. 그러라고 준 USB였고, 꽂기만 하면 작동되게 만든 거니까.”

“그럼 어떻게 된 거죠?”

“그건 우리가 할 질문이죠.”

“네?”

“우리가 거기 간 것도 아니고, 김무결 씨가 갔잖아요. 지금부터 변소희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빼먹지 말고 샅샅이 말해보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주택자 무신론자 무연고자 김무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8 48화 - 김연희 (2) 20.07.29 197 0 11쪽
47 47화 - 김연희 (1) 20.07.27 209 1 13쪽
46 46화 - 뜻밖의 재회 (1) 20.07.24 207 1 12쪽
45 45화 - 새로운 시작 (4) 20.07.22 211 2 12쪽
44 44화 - 새로운 시작 (3) 20.07.20 222 2 12쪽
43 43화 - 새로운 시작 (2) +1 20.07.17 229 2 12쪽
42 42화 - 새로운 시작 (1) +1 20.07.15 242 2 12쪽
41 41화 - 일단락 +2 20.07.13 251 2 12쪽
40 40화 - 잘못된 선택 +4 20.07.10 252 3 12쪽
39 39화 - 백태진 (2) +1 20.07.08 251 1 11쪽
38 38화 - 백태진 (1) +2 20.07.06 254 2 11쪽
37 37화 - 정이인 (2) +1 20.07.03 266 2 11쪽
36 36화 - 정이인 (1) +1 20.07.01 267 2 12쪽
35 35화 - 내부 조사 (5) +1 20.06.29 279 2 13쪽
34 34화 - 내부 조사 (4) +1 20.06.26 285 2 12쪽
33 33화 - 내부 조사 (3) +2 20.06.24 290 4 11쪽
32 32화 - 내부 조사 (2) +1 20.06.22 294 3 11쪽
31 31화 - 내부 조사 (1) +1 20.06.19 301 3 12쪽
30 30화 - 새로운 사실 (3) +1 20.06.18 305 3 11쪽
29 29화 - 새로운 사실 (2) +2 20.06.16 311 6 12쪽
28 28화 - 새로운 사실 (1) 20.06.15 308 4 12쪽
27 27화 - 김무결의 임무 (4) +2 20.06.12 317 3 11쪽
» 26화 - 김무결의 임무 (3) +1 20.06.11 313 4 11쪽
25 25화 - 김무결의 임무 (2) +1 20.06.09 316 5 11쪽
24 24화 - 김무결의 임무 (1) +1 20.06.08 322 5 12쪽
23 23화 - 새로운 단체 (3) +2 20.06.05 335 7 13쪽
22 22화 - 새로운 단체 (2) 20.06.04 347 5 15쪽
21 21화 - 새로운 단체 (1) +1 20.06.02 361 3 14쪽
20 20화 - 뜻밖의 손님 (3) 20.06.01 359 5 13쪽
19 19화 - 뜻밖의 손님 (2) +2 20.05.30 358 5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