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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활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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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활
작품등록일 :
2022.07.04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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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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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문으로

DUMMY

서강문으로



서강에서 가장 높고 험한 산이 바로 현류산이다.

과거 신수가 살았다는 말이 나돌 만큼 커다란 계곡과 험한 산세가 그 특징으로, 서강문이 자리 잡은 봉우리는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라는 말이 이상하지 않다.

진가장을 나서 한나절.

야밤에 이처럼 험한 산을 오르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다.

채호를 비롯한 일행은 현류산 진입로에 위치한 객잔에서 하룻밤 머물 기로 했다.


“이게 누군가? 벽력문의 둘째 공자셨나?”


서강문에 간다면 어쩌면 마주치게 될 거라 예상은 했지만, 그게 하루 더 빨랐다.

조영출은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채호를 향해 다가오더니, 곧 상희를, 그리고 진청을 확인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상희소저도 오랜만입니다. 지난번엔 내가 좀 추태를 보였소.”

“네, 그렇네요. 그날 입은 상처는 좀 괜찮으신가요.”

“흐, 흠흠. 부상이라고 할 만한 건 아니었소이다.”


그렇듯 인사를 건네고는 이게 어찌된 일인지를 묻는 얼굴로 채호를 다시 한 번 바라봤다.

오히려 궁금한 건 채호였다.


“그러는 조공자는 어쩐 일로 여기에 있는 겁니까? 분파에서의 일이 바쁘다고 알고 있었는데요.”


서강문은 네 개의 분파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중 제2분파가 벽력문이나 태평객잔이 있는 거리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조영출은 제2분파의 사범 중 하나로, 본파라고 할 수 있는 현류산으로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범이라고 해봤자 여자 뒤꽁무니나 쫓아다니기 바빴지만 말이다.


“아버지께서 갑자기 부르셔서 말이지. 아무래도 큰 소란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더군. 그래서 그대들은 무슨 일로 우리 서강문을 찾아온 거지?”


아마도 그 큰 소란은 지금 채호 일행이 들고 가는 <혈룡패>와도 관계가 깊을 거다.

서강문에도 이에 관한 소식은 들어갔을 테고, 아수혈교를 대비하여 외부의 전력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모양이었다.


“진가장에서 서강문에 전달할 물건이 있다고 하여, 이를 대신해 가져왔습니다.”

“진가장의 심부름이라? 흥, 그러고 보니 최근 윤공자의 위명이 아주 자자하더군. 그때는 무예를 익히지 않은 척 나를 속이는 바람에 내 실수를 범했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를 거다.”


철두서생.

웃기지도 않는 별호였다.

응룡회와의 비무회는 보지 못했으나 거기에는 서강문의 인물들도 초대되었던 만큼, 그 소문은 당연히 들었다.

최근 있었던 무산이괴와의 싸움까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에 앞서 마교의 고수라 할 수 있는 홍의음녀와 대적하여 무림맹의 무사들을 구했다는 활약상 또한 널리 퍼져 있다.


‘비겁한 녀석. 그처럼 권각술에 능하면서 나를 속여? 하지만 아무리 그래봤자 도를 쓰는 나를 당해낼 수는 없겠지. 좋아, 이번에야 말로 본때를 보여주마.’


그리고 흘깃 이제 상희를 쳐다봤다.

아직 별호를 얻지는 못했으나, 상희는 그 응룡회주를 상대로 비무에서 승리했다.

조영출은 이제 덤빌 수 없는 경지였다.

그 전만해도 기껏해야 계집,

만약 진심을 다해 싸운다면 어떻게든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제는 어렵다.

오를 수 없는 나무.

저 가지런한 옆모습만 봐도 아쉬움이 있다.


‘웃기지마.’


그래.

안 될 것도 없다.

윤채호에게 칼을 들면 이길 수 있다면, 반면 상희는 맨손으로 싸운다면 이길 수 있지 않겠는가?

저 가느다란 팔과 다리로 낼 수 있는 힘에는 한계가 있다.

뛰어난 여고수는 많지만, 맨손으로 그 이름을 날린 경우는 거의 없다.

기껏해야 이곳 서강에서는 홍의음녀정도만 그 경지에 도달했을 뿐이다.


‘우선은 저 놈의 건방진 콧대를 다시 뭉개야겠지.’


서강문으로 찾아온다면, 비무를 할 기회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태평객잔이 윤채호의 안방이었다면, 이곳은 조영출의 집이었다.


‘두고 봐라.’


조영출은 그렇게 결심하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본문에서 다시 보도록 하지. 나는 이만 쉬러 가겠네. 상희소저도 편안한 여행길이 되면 좋겠소.”


가볍게 포권을 하며 일어난 조영출이 위층의 객실로 올라갔다.

상희는 조영출이 자리를 비키자마자 못 마땅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곳에서 또 만날 줄은 몰랐어.”

“현류산은 서강문의 본산이니, 이곳에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겠죠.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아마 조용히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네요. 또 사저에게 치근거리지만 않는다면 좋겠는데요.”

“그러면 다시 사제가 혼내줄 거잖아?”


상희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제가 굳이 나설 필요가 있나 싶지만요.”


둘의 대화에, 진청도 마침 떠오른 듯 말했다.


“흐음, 그때, 객잔에서 그쪽에게 덤볐다 혼쭐이 났던 남자였나?”

“그래. 질긴 악연이라 할 수 있지.”


뭐가 됐든, 이번에는 일로 찾아가는 길이다.

서강문에 얼마나 머무를지는 몰랐지만, 괜히 시비를 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상대가 먼저 수작을 부려온다면 가만히 당해줄 생각도 없지만.

식사 이후, 객잔에서 방을 얻는 과정에서 약간의 의견이 있었다.

진청이 따로 방을 쓰겠다 주장한 것이다.


“나, 난 따로 방을 쓰겠어.”

“그냥 사저랑 같이 쓰던가.”

“뭐?”

“굳이 방을 세 개나 얻을 필요가 없단 이야기야. 되도 않게 정체를 숨기려 하고 있기에 그러려니 했지만 난 그쪽이 여자라는 알고 있으니까.”


처음부터 알아 챈 건 아니다.

진청이 여자라는 걸 알게 된 건 그녀가 진가장에 온 뒤다.

그럴 것이 삼재기공의 3성에 이르러 <인람>을 펼칠 수 있게 된 뒤에 확인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인람을 통해 기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게 된 채호는 진청의 걸음걸이, 자세, 숨결, 그 모든 것에서 여성의 기운을 느꼈다.


“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란 건 오히려 상희였다.

그리고는 서둘러 진청의 얼굴이며 몸을 훑어봤다.

진청은 난색을 표하며 할 말을 잃었다.


“아니, 나, 난, 그.”

“보아하니 대단한 이유가 있어보이진 않고, 그저 귀찮은 일이 꼬이는 걸 피해볼 요량인가 본데, 내가 알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되진 않겠지. 방은 두개면 되나? 사저는 어떻습니까?”

“······나는 괜찮아.”


상희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보니, 확실히 여자라는 걸 알 수 있다.

사람의 인상이란 의외로 주변의 인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 결정되지 않는 거다.

진청도 끝내 짧은 한숨을 내쉬더니 알았다고 답했다.


“뭐, 좋아. 이왕 들켰으니. 하지만 되도록이면 남자로 대해줬으면 싶군.”

“그럴 생각이야.”


무림에 여고수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눈에 띄는 건 어쩔 수 없다.

조영출만해도 상희에게 그렇게 철벽을 당했음에도 다가오는 걸 보면, 굳이 그런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은 거겠지.


“한데, 어떻게 알아챈 거지?”


적당히 의심만 하는 수준이었다면 아니라고 한 번쯤 우겨봤을 거다.

그러나 이번 채호의 말은 너무나도 단정적이고 확신이 가득했다.

반박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채호는 짧게 한마디만 했다.


“기가 달라.”

“기?”

“나야 좀 특이한 기술을 알고 있는 정도지만, 진짜 고수라면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는 거지. 너희 할아버지와 같은 수준이라면 말이야.”

“흐응, 그렇군.”


무림행을 나서기 전, 자신이 ‘남장을 하겠다.’ 했을 때, 할아버지가 피식 웃음을 짓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게 고수를 만나면 소용이 없을 거라는 비웃음이었단 말이지?

방을 빌리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채호는 낮의 피로를 풀고, 여전히 남은 자잘한 내상을 치유하기 위해 다시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당장에는 별다른 위협이 없지만, 서강문에 도착할 때까지는 안심할 수 없겠지. 차력조혼대법을 통해 맹수를 길들일 정도다. 거기에 놈들은 필시 진가장을 괴멸시킬 목적으로 습격해왔지. 단지 혈룡패를 원했다면 더 쉬운 방법을 찾았을 수도 있어. 그런 자들이 이처럼 좋은 기회를 마다할 리가 없을 텐데. 분명 빠르든 늦든 공격해올 거라 보는 게 맞아.’


일반적으로 운기조식은 잡념을 떨치고 집중해야 함이 옳지만, 채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이어가고 있었다.

삼재기공을 통한 운공은 채호에게 있어 호흡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비록 전생의 기억일지라도 이는 자연스레 현재 채호의 몸으로 녹아들어 있었다.


‘무산이괴의 한명도 아직 남아있고. 지헌이라했던가? 동생인 운소에 비해 못하다 해도, 그 실력은 상당해. 사저나 진청이라면 홀로 당해내지는 못하겠지. 아직 드러나지 않은 고수가 더 있다면, 여기 셋만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응룡회에서 보았던 구호라는 남자가 직접 나선다고 하면 그 승산은 더욱 아래로 내려갔다.

되도록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으나, 아수혈교의 입장에서 서강문으로 향하는 여기 채호일행이 혈룡패를 갖고 있을 가능성을 추측 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역시 진노인이 함께 왔으면 좋았을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진가장을 비워둘 수도 없었으니까.’


단전에 쌓여있는 내공을 확인한다.

기껏해야 1년 남짓한 내공.

하루 이틀 더 지난다고 해서 유의미하게 늘어날 수는 없다.

적어도 3년 정도의 내공만 더 쌓인다면, 활용할 수 있는 무공의 수는 비약적으로 많아질 텐데.


‘지금 가진 수단만으로 상대할 방법을 생각해야겠지.’


시간이 좀 더 흘렀다.

소주천을 마무리하던 채호는 객잔 밖의 묘한 살기를 감지했다.

곧 나타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가장 적기가 있다면 오늘 밤이라는 것 역시 짐작했던 바였다.

될 수 있다면 조용히 지나가길 바랐지만, 그리 순순히 보내줄 놈들이 아니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위협적인 기는 느껴지지 않아. 적어도 구호라는 남자는 없겠어.’


채호는 가부좌를 풀고 몸을 일으켰다.

방을 나서 옆방의 문을 두드렸다.


“뭐, 뭔데?”


진청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심한 밤에 여자들만 있는 방의 문을 두드리는 건 그리 예의가 아니긴 했지만, 지금은 비상사태였다.


“잠시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잠시만.”


정말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문이 열렸다.


“무슨 일인데?”


상희가 물었다.


“야습이 있을 것 같아요.”

“야습?”

“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이번엔 진청의 질문이다.


“기를 감지하는 것에 있어 자신이 있거든.”


자신이 여자인 걸 단숨에 알아차린 기술이니, 뭐라 더 따지기도 애매했다.

상희 역시 대체 어디서 그런 기술을 익혔냐고 묻지는 않았다.

무산이괴를 상대한 쾌검과 마찬가지로,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각기 짐을 서둘러 챙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객잔으로 들어서는 작은 기척을 다른 둘 역시 느꼈다.

습격은 삽시간에 이뤄졌다.

온다.

그렇게 예상한 순간 들어선 여러 기척들이 일제히 세 사람이 머무르고 있는 방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반격!’


그러나 먼저 준비하고 있었던 채호 일행은 짧은 신호와 함께 방으로 다가든 습격자들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순식간에 베어 넘겼다.

창과 문, 양쪽으로 들어선 두건의 암습인 넷을 단숨에 넘어트린 셋은 서둘러 방을 빠져 나왔고, 뒤따라 올라오는 여러 기척과 함께 그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채호가 말했다.


“무산이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는 않소? 늦은 밤을 틈타 암습이라니.”


암습자들의 가장 앞에선 남자.

무산이괴의 첫째, 지헌이 얼굴을 가린 두건을 아래로 내리며 싸늘한 눈으로 채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 역시 그리 내키지는 않았다만······ 네놈이 너무 나댄 탓이다. 혈룡패는 어디에 있더냐?”

“글쎄. 우리가 갖고 있다 생각하고 습격해온 게 아닌가?”

“헛! 아무래도 좋겠지! 네놈이 혈룡패를 지니고 있든 아니든, 여기서 살아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듯 외친 지헌의 옆에는 키가 큰 깡마른 남자가 함께 서 있었는데, 그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다만 붉게 물든 눈동자를 보며 채호는 확신했다.

차력조혼대법을 통해 개조된 인간.

저건 ‘혈마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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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열두 사도 +2 22.09.03 1,490 34 13쪽
24 기연을 얻었을 거야. +3 22.08.29 1,602 40 12쪽
23 몇 가지 의문들 +2 22.08.23 1,758 44 12쪽
22 전력을 다하다. +1 22.08.17 1,809 48 12쪽
21 무흔귀곡검 +2 22.08.13 1,815 51 13쪽
20 무산이괴 +2 22.08.09 1,804 42 11쪽
19 치료를 해주다. +2 22.08.05 1,827 46 13쪽
18 진가장 +2 22.08.02 1,827 43 12쪽
17 철두서생 +1 22.07.29 1,989 45 11쪽
16 조용할 날이 없다. +2 22.07.25 2,173 41 12쪽
15 벽력의 검 +1 22.07.22 2,138 46 11쪽
14 육합권 +1 22.07.20 2,121 49 12쪽
13 어째 수상하다. +2 22.07.18 2,092 45 14쪽
12 무림은 힘으로 결정한다. +2 22.07.15 2,153 49 13쪽
11 연회의 끝에 +1 22.07.14 2,185 41 12쪽
10 회담에 나서다. +1 22.07.13 2,219 4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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