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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활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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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활
작품등록일 :
2022.07.04 04:32
최근연재일 :
2024.03.29 16:48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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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8,385

작성
22.07.25 20:12
조회
2,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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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글자
12쪽

조용할 날이 없다.

DUMMY

조용할 날이 없다.



벽력문에 씌워진 음독 사건의 혐의는 완전히 지워졌다.

진범을 찾기 위해서는 상세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이었으나, 무림의 논리에 의해 모든 책임은 응룡회의 것이었다.

애초에 이 사건을 실질적으로 일으킨 것 역시 응룡회이긴 했으니, 이건 억울할 것도 없다.


“진가장에서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는 구나.”

“둘째 사형이 파견을 가있던 곳이죠?”

“그렇지.”


사흘이 지났다.

응룡회와의 다툼도 대충 정리가 되었고, 벽력문의 위상도 이전보다 올랐다.

다만 문제가 있었으니, 둘째 사형인 서우영의 부상이었다.

구호라고 불린 남자와의 비무에서 오른팔에 입은 상처는 한동안 요양이 필요했다.

불구가 될 수도 있었던 상처가 그나마 회복이 가능하게 된 건 채호의 빠른 응급처치 덕이었다.

그럼에도 최소 1개월의 재활은 필요하지 싶었고, 그동안 우영이 지금까지 맡고 있었던 파견 임무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해졌다.

엄밀히 말하자면, 마땅한 사람이 없다.

실력으로 보자면 상희가 가는 게 가장 맞겠지만, 상희도 응룡회주와의 비무에서 마지막에 큰 무리를 한 탓인지 내상이 남아있었다.

일상생활에는 무리가 없지만 내공을 끌어내는 것은 어렵다.

둘째 사형과 마찬가지로 요양 신세.

그렇다면 남은 건 결국 채호정도지만, 채호가 아무리 비무에 있어 좋은 결과를 냈다고 해도 이 같은 임무에 나서는 것에는 불안감이 있다.


“뭐, 제가 가도 상관은 없죠.”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주위의 시선이고, 채호에게 이정도 일이야 크게 어려울 것도 없었다.

진가장 주위에 불온한 움직임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이런 변방에서 무슨 큰일이 있겠는가.

만약 채호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 오히려 상희를 혼자 보내두는 편이 더 걱정이 된다.

이정도 소일거리를 하며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일이다.


“네가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거겠다만, 하긴 이것도 다 경험이다. 둘째의 부상이 나을 때까지. 그러니까 한달이면 되니 그동안 뭐 별다른 사고야 생길까. 한번 경험해 보는 것도 좋겠어.”


이렇게 해서 채호의 파견은 결정되었다.

진가장에서는 하루라도 빠르게 호위를 필요로 하고 있었고, 채호는 서둘러 채비를 갖췄다.


“정말 괜찮겠어?”


짐을 싸는 채호에게 상희가 걱정스레 물었다.


“응룡회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게 바로 사흘 전인데, 사저도 아직 절 못 믿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지만, 사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는 건 처음이잖아.”

“제가 보고 싶다고 울면 안 됩니다.”

“누, 누가!”


이런 장난에도 얼굴을 붉히며 대뜸 반응하니, 응룡회주를 쓰러트리며 고수의 칭호를 받은 것과 달리 여전히 그 속내는 열여섯 여자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진가장은 서강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상인가문이었다.

가주인 진원필은 나름 무공을 익힌 무림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무공은 단순히 호신을 위해 익힌 정도였다.

무가가 아닌 탓에 별도의 제자가 없는 진가장이다.

대부분의 무사는 외부에서 고용된 인물이었다.

벽력문 역시 비슷한 형태로 고용 계약을 맺은 상태였으며, 둘째 제자인 서우영은 지난 1년간 진가장의 호위를 맡고 있었다.


“별로 어려운 일은 없을 거야. 일은 기본적으로 한가한 편이거든. 간혹 호위로서 표행을 나서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의 일은 저택을 지키니까.”


우영은 떠나기 전 채호에게 진가장에 대한 자잘한 이야기를 전해줬다.


“사람들도 대체로 순박하고 좋은 녀석들이 많지. 소미 고 계집애가 쌀쌀 맞긴 하지만, 그래도 나쁜 애는 아니야.”

“소미라면 그 몸이 아프다는 딸 말인가요?”

“맞아. 부모가 워낙 귀하게 키운데다가, 어려서부터 몸이 아팠다보니 그 성격이 좀 모나긴 했지.”

“걱정 마세요. 잘 지내보겠습니다.”

“너야 누구와도 잘 지내니 내 걱정할게 뭐가 있겠냐? 그보다 틈틈이 수련은 계속 하고. 네 무공 실력이라면 별다른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근 습격사건도 있었던 데다가 그 흉수는 발견하지 못한 상태거든.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네, 명심할게요.”


다음날, 채호는 가벼운 봇짐과 칼 한 자루를 챙겨 진가장을 향해 떠났다.

가능하면 검을 쓸 생각은 없었지만, 어쨌건 호위의 임무를 띤 파견이다.

단순히 비무라면 모를까,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싸움을 해야 할 상황이 생긴 다면 지금처럼 단련이 되지 않은 몸으로는 칼 한 자루쯤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진가장은 벽력문에서 산 하나를 넘어 남쪽 해안이 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서강산의 여러 봉우리중 하나인 안리봉의 산길을 따라 길을 걷던 채호는 산 중턱에 위치한 작은 객잔을 발견했다.

때는 점심이었고, 슬슬 배가고픈 참이었다.

애초에 집을 나설 때부터 이곳에 들려 식사를 해결할 예정이었기에 채호는 고민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간단히 소면을 시키고 탁자에 앉았다.

객잔에는 산길을 오가는 객들이 몇몇 있었고, 그 중에는 무림인으로 보이는 사람도 몇몇이 보였다.

우선 저 앞의 탁자다.

셋으로 이뤄진 일행이었는데, 남자가 둘, 여자가 하나다.

어쨌건 칼을 차고 있으면 무림인이고, 그렇지 않으면 일반인이라고 보면 구분이 쉽다.

물론 그보다 더 알기 쉬운 표식이 있다.

국화 문양에 무(武)라는 글자.

저들이 입고 있는 무복에 새겨진 문양이었다.

<무림맹>의 소속.

총 셋으로 이뤄진 무리였고, 엿들을 생각은 없었으나 그들의 목소리는 채호가 앉아있는 자리까지 들렸다.


“마교가 맞을 까요?”


이제 막 약관을 넘었을 법한 청년이 물었다.


“글쎄. 나도 모르지.”


대답한 것은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였는데, 이립은 넘지 않을 거라 생각되었다.


“그러고 보면 이 산 너머 응룡회라는 사파의 문주가 마교의 무공을 사용한다더군요.”

“표인참원도 말이냐? 마교의 무공 중에서는 세간에 제법 알려진 도법이니, 꼭 마교도일 거라 생각하기에는 어렵지. 게다가 마교도라 하더라도 이번 사건을 그들이 일으켰다는 증거가 없다면 무턱대고 나설 수도 없고 말이다.”


살짝 신경이 쓰이는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면 며칠 전 있었던 비무에서 둘째 사형, 서우영에게 부상을 입혔던 응룡회의 구호라는 인물이 마공을 숨기고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그 원인이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

뭐가 됐든 평온해질 거라 생각한 생활에 다시 불온한 먹구름이 끼는 기분이 들었다.

하긴, 마교도가 나타났다고 해서 이제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마령윤회술을 통해 다시 태어난 것은 천마가 아닌 자신이다.

이 시대에 천마는 없었다.

채호의 천명은 천마를 쓰러트리는 것이었지, 마교를 없애 버리는 게 아니었으니까.


“더러운 사파가 눈앞에 있는데도 지켜봐야 한다니······.”


셋 중, 홍일점이라 할 수 있는 묘령의 소녀가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약관의 청년이 답했다.


“그들이 사파라는 이유만으로 공격해서야, 우리 역시 정의를 잃는 법이야.”

“그야 그렇지만, 사실 선배는 그저 마교도와 싸우고 싶지 않은 거 아닌가요?”

“······그거야 그렇다만. 진짜 마교의 고수라도 만났다간 우리들만으로 상대할 수 있을까?”

“저는 그깟 마교의 고수, 조금도 무섭지 않습니다. 무림맹 서강 지부 수색대라는 이름이 울겠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흠, 그건 네가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지.”

“또 그 적안혈겸을 만났던 이야기입니까?”

“그래. 무공의 수위도 높지만, 그 악랄함을 눈앞에서 보았어야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없을 거다.”

“그래봤자 아직 절정의 영역에는 오르지 못한 인물이 아닌가요? 저희 셋이 협공을 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소녀의 말에 선배라 불린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다. 만약 마교도와 싸워야 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셋이 협공하여 단숨에 쓰러트리는 것이 최선이겠지.”


세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객잔의 끄트머리에서 조용히 술잔을 들이켜던 녹의의 여인이 툭하니 입을 열었다.


“역시 추잡한 무림맹 답네. 정당히 승부를 가리기보다, 협공하여 습격할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뭐요?”

“그렇지 않나요? 그게 불만이시라면 어디 협공이라도 해보던지. 마교도의 실력을 보여 드리죠.”


자신을 마교도라 밝힌 여인은 투명할 정도로 희고 고운 손으로 탁자를 짚으며 일어났다.


“마교도인가? 흥, 이런 곳에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이에 가장 먼저 적대적인 시선을 보인 건 역시나 대화 내내 마교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말하던 소녀였다.

녹의의 여인은 그런 소녀를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본녀가 여기서 무얼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요? 지금이라도 얌전히 꼬리를 말고 물러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그 협공이라도 보여줄 텐가요?”


대화도중 선배라 불렸던 남자는 찬찬히 여인을 살피더니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그 시선이 머문 곳은 여인의 투명할 정도로 하얀 손이었다.


“이곳 서강에서 소수마공을 사용하는 마교의 고수라면 단 한명 뿐이지. 그대가 홍의음녀인가?”

“······그 별호는 그리 탐탁지 않네요. 홍의를 입지 않은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그 같은 별호로 부르는 거죠?”

“당장에 입고 있는 복장의 색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 그 악독한 소수마공을 이용해 상대의 피로 옷을 적시고, 음행을 일삼는 마녀에게 다른 별호가 필요할까 싶군.”


녹의여인의 고운 얼굴이 찌푸려졌다.

아무래도 홍의음녀라는 별호에 대해 몹시 불만을 가진 표정이었다.

무림인들의 흉흉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다른 손님들은 물론이오, 객잔의 주인마저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된 시선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채호가 볼 때 홍의음녀라 불린 마교도와 저기 수색대로 짐작되는 무림맹의 무사들이 싸울 경우, 십중팔구 홍의음녀가 이길 거라 짐작되었다.

무림맹의 수색대 역시 나름의 실력은 갖춘 모양이었지만 그보다 저 홍의음녀의 실력은 훨씬 뛰어났다.

무엇보다 더 투명할 정도로 하얀 손은, 소수마공을 상당히 높은 성취까지 익혔다는 증거였다.

아직 절정의 영역에 들었다고 생각되지는 않으나, 최소한 응룡회주와 비교해도 한 수 위의 실력자.


‘하필 간단히 점심이나 먹으려는 곳에서 이런 다툼이 일어나는 지.’


탁자위에 놓인 소면은 맛이 꽤 좋았지만, 분위기가 이러니 먹기도 힘들었다.

채호도 젓가락질을 멈추고 양쪽의 대립을 지켜봤고, 나란히 검을 뽑아 든 수색대와 그런 수색대를 향해 홍의음녀가 말했다.


“싸움인가요? 좋아요. 하지만 자리는 일단 옮기도록 하죠. 이런 곳에서 싸우면 객잔에 피해를 끼칠 테니, 정도를 하는 무림맹이라면 당연히 그런 짓은 하지 않겠죠?”

“좋다. 밖으로 나와라.”


수색대가 먼저 밖으로 나갔고, 홍의음녀가 그 뒤를 따랐다.

채호는 양쪽이 모두 나간 뒤, 다시 남은 소면을 빠르게 입에 넣었다.

조용히 살고자 하면 이대로 모른 척 하는 게 좋겠지만, 어쨌건 채호 역시 정도의 문파였다.

300년 전이지만, 일단 무림맹의 소속이었던 적도 있다.

그렇게 보면 까마득한 후배들이 질게 뻔한 싸움을 하는 것을 그대로 보고 둘 수 없는 것이다.

그릇을 빠르게 비운 채호는 소면의 값을 탁자위에 올려두고는 그들의 뒤를 쫓아 객잔을 나섰다.


하여간 조용할 날이 없지.


객잔의 옆으로 나있는 산길의 건너편,

이미 싸움은 시작되었는지, 전투의 소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작가의말

최근 바쁜 일이 몰려 좀 늦어졌습니다.

이번 주에는 꼭 4편을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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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진가장 +2 22.08.02 1,838 43 12쪽
17 철두서생 +1 22.07.29 2,000 45 11쪽
» 조용할 날이 없다. +2 22.07.25 2,188 41 12쪽
15 벽력의 검 +1 22.07.22 2,150 46 11쪽
14 육합권 +1 22.07.20 2,133 49 12쪽
13 어째 수상하다. +2 22.07.18 2,102 45 14쪽
12 무림은 힘으로 결정한다. +2 22.07.15 2,166 4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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