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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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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활
작품등록일 :
2022.07.04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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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07.09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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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가르침을 주다.

DUMMY

가르침을 주다.



무예의 경지는 혜원 서여경의 이론을 따라 셋으로 구분 되었다.


첫째는 예경(銳境).

끊임없이 초식을 연마해 무예에 날카로움이 깃드는 경지를 뜻했다.

예경의 극한에 이른다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일류 고수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둘째는 살경(殺境), 또는 기경(氣境)이라 불리는 경지로 자신의 의지로 내기를 자유롭게 다스려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다.

고수를 넘어 절정에 도달한 달인의 영역이며, 이쯤 되면 무림 100대 고수의 한명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끝으로 인경(人境)이란 자신의 완성으로, 신무합일(身武合一)을 이루어 무예의 극의에 도달했을 때서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경지다.

일천년 무림사에 있어 단 한명도 도달한 적이 없는 가공의 경지이며 전생의 채호조차 그 일부를 아주 조금 깨달았을 뿐이다.

조금이나마 그 영역에 발을 디딘다면, 능히 무림 최고수를 뜻하는 천하십절(天下十絶)의 자리에 그 이름을 올릴 수 있겠다.


‘사저라면 아직 예경의 중입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지.’


일반적으로 무예에 있어 다음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심(心), 기(技), 체(體)가 모두 일정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

여기서 심(心)이란 내기를 다스리는 능력을 뜻하며, 기(技)란 무예를 사용하는 기술. 체(體)는 무술을 펼치는 신체를 말했다.

상희는 기와 체에 있어서는 충분하지만, 아직 내기를 다루는 심에 있어 부족했다.

반면 채호의 경우 심에 있어서는 따를 자가 없는 수준이었지만, 기와 체가 매우 모자란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상희가 심에 있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익히고 있는 무공이, 벽력검법의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음단계로의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잘못된 방법은 다음단계로 올라가려는 상희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그리고 그건, 삼재기공의 기초적인 운용에서 문제가 돼.’


보통 무공의 발전이란 하나의 방향성을 띈다.

외공에서 내공으로.

상승무공으로 갈수록 외공보다 내공을 더 중요시 하게 된다.

외공은 육체가 한계점에 도달하는 순간 끝나지만, 내공은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검풍, 검기, 검경

셋 모두 내공을 통해 발현되는 검법의 극한이며, 육체를 초월한 기술이었다.

그러나 벽력검법은 내공을 다루면서도 상승의 무공이라 할 수 없다. 내공에 대한 이해 없이 오직 초식을 통해 이를 발현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신체에 무리가 많이 가며, 상희처럼 가냘픈 체구로는 벅찬 것이 당연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까지 벽력검법을 완성했다는 건 충분히 평가 할 수 있겠지만······.’


만약 상희가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면, 지금의 실력만으로도 충분히 응룡회주 정도는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핫!”


비무는 거의 숨 쉴 틈도 없었다.

상희는 전혀 봐줄 생각이 없는 듯 채호를 압박했다.

봉을 든 건 적절한 선택이었다. 맨손이었다면 도저히 버틸 수 없었을 만큼 상희의 공격은 날카롭다. 그나마 이만큼이나 버티고 있는 건 앞서 말한 상희가 가진 문제점 때문이다.

무리한 움직임에서 생기는 찰나의 틈.

이 틈을 기회 삼아 간신히 공격을 막아내는 정도였다.


‘만만치가 않네. 이렇게 밀려서는 가르칠 수가 없어.’


핵심은 상희에게서 경을 끌어내는 것이다.

검경을 사용하는 시점에 맞춰 호흡을 뒤튼다.

그것만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경의 발현을 위해 필요한 것이 단지 초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지도 모른다.

경이란 기본적으로 힘을 쓰는 방법이다.

전신의 힘을 집중해 최대의 힘을 끌어내는 타격기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경에 기공이 결합되어 현재에 이른 것은 무림 천년의 역사 속에서, 약 400년 전의 이야기가 된다.

기공술과 결합된 발경은 그 위력과 달리 상당히 불안정한 무술이었다.

300년 전의 채호는 이를 완전히 재정립하여 경을 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기공술을 만들어 냈다.

이것이 바로 삼재기공으로, 건강 무술 마냥 퍼진 이 기공술이 현재에 이르러 발달한 무수한 기공(氣功)경(勁)의 원천이 된다.

그리고 기공이란 본디 호흡을 다루는 기술이다.

경을 사용함에 있어 호흡의 방법에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작은 깨달음이나마 얻을 수 있다.

특히나 상희와 같이 정형화 된 형식에 고착된 상태라면 이는 큰 도움이 된다.


‘그러니, 우선은 경을 끌어내야······!’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인물에게 빈틈을 드러내는 건 멍청한 짓이다.

빈틈을 통해 경을 유도하고, 거기에 반격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그 완벽한 시점.

회피할 수 없게 몰린 채호를 향해 상희가 검을 겨눴다.

발을 구른다.

교과서적인 움직임.

검에 기공을 싣기 위한 과정이 줄줄이 이어졌다.

벽력검법의 극한이라 할 수 있는 검경의 발현.

그렇듯, 상희가 호흡을 들이켜는 그 순간.


“흡!”


채호는 방어를 위해 세워둔 봉을 휘저으며 찌르기로 변화시켰다.

검경을 전개하는 그 시점,

호흡을 자르며 찔러 들어간 채호의 일격에 상희는 순간 움찔했다.

하지만 이건 오히려 채호의 무리에 가깝다.

그것도 다분히 의도한, 완벽한 실수였다.


타악!

채호의 손에 들려있던 봉이 튕겨나갔다.

무너진 호흡, 자세, 회전.

그 모든 것을 상희는 일순간에 본능적으로 교정했다.

그야 그렇게 하기 가장 쉽게 호흡을 자르고 들어갔으니까.

그리고 빈틈을 드러냈으니까.

변칙적으로 전개된 검경이 봉을 날려 보내며 그대로 채호를 무력화시켰다.


“······어?”

“졌어요.”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은 소혁은 무기를 놓친 두 손을 깔끔히 들어 올리며 항복을 선언했다.


“아, 으, 응. 내가 이겼네.”


상희는 자신의 공격이 성공한 것은 물론, 채호를 단숨에 무너트렸음에도 의아하게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경을 쓸 때와 다른 묘한 감각.

자신이 무엇을 한 것인지 일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습니까?”

“응?”

“합격인가요?”


아, 그랬지.

상희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지금이 무슨 상황이었는지를 떠올린 것이다.


‘약간의 실력만 보려던 것인데.’


어느 순간 지나치게 열중 했다.

그럴 것이 사제의 실력은 상희의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

3초 만에 제압해서 ‘사제의 실력으로는 아직 무리야’라고 해줄 생각이었다.

그랬던 것이 어지간한 공격에 쉽게 무너지지 않아 그만 힘껏 몰아치기 시작했고, 끝내는 검경까지 사용해버렸다.

마지막 검경을 사용했을 때에는 오히려 빈틈을 찔러오는 과감함까지.

결과적으로는 악수가 되었지만, 그것은 채호가 이제 무술을 다시 수련한지 며칠이 지나지도 않았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믿기지 않는 수준이었다.


“······합격이야.”


거기에 마지막 검경을 사용했을 때의 손의 감각.

이 대련은, 어쩌면 사제보다 자신에게 훨씬 더 큰 이득이 된 건 아닐까?


“그럼 제가 함께 가는 것에 문제는 없는 거겠죠?”

“응.”


사실 이 시험에 불합격을 했어도 결국 같이 가기는 했을 것이다.

현재 벽력문의 방향은 거의 채호가 결정 하고 있고, 지금의 계획 역시 채호의 머리에서 나왔으니까.


‘이게 사제의 실력이야?’


다만 의문은 이것이다.

채호가 강해진 것은 상희에게 기쁜 일이다.

상희는 채호의 재능을 누구보다 높게 생각했다.

언젠간 채호라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경지에 이를 거라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속도는 예상 밖이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어떻게?

장광과 대련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던가, 운 좋게 촌경을 써서 조영출을 넘어트린 일과 지금의 대련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며칠이나 지났지?’


하루,

이틀,

사흘······.

소름이 돋았다.

채호가 저잣거리에서, 응룡회의 왈패에게 맞고 왔던 지 이제 고작 나흘째였다.


“압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거. 그러니까 그렇게 무섭게 노려보지 않아도 되는데요.”


태평한 목소리로 이렇듯 말하는 채호를 보며 상희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만으로 충분해?

대체 무슨 수련을 한 거야?

많이 부족하지, 그러니까 더 열심히 수련을 해?


“······혹시, 지난번에는 일부러 맞아준 거야?”

“네?”

“아니, 지금 실력이면 적어도 응룡회 녀석들에게 반격은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럴 리가요. 그럼 제가 다른 사형제들이 맞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그렇지.”


상희는 생각을 정리해봤다.

결론을 내리자면 지금 상황은 아주 단순했다.

나흘 사이에 사제가 놀랄 만큼 실력이 늘었다.

나쁜 일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응, 그래.


“나쁘지 않았어.”

“네?”

“충분히 합격이야. 이대로만 하면 좋을 것 같아.”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덮어 놓고 칭찬을 해서 지나치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은 좋지 않을 테니, 딱 여기까지만 해두었다.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이제 사제의 일은 잠시 뒤로 미루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볼 차례였다.


‘아직도 손이 저릿저릿해.’


간단한 시험이 끝나고, 윤채호가 이번 회담에 함께 가는 것은 이렇게 확정되었다.


*


일단 뛴다.

우선은 체력.

체력을 길러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고작 닷새 동안에 기적적인 체력의 향상을 기대할 수는 없다.

너무 무리해서 근육통만 생겨 역으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더 컸다.


“후우.”


그러니 오전의 수련은 딱 여기까지가 적당하겠지.

채호는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달리던 것을 그만뒀다.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호흡이 거칠었다.

나름 속도를 조절했지만 이 부실한 몸은 좀 심각할 정도로 운동 부족이다.

그러잖아도 요 며칠 안 움직이던 몸을 꽤 썼더니 여기저기 근육통이 남아있었다.

삼재기공의 호흡법을 통해 몸의 피로를 풀고 있으니 나흘쯤 뒤에는 대충 회복이 될 거다.

아마도.


“어이, 사형. 조영출을 혼내줬담서?”

“아, 제문이구나. 그리 대단한 건 아니야. 일부러 맨손으로 싸우도록 유도했거든. 흥분해서 달려드는 걸 제압하는 거야 어렵지 않지.”


허제문.

나이는 스물 둘.

벽력문의 다섯 번째 제자.

그 실력은 상희의 다음으로 장광보다 아주 살짝 앞서고 있다.

단순히 제자일 뿐만 아니라 이곳 벽력문의 부엌을 책임지고 있기도 했다.

무술보다 요리가 좀 더 뛰어난 것이다.


“사형이 수련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신기하긴 하네. 아무리 맨손이어도 만만치는 않았을 텐데. 이거 어느새 나보다 더 강해진 거 아니야?”

“칼을 쓰지 않는 조영출정도야, 사제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걸?”

“내가? 나도 권법은 자신이 영 없는데. 그래도 조영출이라면 운류풍연권을 익히고 있을 테고, 내 실력으로는 무리야. 대체 어느새 그렇게 실력을 쌓은 거야?”

“별로 대단한 건 아닌데.”

“그렇게 말하면 5년이 넘게 무술을 수련하고 있는 입장에서 괴롭구만.”

“칼을 들면 아직 사제의 실력이 훨씬 뛰어날 거야.”

“아직이란 말이지. 거참 조금만 시간이 있으면 금방 뛰어넘을 것처럼 말하는 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제문은 그리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요리 실력도 맘만 먹으면 금방 따라잡겠지.”

“뭐?! 그건 안 되지.”


오히려 요리 실력을 따라잡힐 것이 더욱 걱정인 모양이다.


“아무튼 이래봬도 사형을 믿고 있다고. 사흘 뒤에 응룡회랑 단판을 지을 거라며? 나야 걱정이 좀 더 앞서지만, 사형은 뭔가 생각이 있는 거겠지?”

“그래, 걱정마. 응룡회가 다시는 날뛰지 못하게 할 테니.”


응룡회를 잡은 뒤에는 모든 것이 잠잠해지겠지.

그때부터가 이 평온한 삶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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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무산이괴 +2 22.08.09 1,816 42 11쪽
19 치료를 해주다. +2 22.08.05 1,841 46 13쪽
18 진가장 +2 22.08.02 1,838 43 12쪽
17 철두서생 +1 22.07.29 2,000 45 11쪽
16 조용할 날이 없다. +2 22.07.25 2,188 41 12쪽
15 벽력의 검 +1 22.07.22 2,150 46 11쪽
14 육합권 +1 22.07.20 2,133 49 12쪽
13 어째 수상하다. +2 22.07.18 2,103 45 14쪽
12 무림은 힘으로 결정한다. +2 22.07.15 2,166 49 13쪽
11 연회의 끝에 +1 22.07.14 2,203 41 12쪽
10 회담에 나서다. +1 22.07.13 2,234 42 12쪽
9 고수의 눈에 들다. +2 22.07.12 2,283 48 12쪽
8 손님이 오다. +1 22.07.11 2,360 40 12쪽
» 가르침을 주다. +1 22.07.09 2,526 38 12쪽
6 싸움의 준비 +1 22.07.08 2,679 42 11쪽
5 촌경을 보이다. +1 22.07.07 2,828 44 12쪽
4 문제랄 것도 없다. +1 22.07.06 3,149 46 12쪽
3 독학치고는 쓸만하지? +1 22.07.05 3,427 55 11쪽
2 귀찮은 일은 해결해 둘 필요가 있다. +2 22.07.04 4,175 54 11쪽
1 환생 +2 22.07.04 4,966 6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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