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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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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활
작품등록일 :
2022.07.04 04:32
최근연재일 :
2024.03.2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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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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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385

작성
22.07.0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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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독학치고는 쓸만하지?

DUMMY

독학치고는 쓸만하지?



“그녀석이 무술을 배우려고 한다고?”


얼굴만 보면 어디 간신이 따로 없어 보인다. 저 생기다만 콧수염이 가장 문제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사실 실제 성격도 보기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네.”


벽력문주 윤백양.

나이가 마흔이 넘도록 고수의 문턱에는 닿아보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한 문파를 대표하는 장문인이다.

그 앞에는 벽력문의 셋째 제자인 상희가 서 있었다.

상희는 윤백양의 옆에 있는 탁상위에 찻주전자를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삼재기공의 비급을 읽었던 것 같아요.”


삼재기공.

벽력문의 검법인 벽력검법을 익히기 위해 선행으로 배우게 되는 기공술이다.

중소방파의 무술이란 대체로 기존에 있던 것을 변화시킨 것이 대부분이다. 벽력검은 삼재기공을 통해 ‘경’의 원리를 터득, 검을 통해 검경을 발현하는 것을 그 목표로 했다.

어렸을 적 체술만을 가볍게 익혔던 채호가 삼재기공을 읽기 시작했다는 건, 본격적으로 벽력문의 검법을 익히려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응룡회와 있었던 일이 어지간히 자극이 되었던 모양이구나.”

“그만큼 심한 대우를 당했다는 말도 되요.”


상희는 채호의 빨갛게 부은 볼을 생각하자 다시 화가 치밀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어릴 적에 재능은 나쁘지 않았지. 하지만 형수님은 싫어하시겠어.”

“사모님은 무림인을 좋아하지 않으시니까요.”

“형님이랑도 항상 싸우셨으니 말이다. 아무튼 좋은 소식이구나. 당장은 몰라도 2~3년쯤 배운다면 제법 쓸만한 실력이 될 수도 있을 거다.”

“사제가 본격적으로 무술을 배우면 저 정도는 머지않아 가뿐히 넘어설지도 몰라요.”

“채호가? 너를? 에이, 그건 너무 갔지. 그 비실이가 강해져봤자 얼마나 강해지겠냐.”

“사제가 왜요, 얼마나 머리가 비상한데요.”

“머리가 좋긴 하다만, 그렇게까지 비상한지는 좀······.”

“두고 보라니까요. 어쩌면 사부님보다 더 뛰어난 고수가 될 테니까요.”


백양은 어이가 없었지만, 상희의 표정은 단호했다.

하여간 콩깍지가 껴도 단단히 낀 거지.

상희는 이런 작은 문파에 있다는 것이 아까울 정도의 인재였다. 여자만 아니었다면 첫째와 비교해도 될 만큼의 수준에 올라있다.

나이도 어리고 여자 치고도 가냘픈 체구 때문에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힘의 격차만 아니라면, 무예에 대한 이해는 어쩌면 이 벽력문 내에서 누구보다 뛰어날지도 모른다.

반면 채호는······.

아버지나 첫째를 보아 재능은 어느 정도 있겠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다.

비실한 몸이야 여자인 상희보다는 그래도 낫겠지만, 이런 작은 문파에 상희 같은 재능이 몇 명이나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래, 그래, 그러면 나도 참 좋겠구나.”

“그럼 저기 가져온 차는 간에 좋은 약차이기도 하니까, 꼬박꼬박 잘 챙겨 드셔야 해요. 술은 좀 줄이시구요.”


상희는 백양의 뒤로 보이는 술병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고, 백양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흠, 알았다니까. 그 뭔, 많이 마시지도 않는구먼.”

“과음은 안하시지만, 매일같이 꼭 한 병은 드시잖아요.”

“그까짓 한 병 마셔봤자 취하지도 않는다. 내 어디 취해서 취사라도 부린 적이 있더냐?”

“작년 여름에······.”

“아니 거 일 년에 한번쯤은 그럴 수도 있지.”

“어쨌든 술은 둘째 치고, 차는 꼬박꼬박 드시는 거예요?”

“알았다, 알았어.”


채호가 다시 무술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좋은 소식이었지만, 사실 그에 앞서 응룡회와의 갈등은 언제가 되었든 풀어야할 부분이었다.

하지만 현재 벽력문이 가진 힘으로는 사실 응룡회와 싸우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겉으론 느긋하고 태평해 보이는 윤백양이었지만, 그 속이 타들어가는 건 제자들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이놈의 술을 끊을 수가 없는 거지.’


백양은 상희가 가져다준 약차를 물러두고 등 뒤에 있던 술병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


“어디서 배운 겁니까?”

“그야 여기서 배운 거지.”

“아니, 전 사형이 수련하는 모습을 본 게 오늘이 처음인데요?”

“왜, 너무 잘해서 놀랐나?”

“놀라고말고요. 그렇게 잘하시는데 응룡회 놈들이랑 한바탕 붙어 라도 보지 그랬습니까?”

“초식은 기억하고 있지만, 실제로 싸워 본 적이 있어야지. 그래서 말인데 여덟째야, 나랑 한 번 대련을 해볼 수 있을까?”

“네? 저랑 말입니까?”


벽력문의 제자는 총 열셋이다.

그 중에 가장 실력이 좋은 것이 첫째와 셋째로 무림인이라 불리기에 부끄럽지 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둘째의 경우엔 그래도 이류의 수준은 되었다. 그리고 다섯째와 여덟째는 간신히 삼류는 벗어나는 정도로, 남은 여덟보다는 그나마 실력이 괜찮았다.

참고로 응룡회와 싸워서 깨진, 채호를 제외한 셋은 일곱째와 열째, 그리고 열한 번째 제자였다.


“내가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살짝 궁금해서 말이야.”

“상관은 없지만······. 다치실 지도 모릅니다?”

“살살 부탁하마.”


여덟째 제자 정광은 나이로 따지면 벽력문에서 제자들 중에 두 번째다. 올해 스물아홉으로 채호보다 열한 살이나 많았다.

벽력문의 최고수로서 대외적으로 바쁜 양백호를 대신하여 채호에게 친형처럼 여러모로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라는 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었고, 속내는 어린데다가 실력도 없는 채호가 사형 행세를 하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어디서 육합권의 기본형을 배워온 모양이지만······. 그래도 진짜 무술을 익힌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여기서 따끔히 알려주어야겠다.’


보아하니 자세 자체는 꽤 제대로 잡혀있다. 아마도 남몰래 어디선가 수련을 했던 것이 아닐까 짐작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무예란 단순히 형을 익힌다고 해서 다가 아니었다.

육합권은 정광도 알고 있다. 어쨌거나 벽력문에서 기초적으로 익히는 무예중 하나로 육합권이 있기 때문에, 정광도 육합권의 수련을 상당기간 해왔다.


‘그건 그렇고 희한하군. 자세는 제대로 잡힌 것에 비해 몸이 너무 딱딱해. 저만큼 기본을 쌓으려면 제법 수련을 했을 텐데, 저렇게 몸이 뻣뻣할 수가 있나?’


어떤 식으로 무술을 익히면 저렇게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독학으로 무술을 수련한다는 건 대체로 저런 법이다. 때문에 제대로 된 길을 이끌어줄 스승의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일단 가볍게 실력을 확인해보자.’


연무장에 자리를 잡은 둘은 곧 대련을 위한 자세를 취했다.


“선공은 양보하겠습니다.”

“좋아.”


채호는 바닥을 박차고 단숨에 장광을 향해 달려들었다.

망설임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빠른 움직임.

이는 상대와 자신을 알고, 거기에 육합권을 완전히 이해했기에 가능한 행동이다.

장광은 채호보다 거의 머리하나는 더 크다.

자신보다 체격이 큰 상대와 싸우는 방법은 두 가지로 나뉜다. 거리를 두고 빠르게 치고 빠지던가, 그게 아니면 체격의 유리함을 발휘할 수 없을 만큼 근접하여 싸우던가.

여기에 육합권의 성질이 더해졌다.

육합권은 맨손박투에 있어서도 매우 근접한 거리에서 유리했다. 손등, 어깨, 팔꿈치, 무릎이나 머리까지, 온몸을 사용한 타격은 극도로 근접한 상황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초식으로 대부분 이뤄져 있었다.

서로의 숨결이 닿을 만큼의 거리에서 채호는 연달아 공격을 펼쳤다.

약간의 자만 섞인 발언을 하자면, 채호는 방금 일격으로 장광을 이길 수도 있었다.

첫 일격에 팔꿈치를 통해 촌경을 사용했다면 그 한방에 장광을 무너트리는 것도 가능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까닭은 지금 필요한 건 대련의 승패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내가 얼마만큼 움직일 수 있는지를 아는 게 중요해.’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아무리 채호가 전생의 기억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이길 수가 없다. 하지만 채호는 애초에 질 생각으로 이 대련을 시작했다.

여기서 이겼다간 오히려 그림이 좋지 않다.

그렇다고 대놓고 져줄 생각은 없지만, 이미 대련의 결과가 채호의 머릿속에는 대강 그려졌다.

3, 8, 11초식을 연속적으로 전개하며 장광을 몰아붙였지만 제대로 된 타격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속도나 위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반면 장광의 공격은 하나하나가 제대로 맞았다간 그대로 나가떨어질 위력이었다.

거리를 좁히고 가능한 횡적 움직임을 가져가며 효율적으로 공격을 피해냈다. 팔등으로 공격을 비껴내고, 그다음은 앞서 발을 내디디며 어깨치기.

체중이 낮은 채호는 역으로 튕겨 나왔고, 다음으로 이어진 장광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내긴 했지만 버티고 서있지는 못했다.

채호는 장광의 주먹을 양손으로 받아냈음에도 바닥을 뒹굴며 넘어졌다.


“하하, 역시 사제에게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되겠어.”

“······.”


장광은 어이가 없었다.

분명 방금 대련은 자신이 승리했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자신의 체격이 더 크고 힘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게, 넷째 사형의 실력이라고? 그 온실 속 화초 같은 도련님의 솜씨란 말인가?’


어깨, 겨드랑이, 목 아래, 옆구리와 가슴, 배.

예외 없이 정확히 꽂힌 채호의 공격에 온몸이 아릴정도다.


“정말, 혼자서 익히신 겁니까?”

“독학치고는 쓸만하지?”


마지막 일격 또한 완벽하게 방어했다. 유효했던 이유 또한 단지 힘으로 짓눌렀던 것이 통했을 뿐이었다.

장광은 멍청한 눈으로 여전히 주저앉은 채호를 내려다봤다.

지금까지 장광이 내심 속으로 채호를 무시한 것은 무예를 몰랐던 까닭이 컸다. 그러나 독학으로, 단시간에 이정도로 실력을 끌어 올릴 수 있는 재능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아무리 그래도 사저나 대사형에게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이쯤 되면 수년 안에 자신정도는 간단히 역전할 것이다.

나이 스물아홉에 간신히 삼류의 수준을 넘어선 장광이다. 스스로의 재능이 형편없다는 것 정도야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저 곱상한 온실 속 화초가 저렇게 단기간에 강해졌다는 것에 질투도 나긴 했지만, 장광은 딱히 심보가 나쁜 인물은 아니다.

속으로는 못마땅하게 생각을 해왔어도 겉으로는 착실하게 수년이 넘게 사형으로 대접을 해왔고, 때로는 채호를 동생처럼 챙겨주기도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역시 사형은 사형이군요. 좋은 대련이었습니다.”


장광은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여 진심으로 인사를 건넸다.


“사제의 실력도 훌륭했어. 좋은 대련이었습니다.”


무예에 대한 이해나 실력은 부족할 수도 있으나, 장광이 저렇듯 단단한 몸을 만든 것은 그만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경을 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부러 지려고 한건 아니다. 경을 제한한 상태로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 공격을 퍼부었다.

어쩌면 촌경을 썼어도 이기지 못했지 않을까.

현재 채호의 몸으로는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오지도 않았을 테고, 장광의 몸은 이류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단련된 편이었다.

진심이란 그 태도나 행동을 통해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드러나게 되어있다.

장광의 인사에서 그동안 느껴 본적 없는 깊은 진심을 느낀 채호는 마찬가지로 포권하며 장광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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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무산이괴 +2 22.08.09 1,816 42 11쪽
19 치료를 해주다. +2 22.08.05 1,841 46 13쪽
18 진가장 +2 22.08.02 1,838 43 12쪽
17 철두서생 +1 22.07.29 2,000 45 11쪽
16 조용할 날이 없다. +2 22.07.25 2,188 41 12쪽
15 벽력의 검 +1 22.07.22 2,150 46 11쪽
14 육합권 +1 22.07.20 2,133 49 12쪽
13 어째 수상하다. +2 22.07.18 2,103 4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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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싸움의 준비 +1 22.07.08 2,679 42 11쪽
5 촌경을 보이다. +1 22.07.07 2,828 44 12쪽
4 문제랄 것도 없다. +1 22.07.06 3,149 46 12쪽
» 독학치고는 쓸만하지? +1 22.07.05 3,428 55 11쪽
2 귀찮은 일은 해결해 둘 필요가 있다. +2 22.07.04 4,175 5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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