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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활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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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활
작품등록일 :
2022.07.04 04:32
최근연재일 :
2024.03.2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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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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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07.0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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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귀찮은 일은 해결해 둘 필요가 있다.

DUMMY

귀찮은 일은 해결해 둘 필요가 있다.



이곳 서강 땅은 예로부터 무림에 있어 변방에 가까운 지역이다. 물론 그럭저럭 이름이 난 문파 한둘 정도는 있다. 지역을 대표하는 서강문과 한때 무림 100대 고수로 꼽히던 현천검객을 배출한 바 있는 현천방이 바로 그 두 문파였다.

벽력문은 채호의 할아버지였던 선대 문주가 개파를 한 이례 그다지 이름을 떨친 적이 없는 작은 문파다.

그나마 제대로 된 무림명을 얻었던 유일한 인물이 바로 채호의 아버지인 벽력검 윤장열로, 이곳 서강에서는 제법 이름 있는 고수였다.

윤장열이 죽은 뒤 다음 문주가 된 채호의 숙부 윤백양은 그 반면 그다지 실력이 좋지 못했다. 실력만을 따지자면 윤장열의 첫째 아들이자 첫째 제자인 윤백호가 조금 더 나았다.

반면 둘째 아들인 윤채호는 일단은 넷째 제자의 자리를 차지는 하고 있었지만, 무예를 거의 익히지 않았다.

칼이라곤 어렸을 적 목검을 조금 휘둘러 본 것이 전부다. 애초에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채호였다. 열 살 무렵 무술을 알려주던 아버지가 죽었고, 그 이후 채호는 다시는 무술을 익히지 않았다.

그게 바로 어제까지의 일이었다.


‘응룡회. 얼마 전에 갑자기 나타난 놈들이지.’


응룡회는 서강에 나타난 지 한달도 안 된 신흥문파였다. 정확히는 문파라기보다 무술 좀 익힌 이들이 모인 조직에 가깝다. 때문에 ‘회’라는 명칭이 붙어있는 것이다.

어쨌건 이 같은 신흥 문파에게 필요한 건 실적이다.

그리고 그 실적을 위해 가장 만만한 먹잇감이 바로 벽력문이었다.

과거 무림명을 받은 고수를 배출한 문파. 때문에 그럭저럭 이름이 알려져 있지만, 문파 최고의 고수가 죽으며 쇠퇴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만하기 짝이 없지만, 무너트릴 경우 그대로 실적이 된다. 사파에 가까운 성향을 가진 응룡회에 이처럼 좋은 먹잇감이란 흔치 않았을 거다.

인근의 식당에서 밥을 먹던 벽력문의 제자들이 바로 어제 응룡회에 걸려 맥없이 당한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앞으로 이 구역은 우리 응룡회에 의해 관리 될 거다. 주제도 모르고 얼씬 거렸다간 오늘처럼 험한 꼴을 당할 테니 그리 알아라.”


채호도 그 자리에 다른 벽력문 제자들과 함께 있었다.

무예를 제대로 익히지 않았던 채호는 거의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더욱 부끄러운 사실은 응룡회는 고작 둘이었고, 벽력문은 넷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무예를 익히지 않은 채호는 둘째치더라도, 셋이서 둘을 당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깨졌으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무예와는 거의 담을 쌓고 살았던 윤채호가 느닷없이 삼재기공을 펼쳐들었던 까닭이었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할까.’


채호는 등을 벅벅 긁으며 방바닥을 한 바퀴 굴렀다.

채호는 300년 전 적수가 없던 고수인 천마를 상대로 이겼다. 채호가 바로 300년 전의 천하제일인이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전생의 일.

현실의 자신은 온실속의 도련님이나 마찬가지다.

무예란 단순히 이해한다고 해서 강해질 수 있을 만큼 만만하지 않다.

끊임없는 수련과 실전을 통해 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아무리 뛰어난 지식이 있어도 그것을 펼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

채호도 나름 무가의 자식이긴 하다.

열 살 무렵까지는 그럭저럭 칼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최소한의 기본기 정도는 닦아 놓았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8년을 책이나 보며 지냈으니 몸은 빈약한 서생이나 마찬가지다.

나이도 벌써 열여덟.

본격적으로 무공을 수련하기에는 조금 늦은 나이.

그러나,

지닌 무공의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면 나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장에 싸워도 어지간한 삼류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제대로 무예를 익힌 상대라면 당해낼 수 없겠지만.

덜컹!

장지문이 벌컥 열렸다.


“사제! 괜찮아?! 응룡회의 건달들에게 당했다는 게 정말이야?!”


대뜸 그렇듯 크게 외치며 채호의 방안에 들어선 것은 묘령의 소녀였다.

여기 벽력문의 셋째제자이자 채호의 사저가 되는 이 처자의 이름은 상희.

이제 열여섯의 어린나이였지만 벌써부터 숙부와 거의 대등한 검 실력을 지닌 벽력문 최고의 기대주라고 할 수 있다.


“아니, 그게, 뭐······. 그리 대단할 건 없는 일이었는데요.”

“내 당장 그 인간들을······.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낌새가 심상치 않더니, 무예도 익히지 않은 사제를 때리다니. 어디 심하게 다친 건 아니지?”

“저야 다친 곳 하나 없죠, 기껏 뺨 한 대 맞은 게 전부였는데요. 그래도 저를 공격하진 않더라구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디 봐봐. 뺨이 빨갛게 부었는 데, 괜찮기는 뭐가 괜찮다는 거야?”


여기 두 살이나 어린 귀여운 사저의 실력에 대해 좀 더 말해보자면 적어도 사저가 있었다면 어제 있었던 꼴사나운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벽력문이 분명 쇠퇴해가는 문파고, 숙부의 실력이 뛰어나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어쨌거나 한때 무림명을 얻은 고수를 배출하기도 했던 문파다.

다른 제자들은 모를까, 첫째인 형님과 사저의 실력은 벽력문의 규모나 위치를 생각했을 때 상당히 뛰어나다고 볼 수 있었다.

응룡회에서도 사저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셋을 넘지 않을 거다.


“이정도야 하루 이틀만 지나도 부기가 가라앉을 텐데요.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죠. 아무튼 지금은 좀 진정합시다. 형님도 없는 마당에 응룡회와 시비가 붙어서 좋을 게 없으니까요.”

“그럼, 그 치욕을 당하고 지금 가만히 있어야 한단 소리니?”

“사람이 다치지 않는 게 중요하지, 그깟 기 싸움이 대수겠습니까? 그렇다고 마냥 당해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상황을 좀 더 지켜보며 기회를 엿보는 게 좋겠죠. 아마 숙부님도 별 반응 없으셨죠?”

“······그건 그렇지만.”


보지 않아도 숙부의 반응은 뻔하다.

거참 난감하게 되었네. 그렇게 한마디를 하곤 턱이나 긁적이셨겠지.

숙부의 실력은 그리 뛰어나지 못해도, 상황판단을 하는 능력은 믿을만했다.

응룡회는 그 인원만 서른은 넘었다. 숫자만 따져도 세배는 되었고, 실력에도 꽤 격차가 있었다.

당장에 싸워봤자 좋은 꼴을 보기 힘들 다고 판단을 하셨을 거다.


“진수랑 언영이는 어때? 그 둘이 가장 심하게 다쳤다던데.”


사저가 조금 진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냥 타박상이에요. 어디 부러지거나 한 곳은 없으니 며칠 쉬면 나을 겁니다.”

“나는 납득을 못하겠어. 넷이나 다쳤는데 참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무작정 가만히 있자는 게 아닙니다. 기회를 보자는 거죠.”

“······오긴 오는 거야? 그 기회.”

“그거야 숙부님이 판단하실 문제 아니겠습니까?”

“알겠어. 사제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일단 참을 게. 하지만 한 번 더 그 치들이 우리를 건드린다면, 그때는 가만 두지 않을 거야.”

“네. 그때는 사저에게 저도 꼭 부탁을 하겠습니다.”


사저는 여전히 들끓는 화를 풀고 싶은 눈치였지만, 어쨌건 그래도 채호의 말은 잘 들었다. 채호는 무예는 익히지 않았지만, 문파의 운영에는 나름 관여를 하고 있었다.

그래봤자 숙부의 말상대나 되어주는 역할이긴 하나, 숙부도 채호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주는 편이었기에 가진 실력에 비해 발언권은 그럭저럭 있다.


“한데 저 책은 뭐야?”

“네?”

“사제가 무술서를 읽는 건 처음으로 봤어.”


사저가 가리킨 건 어제 전생의 기억을 되찾은 뒤 옆으로 치워둔 삼재기공의 무공비급이었다.


“아무래도 저도 조금 분했던 터라, 무술이라도 한번 다시 배워볼까 해서 펼쳐 봤죠.”


사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래? 어, 어때?”

“음, 그냥 뭐, 재미있더라구요.”

“흐응, 사제라면 분명 배우기만 하면 누구보다 빨리 강해질 수 있을 거야. 나는 항상 그렇게 생각했거든. 하지만 너무 무리는 하면 안 된다?”

“염려할 필요 있나요. 제가 사저도 아닌데.”

“내, 내가 언제 무리를 했다는 거니?”

“무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막무가내인건 확실하죠. 다 큰 처자가 아무리 사제의 방이라지만 이렇게 덜컥 들어오는 거 아닙니다.”

“무, 무슨 망측한 소리를 하는 거야?!”


사저는 볼을 빨갛게 물들였다.


“망측한 건 사저의 행동인데요. 어쨌든 저도 오늘은 좀 쉬어야겠습니다.”

“그렇잖아도 나도 그만 나가려고 했어. 그럼 사제도 몸 조리 잘하고, 푹 쉬도록 해.”

“네.”


사저는 방문을 나서기 전 다시 한번 채호를 한번 돌아보더니 말했다.


“무술, 정말 다시 시작해볼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좋아. 돌아가신 사부님도 아마 기뻐할 거야.”

“그럴까요?”

“응.”


한바탕 소란을 일으킨 사저가 그렇게 돌아가고, 채호는 문을 닫고 방 한편에 털썩 앉아 삼재기공의 비급을 집어 들었다.

다시 읽기 위해서는 아니다. 내용이라면 이 비급을 쓴 저자보다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평온하고 소박한 삶을 살려면 일단 귀찮은 것들을 정리해두는 것이 편하긴 하지.’


지금의 몸으로 어느 정도의 실력을 낼 수 있을지, 대략 짐작은 가지만 그래도 직접 확인을 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벽력문은 기본적으로 검문이다.

하지만 채호는 검을 쓰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현생의 채호가 그러했고, 전생에도 그건 비슷했다.

다만 검문이라고 할지라도 기본적인 맨손 무예정도는 익히는 것이 보통이다.

전생에 썼던 무예를 펼치는 것은 아무래도 눈에 띤다. 애초에 기억은 완전하지 않아 제대로 기억이 나는 건 많지 않았다.

가능하면 이미 채호가 알고 있는 무예를 손보는 것이 좋다.

벽력문에서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권법은 다름 아닌 소림의 육합권이다. 육합권의 경우 채호가 창시한 삼재기공과 마찬가지로 무림인 사이에 널리 퍼진 권법 중 하나였다.

채호도 어린 시절 아버지인 윤장열에게 배웠던 육합권의 기초를 기억하고 있었다.

채호는 잠시 눈을 감고, 어린 시절 배운 육합권의 투로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부분부분 누락된 기억이 많았지만 채호정도의 고수라면 그쯤은 대략적으로 채워 넣을 수 있다.

흔하다는 것이 꼭 약한다는 증명이 되지는 않았다.

그건 자신이 창시한 삼재기공을 통해서도 증명할 수 있다.


‘제법 괜찮은 권법이군.’


단순해 보이면서도 힘 있고 우직한 권법이다.

채호는 육합권의 24개의 초식 중, 기억에 남은 12개의 초식을 충분히 실현가능할 정도로 정리해냈다.


‘쓸만하겠어.’


방안에서 가볍게 몸을 풀 겸 움직여 보았다.

머릿속에 떠오른 형태를, 자신은 얼마나 실현할 수 있을까.


‘제대로 된다면 좋겠는데.’


응룡회를 손보려면, 최소한은 싸울 수 있어야 한다.

몸이 움직인다.

마치 자신의 몸이 아닌 것처럼 자연스럽게 손과 발이 뻗어나갔다.


“윽!”


끝으로 몸을 회전하는 팔꿈치 공격을 펼치는 순간 채호는 허리가 삐끗했음을 느꼈다.

우득 소리와 함께 저도 모르게 신음이 흘렀다.

처음부터 잘 될 거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이 뻣뻣하고 비실한 몸으로도 최소한 흉내는 낼 수 있다.


‘이건 좀 심각하긴 하군.’


채호는 삐끗한 허리를 두드리며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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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치료를 해주다. +2 22.08.05 1,841 4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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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철두서생 +1 22.07.29 2,000 45 11쪽
16 조용할 날이 없다. +2 22.07.25 2,188 4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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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독학치고는 쓸만하지? +1 22.07.05 3,427 55 11쪽
» 귀찮은 일은 해결해 둘 필요가 있다. +2 22.07.04 4,175 54 11쪽
1 환생 +2 22.07.04 4,966 6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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