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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활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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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활
작품등록일 :
2022.07.04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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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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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385

작성
22.07.1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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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글자
12쪽

고수의 눈에 들다.

DUMMY

고수의 눈에 들다.



“벽력문의 셋째 제자 상희입니다.”

“진청.”


자세를 잡자마자 상희는 알았다.

눈앞의 소년은 강하다.

순간 풍기는 기세가 날카롭다. 이곳 서강에서 또래 중에는 적수를 찾기 힘들었던 상희지만, 이번에는 긴장했다.

스승님의 말대로라면 정체를 숨긴 고수와 그 제자.


‘좋은 기회야.’


그렇지 않아도 벽력문 내에서는 대련을 할 상대가 없었다. 스승인 윤백양을 제외하면 현재 남은 제자들 중에서 상희의 상대가 될 만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매번 스승과 대련을 할 수도 없는 일.

응룡회와의 담판을 앞두고 조금 마음이 불안한 시기였다.

이런 때에 자신의 실력을 확인해볼 좋은 상대가 나타나 주다니, 이 같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힘들다.


‘실전에는 어떨까?’


게다가 어제 사제와의 대결에서 얻은 묘한 감각.

보다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검경의 활용법.

이후 골똘히 연습을 해보았지만 역시 혼자서는 잘 감이 잡히지 않았다.

깨달음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는 실전만한 게 없다.

칼날이 서로를 겨누고,

비무가 시작되었다.


‘뭐야, 이 애는?’


진청은 눈앞의 상대를 얕잡아 보고 있었다.

까놓고 말해 무예를 익히고 있다고 보기엔 너무 예쁘게 생겼다.

소박한 무복 차림을 하고 있어도 눈에 띠는 외모였다.

저렇게 예쁜 외모면 가진 실력에 비해 부풀려지는 경우도 흔했다.

조금만 잘해도 대단하다며 주위에서 치켜세웠을 테니까.

할아버지가 높이 평가했을 때도 그러려니 했다.

할아버지는 타인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후한 편이며, 어지간하면 상대를 깎아내리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렇겠지.

여기까지가 진청이 상대에게 갖고 있던 견해였다.

하지만 막상 검을 부딪치고 나니 그런 생각이 싹 가셨다.

또래에서는 적수를 찾아 볼 수 없던 진청은, 처음으로 자기보다 어린 상대에게 위협을 느꼈다.


‘빨라. 다른 제자들과는 확연한 실력차이!’


좀 전 지켜본 다른 제자들의 실력도 솔직히 보잘 것 없었다.

앞서 갔다 온 주가장에 비해서도 떨어지는 실력.

한둘을 제외하고는 간신히 삼류 무사나 될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어린 여자애가 이렇게 빠르고 위력적인 검술을 선보일 줄이야.


“하앗!”


진청이 사용하는 비영검술은 보다 실전적이고 날카롭다. 간결하고 적은 움직임으로 상대를 수세로 몰아가는 비영검술의 특징은 동작이 큰 벽력검법의 상성에 가까웠다.


“흡!”


그러나 상희도 만만치 않다.

특유의 날렵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벽력검법이 가지는 단점을 극복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검경의 전후에 존재했던 경직이 확연히 줄었다.

채호와의 대련에서 얻은, 단 하루만의 성과였다.


‘어라?’


흥미롭게 비무를 구경하던 채호는 낯선 소년의 검술에서 묘한 익숙함을 느꼈다.

실전적이고 날카로운 검술은 초식을 통해 검기를 끌어냈다. 그건 벽력검법이 검경을 끌어내는 것과 몹시 비슷했다.

아니, 근본적으로 같은 원리를 채택하고 있었다.


‘저건 삼재기공이잖아?’


이곳저곳 변형시킨 흔적이 보이긴 했지만, 그 원형은 어디까지나 삼재기공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워낙 널리 퍼졌으니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저만한 상승 무공에도 쓰이고 있을 줄이야.’


천류(天流)와 지중(地重), 거기에 인람(人覽)

삼재기공 전반부 3가지 구결이 그 안에 명확히 녹아 있었다.

어디까지나 기초적인 부분에 불과했지만, 거기에 담긴 삼재의 원리만은 분명했다.


‘그건 그렇고, 슬슬 비무를 끝내지 않으면 위험하겠는데.’


두 사람의 실력은 거의 막상막하.

워낙 비등한 승부였기에 둘은 거의 전력을 다했다.

이쯤 되면 단순히 비무가 아니라 목숨을 건 승부에 가깝다.

이대로 두었다간 자칫 누구 한명이 크게 다치는 것으로 비무가 끝날 것이다.

한계까지 검기를 끌어낸 진청과 최대의 검경을 발휘하려는 상희.

진노인의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울린 건 바로 그때였다.


“좋아, 비무는 그쯤 하도록 하지.”


예경의 중입을 넘어, 고수의 영역을 넘보는 두 사람의 비무였으나 진노인은 가뿐히 그사이를 파고들었다.


‘저건 지중이군.’


발구름으로 충돌 직전의 둘을 멈춘 한 수.

채호가 수련하려던 삼재기공의 두 번째 구결, 지중의 원리가 담긴 움직임이었다.

상희는 갑작스레 끼어든 진노인의 움직임에 놀랐으나, 이내 자신의 검격을 완벽히 잠재운 발구름에 감탄하며 뒤로 물러났다.

반면 진청은 할아버지가 끼어들어 승부를 중단한 것이 못마땅한 듯 분한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또래라고 하지만 진청이 한두 살은 더 나이가 많다. 십대에게 1~2년의 차이는 생각 외로 크다.

만약 상희가 1년을 더 수련했다면 이 승부는 무승부로 끝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상대는 알고 있을까?

단 이틀 전에 싸웠어도 이 승부는 진청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며, 그 차이가 역전되는 것엔 앞으로 열흘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비무를 마친 상희가 채호를 발견하고는 상기된 얼굴로 다가왔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어?”

“처음부터죠.”

“보고 있었으면 말을 하지.”

“그 비무의 도중에 어떻게 말을 겁니까?”

“그래도 왔다고 티는 낼 수 있잖아.”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지.


“스승님이 어떤 손님을 받았나 했더니, 정말 대단한 고수인가 봐.”


상희가 진노인을 보며 말했다.

채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진청이라는 사람도 실력이 좋았지만, 저 노인은 격이 달라요.”

“스승님보다도 훨씬 강하겠지?”

“그렇겠죠.”


까놓고 지금 실력이 한층 성장한 상희라면 숙부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후우, 이런 비무를 해본 건 정말 오랜만이야. 온몸이 저릿저릿해. 더 싸웠으면 내가 졌을 거야.”


순간순간 진청이 발휘했던 검기의 영향으로 의복 여기저기가 베여 찢겨있었다. 팔이나 다리 쪽에 살짝 드러난 하얀 피부에는 작은 상처도 보였다.


“하지만 다음에 싸우면 사저가 이길 거예요.”

“응?”

“그렇죠?”


채호의 말에 상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곤 잠시 생각을 하더니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내 복수는 사제가 해주는 거 아니야?”

“엥. 제가 무슨 수로 복수를 합니까.”

“후후, 사제는 왠지 가끔 엄청난 고수인 것 같을 때가 있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네요.”

“어제만 해도, 어쩐지 지금보다 사제와의 대련이 더 고수 같다고 여겨지기도 했는걸.”


채호는 살짝 뜨끔했다.

상희는 상당히 감이 좋다.

채호가 어제 대련에서 했던 것을 조금은 눈치 챘을 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말한 상희는 좀 전의 비무를 복기해보겠다며 돌아갔고, 모여 있던 다른 제자들도 각기 수련을 위해 흩어져 연무장에는 채호와, 그리고 진노인만 남게 되었다.

채호도 지중의 훈련을 위해 몸을 옮기려 했으나, 진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객잔에서 보여주었던 촌경은 아주 솜씨가 좋더구나.”

“그곳에 계셨습니까?”


일단 이렇게 되물었다.


“어쩌다 지켜보았지. 내 사실 이곳에 온 것은 자네 때문이기도 하네.”


묘하게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다 생각했더니.

저 같은 고수라면 그때 보여준 촌경의 가치를 충분히 눈치 챌 수 있다.


“어떤가? 노부와 비무를 한번 해보겠나?”

“제 미천한 실력으로는 도저히 노사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하하, 물론 좀 전의 아이들처럼 하자는 말은 아니네. 다만······. 그래, 비무라고 할 건 없고, 자네의 공격을 한번 받아보고 싶네만.”


진노인은 채호를 살펴봤다.

며칠 전에 보았던 촌경이 아니라면, 도저히 무예를 익혔다고 생각할 수 없는 몸이었다.

전혀 단련되지 않은 육체.

무예의 낌새조차 찾기 어렵다.

그러나 그날 보았던 촌경은 진짜였다.


“그때 보여드린 촌경 말입니까?”

“무엇이든 상관없네만, 자네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공격을 봐보고 싶군.”


채호는 잠시 고민했다.

이 영감이 대체 뭘 바라는지 모르겠다.

단순한 호기심인가?

까마득한 후배에게 무슨 가르침이라도 주려고?

적당히 어설픈 촌경을 보여줘서 보낼 수도 있겠지만 좀 전에 보았던 삼재기공의 원리를 가져다쓴 무예가 사실 탐탁치가 않다.

워낙 널리 퍼진 무공이니 이사람 저사람 다 익히고 있는 건 이해했다.

하지만 그래도 벽력문은 삼재기공을 그대로 익히고 있는 반면, 저 진노인의 사문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음대로 변형해서 자기무공인 마냥 쓰고 있지 않은가?


“그거야 어려울 것도 없지만······. 한 가지만 약조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약조라.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못할 것도 없지.”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겠다고 약속을 해주신다면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네.”


진노인은 피식 웃었다.

얼마나 대단한 무예를 보여주려고 저러는지 모르겠으나, 필시 자신이 익힌 촌경에 대단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그때 보인 촌경이 상당히 뛰어났음은 사실이나, 진노인에게 큰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노인은 그 재능을 높이 사 약간의 조언을 해주려는 참이었다.

그러나 이쯤 되면 확실히 궁금증이 인다.

대체 무엇을 보여주려고?

진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어려울 것도 없지.”

“하면 보여드리죠.”


진노인의 대답을 들은 채호는 자세를 잡았다.

베껴서 고친 무공을 두고, 진짜가 무엇인지 보여줄 생각이었다.

천류, 지중, 인람, 거기에 치수(治水).

여기까지가 세간에 알려진 삼재기공의 전반 네 개 구결이며, 그조차 반쪽에 불과하다.

한줌밖에 안 되는 작은 내공.

1성에 불과한 낮은 성취.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상관없다.

채호는 삼재의 원리에 따라 몸을 움직이며 기의 흐름을 끌어 모았다.


툭!

내지른 주먹은 그저 작은 바람소리만 내며 진노인의 앞에 멈췄다.


“받아보셨습니까?”

“······.”


진노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본 것이 무엇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소년이 지금 무엇을 한 거지?


“대, 대체 지금은?”

“약조를 하셨지요.”

“······.”

“그럼 가보겠습니다.”


삼경이라는 무예의 경지에 있어 절정의 고수라 하면 살경, 혹은 기경이라 불리는 제2경에 올랐다 할 수 있다.

이 경지에 든 고수라면 능히 기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으며 상대를 보지 않아도 기감을 통해 그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해 할 수 없다.’

진노인은, 채호가 주먹을 내질렀다는 사실을 인지조차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소년이 주먹을 뻗는 그 순간.

모든 기의 흐름이 일순간 사라졌다.

그 같은 기예는 지금껏 그 어디서도 들은 바가 없었다.

그뿐이 아니다.

주먹을 뻗기 이전의 동작부터 모든 것이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단순히 삼재기공을 연마한 것처럼 보였으나 그게 아니었다.

그가 익힌 비영검술을 비롯, 현 시대에 이르러 수많은 기공술의 원류가 그 자리에 있었다.


‘세상에 많은 기인이 있다고 하지만, 저 같은 녀석은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


아무것도 묻지 말아 달라?

어이없는 약조를 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그것이 이대로 잠자코 물러가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윤채호라 했던가? 무예에 있어 천부적인 기질을 갖고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아직은 어리구나. 노부는 네가 어디서 그런 기예를 익혔는지 알아내야겠다.’


아직 시간은 많다.

이곳 서강까지 내려온 목적, ‘아수교’의 흔적을 찾는 것도 여전히 단서가 없다.

딱히 기한도 없는 임무였다.

진노인은 한동안 이곳 벽력문에 머무르며 저 소년에 알아볼 결정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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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조용할 날이 없다. +2 22.07.25 2,185 41 12쪽
15 벽력의 검 +1 22.07.22 2,147 46 11쪽
14 육합권 +1 22.07.20 2,130 4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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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무림은 힘으로 결정한다. +2 22.07.15 2,163 4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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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회담에 나서다. +1 22.07.13 2,228 42 12쪽
» 고수의 눈에 들다. +2 22.07.12 2,275 48 12쪽
8 손님이 오다. +1 22.07.11 2,357 40 12쪽
7 가르침을 주다. +1 22.07.09 2,520 38 12쪽
6 싸움의 준비 +1 22.07.08 2,674 42 11쪽
5 촌경을 보이다. +1 22.07.07 2,823 44 12쪽
4 문제랄 것도 없다. +1 22.07.06 3,144 4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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