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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활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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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활
작품등록일 :
2022.07.04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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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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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진가장

DUMMY

진가장



소미의 입장에서 가문의 호위 무사가 하나쯤 바뀌는 일은 그리 관심을 가질 일이 아니다.

애초에 대부분의 시간을 방안에서 보내거나 기껏해야 요 앞의 정원을 거니는 정도였기에 무사들과 마주칠 일은 얼마 있지도 않았다.

소미도 날 때부터 몸이 약하지는 않았다.

본래 상인의 가문인 진가에서는 보기 드문 무재라 하여 2년 전만 하여도 화산파의 속가제자로서 수련을 받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 순간부터 내기를 일으키기 어렵게 되고, 시름시름 몸을 앓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절맥증을 예상했으나, 그건 아니었다.

이는 혈맥이 꼬인 염맥의 일종으로 보였으나, 그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진단의 결과였다.

난다 긴다 하는 의원을 모셔봤지만, 이를 고칠 수는 없었다.

막대한 내기를 담은 영약이 있다면야 치료하는 것이 불가능 하지는 않겠으나, 그 같은 영약은 고작 무림의 번방, 서강의 10대 상인 가문중 하나인 진가장에서 쉬이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게 2년.

두 팔은 이제 검을 들기 힘들 정도로 파리하고 가늘었다.

무예에 대해 그리 큰마음을 두었던 건 아니다.

다만,

언젠가 빼어난 검수가 되어 이 넓은 무림을 여행해 보고 싶다던 목표는, 이제 다시는 이룰 수 없게 되었다.


“이번에 온 공자님 얼굴을 보셨어요?”


시녀인 홍이는 소미의 오랜 말상대이기도 했는데, 쓰디쓴 탕약과 함께 이번에 새로 들어온 호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 철두서생인가 뭔가 하는 사람?”

“맞아요. 벽력문의 둘째 공자님이라던데, 정말이지 잘생겼지 뭔가요? 과거 서강제일미의 아드님이라서 그런지, 그 고운 얼굴선 하며······.”

“그, 그래?”

“일전에 계셨던 서소협도 물론 미남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이번엔 진짜 격이 다르다니까요?”

“그렇게까지 말하니 조금 궁금하긴 하지만, 서소협처럼 가벼운 사람이라면 나는 별로야. 게다가 철두서생이라니, 어쩐지 너무 경박한 별호 아니니?”

“그건 그렇지만······. 하지만 이번 윤공자님은 어쩐지 말씨도 다정하고, 아무튼 정말 좋은 사람 같았어요.”


벽력문에서 새로운 호위 무사가 온 게 이틀 전의 일이다.

소미에게도 인사를 권하기는 했지만,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만나보지 않았다.

어쨌건 그 짧은 사이에 시녀인 홍이를 제대로 구워삶은 모양이다.

처음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홍이가 여기까지 말하고 나니 살짝 호기심은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공을 모른다 하여 대부분이 무시했던 사람인데······.’


고작 며칠 사이에 이렇듯 평가가 바뀌게 되었다니.

하지만 역시 철두서생이라는 별호는 썩 멋지지 않았다.

다음날, 소미는 드물게 연무장까지 자리를 나섰다.

대놓고 자리를 차지하기보다는, 구석에 앉아 무사들의 수련을 지켜봤다.

그 잘생겼다는 벽력문의 공자를 볼 수 있으려나 했지만, 이곳에서 수련에 참여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진가장의 무사들은 화산파에서 사사한 연환삼검을 기본으로 익혔는데, 화산의 속가제자로서 검을 익혔던 소미 또한 연환삼검의 기초정도는 알고 있었다.


‘괜히 보러 나왔어.’


무사들의 검로를 지켜볼수록, 자신이 검을 휘두를 수 없다는 현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아무런 미련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무언가를 깔끔히 포기하기에 소미는 아직 어렸다.

이제 겨우 열일곱의 소녀였다.

소미는 어쩐지 상심한 기분이 되어 수련장을 뒤로했다.

안쪽의 정원에 도착한 소미는 잘 꾸며진 연못으로 다가가 갔다.

연못에 비친 모습은 한마디로 볼품이 없었다.

속된 말로도 그렇게 예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비쩍 야윈, 생기를 찾아보기 힘든 얼굴.

머릿결은 푸석거리고, 피부 또한 곱지 않았다.

염맥에 의해 쌓인 탁기 때문인지, 얼굴에 핀 작은 부스럼이 못내 흉하게 생각되었다.

벽력문에서 온 공자가 얼마나 잘생겼든, 이런 꼴로 만나봤자 오히려 부끄러울 뿐이다.

뒤로 물러나 손을 뻗었다.

있지도 않은 검을 쥐는 것처럼 자세를 잡아봤다.

매화낙류검법은 어렵겠지만, 좀 전 연무장에서 보았던 연환삼검정도면 그래도 펼칠 수 있지 않을까?

가벼이 자세를 잡아보았으나, 곧 고개를 저으며 팔을 내려뜨렸다.


“흡!”


작은 기합소리가, 정원의 건너편에서 들린 것도 그 무렵이었다.


‘저기는, 그냥 창고와 공터가 있을 뿐인데.’


천천히 다가가 공터를 확인했다.

공터에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소년이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그 자세와 형태가 영 어설펐다.

소미의 기척을 느꼈는지 상대는 움직임을 멈췄고,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소미는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홍이가 말 한대로 엄청난 미남이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소박하게 생겼다고 할까.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할까.

하지만 서글서글 부드럽게 생긴 얼굴은, 미공자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남에게 보여줄 만한 모습은 아닌데요.”


소년의 말에 소미는 냉랭히 대꾸했다.


“확실히, 형편없는 검술이네요.”

“그렇게 직접적으로 들으면 조금 마음이 아픕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뵙게 되네요. 본래 인사를 따로 하려했지만, 벽력문의 넷째 제자인 윤채호라고 합니다.”

“흥. 그 실력으로 제대로 호위는 할 수 있겠어요?”

“검은 아직 솜씨가 많이 모자라지만, 그래도 권이라면 기본적인 건 할 줄 압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겠지만······.”


방금 움직임은 무술을 거의 익히지 않은 민간인이나 똑같은 수준이었다.

도저히 무예를 익힌 고수라고 볼 수 없었다.

필시 철두서생이라는 별호는 그저 어쩌다 본 박치기에 사람들이 우스개삼아 붙인 것에 불과하겠지.


“앞으로 더 많이 정진해야할 필요가 있겠네요.”


소미는 싸늘하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그저 입만 산, 얼굴 좀 잘생긴 한량.

여기까지가 소미가 채호에게 가진 첫 인상이었다.


*


“습격은 총 두 번, 보름에 걸쳐 일어났지.”

“다친 사람은 누구입니까?”

“외부와 내부를 순찰 돌던 무사들이 각각 하나씩 다쳤지. 한명은 부상을 입는 정도에 그쳤지만, 다른 한명은 그 자리에서 숨졌네.”

“목적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바가 없었습니까?”

“글쎄. 그야 상인 가문이니, 재물을 탐했다고 볼 수도 있겠네만, 확실치는 않네.”

“다른 목격자는 없었나요.”

“습격자의 모습은 몇몇 무사들이 목격했으나, 워낙 어두운 밤이었고 빠르고 기괴하여 제대로 된 얼굴은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네. 덕분에 마교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는 참이지.”

“최근에 얻은 귀중품이나 약재가 혹시 있습니까? 어쩌면 그 중에 상대가 노리는 물품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번 확인해 보도록 하겠네.”

“네.”


진가장의 생활은 그리 어려울 게 없었다.

이전 두 차례 있었던 습격자에 대한 조사는 시원찮았으나, 그 이외에는 평범했다.

채호는 남는 시간을 들여 무예의 수련을 이어갔다.

언제 또 무슨 사고가 있을지 모르는 만큼, 어느 정도의 실력을 쌓아둬야 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있었던 홍의음녀만 해도 상대의 심성이 별호만큼 악독했다면, 자칫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가문의 벽력검을 연습하던 모습을 진가장의 딸에게 들켰을 때는 조금 당황했다.

이런 꼴을 보이지 않으려고 숨어서 수련을 했건만, 하필 걸려도 이렇게 딱 걸릴 수가 있나 싶다.


‘몸이 좋지 않다는 말은 들었지만, 생각보다 증세가 심각했지.’


소문을 들어서는 일종의 염맥이라고 했다.

염맥이란 혈맥이 꼬여서 절맥의 증상이 나타나는 병이다.

절맥증에 비해 염맥은 그 강도가 낮기는 했으나, 상황에 따라서는 더 몸을 크게 상할 수도 있었다.

특히 세맥에 끼치는 영향이 좋지 않았는데, 저 같은 상태를 오랜 시간 방치하게 되면 끝내는 단명하고 마는 심각한 병세였다.

염맥은 보통 후천적으로 발생하게 되나, 드물게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음기와 양기의 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성장할수록 증세가 발현되는데, 채호가 보기에 소미의 증세가 딱 그러했다.


‘충분한 내공이 있다면, 치료할 수 없지도 않지.’


절맥이라면 그 경중에 따라 대단히 오랜 시간의 치료가 필요하겠으나, 염맥이라면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삼재기공은 모든 기공술의 기반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무공이었다.

뒤틀린 맥을 교정하고, 이를 본래의 형태로 자리 잡게 만드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채호의 내공은 일천한 수준으로, 당장에 가능한 건 기껏해야 병의 증세를 조금 호전 시키는 정도였다.


‘하지만 대뜸 따님의 증세를 볼 수 있겠냐고 물어도 이상한 눈초리나 받을 테니.’


채호는 호위로 진가장에 온 것이지, 의원으로 온 게 아니니까.


“공자님! 공자님!”


진가장의 시녀인 홍이가 채호를 향해 헐레벌떡 다가왔다.


“말씀하신 약재를 준비해두었습니다. 이제 어찌하면 될까요?”

“숙수의 허락은 받았겠지?”

“네, 물론이지요.”

“그럼 됐다. 내가 직접 약을 달일 텐데, 앞으로는 이를 배워 하루 한 번씩 아가씨에게 드리면 얽혔던 진기가 자연스레 풀릴 테니 한결 속도 편안해지고 얼굴의 색도 한층 나아질 거야.”


직접 맥을 살피고 기공을 통한 치료는 할 수는 없겠지만 간단한 약이라면 만들어 볼 수 있다.

본디 300년 전의 채호는 선인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그 무예를 익혔으며 이를 통한 선술에 있어서도 일가견이 있었다.

세상의 균형을 무너트리는 존재, 천마를 쓰러트려야하는 천명 역시 선인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대가로서 주어진 것이다.


‘이 정도는 크게 어렵지도 않지.’


갑자기 엉뚱한 약을 지어 올린다 해도, 이에 들어가는 재료는 딱히 특별할 게 없는 흔한 약재들이었다.

숙수가 별 고민 없이 이를 허락해준 이유이기도 했다.

애초에 선약이란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재들을 기초로 제조되는 감이 있으며, 이번에 채호가 사용하는 약재들 역시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평범한 물건들이 많았다.

여섯 가지 양기를 담은 약재에, 그 반대인 음기를 담은 여섯 약재를 통해 달여 낸 약은 주홍빛을 띈 약차였는데, 양기를 담은 약재 중에는 달콤한 꿀도 섞여 있어 다른 약처럼 쓰지도 않고 맛이 좋았다.

그렇듯 완성된 약차는 소미의 식후에 한잔씩 올라가게 되었고, 매일같이 먹던 쓰디쓴 탕약과 비교해 이 약차를 마시자 늘 불편했던 속이 풀리는 듯했고, 찬 기운은 몸의 열을 낮추고 따스한 기운은 오한을 멈추게 하니 그 효용이 남달랐다.

처음엔 그 어설프던 윤공자가 준비해준 차라기에 그리 믿지 않았으나, 고작 며칠 만에 이렇듯 효과를 보니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무예는 뛰어나지 못한 것 같지만, 의술에 있어 빼어난 솜씨가 있다던 소문은 사실이었던 모양이야.”


응룡회와의 회담에서 음독에 걸렸던 사람을 순식간에 해독 시켰다는 그 솜씨는 확실히 거짓이 아니었다.

진가장의 가주 진원필도 이야기를 듣고는 채호를 불러 감사를 표했다.


“허허, 이거 그저 호위로 고용했을 뿐인데, 윤소협의 의술에 도움을 다 받게 되었군.”

“별로 대단한 재주는 아닙니다. 운이 좋아 따님의 병세에 잘 맞았던 것이죠.”

“그런 세세한 사정이야 무엇이 중요하겠나? 철두서생의 철두에는 세상 온갖 지식이 담겨 있나 보군! 허허허허!”


어째 철두서생이라는 별호에 묘한 의미가 하나씩 늘어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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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무산이괴 +2 22.08.09 1,816 42 11쪽
19 치료를 해주다. +2 22.08.05 1,841 46 13쪽
» 진가장 +2 22.08.02 1,838 43 12쪽
17 철두서생 +1 22.07.29 2,000 45 11쪽
16 조용할 날이 없다. +2 22.07.25 2,187 41 12쪽
15 벽력의 검 +1 22.07.22 2,149 46 11쪽
14 육합권 +1 22.07.20 2,133 49 12쪽
13 어째 수상하다. +2 22.07.18 2,102 4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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