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환생
무릇 삼재기공(三財氣功)이란 기(氣)의 흐름을 깨우치고, 모아, 다스리는 세가지 원리를 탐구하는 것을 기초로 한다.
무예의 경지를 이름에 있어 으뜸으로 치는 것이 바로 기감(氣感)을 깨우쳐, 만물의 흐름을 파악하고 읽어낼 수 있는 힘이다.
세상 만물을 뜻하는 천지인의 삼재를 가리킴에 있어 하늘이란 대자연을 가득 메운 기를 뜻하며, 땅은 이를 품어낼 그릇을 말한다. 허나 이를 자유자재로 부리기 위해서는 인간의 마음이 그 근본이 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이를 이루면 무학자 혜원이 말한 삼경에 있어 무예의 완성을 뜻하는 인(人)의 경지에 닿아 능히 무예에 의지를 담아 펼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경(勁)의 본질이며 삼재의 기공을 깨우치게 되면 권이건 장이건 각이건 의념 없이 모든 신체를 활용하여 내기를 발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여 그 첫째로 우선 심(心)과 신(身)을 다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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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년에 이르는 무림사에 있어 가장 대중 적으로 퍼진 무공을 꼽자면 다름 아닌 <삼재기공>을 꼽을 수 있다. 허나 정작 이를 창시한 조사(祖師)에 대한 기록은 어찌 된 일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삼재기공의 첫 장에 적힌 거창한 도입부에 비해 그 효용은 그리 뛰어나지 못해, 무림인이 아닌 일반인들까지 취미삼아 익히는 건강용 무예로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때문에 이 기공술을 창시한 이가 정말로 대단한 무예의 고수였을 거라는 것에는 항상 의문이 따랐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삼재기공은 내기를 다스리는 기공의 익힘에 있어 대단히 기초가 되는 이론을 포함하고 있었기에 적어도 엉터리는 아니었을 거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대체 왜 이게 이렇게 되었지?’
윤채호는 어이가 없었다.
애초에 채호는 딱히 제자를 두지도 않았다. 때문에 삼재기공의 취급은 둘째 치고, 이처럼 널리 퍼졌다는 것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었다.
아니지, 잠깐.
제자는 없지만, 삼재기공을 누군가에게 알려주긴 했던 것 같다.
당시 보살피고 있던 오누이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혜원의 제자를 통해 삼재기공에 대한 기초를 들려준 기억이 어렴풋 있다.
‘······설마 그게 이 사단을 만들어 냈다고?’
세상일이란 알 수 없는 법이다.
어쨌건 삼재기공이 건강을 위한 호신용 무예로 알려진 것에 대해서는 살짝 억울한 감이 있었다. 오직 오누이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한 이유로 기공술을 알려주었기에 정작 무예에 적용하기 위한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대충대충 넘겼던 것이다.
‘그렇지만 꼭 그게 나쁜 건 아니긴 하지.’
덕분에 이렇듯 자신이 마령윤회의 술로 부터 전생의 기억을 되찾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천마를 쓰러뜨렸을 때, 놈이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한 마령윤회의 술을 깨트리려다가 역으로 휘말려 혼백과 육신이 흩어져 사라지던 순간의 감각이 아직도 선명했다.
‘설마 내가 그놈의 마령윤회술로 인해 환생하게 될 줄은······.’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오직 천마를 쓰러트려야 하는 천명을 위해 살았던 지난 생이었다.
그리고 천마를 죽임으로서 그 천명을 다해 자신 역시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살아갈 수 있는 기회라.’
채호는 손에 쥐고 있던 삼재기공의 비급을 바닥에 내려놨다. 아직은 약간 혼란스러운 기억을 정리하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했다.
윤채호.
벽력검 윤장열의 둘째 아들.
몸을 일으킨 채호는 장지문을 열고 작은 방을 나섰다.
장내를 조금 거닐며 마당을 벗어나자, 저 앞에 커다란 대문이 보였다.
대문 위쪽의 허름한 문패에는 <벽력문霹靂門>이라 적혀있다.
제자의 수가 고작 열 명 남짓인 이 작은 문파는 전대의 문주였던 벽력검 윤장열이 죽은 뒤 꾸준히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별 볼일 없는 변방의 문파.
작은 아버지인 윤백양이 뒤를 이어 문주가 되긴 했으나, 그 실력은 윤장열에 비해 많이 모자랐다.
앞으로도 벽력문이 위세를 떨칠 거대문파로 성장할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채호가 살아가야할 장소이기도 하다.
30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시대.
이 시대에 더 이상 자신을 옭아매던 ‘천명’은 없었다.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겠어.’
목숨을 건 투쟁에서 벗어난 평범하고 소박한 삶.
그것이 바로 이번 생의 목표다.
- 작가의말
이전 환생조사를 제목을 바꿔 재연재를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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