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똘똘킴 님의 서재입니다.

음악으로 세계 독식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똘똘킴
작품등록일 :
2022.09.16 23:53
최근연재일 :
2022.10.10 10:0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4,708
추천수 :
163
글자수 :
137,703

작성
22.09.26 13:00
조회
164
추천
5
글자
13쪽

행사 무대부터 독식(5)

DUMMY

회의는 정말로 성사되었다.


“오늘 회의는 왜 하는거래?”

“글쎄다. 회의는 원래 매주 월요일 아니었어? 뭐 긴급 사항 같은 게 있나?”

“그러게. 지역 행사 조그맣게 하는 건데 긴급할 게 뭐가 있는지.”

“아, 씨. 바빠 죽겠구만.”


신화 기획사의 대회의실 여기저기서 볼멘소리들이 튀어나왔다.


“······.”


회의가 시작되기 전 나는 이곳의 주변을 둘러봤다.

이번 행사무대 관련 담당자를 모두 모으니 꽤 많은 사람들이 회의장 안을 가득 메우게 됐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게. 무대, 조명에 음향 담당자들까지 다 왔으니까.”

“네.”

“그런데 사람이 많이 오는 게 왜? 사람 많으면 우리가 더 불리하기라도 한 거야?”

“아뇨. 오히려 반댑니다.”


사실이었다.

회의는 명목상이었다.

한 마디로 회의 제안은 류병택의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내가 꺼낸 카드였다.

그리고 놈의 버릇을 고치는 과정을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다면 효과는 더욱 좋을 테고 말이다.


“드디어 시간이 됐네요.”


나는 회의를 시작하기 위해 대회의실 앞쪽에 마련된 연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 저 꼬마 뭐야?”

“글쎄. 설마 저 꼬맹이가 회의를 진행하는 건 아니겠지?”

“말 조심해, 이 사람아! 쟤 대표님 아드님이야!”

“대표님 아들이건 딸이건 너무 꼬마잖아. 이게 말이 돼?”


내가 연단으로 걸어 올라가 마이크를 켤 때까지도 주변의 웅성거림은 줄어들 기색이 없었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 번 평택시 밤가시 축제 무대에 서게 될 아티스트 안현이라고 합니다.”


난 더 이상 쓸데 없는 인사치레는 과감히 생략하고, 회의 참석자 중 어제 봤던 오병수 대리를 찾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성함이 오병수 대리님이죠? 혹시 쟤 부탁 좀 들어줄 수 있나요?”

“아, 네, 오, 오병수 대립니다!”


자신의 이름이 스피커를 통해 울리자, 오병수 대리는 화들짝 놀라 이등병이 관등성명하듯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회계팀으로 가셔서 우리 팀 지출결의서 뽑아 주실 수 있으신가요?”

“지, 지금 말인가요?”

“네.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프로젝트 시작하고 상신한 지출결의서 모두 빠짐없이뽑아주세요.”


갑작스러운 내 부탁에 어리둥절해진 오병수가 엉거주춤하며 자신의 직속상관인 류 부장을 흘끗 바라봤다.


지출결의서.

업무를 하는데 있어서 발생하는 비용을 영수증과 함께 회사에 보고하는 문서. 그 예산을 무슨 용도로 얼마를 썼는지 일일이 작성해야 하기에 회사돈을 제대로 썼는지, 아님 허튼데 쓰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아니, 이거 지금 애들 소꿉놀이하는 것도 아니고!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어른들 앉혀 놓고 장난해?!”


나의 지시에 대뜸 일어나 호통을 치는 류병택 부장.

류 부장의 호통은 분명 나에게 향한 것이었지만, 정작 얼굴이 창백해진 건 오병수 대리였다.


‘지금이다. 내가 던질 승부수.’


나는 알고 있었다.

지출결의서를 뽑아 달라는 나의 부탁을 오병수 대리가 선뜻 들어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류 부장. 류 부장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겠지.’··


이번 행사에 준비된 장비들 상태를 보고 나는 행사 준비 예산이 엉뚱한 구멍으로 세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아니! 회의를 하자고 이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웬 지출결의서? 무슨 압수 수색이라도 하는 거야?!”


그리고 그 세는 구멍 밑을 류 부장이 주둥이를 벌려 쪽쪽 빨고 있었던 것임을 나는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


“자. 오병수 대리님. 지금이 기회입니다. 지출결의서를 뽑아 오시겠습니까?”

“······.”

“제 부탁을 거절하셔도 됩니다. 결국 선택은 오병수 대리님. 자기 자신이 하는 거니까요.”


오병수 대리.

많아봐야 두 세번 얼굴을 본 사내지만, 그의 모습은 한결 같았다.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항상 초췌하고, 초점 없는 눈동자.


‘하지만 지금은?’


방금 전만 해도 류 부장만을 바라보며 눈치를 보던 그가 방금 내가 던진 한 마디에 동공이 떨리기 시작했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습니다. 지금이 당신 힘으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예요!”

“······.”


침이라도 꼴깍 삼키면 들릴 정도로 침묵 흐르는 대회의실의 분위기. 모두의 시선이 오 대리 한 명에게 꽃힌 그 순간.


“이 봐. 오 대리. 어서 앉아. 저 꼬마 말은···.”

“저요! 하겠습니다.”

“뭐··· 뭐라고?”

“지출결의서. 제가 다 뽑아 오겠습니다!”

“아니, 오 대리!”


류 부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회의실 출입문을 향해 발걸음을 뗀 오병수 대리.


덜컥!


“······.”


대회의실의 문을 박차다시피 하고 사라진 탓에 대회의실 전체가 찬물을 끼얹듯 일순간 조용해졌다.

그의 모습을 보고 당황스러운 나머지 말문이 막힌 건 비단 류 부장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


오 대리가 대회의장의 출입문을 열고 나간 지 10분이 넘었을까. 회계팀 사무실은 대회의실과 같은 층에 있기 때문에 갔다 오는 데는 30초도 안 걸리지만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


회의실에 직원들이 웅성대는 사이 혼자 팔짱을 낀 채 침묵을 지키고 있는 류 부장.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건 문제가 될 만한 지출결의서는 추리고 있어설거야. 역시 나의 충직한 개, 오병수 대리야.’


그의 입꼬리 한 쪽이 슬며시 올라갔다.


‘오병수. 나만 공금 빨아먹었다고 너는 무사할 거라 생각하진 않겠지? 지출결의서와 영수증 조작은 결국 네 손으로 꾸민 거잖아. 현명하게 처신할 걸로 기대하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 류 부장. 오병수가 공범이라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는지 이젠 입가에 미소까지 감돌았다.


“지출결의서. 다 뽑아 왔습니다!”


류 부장이 웃고 있는 중, 드디어 대회의장의 출입문이 열리고 오 대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3개월치 지출결의서와 영수증. 모두 가져왔습니다.”


생각보다 두꺼운 문서파일을 양 옆구리에 끼고 온 오병수. 웬일인지 그의 모습이 아까와 달라 보였다.

여전히 초췌하고 눈밑이 거무죽죽한 얼굴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여러분 보십쇼. 이건 제가 다 조작한 지출결의서입니다.”

“뭐라고? 조작?”

“이거 지금 내부고발인가?”


그는 지출결의서의 복사본을 앞 줄 직원부터 전달했다.


“2월 17일 날짜 지출결의서. ‘지역별 중앙시장 축제 연구를 위한 세미나 비용 10만원’은 사실 논현동 파라다이스 룸싸롱 술값입니다.”


복사본을 받아 본 직원들. 오 대리의 갑작스러운 폭로에 아연실색한 표정이 되었다.


“첨부된 영수증 우측 하단을 자세히 보세요. 파라다이스 룸싸롱이라고 작게 인쇄돼있죠?”


디테일한 오 대리의 부연 설명에 류 부장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 2월 25일. 공연용 펜더, 마샬 앰프 구입은 지출결의서 내용과는 다르게 소리조아 앰프를 구입했습니다. 물론 지출비용의 차액은 음악제작부 최 프로듀서님과 류 부장님의 술값으로 쓰였고요.”

“야. 오 대리. 너 미쳤어?! 그 지출결의서! 네 손으로 조작한 거잖아! 너도 나랑 공범이야! 공범! 이제 와서 미꾸라지처럼 치사하게 빠져 나가려는 거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류 부장. 계속되는 오 대리의 폭로에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호통을 쳤다.


“아뇨, 류 부장님! 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는 거 아닙니다. 저 공범 맞습니다. 그래서 징계도 류 부장님과 함께 받으려고요!”

“아니. 도대체 왜···.”

“저요. 이제는 더 이상 부장님 밑에서 벌벌 떨면서 노심초사 부당한 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번 일로 저 잘리더라도 한 번쯤은 저 꼬마처럼 당당해지고 싶다고요!”

“······.”


공범임은 인정한 오 대리의 발언에도 모두의 따가운 눈초리는 일제히 류 부장을 향했다.


***


“하하하! 현이가 또 한 건을 했네요!”


안치영 대표의 집무실에 조용탁의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한 건은 무슨. 아직 어린 녀석인데. 어린 나이에 치기 좀 부린 거 가지고 뭘.”


조용탁이 호탕한 웃음으로 안현을 칭찬하자 안치영은 손사레를 쳤다.


“에이. 대표님. 그게 어떻게 치기예요? 겸손도 상황에 맞게 부리셔!”


안치영은 조용탁 앞에서 팔불출처럼 보일까 봐 애써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지만, 조용탁의 말을 반박할 순 없었다.


“하긴. 치기어린 행동이라기엔 이상하긴 하지.”


안치영의 맏아들 안현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당연했다.

자신의 키보다 얼굴 2개 정도 큰 성인들을 수십 명을 앉혀 놓고, 지출결의서를 까게 해서 공금횡령자를 색출했다? 이는 분명 국민학교 5학년으로서의 행동이라기에 영 어울리지 않았을 테니까.


“처음엔 현이 녀석을 혼내려고 했는데. 이런 이유가 있을 줄은 몰랐네.”

“그러게요. 다른 직원들도 못 잡아낸 공금횡령을 국민학교 5학년이 어떻게 포착했대요?”

“글쎄. 설명이 안 돼는 일이긴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긴 했지만 안현이 더 이상 망나니 짓을 안 하는 것만으로도 안치영은 흡족했다. 거기다 더해 안치영은 앞으로 안현의 행보에 대해 기대감마저 들기 시작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어찌됐든 다행이네요. 비록 작은 행사라도 우리가 처음 시도해 보는 지역 축제 행사 기획인데 이걸 완전 말아먹을 뻔했으니까요.”

“그러게 말야.”

“류 부장은 어떻게 처리하실 거예요?”

“그거야 당연히 해고시켜야 하지 않겠어? 고소하지 않는 걸 다행이라 생각해야지.”

“그럼 밤가시 축제 기획 책임자는요? 류 부장 해고되면 그 자리는 공석이잖아요.”

“책임 대행으로 가야지. 이 프로젝트에서 류 부장 바로 아래가 오병수 대리니까. 그 친구가 책임지면 돼.”


그런데 그 때.


우당탕!

“꺄악!”

“류 부장님! 그러시면 안 돼요!”

“어서 끌어내!”


탈칵!


집무실 밖에서 일대 소란이 벌어지는가 싶더니, 누군가 출입문을 거세게 열어 제꼈다.


“아니! 류 부장!”

“대표님! 접니다! 류병택이!”


비서들의 제지를 완력으로 무너트린 탓에 류병택의 와이셔츠가 엉망이 되었다.


“제가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아니. 류 부장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저를 죽여주십쇼! 그냥 제 목을 콱!”


안치영 앞에서 무릎을 꿇은 류병택. 안치영이 일으켜 세우려 해도 막무가내였다.


“아니. 류 부장님! 이러지 마시고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말씀을 하시라고요!”

“원하는 거요?”

“네!”

“원하는 거 있습니다!”


안치영의 입에서 튀어나온 ‘원하시는 것’이란 단어에 눈물, 콧물로 범벅된 류 부장의 눈에 갑자기 한줄기 희망의 기운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기회를 주십쇼!”

“기회요?”

“네! 기회 말입니다!”

“무슨 기회를?”


무릎을 꿇었던 류 부장이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조신한 태도로 소파에 앉았다.


“징계는 징계대로 달게 받겠습니다! 감봉이든 뭐든요. 다만 이 치욕을 만회하고 싶습니다. 제가 회사 발전을 위해 만회할 기회를 주십쇼!”

“글쎄요. 만회할 기회요? 당치도 않은 얘기죠! 부장님이 뭘 잘했다고 기회를 요구하시나요?”


이번에는 조용탁이 거들었다.


“맞습니다. 기회라니 말도 안 되죠. 징계나 충실히 받으시는 게···.”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 다는데 제 말씀이라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


막무가내도 이런 막무가내가 없기에 안치영과 조용탁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번 평택 밤가시 축제 보조무대만이라도 내주십쇼! 보조무대지만 기깔나게 기획해서 신화 기획의 이름을 빛내겠습니다!”


언제나 본인 체면을 중시하는 류 부장의 특징을 안치영은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런 요구를 할 거라고 충분히 이해는 갔다. 하지만 개인의 체면을 위해 회사가 이런 요구까지 받아줄 필요 없었다.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류 부장님. 계속 이렇게 버티신다면 경찰을···.”

“대표님, 잠시만.”


안치영이 상황을 정리하려는 순간, 안치영의 귀에 대고 귓속말을 하는 조용탁.


“류 부장의 요구요. 한번 현이에게 얘기해 볼까요?”

“뭐? 현이에게?”

“네. 이 사안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 현이 입장도 들어보자는 거죠!”


조용탁의 의견에 안치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안현의 능력이 놀랍기는 하지만, 회사일을 이렇게 장난스럽게 결정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음. 현이의 입장이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안치영의 귀가 솔깃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10화 끝>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음악으로 세계 독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 안내 22.10.11 20 0 -
공지 월~금 오후 6시 10분 / 토,일, 공휴일 오전 10시 연재 22.10.06 34 0 -
24 내일은 늦으리(3) 22.10.10 54 5 13쪽
23 내일은 늦으리(2) 22.10.09 57 5 12쪽
22 내일은 늦으리(1) 22.10.08 64 6 12쪽
21 헤드폰을 쓰고 다니는 광인(狂人) 22.10.07 74 6 14쪽
20 타이지와 아이들, 드디어 데뷔하다 22.10.06 77 4 12쪽
19 타이지와 아이들(7) 22.10.05 74 4 12쪽
18 타이지와 아이들(6) 22.10.04 77 5 13쪽
17 타이지와 아이들(5) 22.10.03 86 5 12쪽
16 타이지와 아이들(4) 22.10.02 102 5 13쪽
15 타이지와 아이들(3) 22.10.01 107 4 13쪽
14 타이지와 아이들(2) 22.09.30 125 4 11쪽
13 타이지와 아이들(1) 22.09.29 153 7 12쪽
12 류 부장의 몰락 22.09.28 170 6 13쪽
11 행사 무대부터 독식(6) 22.09.27 171 6 14쪽
» 행사 무대부터 독식(5) 22.09.26 165 5 13쪽
9 행사 무대부터 독식(4) 22.09.25 187 6 13쪽
8 행사 무대부터 독식(3) +1 22.09.24 228 7 13쪽
7 행사 무대부터 독식(2) +1 22.09.23 237 8 12쪽
6 행사 무대부터 독식(1) +1 22.09.22 287 11 13쪽
5 푸른 빛의 아지랑이 +1 22.09.21 309 10 13쪽
4 뒤바뀐 운명 +1 22.09.20 367 11 13쪽
3 금수저를 빼앗다. +1 22.09.19 451 11 12쪽
2 안현, 그리고 유명식(2) +1 22.09.18 456 10 14쪽
1 안현, 그리고 유명식(1) +1 22.09.17 629 12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