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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킴 님의 서재입니다.

음악으로 세계 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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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킴
작품등록일 :
2022.09.16 23:53
최근연재일 :
2022.10.10 10:00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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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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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글자수 :
137,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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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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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금수저를 빼앗다.

DUMMY

삐리리리리리-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귀를 찌르는 듯한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마도 알람시계 소리일 것이다.

알람을 끄려 눈을 뜨려 했지만, 얼마나 잠이 깊게 들었었는지 눈이 쉽게 떠지지 않았다.


삐리리리! 틱!


시간을 보니 5시30분. 아직 일어나기에는 이른 시간이기에 나는 다시 이부자리로 들어갔다.

그런데.


'알람시계? 나에게 알람시계가 있었던가?'


손을 뻗어 끄려 했던 건 사실 휴대폰의 알람이었다. 하지만 내 손에 잡힌 건 한 손에 잡힐 법한 크기의 진짜 알람시계였고, 그 알람시계엔 '아기공룡 둘리'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이상한 점은 그 뿐이 아니었다.


‘어라? 왜 삐걱거리지 않지?’


내 온몸을 감싼 침구류의 느낌이 전과는 다르게 너무도 아늑했다.

어디 그뿐이랴? 20년 이상을 사용한 침대라 조금만 몸을 뒤척여도 삐걱거림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데 지금은 아무리 뒤척여도 미동조차 없었다.

분명히 내 집이 아닌 상황.

일단 나는 이부자리에서 서둘러 나와 불을 켜고 거울을 찾았다.


“으, 응?!”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어제까지 성인의 몸으로 살아왔던 내 키보다 절반 밖에 안 되는 키, 얼굴의 앳됨 정도를 봤을 때, 아직 중학생은 안 된 듯한 모습.


‘이 얼굴은?!’


얼굴의 이목구비를 뜯어 보니, 이건 영락없는 안현의 어린 모습이었던 것이다.


“오! 이런! 젠장! 맙소사! 제기랄!”


내가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자, 거울에 비친 모습도 머리를 쥐어 뜯었다.

내가 단단히 맛이 간 상태인 건가?


일단 마음을 추스르고 주변을 봤다.


“이게 안현의 방?”


옛스럽지만 고급스러운 침대, 전신거울에 화장실까지 딸려 있었다.


그리고.


“녀석. 여자들한테 인기는 있겠네.”

조그마한 얼굴에 하얀 피부. 거기에 가늘고 큰 눈매에 매끈한 콧날까지.

어디 그뿐이랴. 또래보다 얼마나 큰 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나이에 이미 신체비율이 좋아 보였다.


상황을 좀 더 파악하기 위해 책상 의자에 걸쳐 놓은 책가방을 열었다.

교과서와 공책마다 녀석의 학년이 적혀 있었다.


“1989년에 5학년이라. 나랑 동갑인 줄은 몰랐네.”


그리고 책가방에는 교과서와 공책만 있지는 않았다.


“새끼. 5학년 맞아? 누가 안현 아니랄까 봐.”


교과서와 공책 사이에는 옷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채 입에 앵두를 물고 뇌쇄적으로 바라보는 누나들의 모습이 있는 잡지들이 있었다.

어쩐지 책가방이 5학년의 책가방 치고는 지나치게 빵빵하다 싶었다.


“······!”


녀석의 소지품을 뒤지다가 또 다른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소, 손이.'


내 양손에 일렁이는 푸른 빛의 아지랑이.

열 손가락을 제각각 오므렸다 피고, 물을 털듯 세차게 털어도 아지랑이는 없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손가락 움직의 느낌이?'


너무 지나치게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나의 열 손가락.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5학년의 손가락이라 고사리처럼 작은 내 손.

손 전체의 크기는 작을지언정 손가락의 움직임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나의 뇌신경에서 보내는 운동 신호가 몇 배는 더 원활하게 전송되는 느낌이랄까?

기타리스트로 밥 벌어먹은 나였기에 어제까지의 내 손가락 움직임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지금의 느낌은 달랐다.


'이거. 악기만 있다면 한 번 테스트해보고 싶네.'


어차피 전체적인 상황이 상식에 어긋난 이상 나는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나의 연주 능력을.


“······!”


손가락을 보며 상상에 빠져 있는 사이, 문득 한 가지 생각 하나가 머리를 세차게 때렸다.


‘백산구! 당장 백산구로 가야 해!'


시간이 없다.

지금 이 상황이 순전히 나를 위한 몰래카메라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시급히 확인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낯선 방 안과 가구에 놀라고, 내 어린 모습에 놀라 자빠져서 꿈인지 생시인지 볼을 꼬집느라 하는 시간 낭비는 이만 생략하기로 한다.


내가 안현으로 변해있다면 안현은 아까까지의 나 유명식으로 바뀌어 있을 확률이 높을 터. 만약 그렇다면 그 녀석은 지금 이 상황을 이해 못 하리라. 거기다 가뜩이나 개망나니 같은 성격인 탓에 어머니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상황.

내 비록 지금은 안현의 몸이지만 정신은 엄연히 유명식의 정신이다.


백산구에 있을 어머니를 절대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상황만은 당장에 막아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한시도 지체하지 말고 백산구로 가야만 한다. 어머니를 다시 보고, 특히 당장 안현,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유명식의 몸으로 들어간 안현을 빨리 찾아야 한다. 녀석에게 설명을 하든 협박을 하든 하기 위해.


일단 나는 옷장을 적당한 옷으로 갈아입고, 지갑을 찾기 위해 책상 서랍을 열었다.


“쳇. 뭐야? 금수저 맞아?”

지갑에 있는 돈은 천원짜리 지폐 몇 장과 백원짜리 몇 개가 전부였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버스와 지하철 값이 이 당시 얼마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백산구를 갔다 오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 때.


똑, 똑, 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큰 도련님. 일어나셨어요?”


큰일이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문을 안 열어 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도대체 무슨 태도와 말투로 저들을 대해야 할지 정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을 할 수 밖에.


“아, 네. 큼! 흠! 들어오십쇼!”


찰카닥


문이 열리자, 덩치가 꽤 큰 중년의 여성이 서 있었다.

정갈한 스타일의 검은색 원피스에 백옥처럼 하얀 앞치마, 거기에 깔끔하게 땋은 머리.

마치 언젠가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재벌가의 여집사 모습 그대로였다.


“도, 도, 도련님. 어, 어디 아프세요?”


뭐지? 내 모습이 이상한가? 이 상황에 당황해야 하는 건 나라고 생각했지만, 나보다 이 여성 분이 더 당황하고 있었다.


“아, 무슨 문제라도···?”

“왜 저한테 조, 조, 조, 존댓말을?”

“구, 구, 구, 구봉아! 큰 도련님이 이상해!”

“네? 반장님? 뭐라고요? 도련님이 존댓말을요? 설마요.”


집사가 누군가를 부르자, 집사보다는 젊어 보이는 사내가 검은 양복 차림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큰 도련님? 괜찮으세요? 아씨. 어젯밤 감기 기운이 심하셔서 감기약 한 알을 더 드렸더니 그게 문제가 됐나?”


일이 점점 꼬이는 듯했다.

지금의 나보다 최소한 30살은 더 먹어 보이는 아주머니에게 존댓말을 하는 게 여전히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지금 큰 도련님이 이상한 게 분명한 거 같아요. 반장님. 이것 보세요. 밖에 나가시려고 옷에 가방까지 매셨잖아요.”

“그러네.”


나의 차림을 보고 두 사람의 표정이 아까보다 더 심각해졌다.


“도련님. 기억 안 나세요? 지금 도련님 근신 중이시잖아요.”

“그래요. 도련님. 이번 주는 계속 외출 금지시라고요. 이렇게 외출복 입으신 거 마님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외출 금지라니. 엎친데 덮친 격이다.


“그럼 제가 외출 금지 중인데 나가면 선생님들께서 피해를 보시는 게 있으신가요?”

“네, 네? 그게 무슨 말씀···?”

“뭐, 패널티라든지, 급여 삭감이라든지 그런 거 말이에요.”


나의 기습 질문에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되었다.


“아니. 뭐 그런 건 없고요.”

“큰 도련님께서 혼쭐이 나는 게 문제죠! 작은 도련님부터 해서 마님까지 큰 도련님을 이 잡듯이요. 많이 겪어 보셨으면서···.”

“아. 그런 거라면 상관없습니다.”

퍽!

“으악!”


그들에게 질문을 하면서 둘 사이에 빈틈이 보이자, 난 그 빈틈을 파고 들어 전력 질주를 했다.


“아, 안 돼!”

“큰 도련님 잡아라!”


역시 답이 없는 상황에서는 줄행랑이 최고다.


***


‘휴우~ 겨우 빠져나왔네.’


가까스로 탄 78-2번 시내버스의 공기는 매캐했다.

버스가 내뿜는 매연이 앞 좌석 열린 창을 타고 들어와서인지, 신호가 멈출 때마다 창문을 열고 펴대는 운전기사의 담배연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신기하네. 마치 영화 세트장 같군.’


백산구 시민아파트 가동에 도착해서 내가 취해야 할 바를 정리하는 데는 시간이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기에 거리 풍경을 감상할 여유가 생겼다.


2020년대와는 다른 경찰관의 남색 복장, 한일은행, 조흥은행 간판, 아직 개발이 덜 된 도시 풍경, 마치 복고풍을 연상시키는 행인들의 헤어 스타일과 패션 등. 버스 창문을 통해 보이는 거리 풍경은 보고 또 봐도 신기했다.


‘하, 그런데 내가 5학년. 국민학교 5학년이라···.’


거리의 풍경이 눈에 익어갈 때쯤, 앞으로 내게 펼쳐질 인생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당장 말투는 지금처럼 해도 되나? 앞으로 부딪치게 될 수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대해야 하지?


이런 저런 사소한 걱정도 됐지만 기대가 되는 점도 있었다.


‘젠장. 자기 전 내가 한 부질없는 한 마디에 인생이 이렇게 바뀐다고?’


어제 내가 했던 말을 다시 곱씹어 봤다.


『단 한 번이라도, 그 안현 놈의 금수저를 빼앗아 봤으면.』


결과적으로 놈의 금수저를 빼앗게 되었다.

이왕 뺏은 금수저는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


회귀한 지 얼마 시간이 되지는 않았지만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지 않으면 쥐었던 금수저가 손 밖으로 허무하게 빠져나갈 수 있게 된다는 걸.


“······.”


나는 살며시 내 양손을 펴 보았다.


‘여전히 보이는 푸른 빛의 아지랑이···.’


정녕 이 아지랑이가 내 눈에만 보이는 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이 내 두 손으로 연주될 상황도 궁그하기는 마찬가지고.


‘지금은 어디 쯤이지?’


시선을 버스 창밖으로 옮겼다. 풍경을 보아하니 종각까지 몇 정류장 안 남았다.

내 기억에 이 버스를 타고, 종각으로 가면 그곳에 백산구로 빠지는 시외버스가 있다.

백산구 종점에 내려서 시민아파트로 찾아 가는 건 눈감고도 갈 수가 있고.

아파트에 내려서 유명식을 불러낼 방법은 잠시 고민했지만,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방법은 역시 정면 돌파지.’


처음에는 아파트 정문에 숨어 녀석이 나타나기를 주구장창 기다릴 생각이었지만, 내 몸은 어차피 12살 어린이. 굳이 남 눈치 보며 숨다가 괜히 의심만 받느니, 당당히 초인종을 누르는 게 더 자연스럽다.

어차피 80년대면 2000년대와는 다르게 어린이의 수가 폭발적으로 많은 시대다. 이 시대의 어른이라면 자기 자식 또래는 다 친구라고 생각할 터.

내 어머니가 안현의 얼굴인 내 얼굴을 모른다 하더라도, ‘안녕하세요. 저 명식이 친군데요!’ 라고 어린이 답게 외치면 그냥 명식이 친구겠거니 생각할 게 뻔하다.


‘근데 도대체 안현의 집안은 어떻게 돌아 가는 거지?’


이제 거리 풍경도 눈에 익게 될 즈음, 방금 전의 소동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큰 도련님께서 혼쭐이 나는 게 문제죠! 작은 도련님부터 해서 마님까지 큰 도련님을 이 잡듯이요.』


반장이라 불렸던 여집사의 말. 곱씹고 또 곱씹어도 이상했다.

작은 도련님이라면 내 동생일 텐데 내가 잘못을 했다고 나를 이 잡듯이 잡는다고? 뭐 형제 사이니 놀리거나 핀잔 정도를 주면 모를까 내 외출 금지령을 내가 어기는 건데 본인에게 피해가 가는 일도 아니지 않는가?


끼익~


버스가 종각에 도착했다.


‘음··· 여기군.’


종각역 주변을 몇 번 두리번거렸더니 정류장은 쉽게 찾았다.

이제 이 버스만 타면 드디어 도착이다.


‘곧 있으면이다.’


곧 있으면 유명식은 물론이고, 어머니의 젊은 모습도 볼 수 있게 된다!



<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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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수저를 빼앗다. +1 22.09.19 451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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