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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킴 님의 서재입니다.

음악으로 세계 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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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킴
작품등록일 :
2022.09.16 23:53
최근연재일 :
2022.10.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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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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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7,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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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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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타이지와 아이들(1)

DUMMY

나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은 오 대리를 일으켜 세웠다.


“에이, 정말. 오 대리님. 이렇게까지 하지 마세요.”

“크흑! 정말 감사했습니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오 대리. 내가 일으켜 세우자, 숨을 가다듬으며 소매로 눈물 범벅이 된 자신의 얼굴을 정리했다.


“저 말입니다. 나이 서른 먹도록 누군가에게 무릎 꿇은 건 처음입니다.”


내 앞에서 무릎 꿇은 건 많이 오버스러웠지만, 그의 행동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갔다.

그는 며칠 전 회의에서 상사인 류 부장의 공금횡령을 까발리며, 그야말로 6년 이상을 모셨던 까마득한 상사를 들이받았다. 그의 인생 통틀어 최초 저지른 하극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날은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자신의 의지대로 한 행동을 한 최초의 날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그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유도를 하긴 했지만.


“네, 어쨌든 오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축제 무대도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오늘은 무조건 즐기세요.”

“네, 좋습니다. 도련님도 뒤풀이 같이 가시죠.”

“하하. 전 아직 국민학생이라 뒤풀이는 못 갑니다.”


이렇게 즐거운 날, 맥주 한 잔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몸이 열 두살이니 참으로 아쉬웠다.


“아···. 그렇군요.”

“그럼 전 바빠서 이만.”

“······.”


맥주를 마시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을 가다듬고 나머지 공연장비 해체를 도와주러 나는 돌아서려 했지만, 오 대리는 쭈뼛쭈뼛하며 자리를 쉽게 뜨지 못했다.


“아, 참. 오 대리님. 아까 일 하나 같이 해보자는 거요. 그건 제가 곧 연락 드리겠습니다.”


쭈뼛거리는 그의 모습을 눈치 챈 내가 그가 듣고자 하는 말을 해 주자, 그제서야 그는 밝은 웃음으로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


왕회장이 또 본가를 방문했다.


“우리 손주 현이가 큰일을 해냈다고?”

“네, 아버지. 현이 녀석 덕분에 이번에 시험삼아 기획해 본 행사가 대성공을 했습니다.”

“그래? 어이쿠 우리 큰 손주! 기특한 것!”


나를 바라보는 왕회장의 눈이 완벽한 반달 모양이 되었다. 내가 회귀를 한 첫 날, 나를 바라봤던 왕회장의 눈빛과는 확연히 다른 눈빛이었다.


“뭐, 저만 잘한 게 아닙니다. 행사장에 안 보이는 곳에서 도와주시는 모든 분들 덕이죠.”

“아, 아니 이 녀석. 어찌 이렇게 이쁜 말만 골라 할꼬?”


회귀를 하고 어린이의 몸이 되니, 어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수월해졌다.


“아버지. 우리 현이가 정말 기억상실을 앓고 난 이후 많이 달라졌죠?”


회귀 전 성인의 몸으로 하는 사회생활 멘트. 사실 아무리 해봤자 본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난 지금 열 두 살. 회귀 전의 사회경험으로 어른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껌뻑껌뻑 넘어가는지를 꿰뚫고 있는 어린이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난 나의 동생 안욱처럼 매사 모든 행동을 자신의 목표를 달성에만 맞춰 계산하며 살 생각은 없지만.


‘슬슬 입질이 오는 군.’


하지만 오늘은 예외의 날. 오늘만은 나도 동생 안욱 처럼 내게 새로 생긴 목표를 위해 왕회장과 안치영 대표 앞에서 작정을 하고 이쁜 짓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달라졌다뇨. 아닙니다. 제가 비록 기억상실증에 걸려 과거의 일들은 기억 못 하지만, 전 아직도 부족한 아이입니다. 더욱 더 노력해서 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 현아. 너는 어떤 큰 사람이 되고 싶은 게냐?”

“저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뮤직 비즈니스 업계의 최고봉이 되고 싶습니다.”

“뭐라? 최고봉?”

“그러니까. 현이 네가 대한민국 음악판을 쥐락펴락하는 존재가 되겠다는 거야?”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게 아니라, 세계 음악판도를 쥐락펴락할 겁니다.”

“뭐? 세계 음악판도?”

“크하하하! 배포 한 번 크구나! 우리 현이가 이런 녀석이었어?”


역시 그럴 줄 알았다.

내 얘기를 그저 큰 꿈을 가진 어린이의 대견스러움 정도로 생각할 것이라고.


“네. 빈말이 아니라고요, 할아버지.”


1989년의 대중음악 분위기라면 나의 말이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게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들은 상상도 못 하겠지. 한국의 대중음악이 2010년대 전후로 시작하여 본격적으로 K팝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불어 닥칠 것이라고.


“그럼 현아. 너는 어떻게 세계 음악 판을 쥐락펴락 하고 싶으냐?”


내 얘기가 재밌는지 왕회장과 안 대표는 계속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나도 그들을 위해 기대에 부응해 줘야겠지.


“차근차근 해 나갈 겁니다. 일단 대한민국 음악판을 점령으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빌보드 1위를 밥 먹듯 한다거나, 그래미상도 받는 뮤지션을 키우고 싶습니다.”

“하하하! 말도 안 돼는 목표긴 하네!”

“암, 현아. 꿈은 클수록 좋은 거지.”


떡밥은 충분히 깔아놨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바를 제시할 차례다.


“그래서 말인데 할아버지, 아버지. 제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도와달라니, 뭘 말이냐?”

“저도 뮤지션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나의 요구를 이해 못한 왕회장과 안 대표는 대답 대신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게 무슨 말이냐?”

“말 그대롭니다.”


안치영 대표가 내 말에 잠시 의아해 했으나, 이내 내 말뜻을 이해하는 표정이 되었다. 아마도 그동안 나의 저돌적인 일 처리 스타일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현아. 이번에 지역 행사 건에 대한 성과까지는 인정한다. 그런데 가수 육성이란 건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조급하게 생각 말고 우선 학교 공부부터 열심히 하는 게 어떨까?”


안치영 대표. 역시 내 그럴 줄 알았다.

내가 회귀를 한 후, 확 달라진 안현의 모습에 지금까지는 흥미롭게 지켜봤겠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대한민국의 여느 평범한 아버지들처럼 굴 거라는 것을.


“글쎄요, 아빠. 뮤지션을 육성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내 의견에 대한 안치영 대표의 반대에도 나는 굴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아빠도 저 같은 경험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뭐, 뭐라고?”

“아빠가 13살 때요. 클래식 기타 콩쿨을 구경하러 갔을 때, 아깝게 은상을 수상한 또래를 찾아가서 음반을 녹음해주겠다고 할아버지께 데려온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네, 네가 그걸 어떻게···?”

“그 때 아빠가 데려온 아이가 지금의 조용탁 아저씨고요.”

“·······.”

“전 알아요. 조용탁 아저씨는 아빠가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걸요.”

“그건 그렇지만···.”

“아빠에게 있어서 그렇게 소중한 인연은 어쩌면 아빠가 어렸을 때 했던 엉뚱한 일에서 비롯된 거라고요. 그런데 왜 난 아빠처럼 그런 엉뚱한 시도를 하면 안 된다는 거죠?”

“·······.”


더 이상 말문이 막혀버린 안치영 대표.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입을 벌린 채 나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일 밖에 없어 보였다.


‘안치영 대표. 나를 이기긴 어려울 거다.’


회귀 전 나는 안치영의 신문기사나 잡지기사라면 빠지지 않고 읽고 또 읽었다. 안치영 대표는 모르겠지. 내가 전생에 얼만큼 그를 추종하고 있었는지를.


“뭐, 뭐라? 요 녀석! 정말 당해낼 수가 없구나! 크하하하!”

“아니, 아버지. 손주 버릇 나빠집니다!”

“현이 녀석 말이 사실이지 않느냐? 어디 이래도 현이 말에 네가 반박할 수 있겠냐?”


좋다. 드디어 상황이 유리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할아버지인 왕회장이 반응하면 반 이상 넘어왔다 할 수 있다.


“어디 그럼 현아. 네가 키울 뮤지션은 따로 있느냐?”

“앞으로 찾아볼 겁니다.”

“그래, 좋다! 한 번 해보거라!”


아싸! 성공이다! 왕회장 만세!


“아니, 아버지!”

“걱정 말거라 치영아. 네 아들이 실패할까 봐 그러느냐?”

“·······.”

“원래 다 그런 거다. 달리다가 넘어져 무릎도 까져보고, 진흙탕에도 굴러도 봐야 클 수 있는 법이지. 어차피 현이는 이제 국민학교 5학년이야. 현이에게 좋은 경험이자 추억이 될 거다.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현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커지면 얼마나 커지겠어?”


왕회장의 두둔은 고맙지만, 일이 커지면 얼마나 커지겠냐는 그의 예상은 빗나갈 공산이 클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데려올 사람이 바로 서현철이거든.’


서현철.

그는 ‘타이지와 아이들’이란 이름의 3인조 그룹을 결성하여 1992년에 데뷔 예정인 뮤지션의 본명이다.

타이지와 아이들은 데뷔앨범의 큰 성공을 시작으로 급기야는 문화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의 최고스타.


“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달리다가 넘어져 무릎이 까지고, 진흙탕에서도 원 없이 굴러 보겠습니다!”


다시 왕회장의 귀에 듣게 좋은 말을 던진 나는 왕회장과 안치영 앞에 거수경례 자세를 취했다.


‘휴우. 첫 단추 끼는 데는 성공했군.’


***


“사모님. 날을 참 잘 잡으셨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저 하늘 좀 보십쇼. 헤헤.”


이곳은 한명희 여사가 자주 이용하는 승마연습장.

대외협력부 임경호 차장이 한명희가 탄 말과 나란히 걸으며 고삐를 잡고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


하지만 분위기를 띄어 보려고 노력하는 임경호 차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근심 어린 표정으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한명희.


안치영 대표의 후처이자, 안욱의 모친인 그녀는 요즘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그동안 자신의 아들 안욱에게 비교조차 되지 않았던 첫째 안현이 별안간 존재감이 커지는 분위기가 되자, 상대적으로 자신의 아들이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는 기운을 강하게 느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 이유로 자신의 심란해진 마음을 다 잡고자 한명희 여사는 오늘 한동안 방문이 뜸한 승마연습장에 임 차장을 데리고 온 것이었다.


“임 차장님. 요즘 현이가 기특한 일을 많이 한다죠?”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욱이 도련님이 더 잘하고 계시죠. 이번 지역 행사 무대에서도 훌륭한 피아노 솜씨를 뽐내시지 않았습니까?”


한명희 여사.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품위에 손상이라도 갈까 봐 마음에도 없는 안현의 칭찬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평소 눈치빠른 임 차장도 가끔의 그녀의 감쳐진 속내를 모두 찾아내는 건 무리였다.


“임 차장님! 사실 차장님도 아시잖아요! 지금 돌아가는 분위기!”


별안간 언성이 높아진 한명희의 목소리에 눈이 휘둥그레진 임 차장.

안현이 기특한 일을 많이 한다는 한명희의 말 속에는 가시돋힌 무언가의 다른 뜻이 숨겨져 있던 것이다.


“지금은 위기라고요, 위기! 이러다 차기 대표를 현이에게 뺏길 판이에요. 그렇게 안일하게 무작정 우리 욱이 칭찬만 할 때가 아닙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망나니로 찍혔던 안현은 자신의 아들인 안욱과는 비교 조차 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견제를 할 필요성 조차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안현은 신화 음반 기획사 소속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명성이 높아진 상황.

거기에 더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전과는 다르게 안욱이 잔뜩 주눅이 들어 안현의 눈치를 슬슬 보는 분위기. 한명희가 그녀의 측근 임 차장에게 격정을 토하는 것도 그런 이유였던 것이다.


“제가 책임을 지고 대책을 세워보겠습니다! 사모님!”

“책임과 대책이라. 어떻게 하신다는 말씀이죠?”

“들리는 바에 의하면 안현 도련님이 또 뭔가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답니다.”


임 차장의 대답에 동공이 커진 한명희.


“현이가 또요?”

“네, 맞습니다.”


임 차장의 얘기를 들은 한명희가 잠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


“···좋습니다, 차장님. 차장님이 책임을 지시겠다···. 뜻이 정 그러시다면.”

“······.”

“책임 지시고 현이의 일을 부숴버려 주세요.”

“부숴버린 다는 건···?”

“현이가 벌일 일이요. 그게 무슨 일이 됐든 철저히 부숴주세요. 안치영 대표가 현이를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에요!”


<1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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