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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킴 님의 서재입니다.

음악으로 세계 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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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킴
작품등록일 :
2022.09.16 23:53
최근연재일 :
2022.10.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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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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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지와 아이들(3)

DUMMY

15화


이곳은 안치영 대표가 특별히 나를 위해 따로 마련해 준 사무실이다.


'서현철의 10대 모습을 실제로 보다니.'


어제의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서현철의 10대 모습을 직접 봤으니 말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서현철과의 첫 대면은 비교적 성공적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서현철 본인은 당황스러웠겠지만.'


난 그와의 작별인사에서 '학교 자퇴'란 단어를 꺼내 들었다.

내가 알기로 서현철은 1학년 때 학교를 자퇴한다. 그런데 지금 시점엔 아직 서현철은 등교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분명 그는 학교 자퇴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고 있었을 터. 또한 그 고민은 민감한 사항이었기에 누구와도 얘기 안 한 채 혼자만 끙끙 앓았을 공산이 컸을 것이니, 내 발언에 서현철이 어찌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도련님. 저 왔습니다.”

“아, 어서 들어오세요.”


어제의 일에 대한 생각에 빠져 있던 나를 깨운 건 오병수 대리였다.


오병수 대리의 신화기획 업무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나는 그와의 미팅을 급하게 잡았다. 서현철을 만나는데 성공했으므로 나는 다음 단계 일을 처리하는 데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목 마르실 텐데 냉녹차 한 잔 드시고요.”

“앗, 감사합니다.”


급하게 오느라 목이 말랐는지 내가 미리 준비한 녹차를 벌컥벌컥 마시는 오병수.


“제가 육성할 아티스트는 어제 성공적으로 만났습니다.”

“아티스트···요?”


아티스트란 표현이 생소했는지 의아한 표정이 된 오 대리. 아직 1989년엔 아티스트란 표현 대신 가수란 표현이 더 편한 상황이었다.


“아, 우리끼리는 이제 가수란 표현대신 아티스트라고 통일하죠.”

“네. 아티스트라. 뭔가 선진적인 표현 같아 좋군요!”

“그런가요? 전 그 표현이 더 입에 붙어서요.”

“알겠습니다. 앞으로 아티스트라 칭하겠습니다.”


나와 대화를 하던 오대리가 가방에서 커다란 다이어리를 꺼내 나와의 대화에 대해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역시 꼼꼼한 오 대리다.


“그런데 벌써 아티스트를 섭외하신 건가요?”

“네.”

“굉장히 빨리 구하셨네요. 어떻게 알게 된 친구인가요?”

“알게 된 건 우연히 알게 됐어요. 아직 17살인 고등학생이고요.”

“17살이요?”

“왜요? 너무 어린가요?”

“아, 아뇨. 오히려··· 나이가 많아서 놀랐습니다.”

“네? 나이가 많다고요?”


살짝 당황하여 홀짝 홀짝 마시던 녹차잔을 내려 놓은 오병수. 나는 그의 표정을 보며 깨닫게 됐다. 내가 또 회귀 후의 내 나이를 잊었다는 것을.


“네. 17살이면 아마도 고1일 텐데 도련님보다 한참 형이지 않습니까?”


오 대리가 나와 손을 잡은 이유를 나는 알고 있다.

나와의 첫 대면 이후, 나에게 뭔가를 배우기 위해 온 것이다.

30대가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평생 하지 못했던 행동을 나를 통해 경험했다. 그래서 내 몸 나이가 12살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아이 취급하지 않고 꼬박꼬박 존댓말까지 써가며 마치 스승 모시듯 하려는 상황.


“네. 아티스트가 저보다 형인 건 맞는데요. 사실 데뷔하기에는 어린 편이긴 하죠.”

“데뷔까지··· 시킨단 말입니까?”


하지만 그는 내가 하려는 일에 오해를 하고 있다. 나에게 뭔가를 배워야 하는 건 맞지만, 12살인 내가 세상에 내놓을 아티스트를 정말로 육성할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하는 것일 터.

아마도 나의 아버지 안치영 대표가 생각하는 것처럼 오병수도 나의 일이 국민학생 한 명이 추억 하나 만들고자 하는 '가수 육성 실습' 정도로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데뷔 여부는 우리에게 달려있겠죠.”


의아한 표정을 바꾸지 못하는 오병수. 나는 그에게 서현철의 데뷔 이후에 대한 파급력을 설명해주려 했으나, 일단 입을 다물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얘기해봤 자 나를 허풍쟁이라 생각할 테니까.


“그래서 말인데 오 대리님. 앞으로 제가 오 대리님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말씀만 해주십쇼!”

“밴드 시나브로 섭외를 해주세요.”

“네, 시나브로···켁! 시, 시나브로 배, 밴드를요?”


밴드 '시나브로'라는 단어를 듣고 놀란 오병수. 녹차를 마시다 사래가 들려 괴로워했다.


“하하! 쉽지 않겠지만 연락하면 오긴 올겁니다.”


***


오병수와의 미팅을 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합주실 세팅을 위해 오병수와 나는 신화음반 기획사에 마련된 합주실에 미리 도착해 있었다.


“계십니까?”


문이 열렸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시나브로 밴드.

놀랍게도 베이시스트를 제외한 전 멤버 모두가 왔다. 현재 시나브로의 베이스 파트는 공석인 상태였으니까.


“뭐야? 꼬마 아냐?”

“너 몇 살이니?”

“이 녀석이 우릴 부른 거였어?”


시나브로 멤버들의 허탈해 하는 기운이 합주실 전체에 가득 퍼졌다.


“안녕하십니까! 세종국민학교 5학년 1반 안현이라 합니다!”

“응? 안현?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은데?”

“아, 치영이 형 아들래미 아냐?”

“뭐야? 우릴 부른 게 치영이 형이 아니고 이 꼬마였어?”


아까보다 더욱 더 험악해진 분위기.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곱슬머리 장발을 한 멤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난 갈란다. 재벌 2세 들러리 서 줄 일 있나?”


그 곱슬머리 장발의 사내가 분위기를 선동하자 거의 절반 정도 등을 돌린 멤버들. 하지만 내가 곧바로 던진 한 마디에 모두의 고개가 다시 나에게로 돌려졌다.


네, 가시려면 가세요. 전 안 잡습니다.”

“뭐? 방금 너 뭐라고 했어?”

“저도 실례를 범한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가시는 것도 경우에 맞진 않은 것 행동 같습니다.”

“아니, 저 꼬마가?”


밴드 시나브로.

이 상황에서 그들이 화를 내는 건 어쩌면 무리는 아니었다.

1989년 현재, 꽤 많은 선배 밴드를 제치고 가장 주목받는 밴드다.

그들이 그토록 주목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음악과 연주실력이 탁월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 밴드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가 대한민국 락의 대부 백태산의 장남 백대현이었기 때문이었다.


“저 자식이 아주 막 나가네? 치영이 형 아들이라고 막 나가는 거야?”


그런 그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섭외 당시 누가 그들을 불렀는지 오병수가 알려주지 않아서인 거지.’


사실 섭외의 주체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던 건 내 지시였다.

어차피 신화 기획에서 연락을 취했다면 그들은 섭외의 주체가 당연히 안치영 대표라고 인식했을 터. 하지만 내가 섭외했다고 미리 밝혔다면 그들이 과연 오기나 했을까?


“그냥 가실 게 아니시라면 저와 연주나 한 판 하시죠.”


그들이 어안이 벙벙해진 틈을 타 난 미리 앰프에 연결해 놓은 베이스의 마스터 볼륨을 올렸다.


두루루루루룽~

“?!”


펜타토닉 스케일(pentatonic scale)


단 5음만으로 이루어진 간단한 스케일이지만, 거의 모든 블루스 음악이나, 락 뮤직의 주요 멜로디를 구성하는 범세계적 스케일이라 할 수 있는 스케일.

심지어 우리나라 민요 아리랑의 멜로디도 결국 이 스케일을 사용한 곡이다.

나는 그런 5음 음계를 베이스 지판 위에서 상행했다가 다시 하행했다.

손을 풀기 위해 훑은 펜타토닉 스케일.


“······.”


3초도 안 되는 나의 짧은 연주로 시나브로 멤버들의 목소리가 모두 음소거가 되었다.

기타보다 더 클 뿐 아니라, 플렛의 간격도 베이스라는 악기. 5학년의 내 작은 손으로 왼손 운지를 하기에 벅차기는 했으나, 내 손엔 이미 증폭된 재능이 깃들어져 있는 상태였으니 놀랄 만도 했을 것이다.


“일단, 이 악보들을 나눠 드릴게요.”


그들의 넋이 반쯤은 나가 있는 사이, 나는 재빨리 베이스를 바닥에 놓고, 준비한 악보더미를 기타 멤버에게 전달했다.


“한 장씩 나눠가지세요.”

“어···. 그, 그래.”


내가 손을 푼 이후, 멤버들의 태도가 갑자기 고분고분해졌다.


'후후후.'


속으로 웃음이 절로 났다.


'역시 뮤지션들과의 기싸움은 음악으로 해야 한다.'


밴드 시나브로.

사실 다른 밴드도 아닌 콧대 높은 그들을 이렇게 기싸움을 해가면서까지 고생하며 섭외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회귀 전의 1989년의 서현철. 밴드 시나브로의 베이시스트로 발탁되었기 때문이지.'


물론 서현철은 이 밴드의 활동을 통해 많은 음악적 경험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회귀 전의 상황.

이제부터 이들과 서현철의 음악적 교통정리는 내가 직접 할 것이다.


***


밴드 시나브로의 리더 백대현은 지금 오른쪽 눈 밑이 부르르 떨리고 있다.


'뭐지? 이 상황···.'


그는 지금 표정 관리를 전혀 할 수 없는 상태다. 지금의 이 순간. 이전에는 전혀 겪어보지 않은 경험이었기에.


“일단, 이 악보들을 나눠 드릴게요.”


방금 한 국민학생이 손을 풀기 위해 훑은 스케일 연주에 얼어붙은 건 비단 백대현만이 아니었다. 모든 멤버들도 백대현과 마찬가지로 얼어 붙은 상태다.


'그야말로 일필휘지(一筆揮之)!'


그 몇 초간의 연주는 마치 명필가의 붓놀림처럼 다섯 음계의 흐름이 일순간 굽이쳤다가 사라지는, 단 한 번의 획만으로도 시나브로의 전 멤버들을 압도시킨 것이다.

허나, 백대현을 정말로 화가 나게 만든 건 그의 연주 뿐만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를 화나게 만든 건 대현의 정신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고 평온한 국민학생의 저 표정.


'씨발! 내 음악세계 전체를 부정당한 느낌이라니!'


백대현이 이끌고 있는 밴드 시나브로.

자신을 포함한 대부분의 멤버가 아직 20대 초중반의 젊은 나이지만, 백대현은 자신할 수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 밴드 중 연주실력으로는 자신들이 최고라는 것을.

이렇듯 그 누구 앞에서 연주 실력으로 위축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백대현. 그렇기에 지금 상황에서 어찌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특히나 자신의 부친이자, 한국 락음악의 대부인 백태산의 후광으로 여태껏 그의 카리스마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기에 국민학생 한 명에게 주도권을 뺏겨 그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이 더욱 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섭외한 목적도 안 밝히고 여러분들을 이곳까지 모신 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


악보 세팅을 마치자, 국민학생은 시나브로 멤버 사이의 중앙에 서서 꾸벅 목례를 했고, 백대현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물론 속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하지만 여러분이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재벌 2세 들러리' 선다는 건 여러분들의 오해입니다. 그 부분은 저도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그런데 국민학생의 말이 길어질수록 백대현의 시선은 그 국민학생이 아닌, 자신의 옆에 있는 세컨드 기타리스트 홍기철의 얼굴로 향했다.


'안 돼! 지금은 안 된다고 이 새끼야!'


갑자기 백대현 쪽으로 뒤돌아보며 은밀하게 보내는 홍기철의 윙크.

팀 내에서 가장 장신에다가 곱슬머리 장발로 팬들로부터 별명이 곱슬거인인 홍기철. 걸출한 기타 실력으로 언제나 시나브로의 든든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음악 외적으로는 더럽게도 눈치가 없는 편이다.


“뭐, 사과를 하기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고요.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서현철이란 아티스트를 육성할 예정···.”

“뭐 이 새꺄? 사과? 아티스트 육성?! 쪼끄만 게 어른들 불러 놓고 지금 장난하는 거야?!”


백대현에게 윙크를 날린 후, 무슨 속셈인지 안현의 말을 끊어 먹으며 갑자기 급발진하는 홍기철. 그런 그를 제지시키려다 타이밍을 놓친 백대현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형님! 형님은 자존심도 없습니까? 저런 꼬마한테 이렇게 농락을 당하고 있으니말입니다!”

“기철아! 그만 해! 일단 말이나 들어보고···.”

“아니 대현 형님! 지금 저 꼬맹이 말이나 들어 보자뇨!”


결국 참다 못한 백대현. 홍기철의 말을 끊어보려 노력했으나.


“저 녀석이 아까 후린 펜타토닉이요. 그거 형님에게 보여준 선전포고 아닙니까?”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형님도 당당히 보여주십쇼!”


점점 커지는 홍기철의 목소리.


“지금 이자리에서 저 꼬맹이와 배틀 한번 떠보자고요!”

“뭐?!”

“블루스 잼 배틀이요! 형님! 우리 밴드 시나브로, 그리고 백태산 선생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본때를 보여 주시라고요!'


망연자실한 백대현. 하지만 그와는 상반되게 홍기철은 다시 백대현에게 뒤돌아보며 엄지척을 날렸다.


'그만! 그만하라고! 이 눈치는 밥 말아 먹은 똘아이 새끼야!'


<1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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