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똘똘킴 님의 서재입니다.

음악으로 세계 독식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똘똘킴
작품등록일 :
2022.09.16 23:53
최근연재일 :
2022.10.10 10:0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4,697
추천수 :
163
글자수 :
137,703

작성
22.10.03 14:40
조회
85
추천
5
글자
12쪽

타이지와 아이들(5)

DUMMY

엄마와의 만남이 마무리되고 버스를 타기 위해 아파트를 나서자, 유명식이 강아지 마냥 내 뒤를 쪼르르 따라왔다.


“뭐하냐? 징그럽게? 배웅 같은 거 필요 없으니까 집으로 들어가서 엄마나 잘 모셔라.”

“내가 좋아서 널 따라왔겠냐?”

“그럼 왜 따라오는 건데?”

“안욱. 안욱 녀석 얘길 해줘야 할 거 아냐?”


깜빡 잊었다. 녀석을 만나는 핑계로 엄마를 보는 대신, 녀석에게 동생 안욱 얘기를 해주는, 나와 녀석과의 거래 아닌 거래 조건.


“이번 얘긴 너한텐 그다지 재미없을 텐데.”


나는 녀석에게 그간 있었던 평택 밤가시 축제 때 있었던 사건들을 정리하여 설명해줬다.


“뭐야? 너랑 한 팀 먹고 공연 무대에서 연주까지 했다고? 그건 놈한테 좋은 일 아니야?”


안욱의 소식이 궁지에 몰리거나, 패배한 모양새가 아닌지라 내 얘기를 듣던 녀석의 표정에 실망감이 스며들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녀석.’


“그럼 너라면 어떻게 했을 거 같은데?'

“류병택을 공격하는 대신 안욱 놈을 공격했어야지! 안욱과 한 팀으로 공연할 게 아니라, 안욱 놈의 쪽을 팔리게 해야 속시원한 거 아냐?”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줄 알았다.

나는 녀석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최대한 쉽게 설명할 필요성을 느꼈다.


“네가 그렇게 덜떨어지게 생각을 할 줄은 알았다. 꼭 쳐 맞거나 쪽을 당해야만 지는 거냐?”

“그럼 뭐가 지는 건데?”

“놈이 주도권을 잃었잖아.”

“주도권?”

“아무것도 모르고 보면 축제무대에서 연주하고, 사람들한테 박수 받고, 좋아 보이지? 하지만 그 모든 일이 다 누가 시킨 건데?”

“···너.”

“그래. 그러니까 놈은 앞으로 나에게 종속된 거라고.”

“아···.”


녀석이 뒤통수를 긁으며 일단은 수긍하는 듯 반응을 했다. 하지만 정말 수긍한 게 맞는 건가?


“게다가 내가 네 말처럼 놈을 사람들 보는 앞에서 쪽을 줬다면 아버지인 안치영 대표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어?”

“아, 그럼 곤란해지겠지.”


회귀 전 자신의 아버지 관점으로 설명해서인지 이제서야 녀석의 얼굴이 조금은 이해되는 표정으로 변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냐?”

“내 계획은 왜?”

“말 못 할 건 뭐냐? 날 그 정도로 못 믿는 거냐?”


녀석의 질문에 난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내 계획을 녀석에게 굳이 말해도 될까?

고민을 하면서 난 녀석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지금의 나처럼 또래에 비해서 큰 키이지만 어디에서나 볼 법한, 그저 평범한 이목구비 국민학생 모습. 한 마디로 회귀 전 시민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내 모습.

설령 내 일을 고의로 그르치기 위해 일을 꾸미려 해도 그런 모습을 해가지고선 누구도 본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녀석은 음모를 꾸밀 머리도 안 되기도 했고.


“지금은 서현철을 끌어들이고 중이다.”

“뭐? 서현철? 타이지와 아이들의 그 서현철?!”


처음 본 모습이었다. 회귀를 한 이후로 녀석의 눈이 그렇게 커진 것을.


“내일. 내일 서현철의 학교로 가서 결판을 낼 거다.”


***


서현철의 학교에 밴드 시나브로를 포함한 나의 팀원 전원을 총집결시켰다.


“작은 대표님. 이제 곧 무대에 오르시면 됩니다.”


북서울 공고의 강당 대기실 문을 활짝 열고 나타난 오병수. 공연 준비를 위해 혼자서 분주히 이리저리 뛰어다닌 탓에 오병수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네. 오 실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급하게 잡은 공연.

내 사정을 모르는 이가 본다면 목적도 모호하고 명분도 없을 공연이다. 아마 학교측에서도 학생들 상대로 왜 보여줘야 하는지를 납득시키기 힘들었을 터. 이 모든 걸 성사시킨 건 지금 혼자서 동분서주 공연준비를 하고 있는 오병수 대리의 공이 컸다.


“그런데 이 공연이랑 신인 아티스트 발굴이랑 무슨 상관이지?”

“그러게. 게다가 공연할 곡이 다 연주곡이고, 보는 학생들도 시큰둥할 거 같은데?”


납득하지 못하는 건 학교측 뿐이 아니었다. 공연 대기 중인 시나브로 멤버들도 의구심 가득한 눈들이 나를 향하며 궁시렁댔다.


“모든 건 결과가 말해줄 겁니다. 여러분은 저와 연습한 대로만 연주해주세요. 학생들 반응은 전혀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


나는 이 공연에서 밴드 시나브로와 몇 곡의 연주곡을 선보일 것이다.

또한 나는 현재 시나브로의 공석인 베이시스트 자리에서 베이스를 연주할 예정이고.


공연 시작을 알리는 조명이 켜지기 전,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빡센 과정이었어.'


내가 아무리 신화기획 안치영 대표의 장남이라 하여도 베테랑 밴드를 고등학교 공연에 섭외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몸은 12살 어린 아이의 몸. 거기에 음악판의 금수저를 물고 있는 상황.

안 그래도 사회 비판의식이 강한 락밴드 멤버들의 눈에 내 모습은 고깝게 보였을 터였다.

하지만 내가 손을 풀기 위해 악기를 들어 소리를 내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나를 바라보는 시나브로 멤버들의 시선이 완전히 달라지게 됐다.

그리고 그 후로 그렇게나 콧대 높았던 그들을 통솔하기가 갑자기 수월해졌고 말이다.


'역시 뮤지션들에겐 음악으로 보여줘야 한다니까.'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무릇 뮤지션이란 자신보다 음악적 내공이 뛰어난 이를 만나면 그 사람의 나이나 출신에 상관없이 그를 형님으로까지 모실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아직 조명이 켜지지 않아 어두운 무대와 객석. 나는 미간을 일그러뜨려 어두운 관객석을 살펴봤다.


'서현철. 분명히 어딘가에 앉아있겠지?'


이 공연의 유일한 목적은 서현철과 다시 만나는 것이다.


'머릿속에 오로지 음악밖에 없었던 고등학생 서현철에게 서현철 자신이 미래에 발표할 음악을 들려주는 것.'


국민학교 5학년의 몸으로 생면부지의 고등학생 서현철과 안면을 틀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밖에 없었다.

아예 공연을 열어서 그의 앞에서 무대를 서는 것 말이다.


기잉-


드디어 무대의 조명이 켜졌다.


쿵 딱 쿠궁쿵쿵 딱~


드러머의 양 손에 들려진 스틱이 휘둘려졌다.

그러자 드럼 세트의 하이햇에서 자로 잰 듯 정확한 8비트 리듬이 쪼개지고, 그 하이햇 사이를 정교하게 파고드는 킥과 스네어 사운드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시대적 유감.’


지금 연주하는 이 곡의 제목. 서현철이 1995년에 발표했던 곡이다.

보컬없이 연주곡으로 진행되는 이 곡은 95년 타이지와 아이들의 마지막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당시 이 곡은 사회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가사 내용으로 심의에 걸려 발표를 못하는 위기를 겪었다.

이에 서현철은 그에 대한 반항의 의미로 과감히 보컬트랙을 뺀 버전으로 이 곡을 발표시켜 버린다.

그리로 지금.

나 역시 이 공연에서 미래의 서현철과 마찬가지로 보컬 트랙을 뺀 채로 연주하기로 했다.


'서현철! 드디어 찾았다!'


드디어 서현철의 얼굴을 관객석에서 발견했다.


심드렁한 학생들의 표정.

아직 10대들이 받아들이기에 너무 이른 스타일, 거기다 보컬도 없이 연주되는 우리의 연주에 그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 유독 충격을 받은 듯한 한 학생.

베이스를 연주하면서 관객석을 다시 살펴본 나는 서현철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17세의 서현철.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어렸을 적부터 머릿속에만 울리고 있던 꿈의 사운드를 지금 그의 앞에서 시나브로가 연주하고 있는데 어찌 충격을 안 받을 수 있으랴.


“······.”


서현철의 시선이 이내 나에게로 옮겨졌다.

충격의 핵심은 나일 것이다.

댄스그룹으로 데뷔는 했지만 뮤지션으로서의 포지션이 베이이스트인 서현철.

지금 연주되는 꿈의 사운드에 베이스 연주를 며칠 전 보았던 국민학생이 연주하고 있으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학생 여러분들. 오늘 공연 즐거우셨길 바라겠습니다! 앞으로 밴드 시나브로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


짝 짝 짝.


모든 공연이 끝났다. 시나브로의 리더인 기타리스트 백대현이 마무리 인사를 하자, 학생들이 하나 둘 강당 출구를 통해 강당 밖으로 빠져 나갔다.


모든 학생이 나가고 시나브로 멤버들이 악기를 챙겨 대기실로 가는 순간.


“저기! 너!”


강당을 떠나지 않은 한 학생이 무대로 다가와 내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


“어? 현철이 형이네.”


나는 뒤돌아보며 자못 놀란 듯한 표정으로 서현철을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너··· 나를 도대체 어떻게··· 알아?”


서현철이 제 발로 나를 찾아왔다.

내가 던진 미끼. 계획대로 서현철이 물어 버렸다.


***


“와, 1989년에 벌써 미디장비를 갖추고 있다니. 형은 정말 대단해.”


공연이 있고 3일이 지난 후, 서현철의 집으로 초대를 받은 나는 서현철의 방을 여기저기 둘러봤다.


“그 때. 그 학교 공연은 뭐였지?”


두리번거리며 방 안을 돌아다니는 내 팔목을 붙잡은 서현철이 나를 의자로 앉혔다.


“아. 형도 알다시피 내가 안치영 씨 아들이잖아.”

“그 공연이랑 네가 안치영 아들인 거랑 무슨 상관인데?”

“뭐. 대형 기획사 대표의 아들이 누릴 수 있는 취미생활이랄까?”


내가 듣기에도 궁색한 대답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적당한 대답도 없었다.


“그럼 그 공연의 첫 곡. 그건 네가 만든 곡이야?”

“그건 중요하지 않아. 형.”


서현철이 계속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으나 나는 괘념치 않았다.

사실 서현철의 충격을 극대화하기 위해 급하게 준비한 곡이라 그에게 '시대적 유감'에 대한 변명까지는 준비하지 않았다.


“앞으로 형의 미래가 중요해. 형은 이제부터 앞만 보고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고.”

“왜지?”

“형이 우리나라 음악판을 뒤집어 놓을 거거든.”


듣기 좋은 말이긴 한데 서현철은 아직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사기꾼으로 오해받기 딱 좋은 답이었다. 쫓겨나기 전에 빨리 화제를 돌릴 필요가 있었다.


“그나저나, 미디 장비가 있다면 곡 좀 썼을 거 같은데 작업했던 것 들려주면 안 돼?”

“······.”


어차피 내가 선보였던 음악과 내 놀라운 연주 실력에 호기심이 일어 나를 초대했으니, 자신이 쓴 곡을 안 들려줄 리는 없었다.


틱.


망설이던 서현철이 컴퓨터 전원을 켜고 미디 파일 하나를 열어 플레이 버튼을 클릭했다.


쿵 딱 쿠구구구궁 딱~


스트레이트한 16비트 드럼패턴.


'그렇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모니터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사운드. 서현철이 조직한 댄스그룹 ‘타이지와 아이들’을 단숨에 전국구 스타로 만든 '날 아나요?'의 데모버전이었던 것이다. 혹시나 아직 만들어진 게 아닐까 하고 걱정했는데.


“어떤 거 같아?”

“베이스 라인을 이렇게 단순하게 갈 생각은 아니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화성 편곡, 그리고 투박한 사운드.

천하의 서현철이지만, 아직은 10대인 학생. 내가 알고 있는 서현철의 데모곡보다는 부족함이 있었다.

하지만.

내색을 하려 하진 않았지만 난 사실 속으로 적잖이 놀란 것도 사실이었다. 역시 천재적인 감각을 가진 서현철. 물론 아직은 서투른 감이 있었지만 데모 버전임에도 그의 천재적인 비범함이 묻어나 있었던 것이다.


“맞아. 나중에 정식 녹음하게 되면 베이스 라인은 좀 더 복잡하게 갈 거야.”


내가 기다리던 답이 드디어 서현철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의 견해를 피력했다.


“특히 도미넌트 세븐 코드에서 1도 마이너로 코드가 해결될 때, 그 도미넌트 코드 베이스 음을 첫 번째 자리바꿈해. 그래야 베이스 라인이 반음 씩 상행 진행되잖아.”

“?!”


도저히 1989년을 사는 5학년 아이의 입에서 튀어나올 수 없는 용어들이 튀어나오자, 서현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형. 그리고 말이야. 나중에 정식 녹음하게 되면이라니? 데뷔를 늦출 이유라도 있는 거야? 중요한 일은 미루는 게 아니라고.”


난 서현철의 어깨를 잡고 애써 간절한 표정을 만들어 말을 이어갔다.


“형. 내가 당장 형의 꿈을 실현해 줄게.”


<17화 끝>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음악으로 세계 독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 안내 22.10.11 20 0 -
공지 월~금 오후 6시 10분 / 토,일, 공휴일 오전 10시 연재 22.10.06 34 0 -
24 내일은 늦으리(3) 22.10.10 53 5 13쪽
23 내일은 늦으리(2) 22.10.09 57 5 12쪽
22 내일은 늦으리(1) 22.10.08 64 6 12쪽
21 헤드폰을 쓰고 다니는 광인(狂人) 22.10.07 74 6 14쪽
20 타이지와 아이들, 드디어 데뷔하다 22.10.06 77 4 12쪽
19 타이지와 아이들(7) 22.10.05 74 4 12쪽
18 타이지와 아이들(6) 22.10.04 77 5 13쪽
» 타이지와 아이들(5) 22.10.03 86 5 12쪽
16 타이지와 아이들(4) 22.10.02 102 5 13쪽
15 타이지와 아이들(3) 22.10.01 107 4 13쪽
14 타이지와 아이들(2) 22.09.30 124 4 11쪽
13 타이지와 아이들(1) 22.09.29 152 7 12쪽
12 류 부장의 몰락 22.09.28 169 6 13쪽
11 행사 무대부터 독식(6) 22.09.27 170 6 14쪽
10 행사 무대부터 독식(5) 22.09.26 164 5 13쪽
9 행사 무대부터 독식(4) 22.09.25 187 6 13쪽
8 행사 무대부터 독식(3) +1 22.09.24 227 7 13쪽
7 행사 무대부터 독식(2) +1 22.09.23 236 8 12쪽
6 행사 무대부터 독식(1) +1 22.09.22 287 11 13쪽
5 푸른 빛의 아지랑이 +1 22.09.21 309 10 13쪽
4 뒤바뀐 운명 +1 22.09.20 367 11 13쪽
3 금수저를 빼앗다. +1 22.09.19 450 11 12쪽
2 안현, 그리고 유명식(2) +1 22.09.18 456 10 14쪽
1 안현, 그리고 유명식(1) +1 22.09.17 627 12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